소설리스트

검을 읽는 막내 공자 162화 (162/200)

<검을 읽는 막내 공자 162화>

162화. 광기의 검객(3)

“쌍아, 이 쳐죽일 놈이!”

죽은 도사들을 본 포염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어째서 이들을 죽였단 말인가! 이들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그사이 죽은 자들을 찬찬히 살펴보던 섬화가 나직한 어조로 말했다.

“아마 이들은 검존에게 향하는 쌍아를 막아섰을 거예요. 쌍아는 자신을 막아서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이런 짓을 벌인 것이고요.”

“단지 그것 때문에 이런 짓을…….”

참담한 심정을 억누를 수 없었던 포염이 시체 탑 앞에 두 무릎을 꿇었다.

“먼저 가시오. 나는 이들을 위해 따로 할 것이 있으니.”

“아니요. 우리도 여기서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섬화의 말에 공손무가 눈가를 좁히며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죠? 여기서 기다리다니?”

“검존은 화산파 제일 검이라고 할 만큼 고수잖아. 아무리 쌍아라도 그를 단시간 안에 죽이지는 못할 터. 검존과 싸우던 쌍아가 힘이 빠지면 그때 그를 치는 거야.”

하지만 공손무는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듯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말도 안 돼요! 검존은 그렇다 치더라도 할아버지는 지금 저기서 싸우고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좁은 곳에 많은 사람이 들어가면 우리가 불리해. 그보다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다가 놈의 허를 찌르는 게 나을 거야.”

“흥! 겁이 나면 그냥 솔직하게 겁이 난다고 말하세요. 그런 식으로 에둘러 말하지 말고!”

“뭐, 뭐라고?”

휘리릭!

섬화가 대답하기도 전에 공손무가 허공을 박차고 수련동 안쪽으로 혼자서 날아가 버렸다.

청운이 그가 사라진 곳을 노려보며 말했다.

“저런 망할 놈! 아가씨, 어떡할까요?”

잠시 침묵하던 섬화가 나직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오히려 잘 된 것일 수도 있어.”

“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잘 되다니요?”

“저 소년의 실력이 궁금했었거든. 그 잠재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이 기회로 확인할 수도 있지 않겠어? 후훗.”

옅은 미소를 머금은 그녀가 공손무를 따라 수련동 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가씨!”

섬화가 사라지자 청운이 부하들에게 손짓하며 소리쳤다.

“모두 뭣 하고 있는 것이냐! 어서 아가씨를 따라가자!”

“존명!”

명령하고 난 뒤에도 그의 머릿속에는 일말의 의문이 맴돌았다.

‘소년의 잠재능력이 궁금하다? 아가씨가 왜 그런 생각을……?’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한편 무서운 속도로 날아가던 공손무는 수련동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기분 나쁜 기운이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놈이 가까워지는 게 느껴져. 분명히 이 근처에 쌍아가 있는 거야.”

잠시 후 수련동 깊숙이 진입한 그의 귓가에 누군가의 비명이 들렸다.

“끄아아악!”

“이 소리는?”

고통에 찬 비명에 공손무가 재빨리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방향을 꺾었다.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아니다. 그럼 검존의 목소리인가?’

디리링!

이때 그의 머릿속으로 엘파고의 신호음이 울렸다.

[ 흑사교의 영혼을 감지했습니다. 주변 탐색을 추천합니다. ]

엘파고의 말에 공손무는 확신할 수 있었다.

‘역시 이 주위에 있어. 어디에 있는 거냐, 쌍아!’

비명이 난 방향으로 날아가던 그는 이내 무엇을 보았는지 표정이 굳어졌다.

“이게 무슨?!”

처음으로 보이는 것은 선혈이 낭자한 땅바닥이었다.

다음은 정체불명의 중년 사내였는데, 차가운 바닥에 엎어진 채 피를 철철 흘리며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의 등 뒤에는 두 자루의 검이 꽂혀 있어서 참혹함이 이루어 말할 수 없었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이때 짙은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키히히힛!”

귓속을 후벼 파는 듯한 웃음소리에 공손무의 얼굴이 일순간 딱딱하게 굳어졌다.

“오호라. 이건 또 누굴까나~?”

기분 나쁠 정도로 여유가 느껴지는 목소리에 공손무의 미간이 좁혀졌다.

“누구냐. 어서 나와라.”

하지만 그의 말에도 상대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키히히힛! 잔뜩 화난 표정을 하고서는, 날 죽이러 여기까지 온 건가?”

