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을 읽는 막내 공자 150화>
150화. 피의 귀환(2)
‘매화혈사(滅劫血絲), 죽음의 실뜨기.’
끼리릭!
날카로운 바람의 파공성이 사방으로 울려 퍼지고, 유겸성의 눈동자에 반짝이는 무언가가 비추어졌다.
‘거미줄?’
촘촘하게 엉킨 거미줄들이 붉은빛을 반짝이며 주변을 휘감고 있었다.
“이럴 수가!”
순식간에 거미줄에 휘감긴 유겸성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고 말았다.
시작은 그가 들고 있던 검이었다.
파지지직!
자신이 가장 아꼈던 검에 금이 가더니 이내 산산조각 났다.
강철의 파편들이 허공에서 춤추며 지면으로 떨어졌다.
그다음은 자신의 손과 팔이었다.
검의 손잡이를 잡고 있던 자신의 손이 수십 조각으로 썰려 나가고 그 사이사이로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팔 또한 근육과 뼈가 조각조각 잘리면서 다량의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나, 죽는 건가?’
믿지 못할 광경을 보고 있던 그의 시야가 갑자기 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지면에 누워 있기라도 한 듯 두 눈이 땅에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내 몸의 머리가, 없어?’
그는 놀랍게도 자기 몸을 보고 있었는데, 목 위로는 붉은 피만 뿜어져 나올 뿐 얼굴이 없었다.
잘린 유겸성의 머리가 땅 아래에서 목이 없는 자기 몸을 본 것이다.
“아아…….”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의 몸이 수 등분 되며 허물어지는 것을 보았다.
‘인정받고 싶었는데…….’
목이 떨어진 후 잠깐이나마 남아 있던 의식이 희미해지고, 곧 유겸성은 숨을 거두고 말았다.
“아, 안 돼!”
이 모습을 본 유곤청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내 동생! 내 동생 겸성아!!”
그가 애타게 불렀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한시도 냉정함을 잃지 않았던 유곤청도 동생에 죽음 앞에서는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이 개자식이!!”
그는 눈에 핏발을 세우며 용종찬을 향해 달려들려고 했다.
“두목님!”
하지만 그 순간 부관이었던 학평이 재빨리 그를 잡아당겼다.
“두목님! 피하셔야 합니다!”
“나보고 피하라고? 학평! 네놈의 눈은 옹이구멍이더냐! 내 동생이 죽었다! 그것도 저리 처참하게 죽었다! 저놈을 죽여야겠다! 지금 당장 저놈을 잡아 갈가리 찢어 죽여야겠어!!”
“제발 진정하십시오! 여기서 두목님마저 잘못되면 우리 청랑단은 끝입니다!”
학평의 외침에 그제야 유곤청의 이성이 조금 돌아왔다.
“청랑단…….”
까드득!
그가 이빨을 깨물며 생각했다.
‘이런 젠장! 그래!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다. 무너질 때 무너지더라도 이렇게 굴욕적으로 무너질 수는 없는 거야!’
그의 시선이 뒤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청랑조를 향했다.
“청랑조, 제 일조는 학평과 함께 여기 남아 저놈의 목을 자른 후 내게 가져오라! 제 이조는 나와 함께 화산파 본산으로 올라갈 것이다! 알겠느냐!”
“존명!”
명령을 내린 유곤청이 입술을 꾹 깨물더니 학평에게 속삭였다.
“반드시 놈을 죽여라. 그리고 내 동생의 시신을 수습하라. 알겠나?”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는 말을 끝내자마자 남은 부하들을 이끌고 그 자리를 떠났다.
쫓으라면 쫓을 수 있었지만 용종찬은 굳이 무리하지 않았다.
이때 공손무가 그에게 전음을 보냈다.
‘저 사람들을 쫓지 않으실 건가요?’
‘아까 말했듯 지금은 화산파로 갈 수 없다. 일단 이 마을을 지키는 것만 생각하자꾸나.’
‘크읏! 예, 알겠습니다.’
이때 청랑조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오며 소리쳤다.
“이런 건방진 놈 같으니! 당장 그 목을 베어 주겠다!”
조장 무사가 손을 앞으로 뻗자 말 위에 있던 사내들이 일제히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검은 인영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용종찬의 주위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청랑조는 청랑진을 전개하라!”
