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을 읽는 막내 공자 151화>
151화. 피의 귀환(3)
뜻 모를 말에 공손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뱀의 이빨이요?”
“자세한 것은 차차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그렇게만 알고 있어라.”
하지만 공손무는 물러나지 않았다.
“싫습니다!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어허! 이렇게 설명했는데도, 고집을 부릴 것이냐!”
“할아버지는 저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다고요!”
그의 외침에 용종찬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모르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전 이제 그 옛날의 공손무가 아닙니다! 육 년 동안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수련했습니다. 제가 그 사람을 죽일 순 없어도 할아버지의 짐이 되지는 않을 자신은 있어요. 그러니 저도 같이 가게 해 주세요!”
“으음…….”
잠시 고민하던 용종찬이 이내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끌끌. 누가 호의 아들 아니랄까 봐, 고집스러운 게 똑 닮았구먼. 어쩔 수 없지. 정 그러하다면 같이 가자.”
“정말이요?”
“그래. 대신 무조건 내 지시에 따라야 한다. 알겠느냐?”
“예! 알겠습니다!”
용종찬의 허락을 받은 공손무는 떠나기 전 마을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하였다.
아명이 그의 옷자락을 잡으며 물었다.
“벌써 가는 거예요?”
아이의 눈동자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후훗.”
이를 본 공손무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나쁜 사람들을 혼내 주러 가야 해. 그러니까 아명이는 엄마랑 오라버니 말 잘 들으면서 씩씩하게 지내고 있어야 한단다. 알겠지? 약속!”
“응! 약속!”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하고 난 후, 공손무가 손을 흔들었다.
“자, 이제 어서 가. 여기서부터는 나 혼자 갈 테니.”
“조심하세요!”
공손무가 아명에게 손을 흔들더니 이내 어두운 숲속으로 사라졌다.
숲 안쪽에는 용종찬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는 다 하고 온 게냐.”
“예. 할아버지.”
“가기 전에 한 가지 얘기해 줄 것이 있다. 중요한 것이니 새겨들어야 한다.”
“무엇을 말입니까?”
“일단 엘파고를 실행해라.”
용종찬의 말에 공손무가 엘파고를 불렀다.
“엘파고.”
[ 네. 부르셨습니까? ]
엘파고가 부름에 응답하자 공손무가 용종찬을 보며 말했다.
“말씀하신 대로 불렀어요.”
“좋아. 지금부터 엘파고가 가지고 있던 핵심기능을 열어 주겠다.”
“핵심기능이요?”
“그래. 그 기능은 엘파고가 임의로 가르쳐 주지 못하게 내가 막아 놓았었지. 이제 너도 어느 정도 성장한 것 같으니 그것을 풀어 줄 때가 된 것 같구나.”
“제가 가진 게 완벽한 엘파고가 아니었군요.”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공손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근데…….”
“왜 그러느냐?”
“전부터 묻고 싶었는데, 이 엘파고라는 것은 도대체 정체가 뭐죠? 육 년 동안 같이 지내서 지금이야 익숙하지만, 처음에는 정말 놀랐다고요. 귀신에 홀린 줄 알았어요.”
“간단하게 설명해 주마. 엘파고라는 건 영혼에 새겨진 목소리다. 영혼을 지켜 주는 신성한 목소리이지.”
“신성한 목소리?”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아라. 이건 네가 상상도 할 수 없는 곳에서 유래된 기술이니까. 지금은 그냥 영혼의 동반자가 생겼다고만 생각해둬.”
“영혼의 동반자라, 그거 괜찮네요.”
이때 용종찬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엘파고. 내 말 들리겠지? 잠겨 있는 기능을 모두 해제해라.”
[ 명령 인식 완료. 잠겨 있던 모든 기능을 일시에 해제합니다. 일시적인 어지러움 증상이 일어날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
엘파고의 말과 함께 머릿속이 울리더니, 공손무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띠리링-!
이윽고 기이한 소리와 함께 그의 앞에 희뿌연 창이 나타났다.
“이게 뭐지?”
생전 처음 보는 것에 공손무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만질 때마다 소리만 날 뿐, 손에 잡히지는 않았다.
“우와. 되게 신기하다.”
용종찬이 설명했다.
“제대로 기능이 열린 것 같구나. 그럼 이제 엘파고에게 임무를 달라고 해라.”
“예? 임무요?”
의아해하는 공손무에게 용종찬이 재촉했다.
