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을 읽는 막내 공자 149화>
149화. 피의 귀환(1)
“흥! 너희 같은 쓰레기들이 누군지 알 바 아니지만, 장소가 장소인 만큼 물어봐야겠지. 너희들, 정체가 뭐냐? 누구인데 감히 화산파의 영역 아래에 있는 이 마을을 습격하는 것이냐?”
“말솜씨가 제법이구만. 그 알량한 실력을 믿고서 까부는 모양인데, 오늘 잘못 걸렸어. 우리는 섬서성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그 유명한 청랑단이다! 들어 봤겠지?”
“청랑단?”
청랑단이라는 말에도 용종찬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청랑단이고 나발이고 왜 이곳을 습격하는 것이냐! 단순한 약탈인가?”
“곧 죽을 놈한테 그런 것까지 대답해 줄 이유는 없다. 뭣들 해! 놈은 겨우 한 명이야. 어서 공격해라!”
“존명!”
파바바박!
조장의 명령에 청랑단의 무사들이 일제히 뛰어올라 용종찬의 머리를 노리며 검을 내리쳤다.
십수 개의 검이 머리 위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데도, 어쩐 일인지 그의 발은 땅에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크큭! 포기했구만!’
이를 본 조장 무사는 상황이 불리하니 상대가 싸우기를 포기한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에 불과했다.
‘탈명귀풍(奪命鬼風).’
용종찬을 향해 날아오던 수많은 검이 일제히 뭔가에 부딪치면서 불똥을 일으켰다.
검들이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더니 이내 밖으로 튕겨 나가 버렸다.
“뭐, 뭣?”
머리가 쪼개져 핏물이 분수처럼 튀어 오를 거라고 예상했다.
그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가 버리자 조장 무사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뭐지? 녀석이 반격한 건가? 하지만…….’
분명 용종찬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기만 했는데, 십수 개의 검이 막혀 버렸다.
이 놀라운 상황에 사내는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크흐음!”
한차례 공격을 막아 낸 용종찬이 침음을 흘리며 청랑단 대원들 사이를 말없이 걷기 시작했다.
끼이잉! 피슈우욱!
‘마, 말도 안 돼!’
놀랍게도 그가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날카로운 바람의 파공성과 함께 청랑단 무사들의 머리와 상체가 깔끔하게 분리되었다.
푸쉬이익!
“크아아악!”
분리된 머리는 힘없이 지면에 떨어졌고, 곳곳에 피 웅덩이가 만들어졌다.
“세, 세상에나.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공손무도 놀라운 상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런 그의 머릿속으로 또다시 용종찬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분명 존재하되 보이지 않는 것이다. 탈명귀풍(奪命鬼風)은 소리 소문 없이 적들에게 죽음을 안긴다. 적들은 자신이 죽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옷이 피에 흠뻑 적셔지고 발밑에 피 웅덩이가 생기고서야 자신의 운명을 깨달을 것이다.’
매화질풍검법의 초식 중 하나인 탈명귀풍(奪命鬼風)은 단순한 쾌검의 경지를 아득히 넘어서 있었다.
검의 움직임은 고사하고, 대강의 흐름마저 파악할 수 없는 절세의 고속검법이었다.
이 무지막지한 검법 앞에서 청랑단의 무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당황하지 마라! 대열을 유지해라!”
조장 무사가 직접 나서며 남은 부하들을 독려했다.
“크읏! 모두 나를 따라라! 저 노인을 잡는다!”
“와아아!”
이를 본 용종찬이 붉은 안광을 번뜩이더니 조심스럽게 검을 움켜잡았다.
‘광풍홍아(狂風紅牙).’
후우웅!
“뭣?”
그러자 커다란 회오리바람이 세차게 불면서 사방으로 뻗어져 나갔다.
회오리바람은 매화 꽃잎 모양의 날카로운 검기를 품고 있었다.
바람을 따라 회전하던 검기들이 일제히 흩어지더니, 달려오는 마적 떼들의 전신을 노렸다.
거대한 짐승의 이빨이 사람의 피부를 뚫고 들어가는 것처럼 선홍빛의 검기들이 대원들의 피부를 파고들었다.
“커허헉!”
“크아아악!”
전신에 구멍이 숭숭 뚫려 벌집 신세가 된 마적들이 피를 내뿜으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크으으!”
조장이라 불린 사내만이 어깨와 옆구리에 관통상을 입은 채 가쁜 숨을 쉬고 있었다.
