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을 읽는 막내 공자 148화 (148/200)

<검을 읽는 막내 공자 148화>

148화. 복수의 시작(3)

청랑단이 공격당하기 반 시진 전.

“이럴 수가…….”

숲을 벗어나 남도 마을 입구에 들어선 공손무는 마을의 상황에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곳곳에서 붉은 화염 기둥이 치솟아 오르고 있었고, 수많은 사람의 비명이 하늘 높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단순한 화재가 아니었다. 마적단의 습격이었어!’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여기는 화산파의 영역이잖아! 그런데 어째서 화산파의 도사들은 보이지 않는 거지? 화산파의 도사들은 뭘 하는 거야? 마적 따위를 그들이 못 막을 리가 없잖아!’

“아아!”

이때 공손무가 아차 하는 표정으로 옆을 바라보았다.

아명이 눈물을 흘리며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엄마와 오라버니가…….”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뜨거운 불길로 다가서려 하자 공손무가 막아섰다.

“아명! 거기로 가면 안 돼! 너무 위험해!”

하지만 이성을 잃었는지 아명이 발버둥 치며 부르짖었다.

“이거 놔! 이거 놓으란 말이야! 엄마 보러 갈 거야! 엄마 보러 갈 거라고!!”

안 되겠다 싶었는지 공손무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아 눈높이를 맞추었다.

“아명! 내 눈 바라봐! 어서!”

“싫어! 싫다고!”

“어서!!”

공손무가 소리를 지르자 아명이 겨우 그를 바라보았다.

“내 말 잘 들어. 지금부터 내가 저 안으로 들어가서 네 가족을 찾을게.”

“싫어! 내가 갈 거야! 아명이가 갈 거라고!”

“너는 너무 어려서 안 돼! 너무 위험해! 금방 죽고 말 거야!”

“주, 죽어?”

“그래. 하지만 나는 안 죽어. 아까 봤지? 내가 나무 위를 슉슉 하고 오르는 거.”

“응. 봤어.”

“이번에도 슉슉 해서 금방 돌아올 테니까 저기 가서 숨어 있어야 해. 절대로 나오면 안 돼. 그렇게 해야 엄마도 오라버니도 찾을 수 있어. 알겠지?”

“…….”

“어서 대답해!”

공손무가 강하게 밀어붙이자 아명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 알겠어요.”

“어서 저쪽으로 가서 숨어! 어서!!”

등을 떠밀리자 아명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며 나왔던 숲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녀가 사라지자 공손무는 고개를 돌려 아수라장이 된 마을을 바라보았다.

“감히 화산파의 영역에 침입하다니…….”

화산파를 구하겠다고 마음먹은 공손무였다.

그런 그가 화산파의 영역이 짓밟히는 것을 참고 넘어갈 리 없었다.

“하아앗!”

공손무는 분노를 터뜨리며 불길이 치솟는 마을 속으로 뛰어들었다.

날랜 경공으로 마을에 진입한 그는 오래 지나지 않아 마을을 유린하고 있는 마적단의 단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청색 두건을 두른 사내들은 남도 마을에 있는 아녀자들을 사로잡아다가 조롱을 일삼고 있었다.

“이야~ 반반하게 생긴 것이 노예시장에 팔면 값이 좀 나가겠는데?”

“팔아먹기 전에 한 번 맛보는 건 괜찮겠지? 키히히힛!”

“어이, 이봐! 내가 먼저라고! 내 것에 눈독 들이지 마!”

‘저놈들이구나.’

공손무의 두 눈에서 살기 짙은 안광이 번뜩여졌다.

도적 떼를 바라보는 그의 두 눈에서 아명을 대할 때의 따스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 아명에 의해 데워졌던 마음이 다시 얼음장같이 차가워졌다.

‘내 저 녀석들을 그냥!’

분노한 공손무가 앞으로 뛰쳐나가 도적들을 막으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터어업!

누군가의 손이 그의 어깨를 잡으며 앞으로 나가려는 것을 막았다.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했어. 도대체 누가?’

갑작스러운 손길에 당황한 공손무가 두 눈을 크게 뜨며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엇! 할아버지?”

손길의 주인은 다름 아닌 용종찬이었다.

그가 눈가를 좁히더니 곧바로 공손무의 뒤통수를 때렸다.

“아얏!”

“쯧쯧. 사고 치지 말고 있으라 했더니, 그사이를 못 참고 이런 일에 휘말린 것이냐?”

