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을 읽는 막내 공자 141화>
141화. 대장로의 함정(4)
“야, 이놈들아! 뭘 멍하니 보고만 있는 게냐! 어서 저놈들을 쫓지 않고!”
참도진인의 불호령에 복면인들이 정체불명의 검은 인영을 쫓아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클클클!”
“뭐가 그렇게 웃기지?”
주도진인이 피를 머금은 채 참도진인에게 조소를 보냈다.
“아무래도 네 녀석의 계획대로는 안 될 것 같은데?”
“닥쳐라! 돼지 똥이나 치우는 놈이 감히 어디서 망발을!”
“내 평생 나약하게 살아온 걸 천추의 한으로 여겼는데 화산파의 한 줄기 희망이 될 무를 살린 것으로 조금은 위안이 되는구나!”
그가 공손무가 사라진 곳을 향해 강렬한 눈빛을 보냈다.
‘무야.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거라. 훨훨 날아 네 뜻을 펼치거라. 그게 이 사부를 위한 길이니라!’
* * *
한편 복면인들로부터 간신히 벗어난 공손무는 이 모든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으흑흑!”
그는 자신의 스승을 뒤로하고 혼자서 도망친 것만 같아 마음이 문드러지는 것 같았다.
“저, 다시 돌아갈래요! 사부님한테 돌아갈래요!!”
공손무가 발버둥 치자 그를 구한 복면인이 미간을 좁히며 소리쳤다.
“움직이지 좀 마! 녀석들을 따돌리려면 최대한 속도를 내야 하니까.”
“엇!”
목소리를 들은 공손무가 무언가를 알았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목소리는?”
“후우. 정말이지 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고.”
스으윽.
얼굴을 가리고 있던 복면을 아래로 내리자 익숙한 얼굴이 드러났다.
“하나리 님?”
공손무를 구한 것은 다름 아닌 화산파의 매화검수 하나리였다.
“자꾸 발버둥 치면 그냥 던져 버릴 거니까 그렇게 알아.”
“하지만 사부님이…….”
“지금 돌아간다고 해도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그냥 같이 죽임을 당할 뿐이야. 사부님의 희생을 헛되게 할 거야?”
공손무가 고개를 푹 숙이자 하나리가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정말 미안하다. 네가 이런 일을 겪기 전에 빼냈어야 했는데…….”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는 오래전부터 널 주도진인의 품에서 꺼내어 화산검마님에게 보내 무공을 익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어. 하지만 주도진인은 오랫동안 망설이셨지. 네가 맞닥뜨리게 될 고난과 역경을 이기지 못할까 봐 걱정하셨지.”
공손무는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게 정말인가요?”
“그것뿐만이 아니야. 어쩌면 평범하게 살 수도 있는 아이를 어른의 욕심 때문에 피로 물든 삶을 살게 할까 봐 두려우셨던 거야.”
“그럴 수가…….”
“최근에야 마음을 바꾸어 너와 함께 화산파를 떠나 화산검마님에게 갈 준비를 하셨어. 아무리 혈인심법을 익혀도 나이가 들면 천살성의 기운을 완전히 숨기지는 못하거든. 그런데 그러던 와중 이런 일이 터져 버린 거야. 저들이 이렇게 빨리 반란을 일으킬 줄은 몰랐어. 허를 찔린 거지.”
이때 뭔가 이해가 되지 않는 듯 공손무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잠깐만요! 화산검마는 분명 오래전에 죽었다고…….”
“그건 거짓말이야. 행여라도 네가 정보를 흘리게 될까 봐 주도진인께서 거짓된 정보를 말씀하신 거지. 실제로 대장로가 너를 통해 화산검마에 대한 정보를 캐려고 한 적이 있잖아?”
“그럼 정말 화산검마님이 살아계신다는 거예요?”
하나리가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살아계셔. 화산파 지도부는 그분이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확실히 살아 계신다. 여전히 화산파를 구하기 위해 노력 중이시지. 주도진인에게 화산파를 빠져나오기 위한 계책을 알려 주신 분도 그분이셔.”
“계책이요?”
“응. 주도진인께서 어느 순간부터 본산의 어린아이들에게 화산검마와 관련된 옛이야기를 흘리셨지?”
“예! 맞아요! 그것 때문에 징계를…….”
“그건 일종의 비밀 신호야. 나와 주도진인은 그런 신호로 서로 의사소통을 하지. 천승진인이 사방에 심어 놓은 사람들 때문에 직접 만나서 얘기를 할 수가 없거든. 만나는 그 순간부터 나는 주도진인의 사람으로 낙인찍히게 돼. 그럼 뒤에서 몰래 공작 활동을 벌일 수가 없어.”
