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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읽는 막내 공자 158화 (158/200)

<검을 읽는 막내 공자 158화>

158화. 흑사교(3)

끼이잉!

‘으음?’

이때 장원의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공손무가 과거의 기억 속에서 빠져나왔다.

‘드디어 나오는구나. 꽤 많은 인원의 기척이 느껴진다. 좋은 징조야…… 더 많은 사람이 이쪽으로 몰릴수록 할아버지는 더 쉽게 내부로 침투할 수 있으니까.’

정문이 활짝 열리고 한 무리의 도사들이 안에서 쏟아져 나왔다.

‘저건?’

무리 속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내자 공손무의 두 눈이 커졌다.

‘포염과 신충?’

육 년이 지났지만, 공손무는 한눈에 그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포염은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을 하고 있었고, 신충은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채 의기양양해 보였다.

‘부하들을 보낼 줄 알았는데…… 아무리 매화검수를 거느렸다고는 해도 직접 이렇게 모습을 드러낼 줄이야. 내가 그 공손무인지 아닌지 어지간히 궁금했나 보지?’

아니나 다를까 포염은 나오자마자 강렬한 시선으로 공손무 쪽을 쳐다보았다.

공손무를 쳐다보는 그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

‘닮았어.’

포염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소년의 존재를 좀처럼 믿을 수 없었다.

‘진짜 닮았다. 그 녀석이 사라진 게 육 년 전이었던가?’

보면 볼수록 포염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불안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놀란 것은 신충 또한 마찬가지였다.

“말도 안 돼! 죽은 게 아니었어?”

죽은 줄 알았던 공손무가 멀쩡히 살아 돌아오자 포염과 신충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 사이 공손무는 뒤쪽에 숨어 있는 섬화를 향해 전음을 날렸다.

‘제가 혼자 녀석들을 상대하지요. 위험한 순간이 오면 그때 도와주십시오. 뭐,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지만요.’

평소와 같으면 말도 안 된다고 했을 그녀였지만, 공손무의 실력을 청운에게서 들었기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지.’

섬화가 어둠 속에서 부하들에게 조용히 대기할 것을 명령했다.

잠시 후 무거운 침묵 속에서 포염이 먼저 입을 뗐다.

“너는 누구냐. 누구인데 화산파에서 이런 무례한 짓을 벌이는 것이냐?”

포염은 눈앞에 있는 소년이 공손무가 아니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그런 그를 빤히 쳐다보던 공손무가 입꼬리를 올렸다.

“다 알고 있으면서 왜 내 정체를 묻는 겁니까?”

공손무의 말을 들은 포염의 눈동자가 한차례 흔들렸다.

“그게 무슨 뜻이지?”

“제가 누군지 짐작하시는 바가 있을 겁니다. 제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당신들이 죽이려 했던 아이. 절름발이에 한쪽 팔도 못 쓰던 그 아이 말입니다.”

“크윽!”

그 의미를 잘 알고 있는 포염은 입술을 깨물었지만, 반면에 뒤쪽의 매화검수들은 저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술렁였다.

“저 자식 지금 뭐라고 하는 거지?”

“우리가 죽이려 했던 아이라니?”

이때 돌아가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신충이 안광을 번뜩이며 소리쳤다.

“갈! 모두 입을 다물지 못할까! 저런 근본도 없는 놈의 헛소리에 뭘 그리 진지하게 반응하는 것이야!”

“아, 아닙니다! 단지 너무 황당하여…….”

우려하던 것이 현실이 되자 포염은 더는 모른 척할 수 없었다.

“너, 정말 공손무냐?”

“그렇습니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이제는 매화검수가 아닌 장문인이라 해야 하겠지요?”

“참으로 많이 컸구나. 그때는 조그만 꼬마였는데 말이야.”

공손무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렇지요. 세월이 그렇게나 흘렀습니다.”

“여기에는 왜 온 것이냐? 지난날의 죄를 뉘우치러 온 것이냐?”

“죄라니, 제가 무슨 죄를 저질렀다는 겁니까?”

“모른 척하지 마라. 너는 화산파의 신물인 경화수월(鏡花水月)을 훔쳐 도주한 죄가 있다. 그런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르고서 어찌 다시 여기에 왔단 말이냐?”

“날 죽이려 하지 않았다면 그런 일도 없었을 겁니다!”

“누가 널 죽이려고 했다는 말이냐?”

“참으로 뻔뻔하군요. 천승진인의 명령을 받고서 천살성인 나를 죽이려 하지 않았습니까!”