“시간이 없다. 어서 빨리 말해라!”
“엘파고, 나에게 임무를 내려 줘.”
곧 희뿌연 창 위에 글씨가 생겼다.
[ 임무를 확인하시려면 여기를 눌러 주세요. ]
“누르면 되나요?”
“그래, 어서 눌러라.”
창을 누르자 화면이 바뀌면서 임무의 내용이 보였다.
“흑사교를 모두 제거하라?”
임무의 제목은 흑사교, 그 내용은 간단했다.
중화에 암약하고 있는 흑사교의 교도들을 모두 제거하라는 것이었다.
이때 엘파고의 간드러진 목소리가 공손무의 머릿속으로 들려왔다.
[ 주요 임무가 열렸으므로 그에 따른 새로운 기능이 해제되었습니다. 자세한 건 여기를 눌러 주세요. ]
“새로운 기능?”
공손무가 호기심 깃든 표정으로 엘파고의 말에 따라 창을 눌렀다.
“이건?”
화면이 바뀌자 무엇을 보았는지 공손무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 소개하겠습니다. 이 기능의 이름은 ‘인큐리’라고 합니다. ]
“인큐리?”
언뜻 보면 그것은 인물 관계도와 비슷했다.
가장 첫 번째로 눈에 띄는 것은 하나의 거대한 원이었다.
원 안은 새까맣게 칠해져 있었고 ‘뱀의 머리’라는 붉은 글자만 적혀 있었다.
거대한 원으로부터 가지가 뻗치듯 선이 그려져 있었고, 그 선의 끝에는 중앙의 것보다 조금 작은 중간 크기의 원이 있었다.
즉, 거대한 원을 정중앙에 두고 다섯 개의 중간 원이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형태였다.
중간 크기의 원들에는 각각 ‘뱀의 눈’, ‘뱀의 이빨’, ‘뱀의 혓바닥’. ‘뱀의 비늘’, ‘뱀의 꼬리’라는 글자가 마찬가지로 붉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 다섯 개의 원들도 따로따로 가지를 뻗어 세 개 혹은 네 개의 작은 원을 이루었다.
화면을 보던 공손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엘파고에게 물었다.
“이게 다 뭐지?”
[ 화산검마님께서 고안하신 인큐리 시스템입니다. 중원에 흩어진 채 암약하고 있는 흑사교(黑蛇敎)에 대한 정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것이죠. ]
“이게 정확히 어떤 기능을 한다는 건데?”
[ 보시다시피 여기에는 중앙의 가장 큰 원부터 가장 작은 원까지 총 스물두 개의 원이 있습니다. 즉, 흑사교를 대표하는 스물두 명의 교도가 있는 겁니다. ]
“스물두 명……?”
중화를 집어삼키려 한다는 것치고는 교도의 숫자가 너무 작다고 여겨졌다.
“너무 적은 것 아닌가? 적어도 수천, 많으면 수만에 이를 것으로 생각했는데?”
[ 그들 한 명 한 명이 중화의 큰 손이며 강력한 세력가입니다.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곧 그들의 산하에 있는 수많은 세력을 지배하는 것과 같습니다. ]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공손무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아. 그렇군.”
[ 여기서 스물두 명이라는 것은 흑사교 교주의 선택받은 교도를 뜻하는 것인데, 이들은 특별한 의식을 치름으로써 선택받은 교도가 될 수 있습니다. ]
“특별한 의식이라니. 그게 뭐지?”
[ 뱀의 머리, 즉 흑사교 지도자가 자신의 영혼을 쪼갠 후 그 영혼의 파편을 부여받은 자만이 선택받은 교도가 될 수 있습니다. ]
감이 잡히지 않는지 공손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영혼을 부여받는다? 그런 게 가능한 거야?”
[ 저는 단지 화산검마님에 의해 기록된 정보를 말씀드리는 것뿐입니다. ]
그가 오각형 주위에 있는 원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 원들의 구성은 무엇을 뜻하는 거야?”
[ 계급입니다. 스물두 명으로 구성된 흑사교 내부에는 계급이 존재합니다. 가장 위가 교주. 그다음이 주교급. 마지막이 평교도입니다. ]
“계급이라…….”
[ 가장 중앙에 있는 큰 원, 뱀의 머리가 바로 교주를 뜻합니다. 그다음으로 글자가 적힌 다섯 개의 원들은 주교급. 그들에게서 뻗어져 나간 글자 없는 원들은 평교도입니다. ]
“그렇군. 이제 좀 뭔지 알겠어.”