“죄송해요. 하지만 화산파의 영역에 도적 떼가!”

“나도 보아서 알고 있다. 그러니 흥분하지 말고 뒤로 물러나 있어라.”

용종찬이 앞으로 나서며 말을 이었다.

“잘 됐구나. 첫 번째 수련 장소로 이만한 곳도 없겠지. 여기서 앞으로 네가 익힐 검법이 어떤 것인지 보여 주마.”

“정말입니까?”

“그래. 그러니까 가져온 검을 다오.”

공손무는 용종찬에게 가지고 있던 매화질풍검을 넘겨주었다.

끄르르릉!

용종찬의 손길이 닿자 매화질풍검이 날카로운 공명음을 내뱉었다.

‘나가고 싶은 게로구나? 오냐. 너 또한 오랜만에 세상 빛을 한번 봐야지!’

그가 검을 뽑자 매화 꽃잎 무늬가 촘촘히 박힌 검신이 드러났다.

“지금부터 잘 보아라. 이것이 바로 고대로부터 대대로 화산파의 번견만이 사용했던 전설의 검법이니라.”

매화질풍검이 범상치 않은 예광을 내뿜으며 세차게 휘둘러졌다.

‘탈명화풍(奪命花風).’

후아앙!

그러자 매서운 검풍이 일어나더니 선홍빛을 띤 연기가 검풍을 따라 회오리치며 앞으로 날아갔다.

“크읏! 어디서 갑자기 이런 바람이?”

돌풍이 불어닥치자 사내들이 인상을 쓰며 두 눈을 감았다.

곧이어 안개 같은 선홍빛의 연기가 그들을 덮쳤다.

“이게 뭐야?”

“킁킁! 무슨 냄새가 나는데?”

연기에 둘러싸이자 무언가가 그들의 코를 간지럽혔다.

“이건 무슨 냄새지? 엄청 향기로워!”

“맞아. 마치 꽃향기 같아.”

놀랍게도 검풍과 함께 날려 보낸 선홍빛의 연기는 향기로운 매화꽃 내음을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장미에 날카로운 가시가 있는 것처럼 향긋한 꽃향기에도 가시가 존재했다.

그것도 그냥 따끔한 가시가 아닌 한순간에 목숨을 거두어 가는 무시무시한 가시였다.

“허어업!”

연기를 흡입한 사내 중 한 명이 호흡곤란을 일으켰다.

“수, 숨이 안 쉬어져! 커허헉!”

다른 사내는 옷을 다 벗어 던지며 괴로워했다.

“으아악! 몸 안에 불덩이가 들어간 것 같아!”

사내들이 저마다 뒤엉켜 비명을 지르자, 공손무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그의 머릿속으로 용종찬의 전음이 울려 퍼졌다.

‘낄낄! 놀랐느냐? 이것은 매화질풍검법의 초식 중 하나인 탈명화풍(奪命花風)이라는 것이다. 이 초식은 다수의 적을 상대로 기습을 할 때 적합한 초식이야. 탈명화풍을 흡입한 적들은 꽃 냄새를 맡은 나비처럼 춤을 추겠지만 곧 오장육부가 타들어 가는 고통에 스스로 죽여 달라며 비명을 지를 것이다.’

“끄아아아!”

몰려오는 고통을 이겨 내지 못한 사내들은 결국 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윽고 그들이 모두 정신을 잃자 용종찬이 조용히 다가왔다.

피를 토하며 쓰러진 그들을 내려다보는 그의 눈빛에는 일말의 동정심도 느껴지지 않았다.

“쓰레기 같은 놈들…….”

시선을 거둔 그가 사로잡혀 있던 여인들에게 걸어갔다.

그들 또한 연기를 들이마셨지만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그 이유는 독성이 발현되는 대상을 지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탈명화풍을 흡입했어도 용종찬이 내공으로 신호를 주지 않는다면 독성은 발현되지 않는 것이다.

“괜찮으시오?”

여인들은 용종찬을 경계하는 눈치였다.

“누구시죠?”

“나는 그대들을 해치려고 온 것이 아니오. 구해 주러 온 것이오.”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소. 자, 어서 뒤로 돌아보시오.”

싸그락!

그가 여인들을 구속하고 있던 밧줄들을 모두 검으로 잘라 버렸다.

“이제 어서 숨으시오. 나머지 놈들도 내가 처리할 테니.”