천살성이라는 말에 매화검수들이 저마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천살성? 지금 천살성이라고 한 건가?”

“경화수월을 훔쳐 도주한 천살성? 아! 설마 그 주도진인의 제자를 말하는 거야?”

“그 녀석은 오래전에 죽었잖아. 안 그래?”

혼란 속에서 포염만이 침착함을 잃지 않은 채 차분한 어조로 대꾸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구나.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오히려 없는 일을 만들어 내어 우리를 모함하다니. 내 장문인으로서 더는 들어 줄 수 없다.”

“저 또한 필요 없는 입씨름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히 알아야 할 겁니다. 천승진인이 이 화산파를 사악한 집단에 바치려 하고 있다는 걸 말입니다!”

공손무의 말에 포염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장문인은 알고 계십니까?”

포염 또한 천승진인 위에 그를 조종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지난 세월 동안 깨달았다.

그 증거가 바로 지금 화산파에 군림하고 있는 쌍아였다.

마음으로는 부정할 수 없었지만 포염은 공손무에게 말리지 않기 위해 거짓을 말했다.

“전대 대장로께서 화산파를 사악한 집단에 바치려 한다니. 궤변도 이런 궤변이 없구나! 더 들을 가치도 없다! 마지막으로 경고하겠다. 지금 당장 화산파를 떠나라.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말아라. 그리 약속한다면 내 널 잡지는 않겠다.”

“장문인!”

신충이 말도 안 된다며 고개를 내저었지만, 포염은 신경 쓰지 않았다.

“자, 어떠냐. 화산파를 이대로 조용히 떠나겠느냐?”

“못 떠나겠다면 어찌하실 겁니까?”

“당연히 너를 잡아야겠지. 이후 다시 장로 회의를 소집해 너의 처우를 결정할 것이다.”

“있으나 마나한 장로 회의를 아직도 하시는 겁니까? 어차피 모든 것은…….”

“닥쳐라!”

이때 더는 참을 수 없었는지 진무궁의 궁주 신충이 공손무의 말을 가로막으며 앞으로 나섰다.

“장문인. 더는 말할 필요 없습니다. 제가 저놈을 잡겠습니다.”

“신충! 어서 뒤로 물러나라! 내 말은 끝나지 않았다.”

“저런 오만방자한 것을 그냥 놔둘 수 없습니다. 감히 대 화산파의 장문인을 뭐로 보고 저런 말을 지껄인단 말입니까!”

그들의 대화를 듣던 공손무의 입에서 의미심장한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신충인가?”

그 한마디가 신충의 심기를 헤집어 놓았다.

“너 지금 뭐라고 했느냐? 신충이라고?”

“그럼 신충이지. 아니면 못 보던 사이에 이름이라도 바꾼 건가?”

“이 건방진 놈이!”

한마디 대꾸도 하지 못하고 겁먹은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던 공손무가 자신을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신충은 속에서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도대체 뭘 믿고 이리 까부는 것이냐? 네가 말하는 건 다 헛소리라는 걸 몰라?”

“말이 통하지 않을 거라는 것은 예상하였다.”

말을 끝낸 공손무가 그 자리에서 신충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엇?’

그러자 신충은 갑자기 눈이 따가워지고 호흡이 가빠짐을 느꼈다.

‘이 느낌은 뭐지?’

공손무의 기세에 당황한 신충이었지만, 이내 표정을 고치며 소리쳤다.

“흥! 허세도 그만하면 병이다! 네깟 것이 지금 여기서 뭘 할 수 있다는 거냐?”

“지금의 나는 너희들을 쓰러트릴 수 있다.”

황당했는지 신충이 실소를 머금었다.

“풋! 뭐? 네가 우릴 쓰러트린다고? 누가 덜떨어진 주도진인의 제자 아니랄까 봐, 미친 말만 골라서 하는구나.”

신충이 주도진인을 입에 담자 공손무의 표정이 사나워졌다.

“그 더러운 입으로 사부님을 논하지 말아라!”

하지만 신충은 멈출 생각이 전혀 없었다.

“화산검마라는 허울만 좇다가 결국 개죽음을 당하고 말았지. 애초에 이 화산파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살게 해 주었으면 고맙다고 매일 절은 못 할 망정 감히 화산검마를 신봉하고 역겨운 천살성인 너를 기르며 화산파의 명성에 먹칠을 하지 않았는가!”

뿌드득!

그의 말을 듣던 공손무의 눈빛이 차갑게 변하였다.

“날 욕하는 건 봐줄 수 있다만, 사부님을 욕하는 건 봐줄 수 없다. 지금 당장 사과하지 않는다면 네놈의 사지를 찢어 버리겠다.”