[ 이어서 정보 수집 기능에 관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
“정보 수집?”
[ 인큐리 시스템의 핵심기능입니다. 지금은 보다시피 중화에 암약하고 있는 흑사교 교도 중 한 사람의 정체도 제대로 알아내지 못한 상태. 그 정체를 밝혀내려면 그에 맞는 단서가 필요합니다. 앞으로 흑사교 교도의 흔적을 찾는다면 여기에 기록될 것이고, 정보가 어느 정도 축적되면 그것들을 바탕으로 교도의 정체를 유추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
“흐음. 단서를 찾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구나?”
[ 네. 이를 잘 이용한다면 좀 더 수월하게 교도들을 추적할 수 있을 겁니다. ]
듣던 중 반가운 소식에 공손무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할아버지, 엘파고의 설명을 다 들었어요. 이거 정말 대단한데요?”
“끄헐헐! 당연하지. 내가 평생에 걸쳐서 개조한 엘파고인데 대단하지 않으면 이상한 거지. 자, 이제 나를 따라오너라. 어서 화산파로 가자.”
“예! 할아버지!”
공손무는 용종찬을 따라 땅을 박차고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의 표정에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화산파, 이게 도대체 얼마 만에 가는 것인가.’
육 년이란 시간이 짧으면 짧다지만 길면 긴 시간이었다.
비록 돼지를 치며 생활하였고 끝맺음이 최악이었지만 주도진인과의 소소한 추억이 깃들어 있는 화산파였다.
‘이 힘을 이용해 화산파를 흑사교의 손아귀에서 구해 내고 사부님 또한 찾아내고 말겠어!’
공손무와 용종찬은 바람을 가르며 나무와 나무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그러던 중 용종찬이 전음을 보내왔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화산의 사대동천 중 하나인 노군동이 나온다. 거기서부터는 화산파 본산의 영역이다. 그곳에 도착하고 나서는 주의를 기울이면서 움직여야 한다. 내 말 알겠느냐?’
‘예. 알겠습니다.’
이때 무엇을 느꼈는지 말을 이으려던 용종찬이 멈칫하였다.
“쉿! 조용히 해라.”
그가 신중한 표정을 한 채 지면 아래로 내려갔다.
옷깃을 펄럭이며 지면에 안착한 후, 경계 어린 눈빛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할아버지, 무슨 일이에요?”
“흐음, 아무래도 포위된 것 같구나.”
“네?!”
스스슥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방의 나뭇가지에서 수많은 검은 인영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들의 숫자는 족히 수십 명은 될 것 같았다.
갑작스러운 등장에 공손무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전혀 느끼지를 못했어. 저 인원이 전부 상당한 은신술을 익히고 있다는 건가? 마을을 습격한 놈들은 확실히 아니야. 그럼 이놈들은 누구지?’
이때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공력이 실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들어라! 너희는 지금 우리에게 완전히 포위됐다. 다른 생각은 집어치우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은 후 순순히 우리의 처분에 따라라.”
잠자코 듣고 있던 용종찬의 입에서 괴팍한 웃음소리가 튀어나왔다.
“푸하하핫!”
“지금 웃은 건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내 웃음소리가 들리는 모양이군. 젊은 사람이 귀도 참 밝구먼.”
용종찬이 입꼬리를 올리며 안력을 돋우었다.
그러자 나무 아래에서 죽립을 쓴 채 입술을 움직이고 있는 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감히 내 말에 웃음을 터뜨리다니! 노인이라고 봐줄 성싶은가!”
용종찬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무슨 헛소리를 그렇게 진지하게 말하는고? 해 볼 테면 해 보아라. 얼마든지 상대해 줄 테니.”
“크읏!”
사내가 한 손으로 죽립을 살짝 추어올리며 말했다.
“어디 내 주먹을 맞고도 그런 말이 나오는지 한번 보자고.”
한바탕 싸움이 일어나려 하자 용종찬이 자세를 다잡았다.
“흐음…….”
그런데 잠시 후 무슨 생각인지 갑자기 자세를 풀더니 수염을 쓰다듬으며 공손무에게 말했다.
“네가 나서 보거라.”
“예?”
“너의 성취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볼 좋은 기회인 것 같다. 그러니 네가 저 녀석을 상대해 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