“네놈이 바로 쌍아냐?”

“호오? 뭐야, 화산파 사람이 아니었나?”

흥미가 생겼는지 그제야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놈이 쌍아인가?’

공손무의 앞에 나타난 것은 얼굴이고 손이고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모든 곳에 붕대를 감고 있는 사내였다.

붉은색의 띠를 두른 회색빛의 무복을 입은 채 살기등등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확실히 풍기는 기운이 범상치 않다.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 거지?’

화경의 경지를 앞둔 공손무조차 이질감을 느낄 정도로 붕대 사내의 기운은 예사롭지 않았다.

살기가 너무나도 짙어 온몸의 털이 곤두설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공손무는 물러서지 않았다.

“네가 쌍아냐고 물었다.”

당돌한 질문에 붕대 사내가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크큭! 참으로 맹랑하기 짝이 없는 꼬맹이로군. 내가 쌍아면 어찌할 것이냐?”

“화산파를 좀먹으며 부당하게 군림하고 있는 그 쌍아라면 죽음을 면치 못하겠지.”

공손무의 말을 들은 붕대 사내가 순간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입술을 씰룩였다.

“풉! 크흐흣! 크하하핫!”

그가 포복절도(抱腹絶倒)하자 공손무가 날이 선 목소리로 물었다.

“뭐가 그렇게 웃긴 거지?”

“쿠쿡!”

붕대 사내가 손으로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답했다.

“너무 웃기잖아. 어떻게 이리 하나같이 똑같이 말을 하는지.”

“뭐?”

그가 쓰러져 있는 중년 사내의 얼굴을 발로 툭툭 건드리며 말을 이었다.

“이 녀석도 너와 비슷한 말을 나에게 했지. 화산파는 나 같은 악인이 있을 곳이 아니라며 죽음을 각오하라고 했어. 천승진인이 폐관 수련동에 재밌는 장난감이 있다고 하길래 한번 와봤더니…… 재미는커녕 너무 시시해서 하품이 나올 지경이야.”

공손무는 설마 하며 물었다.

“그럼 그 사람이 검존?”

“키킥! 정답~!”

예상 외의 상황에 공손무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명색이 화산제일검이라는 검존이 저렇게 허무하게 당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천승진인, 그 사람은 어디에 있나?”

“우리 꼬맹이 친구. 내가 하나 충고하는데 궁금한 게 너무 많으면 오래 살지 못하는 법이야. 그쯤에서 입을 다무는 게 어때?”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가 보군. 그럼 질문을 바꾸지.”

공손무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너와 흑사교(黑蛇敎)는 무슨 관계지?”

그의 물음에 붕대 사내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이채가 띠었다.

“어라? 흑사교를 입에 담다니. 우리 꼬맹이 친구의 정체가 의심스럽네?”

상대의 마음에 작은 동요가 생겼다는 것을 눈치챈 공손무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내 이름은 공손무, 화산파 출신이며 화산검마의 뜻을 이어받은 자이다.”

“공손무, 화산검마?”

“흑사교가 화산파를 지배하려고 천승진인과 작당하고 널 보낸 것을 알고 있다. 내 말이 틀렸나?”

공손무를 지그시 노려보던 붕대 사내가 이내 낮은 어조로 말했다.

“내가 한 가지 더 충고할까?”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궁금한 게 너무 많은 사람은 오래 살 수 없지만, 이미 너무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은 그냥 그 자리에서 죽는다.”

“그게 무슨 헛소리냐!”

“네 녀석의 물음에 답해 주지. 그래, 네 말대로 나는 쌍아가 맞다. 검은 뱀의 예리한 칼날이자 독니이지.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어. 지금부터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네놈을 이 자리에서 갈기갈기 찢어 놓을 것이야.”

[ 흑사교의 ‘뱀의 이빨’ 인 쌍아를 발견하였습니다. 적의 공격에 주의하십시오. ]

엘파고의 말에 공손무가 입꼬리를 올리며 중얼거렸다.

“안심해. 녀석에게 당할 생각은 조금도 없으니까.”

이때 쌍아가 검존의 등에 꽂혀 있던 쌍검을 뽑아 들었다.

쉬이이익!

‘뭣?’

그러고는 휙 하고 바람을 일으키더니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온다!’

평범한 고수라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목이 베였겠지만, 공손무는 달랐다.

‘생각해 내는 거야! 할아버지가 보여 준 검술을!’

