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을 읽는 막내 공자 154화>
154화. 뱀의 이빨(3)
“청랑단이 화산파로 오리라는 것을 전 천비회를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화산파에 일종의 지부를 건설할 계획이었죠.”
지부라는 말에 용종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화산파에 마적단의 지부라니, 화산파가 그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두고 본다는 말이냐?”
“최후의 보루였던 장문인이 사라진 뒤로 화산파 지도부는 굴종하며 아첨을 하는 집단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이제 화산파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지 않습니다. 오직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탐할 뿐이지요.”
“크윽! 마적단을 왜 화산파에 심으려 하는지는 아느냐?”
하나리가 어두운 표정으로 파문이 일어나는 찻잔 안을 들여다보더니 이내 나직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서 화산파를 감시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여겨집니다.”
“감시라…….”
“예. 그래서 저는 화산파를 위해 천비회에다 그들을 처리해 달라는 의뢰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과는 별개로 또 한 가지를 의뢰했지요.”
뜻밖의 말에 용종찬의 두 눈이 커졌다.
“그게 무엇이냐?”
하나리가 두 손으로 찻잔을 움켜쥐며 힘겹게 답했다.
“화산파에서 꼭 죽여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대답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어딘가 떨리고 있었다.
“그게 대체 누구란 말이냐? 천승진인?”
“아닙니다. 그는 지금 화산파에 있지 않습니다. 한때 저의 대사형이었던 포염에게 장문인 직을 넘기고 화산파를 떠난 상태입니다.”
“그럼 포염을……?”
이번에도 하나리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도 아닙니다.”
“도대체 누구를 죽이려 한다는 말이냐?”
머뭇거리던 하나리가 마음의 안정이라도 찾으려는 듯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답했다.
“작금의 화산파는 장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실권을 쥐고 있습니다. 어르신께서는 모르고 계십니까?”
‘설마?’
용종찬은 짐작 가는 바가 있었지만, 섣불리 답하지 않았다.
“글쎄다. 딱히 짚이는 게 없구나.”
“천승진인이 화산파를 떠난 후 그 사람을 대신한다면서 누군가가 화산파에 왔습니다. 도착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화산파를 휘어잡았지요.”
“또 다른 실권자라니. 장문인인 포염이 그를 가만히 놔두었단 말인가?”
“가만히 놓아둔 게 아닙니다!”
“으음?”
하나리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소리치자 용종찬의 두 눈이 커졌다.
옆에서 듣던 공손무도 놀란 것 같았다.
“그는 공포 그 자체, 그것 말고는 뭐라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사람입니다.”
말을 잇는 하나리의 두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제 고향 가문의 전 재산을 털어 이 인원을 고용한 건, 궁극적으로 그 사람을 죽이기 위함입니다. 솔직히 이 인원을 데리고도 죽이지 못할 것 같아 불안합니다.”
공손무는 조금 전 만난 천비회의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 정도 은신술을 구사하는 수십 명의 무인에 아까 그 범상치 않은 아저씨까지 있었다. 한 개인을 죽이는데 그만한 전력을 들이고도 무섭다? 상대가 얼마나 강하길래?’
의문이 든 공손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사람의 이름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차를 한 모금 마신 그녀는 조금 전보다 안정된 것 같았다.
그녀는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후우. 그게 그 사람의 본명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는 자기 자신을 ‘쌍아(雙牙).’라고 소개했어.”
“쌍아?”
“그래. 천비회를 통해 그 사람의 내력을 알아보려고 했지만 도통 정보가 나오는 게 없는 사람이야. 결국, 직접 부딪치는 방법밖에 없는 거지.”
“쌍아라…….”
이름을 되뇌며 생각해 보았지만, 누군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반면에 용종찬은 뭔가를 눈치챘는지 심각한 표정이었다.
그가 나직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잠시 나갔다 오마. 섬화라는 여자에게 몇 가지 물어볼 것이 있어서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용종찬이 막사를 나가자 하나리의 시선이 공손무를 향했다.
‘이렇게 보니까 정말 많이 컸네. 외모는 어릴 때 모습이 아직 남아 있는데 분위기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아. 게다가 느껴지는 기운 또한 예사롭지 않다. 그동안 이 아이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궁금함을 참지 못한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저기 있잖아.”