“존명!!”
파바박!
청색의 복면을 쓴 사내들이 용종찬을 중심으로 빠르게 회전하였다.
곧 검에서 푸른 기운이 뿜어져 나와 그들의 몸을 휘감았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십수 마리의 푸른 늑대가 먹잇감을 사냥하기 위해 빙글빙글 도는 것만 같았다.
‘지금이다!’
용종찬이 완전히 진 안에 갇혀 버리자 조장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쏴아아악!
그러자 푸른 늑대로 이루어진 커다란 고리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점점 좁혀지기 시작했다.
그 고리에 조금만 닿아도 살점이 찢겨 나갈 것 같았다.
그런 무시무시한 위력의 진이 다가오는데도 용종찬의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흐음. 제법 견고해 보이는 검진이다만, 내 검법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지.’
푸른빛으로 넘실거리는 진을 상대로 그가 매화질풍검을 겨누었다.
이를 본 조장이 주먹 쥔 손을 아래쪽으로 세차게 당기며 소리쳤다.
“공격해라!”
촤아아악!
그러자 느리게 조여들던 푸른 고리가 한순간 빠르게 조여들며 용종찬의 전신을 노렸다.
그 형상은 마치 십수 마리의 푸른 늑대가 사방에서 일제히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드는 것 같았다.
푸른 늑대들이 그의 몸을 집어삼키기 직전, 용종찬이 검을 세차게 휘두르며 소리쳤다.
“광풍홍련참(狂風紅聯斬)!”
끼이이잉!
매화질풍검이 유려한 선을 그리며 허공을 가르자, 거센 돌풍이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그와 동시에 자홍빛의 날카로운 강기가 소용돌이치며 용종찬의 전신을 휘감았다.
푸른빛의 늑대들이 달려들어 강기 회오리를 부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힘을 잃은 푸른 늑대들이 결국 뒤로 튕겨 나가 버렸다.
‘허점이군.’
적의 약점이 드러나자 용종찬이 검을 하늘 위로 치켜들었다.
그러자 소용돌이가 크게 팽창하더니 이내 사라져 버렸다.
‘뭐, 뭐지?’
언뜻 보면 공격이 끝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끝이 아니었다.
소용돌이가 사라진 자리에는 창날의 모양을 한 수십 개의 자홍빛 강기들이 남아 있었다.
자홍빛의 강기들이 사방으로 날아가며 푸른 늑대들의 전신을 무차별적으로 찔렀다.
“커허헉!”
“끄아아악!”
치명적인 관통상을 당한 청랑조의 무사들이 힘없이 지면으로 추락했다.
유곤청이 자랑하던 청랑조였지만 용종찬의 귀신같은 검법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했다.
“후우…….”
순식간에 청랑조를 해치운 용종찬이 숨을 고르더니 남아 있던 조장 무사를 쏘아보았다.
“허업!”
압도적인 위압감에 놀란 나머지 그는 감히 도망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게 정말 한 개인의 검술이란 말인가? 이게 바로 화산파의 힘이란 말인가?’
퍼어억!
“커헙!”
이때 그는 자신의 목에 뭔가가 박힌 것을 느꼈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며 뒤로 넘어졌다.
용종찬이 검으로 그의 목을 찌른 것이다.
두 손으로 검을 잡았지만 예리한 칼날에 손만 베일 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커어억! 사, 살려! 끄르르…….”
부들부들 떨며 살려 달라는 말을 했지만, 그를 내려다보는 용종찬의 눈빛에 자비심은 보이지 않았다.
“더러운 뱀을 숭상하는 역겨운 놈들 같으니.”
촤아아악!
그가 찔러 넣었던 검을 휘둘러 목을 깔끔하게 베어 버렸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무사가 이내 잠잠해지자 용종찬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을의 곳곳이 여전히 불타오르고 있었지만, 마적 무리는 더 보이지 않았다.
“와아…….”
지켜보고 있던 공손무는 그의 무위에 감격한 것 같았다.
‘나도 하루빨리 저렇게 되고 싶어. 저 힘을 가지고 내 인생을 파괴한 놈들에게 복수하고 말 테야.’