상체를 뒤로 젖혀 검격을 피한 그가 검을 세차게 휘둘러 반격을 가했다.

‘광풍홍아(狂風紅牙).’

매화 꽃잎을 품은 돌풍이 휘몰아치더니 쌍아를 향해 날아갔다.

선홍빛 검기를 두른 회오리바람이 날아오자, 쌍아가 쌍검을 교차하여 방어 자세를 취하였다.

우웅! 우웅!

교차한 쌍검에서 범상치 않은 공명음이 울리고 있었다.

콰가가강!

광풍홍아(狂風紅牙)가 쌍검과 충돌하자, 강력한 폭발과 함께 뿌연 연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어떻게 된 거지?’

공손무는 안력을 돋우어 연기 안쪽을 살펴보았다.

“키히히힛!”

하지만 쌍아는 조금 뒤로 밀려났을 뿐 별다른 상처는 입지 않은 상태였다.

‘이런, 역시 이 정도로는 안 되는 건가?’

완벽한 광풍홍아가 아닌 이상 쌍아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것 무리인 것 같았다.

‘흉내 내는 정도로는 녀석을 죽일 수 없는 건가? 치잇! 인제 와서 이런 소리를 해 봤자 소용없어. 죽기 살기로 덤벼 보는 수밖에!’

쌍아의 공격에 대비해 공손무는 자세를 다잡았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쌍아는 쌍검을 든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하였다.

‘왜 저러는 거지?’

자신을 앞에 두고 쌍아가 생각에 잠겨 있자 공손무가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뭐지? 나를 무시하는 건가?”

이에 쌍아가 멍한 눈빛을 한 채 중얼거렸다.

“흐음. 갑자기 호기심이 좀 생겨서 말이야.”

“호기심?”

“그래. 널 어떻게 요리해 줄지 그것에 대해 잠시 생각하고 있었어.”

쉬이이익!

‘빠르다?’

자리에서 또다시 사라진 쌍아가 이번에는 공손무의 뒤쪽에서 나타났다.

‘크읏! 내가 쫓을 수 없을 정도의 움직임이야! 이 녀석 도대체 어느 정도의 경지인 거지?’

빠르게 이동한 쌍아가 히죽이며 생각했다.

‘쿡쿡. 빈틈이 많지만 그래도 내 움직임을 어찌어찌 따라오고 있군. 처음에는 그냥 자기 분수도 모르는 꼬맹이인 줄 알았는데 인제 보니 재밌는 물건일세?’

상대의 예상치 못한 실력에 쌍아는 어딘가 기쁜 모습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희열을 느끼는 것 같았다.

“키히히힛!”

“뭐가 그렇게 즐거운 거지?”

“당연히 즐거울 수밖에! 천승진인이 말한 검존은 보다시피 이리 형편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일방적인 싸움이라서 하품이 나올 지경이었지. 한치의 앞도 내다볼 수 없고 피와 살점이 낭자하는 치열한 혈투를 기대했는데 말이야!”

쌍아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이리 재미난 게 튀어나오니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겠어? 이렇게 된 이상 검존 대신 네놈이 날 즐겁게 해 줘야겠다.”

쌍아의 말을 들은 공손무의 머릿속에는 한 단어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미친놈이군. 완전히 미쳤어.’

그가 보기에 쌍아는 성격이 파탄 나 버린 광인이었다.

“그동안 어디에 있었던 거지? 어디에 숨어 있다가 이제 나타난 거냐!”

“그런 걸 알아서 뭘 하려고?”

“화산검마의 뜻을 이어받았다고 했잖아. 그 늙어 빠진 천살성은 어디에 숨어 있는 거지? 내가 그자의 목을 누군가에게 좀 바쳐야 해서 말이야.”

“닥쳐라!”

쿠구구구!

공손무가 거대한 양의 내공을 끌어 올리자 공력의 파장이 수련동 전체를 뒤덮었다.

강한 압박이 전신을 옥죄여 오자 쌍아의 두 눈이 커졌다.

“호오? 그 나이에 이 정도의 내공을 보유한 것인가? 보면 볼수록 물건이로다!”

“네 녀석은 여기서 죽을 것이다. 내 아버지와 가족을 해치고 화산파와 중화를 좀먹는 너희들을 한 놈도 살려 두지 않을 것이야!”

“키히히힛! 그래! 더 소리쳐라! 더 분노해라! 그 분노를 나에게 퍼부어 보아라!”

“으아아아!”

공손무가 기합 소리를 내지르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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