놀라운 사실에 공손무가 입을 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구나. 그게 신호였구나. 나는 그냥 재미있는 옛날이야기인 줄만 알았는데…….”
“주도진인이 신호를 보내자 난 곧바로 널 화산검마님에게 데려 갈 작전을 실행하려고 했어. 그 작전 개시일이 붉은 달이 뜨는 오늘이지. 그런데 하필 오늘 천승진인이 반란을 일으킨 거야. 네가 천살성인 것을 눈치챈 거겠지.”
천승진인의 번뜩이는 안광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공손무는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이제 다 괜찮아. 너, 혹시 경화수월을 가져왔니? 너에게 주려고 매월각 안을 살폈는데 경화수월이 없더라고.”
“네, 제가 가져왔어요. 처음 거기 도착했을 때 문이 열려 있던데, 설마?”
“그래, 내가 열어 놓은 거야. 보초도 내가 다 물린 거고. 네가 경화수월을 얻게 한 다음에 화산파를 벗어나게 할 작정이었거든. 그런데 운 없게도 오늘 반란이 일어난 거야. 반란 때문에 내가 잠시 동료들과 싸우러 간 사이 네가 천승진인과 맞닥뜨리게 되어 버린 거고. 이래저래 운이 너무 없었어.”
“처음부터 이걸 가져올 생각은 없었어요. 단지 아직 확인을 못 해서…….”
“필요한 날이 올 거야. 지금은 그냥 잘 가지고만 있으렴.”
철썩! 철썩!
잠시 후 그들의 귓가에 거센 물줄기 소리가 들렸다.
고장 계곡에 도착한 것이다.
난리를 겪은 통에 공손무의 마음은 혼란 그 자체였지만 고장 계곡은 변함없이 아름다웠다.
그를 내려 준 하나리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자, 이제 말해 봐.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네? 화산검마님을 만나러 가는 것 아니었어요?”
“고장 계곡이 그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만 알 뿐. 나도 그분의 거처로 가는 자세한 방법은 몰라. 주도진인만이 그것을 알지.”
주위를 둘러보던 공손무가 어딘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붉은 달을 잡았을 때 문이 열릴 것이라고 하셨어요.”
“붉은 달?”
하나리가 그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며 곱디고운 얼굴을 조금 일그러뜨렸다.
그녀가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이 붉은 달이 뜨는 건 맞아. 그런데 저 하늘 위에 있는 붉은 달을 어떻게 잡는다는 거야? 그런 건 신선도 못 해.”
“하지만 무슨 뜻이 있을 거예요.”
“흐음. 붉은 달이라……. 분명 무슨 숨은 뜻이 있을 건데.”
잠시 후 생각을 짜내던 공손무의 눈에 반짝이는 뭔가가 들어왔다.
‘저건?’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호수에 반사된 붉은 달이었다.
호수를 보는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고장(拷場) 호수라고 한단다. 호수에 비친 달이 정말 장관이지?’
주도진인의 생각이 나자 눈시울이 절로 붉어졌다.
“크흐읍!”
애써 눈물을 참은 공손무가 몸을 앞으로 뻗어 호수를 바라보았다.
“붉은 달을 잡으라니. 설마, 호수에 비친 붉은 달을 잡으라는 건가?”
“으음. 일리 있는 말이야.”
하나리는 어느새 다가와 그의 말에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아요. 호수 안에 있는 달을 어떻게 잡으라는 거죠?”
“말 그대로 저 호수 안으로 들어가서 달을 잡아야지.”
“네? 저곳으로요?”
바닥이 보이지 않는 시커먼 호수 속으로 들어가라고 하자, 공손무는 당황을 감출 수 없었다.
“어서 놈들을 잡아라!”
“이쪽으로 도망쳤어! 샅샅이 수색해!”
이때 뒤쪽에서 불빛과 함께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치잇! 추격대가 여기까지 온 건가. 공손무! 어서 뛰어들어. 어서!”
“하지만…….”
공손무의 나이는 겨우 아홉 살이었다.
게다가 몸도 불편한 그가 깎아질 듯한 절벽에서 시커먼 호수 속으로 선뜻 뛰어내릴 만한 용기를 가지고 있을 리가 없었다.
“어서 뛰어들어! 우리의 일을 모두 허사로 만들 셈이야?”
“너무 무서워요! 으흑흑!”
공손무가 울음을 터뜨리자 하나리가 그를 말없이 빤히 쳐다보았다.
“미안해. 꼭 살아남아라.”
파아악!
“어?”
순간 공손무는 딛고 있던 땅바닥이 사라지고 자신의 몸이 공중에 붕 뜨는 것을 느꼈다.