“호오. 찰나의 순간에 몸을 비틀어 죽음은 면한 건가.”
“이런 말도 안 되는! 크윽!”
목숨은 건졌지만, 그에게 반격할 힘은 남아 있지 않았다.
차디찬 눈길로 사내를 내려다보던 용종찬이 이내 서슬 퍼런 안광을 번뜩이며 말했다.
“안타깝지만 너의 여정은 여기서 끝이다.”
“사, 살려 주십시오! 제발! 제발 한 번만 자비를!!”
투기를 뽐내던 사내가 모든 걸 잃은 채 목숨을 구걸했지만, 용종찬의 눈빛에 자비심은 일절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줄 수 있는 유일한 자비는 죽음뿐이니라.”
촤아아악!
용종찬의 검이 휘둘러지자 선혈이 튀면서 사내의 목이 땅에 떨어졌다.
청랑단의 중간급 간부를 죽인 그가 공손무에게 말했다.
“후우. 아직 놈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이 느껴지는구나. 따라올 수 있겠느냐?”
“물론입니다!”
“좋다. 그럼 따라오거라.”
용종찬이 옷깃을 펄럭이며 앞으로 나아갔고, 공손무가 그를 뒤따랐다.
* * *
“하아앗!”
잠시 후 허공을 가르며 날아간 용종찬은 청랑단 대원들이 보이는 족족 죽이기 시작했다.
얼마 되지 않아 삼백이나 되는 도적 무리가 수십 명으로 줄어들었다.
“히이익! 도망치자!”
압도적인 힘에 전의를 상실한 대원들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를 허용할 용종찬이 아니었다.
“쯧쯧. 이 몸에게서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가 다시 한번 검을 휘둘러 도망치는 이들을 죽이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다그닥! 다그닥!
‘응? 이 소리는?’
용종찬의 귓가에 말발굽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간 들렸던 것보다 많고, 거친 소리.
‘이 소리, 그리고 땅을 울리는 진동음. 이번에는 꽤 많은 것 같군.’
용종찬이 고개를 돌리자 멀찍한 곳에서부터 뿌연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공손무 또한 눈치챘는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할아버지, 저쪽에서…….”
“그래. 알고 있다.”
눈을 감고 잠시 집중하던 용종찬이 이내 나직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이류가 대부분이고 간간이 일류가 섞여 있구나. 절정의 벽을 깨지 못한 일류 무사 하나 그리고 절정에 접어든 무사 하나가 있다.”
용종찬은 예민한 기감으로 다가오고 있는 자들의 실력을 간파하였다.
“그렇게나 상세하게 알 수 있습니까?”
“물론이지. 너 또한 이 정도 수준에 이르러야 할 것이다.”
잠시 후 말발굽 소리가 가까워지고 흙먼지를 일으키는 주인공들이 나타났다.
“왔구나.”
전방을 바라보는 용종찬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이윽고 한 무리의 마적단이 그와 일정한 거리를 벌리고서 멈추어 섰다.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서 누군가가 말을 몰며 앞으로 나왔다.
“크흐음!”
헛기침을 하며 앞으로 나온 것은 다름 아닌 청랑단의 두목, 유곤청이었다.
그가 굳은 표정으로 피와 시체가 낭자한 주위를 한차례 둘러보더니 이내 용종찬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내 부하들이 전부 죽어 있군. 누군지도 모르는 당신을 제외하고는 모두 죽어 있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까?”
용종찬이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이유? 이유라면 간단하지. 내가 죽였기 때문이다. 화산파의 영역에서 이런 짓을 벌일 생각을 했으면 이 정도는 각오한 것 아닌가?”
영혼을 꿰뚫어 보는 듯한 매서운 눈빛에 유곤청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기세가 장난이 아니다. 무공의 고수, 단순히 그렇게 정의를 내릴 만한 놈이 아니야. 이 노인은 도대체 뭐지? 뼈와 살이 붙어 당장이라도 문드러질 것 같이 생겼으면서, 어찌 저리 강대한 기운을 내뿜고 있단 말인가?’
그가 애써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며 말을 이었다.
“이토록 짙은 살초를 쓰는 것 보니 화산파의 도사는 아니겠고, 도대체 누구인가? 정체를 밝혀라!”
용종찬이 이빨을 드러내며 말했다.
