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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읽는 막내 공자 142화 (142/200)

<검을 읽는 막내 공자 142화>

142화. 화산검마(1)

벽에 새겨진 글귀를 모두 읽은 공손무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민에 빠졌다.

“나는…….”

그는 호수에 비친 붉은 달을 온몸으로 잡고 물회오리에 휩쓸려 이곳에 도달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이상 그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다.

“이젠 어쩔 수 없어. 그냥 밀고 나가는 수밖에.”

그가 입술을 꽉 깨물며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붉은 손바닥 문양이 있는 돌벽에 자기 손바닥을 조심스럽게 갖다 대었다.

‘응?’

그 순간 무엇을 느꼈는지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손바닥이 떼어지질 않아?’

돌벽과 하나가 된 듯 그의 손바닥이 벽에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치이이익!

“크윽! 뜨거워!”

이윽고 뜨거운 연기가 돌벽과 손바닥 사이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더니 정체불명의 기운이 공손무의 온몸으로 침투했다.

‘뜨거워! 너무 뜨거워서 죽을 것 같아!’

정체불명의 기운이 전신을 감싸면서 그가 익히고 있던 혈인심법(血忍心法)을 약하게 만들었다.

“크아아아!!”

한순간 혈인심법이 극도로 약해지자, 억누르고 있던 천살성의 기운이 뿜어져 나와 동굴 안을 뒤흔들었다.

공손무의 눈이 악귀처럼 붉게 물들었고, 얼굴에는 흉해 보이는 검은 핏줄이 거미줄처럼 엉켰다.

“허억! 허억!”

이윽고 연기가 옅어지고 기운이 빠져나가자 그의 얼굴이 조금씩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갔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쿠르르릉!

그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둔탁한 소리와 함께 먼지가 일어나더니 놀랍게도 막아서고 있던 돌벽이 열리기 시작했다.

두꺼운 돌벽이 열리자 맞은편에서 선홍빛의 빛무리가 반짝이며 눈을 간지럽혔다.

“와아…….”

공손무의 눈앞에 신비한 전경을 품은 거대한 동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굴 안에 이런 게 있을 줄이야.”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동공에 자리 잡은 수십 그루의 매화나무들이었다.

‘동굴 안의 매화나무라니.’

매화 꽃잎들이 내부 공기를 정화하는 얕은 바람에 따라 은은한 향기를 풍기며 흩날리고 있었다.

거기에다 사방이 오색 빛의 야광석으로 환하게 밝혀져 있으니 그 아름다움은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정도였다.

동공을 관통하는 지하 개천은 티 없이 맑고 깨끗했으며 가지각색의 조약돌들이 물줄기를 따라 놓여 있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중앙에 있는 커다란 매화나무였다.

다른 매화나무들보다 훨씬 크고 두꺼웠는데 신비로운 선홍빛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넋을 놓고 주위를 둘러보던 공손무는 마침내 발걸음을 떼어 그 속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동공 안으로 들어갈수록 싱그러운 기운이 점점 더 강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깊숙한 동굴 속인데도 답답하지 않고 오히려 밖보다 공기가 더 좋은 것 같은 걸? 게다가 가만히 있기만 해도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아.’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눈에 띄었던 커다란 매화나무 앞에 무언가가 세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이것은…….”

그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비석이었다.

‘웬 비석이지?’

그는 조심스럽게 비석의 첫째 줄에 있는 글귀를 읽었다.

[ 나 화산검마, 이곳에 매화질풍검(梅花疾風劍)과 매화혈사(梅花血絲)를 남긴다. ]

글귀를 본 공손무의 어깨가 떨렸다.

“뭣? 화산검마? 이곳이 바로 화산검마님이 계신 곳이란 말인가?”

그가 들어온 곳이 바로 숨겨져 있던 화산검마의 거처였던 것이다.

‘그래 여기인 거야. 여기가 바로 사부님이 날 보내려고 하신 곳이야. 틀림없어. 여기에 화산검마님이 계신 거야!’

길을 잃은 게 아니라 자신이 제대로 찾아왔다는 생각에 공손무는 흥분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이건 도대체 무슨 말이지? 매화질풍검? 매화혈사? 처음 들어 보는 것들인데…….’

비석의 뒤쪽에는 검 한 자루가 땅에 꽂혀 있었다.