“고맙습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감사는 이 녀석에게 하시구려. 이 녀석이 없었으면 마을이 습격당하는지도 몰랐을 테니.”

그가 옆에 서 있는 공손무를 가리켰다.

마을의 여인들이 공손무를 향해 감사를 표했다.

“정말 고맙다. 네가 귀인을 데리고 왔구나.”

“아니에요.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어요.”

이때 그의 뇌리에 문득 뭔가가 스쳐 지나갔다.

“저기, 혹시…….”

“응?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니?”

“혹시 아명이란 아이를 아시나요? 요만한 키에 이 마을에 사는 아이입니다만.”

“아명? 그럼! 알다마다! 근데 그 아이는 왜……?”

“저는 숲에서 길을 잃은 그 아이와 함께 오고 있었거든요. 그 아이가 부모님을 애타게 찾고 있어요.”

그의 말에 여인이 깜짝 놀라며 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머나 세상에! 이봐 아선댁! 여기 좀 와봐! 어서!!”

“네?!”

그녀의 외침에 한쪽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던 여인이 가까이 다가왔다.

“아, 글쎄! 이분이 숲에서 길을 잃은 아명이를 찾아서 오는 길이었대!”

그러자 아선이라 불린 여인이 공손무에게 다가가며 소리쳤다.

“우리 아명이! 아명이 지금 어디 있니? 그 아이 지금쯤 무서워서 떨고 있을 건데!”

“제가 잘 숨어 있으라고 했으니 괜찮을 거예요. 소동이 끝날 때까지 아주머니도 잘 숨어 계세요.”

“으흑흑!”

아선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자 공손무가 당황하며 말을 이었다.

“괜찮다니까요?”

옆에 있던 다른 여인이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게, 이 집에 아들도 하나 있는데, 난리 통에 헤어져 버렸어. 무사해야 할 텐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아선을 바라보는 공손무의 눈빛이 한층 깊어졌다.

그의 눈빛 속에는 모든 것이 불타오르던 그날의 악몽이 비추어지고 있었다.

흑사교의 습격을 받아 아버지가 죽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던 그 날의 기억 말이다.

‘그날, 나를 잃고서 우리 어머니도 저렇게 눈물을 흘리셨을까?’

그 생각을 하니 마음이 더 미어지는 것 같았다.

“크읏!”

공손무가 주먹을 세게 쥐며 소리쳤다.

“무사할 거예요!”

“응?”

“그분은 무사할 거라고요! 지금은 그렇게 믿고서 악착같이 살아남는 법밖에 없어요! 아시겠죠?”

잠시 공손무를 빤히 쳐다보던 아선이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

“그래, 정말 고맙구나.”

이때 용종찬이 아선의 옆에 있는 여인에게 말했다.

“그럼 부탁하겠소.”

“맡겨만 주십시오. 자, 아선댁. 어서 가자고. 여러분들도 어서 가서 숨을 곳을 찾읍시다!”

아녀자들이 모두 숨을 곳을 찾아 떠나자 공손무가 용종찬에게 말했다.

“할아버지, 어서 놈들을 막으러 가요.”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네?”

“놈들이 냄새를 맡고서 이쪽으로 몰려오고 있구나. 제 발로 저승길을 찾아오다니, 멍청한 놈들 같으니라고! 낄낄낄!”

용종찬의 말대로 소란을 들은 마적단 대원들이 사방에서 접근하고 있었다.

“이건?”

잠시 후 동료들의 시체를 본 마적단 대원들이 두 눈을 부릅뜨며 용종찬에게 물었다.

“이거, 설마 당신이 한 짓이야?”

“그렇다면?”

대답하는 용종찬의 얼굴에는 여유로움이 넘쳐흘렀다.

스르릉 철커덕!

이때 대원 중 한 명이 망설임 없이 검을 꺼내 앞으로 치켜들었다.

“이거 정말 놀라운 걸? 이 마을에 당신 정도의 고수가 있었다니 말이야.”

그가 자신의 부하에게 소리쳤다.

“학평! 넌 어서 가서 부두목님께 이 상황을 알리고 지원을 요청해라. 무공의 고수로 보이는 노인이 우리 식구들을 죽이고 있다고 말이야! 어서!”

“존명!”

학평이라는 자가 말을 타고 가 버리자 조장 무사가 눈을 가늘게 뜨며 용종찬을 노려보았다.

“감히 우리에게 맞서려고 하다니. 영감탱이가 맛이 갔구만! 우리가 누군 줄은 알고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인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