“예, 말씀하세요.”
“이제 네 얘기 좀 해 줄래?”
“제 얘기요?”
“그래. 내가 못 알아볼 정도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서 돌아왔잖니. 못 쓰던 팔과 다리를 어떻게 쓰게 된 건지도 궁금하고, 무엇보다도 너에게서 느껴지는 강력한 기운. 그렇게 약하디약했던 네가 어떻게 그런 엄청난 힘을 가진 건지 궁금해.”
“엄청난 힘이라니요. 그 정도는 아닙니다.”
“계곡물에 쓸려 내려간 뒤 어떻게 된 거야? 어르신이 널 구해 준 거니?”
잠시 뜸을 들이던 공손무가 낮은 어조로 속삭였다.
“놀라지 말고 들으십시오. 계곡물에 빠진 직후 저는 곧장 화산검마님의 비밀 동굴에 도착했습니다. 고장 계곡이 화산검마님의 은신처와 연결되어 있었어요.”
그의 말에 하나리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그게 정말이야?”
“예, 자세한 건 밝힐 수 없으나 그곳에서 수련하며 그분의 힘을 이어받았습니다. 그 덕분에 팔과 다리도 움직일 수 있게 된 거고요.”
“그랬구나. 정말 다행이다.”
“그리고…….”
공손무가 굳은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하나리 님께서 말씀하신 화산파를 지배하고 있는 세력, 저는 알 것 같습니다.”
“뭐?”
놀랐는지 하나리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녀가 의자를 박차고 벌떡 일어나더니 공손무의 옷소매를 붙잡았다.
“그게 누군데! 대체 누구야!”
예상보다도 더 격한 반응에 공손무가 곤란하다는 듯 땀을 삐질 흘렸다.
“일단 좀 진정하시죠.”
“어머나! 내가 지금 무슨 짓을…….”
자신이 너무 경박하게 굴었다고 생각한 하나리가 얼굴을 붉히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부끄러움보다 더 앞선 것은 궁금증이었다.
“그래서 대체 그게 누구라는 건데?”
“누구라고 딱 정해서 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뭐? 그게 무슨 말이야?”
“한 거대한 단체입니다. 중화 전체에서 암약하고 있는 단체인데 그 손길이 화산파까지 뻗친 겁니다.”
공손무가 궁금해 미치겠다는 표정을 짓는 하나리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화산파를 조종하려고 하는 세력은 바로 흑사교(黑蛇敎)입니다.”
“흑사교?”
“네, 들어 보셨나요?”
잠시 고민하던 하나리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흑사교라는 단체는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어.”
“그럴 만도 하죠. 그들은 중화 전체에서 암약하며 세력을 키우고 있으니까요.”
“흑사교라. 천승진인의 무리가 떠받들던 주인의 정체가 흑사교였단 말인가. 어이가 없군. 이름 높은 화산파가 뭔지도 모를 종교 집단에 화산파를 바치려고 하다니!”
이때 공손무가 하나리에게 말했다.
“저기, 하나리 님.”
“응, 왜 그래?”
그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화산파를 구하기 위해 살수들을 고용하신 거 맞으시죠?”
“물론이지. 아니면 내가 뭐 하러 가문의 전 재산을 탕진하면서까지 이러겠어.”
공손무가 자신도 마찬가지라는 듯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팍을 툭 쳤다.
“저 또한 화산파를 구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러니 저도 힘을 보태게 해 주십시오. 화산파를 꼭 지켜 내겠습니다.”
잠시 멍한 눈길로 공손무를 보던 하나리의 입가에 이내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정말 많이 컸구나?”
“예?”
갑작스러운 말에 공손무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푸훗! 당황하는 건 예전하고 비슷하네.”
미소를 짓던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지금의 너는 어쩌면 나보다도 강할 수 있어. 내가 반대할 이유가 없지.”
“감사합니다!”
파라락!
이때 기다렸다는 듯 막사의 입구를 막고 있던 두꺼운 천이 빠르게 들추어지면서 두 개의 인영이 비추어졌다.
“하나리 님.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하고도 얘기가 필요하지 않나요?”