“푸하하핫! 네가? 네가 나를?! 장문인, 들으셨습니까? 저놈이 지금 저를 찢어 죽이겠답니다!”

포염 또한 공손무의 말을 믿지 않았다.

“공손무. 인제 그만하고 내 말을 따라라. 여기를 떠나든지 아니면 우리의 구속에 응하던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란 말이다.”

“이런 선택은 어떻습니까?”

“무슨 말을 하려는 거냐?”

씨이익.

포염을 바라보던 공손무가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지어졌다.

“여기를 떠나지 않고 화산파를 좀먹는 당신들을 전부 처단하는 것!”

스르릉!

공손무의 말을 들은 신충이 망설임 없이 검을 뽑아 들었다.

“이제 더는 참지 못하겠구나. 주도진인의 뒤를 따라 너도 비참하게 죽을 준비를 하여라.”

“내 분명 그 더러운 입에 사부님을 거론하지 말라고 일렀건만, 기어코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공손무가 물러서지 않자 신충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마지막 인내심이 결국 허물어져 버렸다.

“장문인, 더는 저를 말리지 마십시오. 저놈을 잡아 죽여야 속이 풀리겠습니다.”

포염도 더는 제지하지 않고서 두 눈을 감았다.

암묵적인 허락이 떨어지자 신충이 검을 고쳐 잡으며 공손무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터벅터벅.

그런데 이때 뒤쪽에 서 있던 매화검수 중 한 명이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궁주님. 굳이 궁주님의 손을 더럽힐 필요가 있겠습니까? 소인이 나서서 해결하겠습니다.”

신충이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보았다.

갸름한 턱선에 뚜렷한 이목구비가 눈에 띄는 사내였다.

“후우. 그리할 테냐? 오냐. 한번 해 보아라. 저 녀석에게 톡톡히 보여 주어라. 저 녀석과 우리 화산파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입니다.”

사내가 고개를 들더니 공손무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자 나머지 매화검수들이 그의 보폭에 맞춰 뒤따랐다.

‘흐음…….’

흐트러짐이 없는 그들의 움직임에 공손무의 시선이 매서워졌다.

‘제일 앞에서 걸어오는 자가 현 매화검수 중 으뜸인 건가?’

이윽고 공손무와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사내가 입을 열었다.

“나는 화산파의 자랑스러운 일대 제자이자 매화검수인 여운필이라고 한다.”

“여운필이라. 반갑구나. 나는 화산파의 공손무이다.”

“화산파의……?”

“그래. 누가 뭐래도 난 화산파 출신이니까.”

“화산파 출신이라면서 본 화산의 장문인과 궁주님을 이리 능멸하는 것이냐?”

“감투만 썼을 뿐, 진정 화산파를 위하는 마음이 없으니 진짜 장문인과 궁주라고 할 수 없는 거지.”

“뭐라고?!”

여운필이 더는 참을 수 없었는지 허리춤에서 검을 빼 들었다.

“너와 내가 같은 화산파가 아니라는 것을 그 조그마한 머릿속에 확실히 각인시켜 주마.”

“호오?”

공손무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칼자루에 손을 갖다 댔다.

‘후훗. 드디어 이 순간이 온 것인가.’

검을 뽑으려는 그의 마음속은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수련을 끝내고 나서 처음으로 화산파 무인과 붙어 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비록 용종찬에게서 정식으로 검법 수련을 받지는 못했지만, 이길 자신이 있었다.

‘오늘 나는 할아버지가 매화질풍검법을 사용하는 걸 보았어. 그 검법을 정식으로 익히지는 않았지만, 흉내 내는 정도라면 할 수 있을 거야.’

공손무가 마음을 다잡으며 검집에서 매화질풍검(梅花疾風劍)을 뽑았다.

주변으로 은은한 매화향이 퍼지면서 여운필의 후각을 자극했다.

‘이 향기는 뭐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여운필의 눈빛이 다시 매서워졌다.

따가운 시선을 느낀 공손무가 검의 손잡이를 움켜쥐며 말했다.

“너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상태. 그것을 불쌍하게 여겨 죽이지는 않겠다.”

절대적인 강자가 약자에게 하는 소리를 공손무가 내뱉자 여운필의 얼굴에 분노가 서렸다.

“참으로 건방진 놈이로구나!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려고 했건만 부질없는 짓이었어! 다시는 그 알량한 입을 놀리지 못하도록 뜨거운 맛을 보여 주겠다!”

일갈을 내뱉은 여운필이 땅을 박차고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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