그 검은 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검의 몸통에는 매화 꽃잎 모양의 무늬가 뱀의 비늘처럼 촘촘히 박혀 있었고, 칼날 아래의 코등이 부분인 격(格)과 손잡이 아래의 수(首)는 은은한 금색을 띠고 있었다.

손잡이는 짙은 자줏빛의 가죽으로 단단히 처리되어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혀 있고 중후한 멋을 품고 있었다.

‘이게 설마 화산검마님이 사용했던 검인가?’

흥분감과 긴장감이 뒤섞인 채, 그가 비석의 두 번째 줄을 읽었다.

[ 나는 이곳에 화산파의 어두운 힘을 남긴다. 모두가 부정할지라도 이것은 엄연히 화산파의 시조인 관윤자(關尹子)가 남긴 힘이다. 즉, 이 힘을 익히면 화산파의 일원이다. ]

두 번째 줄을 읽은 공손무의 눈빛이 조금 아련해졌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길, 화산검마는 과거 화산파의 번견으로 어둠 속에서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며 살아왔다고 하셨어. 말년에 화산파 지도부가 악의 축에 가담한 걸 눈치채고 떠나려고 하셨지. 이용 가치가 떨어졌다고 판단한 지도부는 그를 모함하여 중원의 공적으로 만들어 버렸고 말이야. 그런데도 그분은 여전히 자신의 뿌리를 화산파로 생각하고 계셨구나. 화산파를 포기하지 않으셨던 거야.’

[ 변화무쌍한 능력을 갖춘 매화질풍검(梅花疾風劍)은 바둑을 두고 거드름을 피우는 도사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밤을 숭배하는 자에게 어울리는 검이다. 고대의 화산파에는 엄연히 살수가 존재하였다. ]

글귀를 본 공손무의 고개가 살짝 끄덕여졌다.

‘화산파에도 살수가 존재했고 그들만을 위한 무공이 있었는데, 화산파는 이를 부정하고 싶었던 건가? 번견을 두고서 써먹을 대로 써먹고 놓고서는 자신들의 흉악한 치부가 드러나자 그를 제거하고 싶었던 거야.’

[ 매화혈사(梅花血絲)는 죽음의 힘이자 창조의 힘이다. 모든 것을 파괴할 수도 모든 것을 세울 수도 있다. ]

“매화혈사?”

공손무는 고개를 들어 그 매화혈사라는 것이 어디에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도대체 뭘 말하는, 응?”

이때 그의 시선이 중앙에 있던 큼직한 매화나무에 고정되었다.

‘저건 뭐지?’

매화나무의 가지들 위에 미세하게나마 뭔가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거미줄?’

가지들 위에는 거미줄과도 같은 투명한 실이 얼기설기 걸려 있었다.

거미줄을 바라보던 공손무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손을 뻗었다.

사그락!

“아얏!”

그는 곧 나무 위에 걸린 거미줄이 일반적인 거미줄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손에 쉽게 끊어지는 거미줄과는 달리 매화나무 위의 거미줄은 강철처럼 단단하면서도 유연성이 뛰어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굉장히 날카로웠다.

뚝. 뚝.

아주 살짝 만져 보려고 했었을 뿐인데 공손무의 손가락 끝이 조금 베였고 핏방울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와아. 뭐가 이리 날카로워?”

끼이잉!

“응?”

그런데 이때 공손무의 피를 머금은 거미줄이 다홍빛으로 빛나며 기이한 공명음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어어?”

마치 먹잇감의 냄새를 맡은 한 마리의 뱀처럼 거미줄이 가지에서 뻗어져 나와 핏방울의 주인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거미줄이 자기 멋대로 움직이다니.’

이윽고 거미줄이 공손무에게 닿자, 한차례 출렁거리며 반응을 보이더니 먹잇감을 대하는 맹수처럼 맹렬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커어억!”

거미줄이 그대로 공손무의 코와 입을 통해 몸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크앗! 이게 대체 뭐야!’

몸속에서 거미줄이 꿈틀대며 휘젓고 다니자 고통을 느낀 공손무가 격하게 몸서리를 쳤다.

“커어억! 어어억!”

그가 격렬하게 몸부림을 쳤지만, 거미줄은 이미 모두 그의 몸 안으로 들어간 상태였다.