공손무의 두 눈에 강렬한 열망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 * *
청랑단을 마을에서 몰아낸 용종찬과 공손무는 살아남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진화작업에 들어갔다.
두 시진이 지나고 나서야 곳곳에 솟아올랐던 불기둥들이 사그라졌다.
비록 마을의 절반이 불에 타 버려 잿더미가 되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는 데 성공했다.
잠시 후, 반쯤 불타 버린 마을 회관 앞에 마을의 생존자들이 모여들었다.
“으흑흑! 여보! 눈을 좀 떠봐요!”
누군가는 소중한 사람의 죽음으로 슬픔의 눈물을 흘렸고.
“흐윽! 엄마!!”
“아명아!!”
또 누군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공손무가 부둥켜안고 있는 아명과 아선에게 다가갔다.
“저기…….”
그가 말을 걸자 아명이 놀라며 소리쳤다.
“헛! 엄마! 뒤를 좀 보세요!”
아선이 뒤를 돌아 공손무를 보더니 왈칵 눈물을 쏟았다.
“으흑흑! 아명이를 구해 줘서 정말 고맙구나! 너는 내 은인이야!”
“아닙니다. 그건 그렇고, 아드님은?”
아선이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내저었다.
찾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아아…….”
이때 아명이 공손무의 바짓자락을 잡으며 말했다.
“우리 오라버니는 어디 있어요? 구해 준다고 했잖아요.”
“그게 말이지…….”
공손무는 마을 이곳저곳을 누비며 찾아보았지만 더는 생존자를 찾지 못했다.
“으흑흑! 오라버니!”
아선이 울려는 아명을 껴안으며 말했다.
“아명아. 괜찮아. 울지 마렴.”
“으아아앙!”
아명의 울음소리를 듣는 공손무의 마음속 한쪽이 무너져 내렸다.
그 무너져 내림은 곧 청랑단에 대한 분노로 이어졌다.
“제가 꼭 그놈들을……!”
그는 아선에게 아들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약속하려 하였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어머니? 아명아?”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아선이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아명과 닮아 보이는 사내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의 모습을 담은 아선의 눈동자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주, 준이니?”
사내는 어깨에 상처를 입은 상태였지만 중상은 아닌 것 같았다.
“어머니!!”
얼굴과 몸에 새까만 재를 묻힌 사내가 눈물을 흘리며 아선과 아명을 향해 달려갔다.
“준아!”
“오라버니!!”
부둥켜안은 세 명이 한동안 그 자리에서 눈물을 쏟으며 서로가 무사하다는 것에 감사했다.
용종찬이 그들의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건물 잔해에 휩쓸려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것을 내가 꺼내 주었소. 다행히 큰 부상은 없는 것 같소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어르신! 이 은혜 죽을 때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여 보인 용종찬이 고개를 돌리더니 공손무에게 전음을 보냈다.
‘잠시 나를 따라오너라. 할 말이 있다.’
갑작스러운 부름에 의문이 들었지만 공손무는 그의 뒤를 따랐다.
잠시 후 인적이 드문 곳에 도착하자 용종찬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
“상황이 변했다. 화산파로 올라가야겠어.”
“헉! 정말이요?”
“그래. 아무래도 내 목표물이 화산파로 향한 것 같구나.”
“목표물이라니요?”
“나는 지금 한 놈을 추적하고 있다. 흑사교의 유력인물이지. 내가 지상으로 올라왔을 때 확인할 것이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공손무가 두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그러셨죠.”
“그놈을 추적하기 위해서였다. 화산파 근처에 나타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했거든. 그런데 그놈이 이미 화산파로 올라간 것 같다. 나도 참 감이 많이 떨어졌어. 목표물을 놓치다니 말이야.”
씁쓸한 미소를 짓던 용종찬이 이내 표정을 고치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지금부터 난 그놈을 암살하러 화산파로 갈 것이다. 하지만 나 혼자 갈 것이야. 너는 여기 남아라.”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소리에 공손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왜요?”
“말했지만, 지금의 너로서는 화산파로 가기에 위험하다. 내가 지켜 준다고 해도 위험해. 특히 그놈이 있다면 너를 지켜 주며 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체 그놈이 누구길래요?”
“뱀의 이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