“어어?”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온몸이 무거워졌고 자신이 절벽 아래쪽으로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리가 공손무를 절벽 아래로 밀어 버린 것이다.
“으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떨어지는 공손무의 두 눈에 하나리의 모습이 비쳤다.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는 이내 검을 허리춤에서 뽑아 들며 애써 몸을 돌렸다.
공손무가 발각되지 않도록 자신의 목숨을 바쳐 시간을 끌려는 것이다.
퍼어어엉!
공손무의 몸이 호수 중앙에 떨어지면서 호수에 비추었던 붉은 달이 물보라와 함께 사라졌다.
물줄기가 위로 치솟고 거품이 사방으로 일어났다.
“읍푸! 푸아악!!”
한 손과 한 다리를 못 쓰는 그는 당연하게도 수영을 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하고 그대로 가라앉고 말았다.
“우웁!”
수면 위에서 어렴풋이 들려오는 칼부림 소리와 함께 공손무의 정신은 점점 아득해져 갔다.
부글. 부글. 부글.
‘응?’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던 그는 문득 자신의 피부가 뭔가에 의해 간지럽혀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거품?’
그것은 그가 호수 아래로 추락할 때 생긴 거품이 아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 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정체 모를 거품이었다.
이윽고 수천 개의 크고 작은 거품들이 그의 몸을 감싸더니 회오리가 치기 시작했다.
공손무는 강력한 회오리에 휩쓸려 정처 없이 이리저리 회전하였다.
“우읍! 우우욱!”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메슥거렸지만, 물 회오리 속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회오리 속에서 끊임없이 회전하던 그는 결국 그 안에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그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으으…….”
정신을 잃었던 공손무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오고 그의 몸이 조금씩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정신이 조금 들었는지, 그의 눈이 조심스럽게 떠졌다.
“커허억!”
몸의 감각이 돌아오자 그는 속에서 무언가가 치솟아 올라 목구멍으로 튀어나오려는 것을 느꼈다.
“컬럭! 컬럭! 우에에엑!”
물을 토해 낸 그가 숨을 헐떡이며 한쪽 손으로 입을 훔쳤다.
“여긴 어디지?”
공손무는 정체불명의 동굴에 누워 있었다.
“호수?”
그의 뒤편에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시커먼 지하호수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고장 호수가 이곳까지 연결되어 있었다는 건가? 처음 보는 동굴이지만, 그래도 죽지 않은 게 어디냐.’
동굴 안은 묘한 빛무리와 향기로 가득하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횃불이 없는데도 사방이 훤하구나.’
이윽고 그가 힘겹게 일어서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사방이 반짝거려. 어떻게 이리 반짝일 수가 있는 거지?’
동굴 한쪽으로 걸어 들어간 그는 은은한 오색 빛을 뿜어내고 있는 돌을 발견하였다.
‘이건……?’
영롱한 불빛을 뿜어내는데도 전혀 뜨겁지 않았다.
“이건 도대체 뭘까?”
공손무가 만지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야광주라는 것으로 중원에서 가장 값비싸게 팔리는 물건 중 하나였다.
한 번도 본 적이 없기에 야광주인 것을 몰랐던 그는 그저 신기한 돌쯤으로 생각하였다.
“이럴 때가 아니야. 출구를 찾아야 해!”
그가 야광주의 불빛에 의지해 동굴 안을 탐사하기 시작했다.
“킁킁!”
잠시 후 묘한 냄새가 그의 코끝을 자극했다.
‘이게 무슨 냄새지?’
동굴 안으로 들어갈수록 냄새는 점점 더 짙어졌다.
‘이건, 매화꽃 향기인가?’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은은한 매화꽃 향기가 동굴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진해지고 있었다.
‘이런 동굴 안에 매화꽃 향기라니…….’
상당히 혼란스러웠지만 달리 갈 곳이 없기에 꽃향기를 따라 걸을 수밖에 없었다.
동굴의 심부에 다다르자 막다른 길이 버티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자신이 꼼짝없이 갇혔다는 생각에 좌절하려는 그때, 공손무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돌벽에 뭔가가 새겨져 있다?’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돌벽에 붉은 글씨로 뭐라고 새겨져 있었다.
[ 이곳을 우연히 방문한 자, 다시 돌아가라. 이 벽 너머에는 금은보화가 아닌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으니. ]
섬뜩한 경고문에 공손무는 마른침을 삼키며 내용을 마저 읽었다.
[ 하지만 만약 붉은 달을 잡고 들어온 자라면 손바닥 문양에 손을 대라. 그대의 자격이 충분하다면 죽음을 지배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