“낄낄! 그래. 네 말대로 나는 화산파의 도사가 아니다. 하지만 도사가 아닐 뿐이지, 내 뿌리는 엄연히 화산파이고 여긴 내 고향과도 같은 곳이야!”
“뭐라고?”
“평화로운 화산파의 영역을 이리 짓밟은 죄. 너희들의 피로 갚을 것이다.”
속으로는 괘씸했지만 무슨 일인지 유곤청은 몸을 선뜻 움직이지 못했다.
온몸을 얼어붙게 하는 섬뜩한 살기 때문에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마저 흐르고 있었다.
파바바박!
이때 무리에서 누군가가 말을 거칠게 몰며 튀어나왔다.
“누구냐! 내 신호할 때까지 대기하라고 했거늘!”
“형님! 접니다!”
“유겸성! 너라고 내 명령을 어겨도 되는 줄 아느냐? 어서 들어가거라!”
“형님! 어찌 저런 놈을 그냥 두십니까? 당장 저놈의 입을 막고서 목을 비틀어 버려야 합니다! 건방지게 혼자서 우리를 깔보다니요!”
“어허! 내 말을 들으라니까!”
하지만 유겸성은 명령을 따르지 않고, 유곤청의 곁으로 다가오며 속삭였다.
“형님. 부하들이 보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서 주춤거린다면 우리의 꼴이 뭐가 되겠습니까?”
확실히 그것도 그랬다.
세간에 청랑단이 말라비틀어진 노인 한 명에 겁을 먹고 도망갔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그동안 쌓아 온 명성이 무너질 것이었다.
“으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냉정함을 유지하던 유곤청도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부하들을 보낼 수는 없다. 저 녀석들을 봐라. 모두 죽었어. 다 저 노인이 한 짓이라고.”
“그건 저 녀석들이 방심해서 그런 겁니다. 저는 다릅니다. 다르다고요!”
“물러서라. 청랑조와 함께 합공을 펼칠 것이다.”
“에잇! 저 노인네 하나가 뭐가 대수라고 합공까지 한다고 하시는 겁니까!”
말을 끝낸 유겸성이 곧바로 말을 몰아 용종찬에게 돌진했다.
“뭐 하는 거냐! 돌아와라! 어서 돌아와!”
뒤에서 유곤청이 부르짖었지만 유겸성은 멈추지 않았다.
‘죽인다! 놈을 죽인다! 그리고 인정을 받을 것이다!’
유겸성은 오랫동안 그의 형과 함께 청랑단을 이끌어왔다.
주변으로부터 제법 수완이 좋다는 평을 들었지만, 그의 형은 한 번도 그를 제대로 칭찬해 준 적이 없었다.
자신을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강렬한 마음이 그를 앞으로 뛰쳐나가게 만든 것이다.
‘저딴 노인이 뭐기에 우리 형이 놀라는 것인가! 이제 좀 제대로 보십시오! 퇴물이 된 고수 따위보다 제가 백 배는 더 강하고 유능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말을 몰던 그가 검집에서 검을 꺼내 들었다.
“하아앗!”
그러고는 안장을 밟더니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흐음…….”
이때 말없이 지켜보던 용종찬이 들고 있던 매화질풍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뭐지? 왜 검을 도로 집어넣는 거야?’
정확한 이유는 몰라도 그의 입꼬리를 올리기에는 충분했다.
‘방심하고 있구나. 그 여유도 이제 마지막일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네놈이 상대한 사람들과는 궤를 달리한다는 것을 죽음으로 깨닫게 해 주마!’
용종찬의 앞까지 날아온 그가 내공을 끌어 올리며 검을 세차게 휘둘렀다.
‘유수청랑(劉水靑狼).’
그러자 짙은 푸른색의 기운이 뿜어져 나와 유겸성의 몸을 휘감았다.
푸른 기운에 둘러싸인 그가 한 마리의 커다란 늑대가 되어 용종찬을 덮쳤다.
쩌어어억!
입을 크게 벌린 늑대가 용종찬의 상체를 통째로 물었다.
그에게 일격을 먹인 유겸성이 푸른 기운에서 빠져나오더니 미소가 만연한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끝이다. 네놈은 내 유수청랑의 한 끼 식사가 된 것이야!”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틀렸다. 내가 먹힌 게 아니라 네가 먹힌 거다.”
용종찬의 속삭임과 함께 그의 손등에 있던 거미 모양의 흉터에서 무언가가 뿜어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