“우웨에엑!”

공손무가 게워 내려고 힘썼지만, 거미줄은 나오지 않았다.

“대체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고!”

이때 그의 코에서 코피가 쏟아졌고, 이내 몸이 기이하게 꺾이면서 뼈마디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끄아아악!! 아아아악!!”

뭐라 표현할 수도 없을 정도의 엄청난 고통이 덮쳐오자, 비명이 공동을 가득 메웠다.

터벅 터벅

그사이, 정체를 알 수 없는 피골상접(皮骨相接)의 노인이 발버둥 치고 있는 공손무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커어억! 너무 아파! 아아악! 살려 줘!”

공손무가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지만, 노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잠시 후, 꾹 다물어져 있던 그의 입이 열리더니 오감을 떨리게 하는 중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매화혈사(梅花血絲)를 몸에 품으면 수십 번의 파괴와 창조가 번갈아서 일어나니, 그 고통 속에서 세수벌모(洗髓伐毛)가 일어나 막힌 혈맥이 일시에 뚫릴 것이리라.”

치이익!

“크아아악!”

공손무는 손바닥이 타들어 가는 감각을 느꼈다.

‘크읏! 이건?’

그의 양손바닥 위에는 놀랍게도 거미처럼 생긴 흉터가 생기고 있었다.

촤라락!

“허업?!”

그리고 그 거미 모양의 흉터에서 거미줄이 뿜어져 나오더니 순식간에 공손무의 전신을 휘감았다.

온몸에 붕대를 감듯, 거미줄이 온몸을 칭칭 감자 그가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다.

“우웁! 우우웁!!”

하지만 억센 거미줄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이를 보는 노인의 표정은 마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듯 여전히 무표정했다.

“애벌레가 고치를 뚫고서 찬란한 한 마리의 나비가 되듯이, 볼품없던 자도 매화혈사(梅花血絲)의 능력 아래 환골탈태(換骨奪胎)하여 한 마리의 용으로 바뀌리라.”

온갖 악을 쓰며 발버둥 치던 공손무의 움직임이 곧 미약해지더니 이내 완전히 잠잠해졌다.

“소리 없이 떠도는 죽음이자 창공에 매화 꽃잎을 뿌리는 매룡(梅龍)이여, 그대가 사악한 검은 뱀을 토막 내고 이 중화를 구하라.”

말을 끝낸 노인이 한쪽 무릎을 꿇더니 조심스러운 손길로 고치를 어루만졌다.

“잘 왔다, 공손무. 너는 이제 내 제자이니라.”

커다란 고치가 된 공손무는 미동도 하지 않고 그 자리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시간이 점점 흐르고 나뭇잎과 꽃잎이 떨어져 내려와 이불처럼 덮어 주었다.

그로부터 보름 뒤, 실밥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고치가 꽃잎을 털어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지직!

박이 쪼개지듯이 고치가 두 쪽으로 시원하게 갈라지더니, 안쪽에서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잠시 후 연기 사이로 검은 인영이 보이더니 이내 그 모습을 완전히 드러냈다.

“후우…….”

두 눈을 감은 채 숨을 크게 내쉬는 것은 분명 공손무였지만, 분위기는 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어수룩했던 눈빛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고, 먹잇감을 보는 포식자처럼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눈빛뿐만 아니라 신체 또한 전과는 천지 차이였는데 거의 없다시피 했던 상체와 하체의 근육이 과하지 않게 골고루 발달한 상태였다.

무엇보다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탄탄해 보이는 왼발과 왼팔이었다.

스으윽.

왼손을 움켜쥐었다 피기를 반복하던 공손무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져 나갔다.

“왼손과 왼발이 모두 움직여?”

감탄하는 그의 목소리는 원래의 것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전에는 느껴지지 않았던 중후함이 섞여 있었다.

그의 겉모습만 변한 것은 아니었다.

‘온몸이 후끈거린다. 혈관과 근육이 달아올라 꿈틀거리는 게 느껴져. 그중에서도 배꼽 아래쪽이 가장 뜨거워.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내공이라는 건가?’

공손무는 자신의 단전 안에서 용트림하며 움직이는 거대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던 그는 단 보름 만에 무공을 익히기 위한 최적의 신체조건을 얻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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