“무야! 어찌 나와 상의도 없이 그런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단 말이냐!”
막사 안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섬화와 용종찬이었다.
“섬 지부장?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던 거예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닐 텐데요?”
그 모습이 가면인지 본모습인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일반적인 대화를 하는 섬화는 한없이 부드러운 여자였다.
하지만 일과 관련된 이야기로 접어든다면 그녀의 기세는 맹수와도 같아졌다.
그녀가 용종찬을 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제가 우려하던 상황이 온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밖에서 얘기를 좀 나누었는데, 안타깝게도 이분이 노리는 먹잇감과 우리가 노리는 먹잇감이 같습니다.”
“그럴 수가!”
하나리가 깜짝 놀라며 용종찬을 바라보았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네가 말한 그 쌍아, 뱀의 이빨을 나도 추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 의외야. 식객으로 두고 포염의 조력자 역할을 할 줄 알았는데 설마 직접 화산파의 실권자가 되었을 줄이야.”
공손무 또한 놀란 것 같았다.
‘쌍아가 할아버지가 쫓고 있다는 그 뱀의 이빨이었다고?’
섬화가 차가운 눈빛을 한 채 하나리와 용종찬을 번갈아 보았다.
“우리 천비회 제이 지부는 많은 경비를 들여 여기까지 왔습니다. 애초에 부담스러운 의뢰라 거절했던 것을 의뢰인께서 사정을 봐달라고 하셔서 여기까지 온 측면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이런 상황이 벌어지니 참으로 난감하군요.”
용종찬이 먼저 쌍아를 찾아 죽인다면 계약에 따라 섬화가 이끄는 천비회는 그만큼의 계약금을 받지 못하게 된다.
손해가 늘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 되자 섬화의 입장에서는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호의를 이런 식으로 갚는 겁니까? 이게 화산파의 방식인가요?”
“뭐라고요?”
말에 가시가 보이자 공손무가 이빨을 깨물며 앞으로 나서려 했다.
이를 본 하나리가 재빨리 손을 올리며 그를 제지하였다.
“크읏!”
공손무가 뒤로 물러나자 그녀가 섬화를 정면으로 보며 말했다.
“지부장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맞아요.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되는 거죠.”
“하나리 님?”
하나리가 괜찮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계약서를 수정하시죠. 어르신이 하든 천비회가 하든 목표물만 없어진다면 계약금을 모두 지급하겠습니다.”
그녀의 말에 공손무의 눈동자가 커졌고 섬화의 얼굴에는 노기(怒氣)가 사그라졌다.
섬화가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저희의 입장을 고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계약서 수정은 여기서 나간 뒤 제 막사에서 하시죠.”
“알겠어요.”
막사를 나가기 전 하나리가 고개를 돌려 공손무를 쳐다보았다.
씨이익.
그녀가 미소를 짓자 공손무 또한 고맙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 * *
“허억! 허억!”
화산의 연화봉에서 누군가가 거친 숨결을 내쉬며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온몸에서 땀이 흐르도록 빠르게 산길을 오르고 있는 것은 바로 청랑단(靑狼團)의 두목, 유곤청이었다.
말을 타고 산길을 오르던 그는 좁은 협로와 계단들이 나오자 말을 버리고 두 발로 달리고 있었다.
눈앞에서 동생과 부하들을 잃은 그의 마음속은 엉망진창이었다.
‘크읏! 겸성아!’
침착함이 조금 유지되는가 싶으면 다시 온몸이 잘리며 잔인하게 죽은 동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곳에 남은 청랑조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살아 있을까?’
살아 있다고 애써 믿고 싶었지만 용종찬의 실력을 본 그는 불길한 생각만 들었다.
‘이제 어떡하지? 청랑단의 기둥들이 무너졌다. 내가 살아남았긴 했지만, 변수가 너무 많다. 놈이 쫓아올지도 모르고 또 이 앞에는…….’
남도 마을에서 패배하고 도망치듯 쫓겨나오는 유곤청에 대한 화산파의 반응을 예측하기 힘들었다.
‘주공을 생각해서라도 날 내치기야 하겠냐마는, 그래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겠지. 최대한 몸을 사리며 주공의 지원 부대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