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을 읽는 막내 공자 131화>
131화. 낙향의선(4)
“후우…….”
심호흡을 한 공손무는 천천히 내공을 끌어 올렸다.
범상치 않은 기운의 격류가 그의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호오. 이것은?’
그것을 느낀 율가복은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드디어 본 실력을 드러내려는 것인가? 그렇다면 나도 마땅히 거기에 응해 줘야겠지.’
율가복 또한 심호흡을 하더니 검을 천천히 회전시켰다.
‘저건 뭐지?’
내공을 끌어 올리던 공손무는 자기 눈을 의심했다.
허공을 천천히 표류하는 검.
문제는 검이 지나갈 때마다 칼날 모양의 잔상이 남는다는 것.
이윽고 율가복이 검을 한 바퀴 돌리자 수십 개의 칼날이 허공에 떠오른 것처럼 보였다.
그 장면을 본 학통이 백우선을 살랑거리며 말했다.
-평범한 기술이 아니니 조심해라. 저 칼날에 맞았다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휘이익-!
이때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허공에 떠 있던 수십 개의 칼날이 공손무를 향해 날아갔다.
내공으로 만든 칼날, 기공검.
허공을 가득 수놓은 기공검에 공손무의 눈이 커졌다.
“하앗!”
기공검들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오자, 공손무는 더욱 빠르게 내공을 끌어 올렸다.
‘일검풍룡(一劍風龍).’
범상치 않은 기운이 주변을 휩쓸더니, 이내 거대한 소용돌이가 되어 그의 전신을 휘감았다.
기공검과 소용돌이가 충돌하자 귀를 찌르는 굉음이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샛노란 불똥까지 튀어 오르며 두 기운이 서로를 잡아먹을 듯 엎치락뒤치락 반복했다.
이내 두 기운이 동시에 폭사하면서 뿌연 먼지가 사방을 뒤덮었다.
‘의선은?’
공손무가 먼저 연기를 뚫고 밖으로 나왔다.
그는 주변을 돌아보며 율가복을 찾았다.
‘없어?’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율가복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기감을 주변에 집중해 보았다.
그런데 그 순간.
-뒤쪽이다!
학통의 외침에 공손무는 재빨리 몸을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새 다가온 율가복이 검을 찔러 넣고 있었다.
기습에 당황할 만도 하건만, 공손무는 재빨리 취룡보를 사용하였다.
날카로운 칼날이 아슬아슬하게 공손무의 가슴팍을 스쳐 지나갔다.
“하앗!”
공격을 피한 공손무는 곧바로 자세를 다잡으며 반격을 가했다.
수직으로 내리쳐지는 칼날.
“어림없소!”
율가복은 곧바로 쾌검을 날려 칼날을 튕겨 내 버렸다.
공손무의 공격을 막은 그가 뒤로 물러나더니 검으로 원을 그렸다.
콰지지직-!
그러자 원 모양의 검기가 지면을 가르며 앞으로 날아갔다.
‘원 모양의 검기라니, 대체 어떤 수련을 했길래?’
감탄도 잠시, 공손무는 곧바로 취룡보를 사용하여 검기들을 피하기 시작했다.
몸을 돌리고 심지어 검기의 비어 있는 안쪽에다 몸을 던지기까지 했다.
위험하고 아슬아슬해 보였지만, 공손무는 자신의 힘을 믿었고 율가복의 검기를 모두 피할 수 있었다.
검기를 모두 피한 공손무는 제비 돌기를 하여 뒤쪽으로 물러났다.
‘이건?’
숨을 고르는 와중, 등 뒤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아니나 다를까, 율가복이 부리부리한 안광을 번뜩이며 서 있었다.
그의 시선은 공손무의 검을 향하고 있었다.
“참으로 대단한 검법이오. 공손 대인의 검법을 본 적이 있지만, 그것과는 느낌이 다르구려.”
“그럴 수밖에요. 이건 공손세가의 사람 중에서도 최강이라고 불렸던 이가 만든 검법이니까.”
순간 율가복의 미간이 좁아졌다.
“공손세가의 최강?”
“그렇습니다. 그 검법을 익힌 이상, 의선께서 절 이길 일은 없을 겁니다.”
“허허. 수세에 몰렸으면서 여전히 자신만만하시구먼.”
“수세에 몰렸다라. 과연 그럴까요?”
말을 끝낸 공손무가 안광을 번뜩이며 검을 휘둘렀다.
“어이쿠!”
율가복은 재빨리 상체를 숙여 검격을 피한 뒤 손바닥을 앞으로 뻗었다.
동작에 군더더기 하나 없고 비호같이 빠른 일장.
공손무는 검막을 만들어 장법을 막아 내려 했다.
쿠우웅-!
장법은 막아 냈지만, 파도처럼 몰려오는 충격은 막지 못했다.
공손무의 몸이 붕 뜨더니 이내 뒤로 날아갔다.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자 율가복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공력을 끌어 올렸다.
폭풍과도 같은 기운이 휘몰아쳤지만, 율가복의 동작은 부드러웠다.
검을 천천히 휘젓자 이번에도 칼날의 잔상들이 허공을 가득 수놓았다.
문제는 그 숫자가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많다는 것.
“이제 끝을 봐야겠소.”
율가복이 미소를 지으며 검을 세차게 휘저었다.
그러자 수백 개의 기공검들이 날카로운 바람의 파공성을 일으키며 앞으로 뻗어져 나갔다.
나무와 바위를 부수고 지면을 파헤치며 공손무를 향해 진격했다.
콰가가강-!
기공검들이 충돌하면서 엄청난 폭발과 함께 뿌연 먼지가 주변을 뒤덮었다.
이윽고 먼지가 사라지고 주변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주변의 상황은 그야말로 초토화.
모든 것이 황폐화된 상태였다.
“흐음. 승부는 끝난 것 같구먼.”
내공을 갈무리한 율가복이 검을 집어넣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거대한 구멍이 곳곳에 숭숭 뚫려 있었다.
‘그는 어디에 있지? 설마 죽은 건가?’
그는 날카로운 눈빛을 반짝이며 공손무를 찾기 시작했다.
‘으음?’
잠시 후, 무엇을 보았는지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허허. 이거 정말 놀랍군. 설마 그 많은 기공검을 모두 막을 줄이야.”
뿌연 연기가 완전히 걷히자 공손무의 모습이 보였다.
“후욱! 후욱!”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지만, 큰 부상은 없어 보였다.
‘정말 위험했어.’
공손무는 시선을 내리며 땅바닥을 보았다.
바닥에는 부서진 진창석이 있었다.
‘환영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이야.’
하지만 이제 진창석도 다 떨어진 상황.
다음 공격을 어떻게 버텨 낼지가 문제였다.
“허허. 설마 그 기공검 세례를 다 피해 낼 줄이야. 그대의 경공, 보면 볼수록 감탄이 나오는구려. 하지만 아까도 말했다시피, 피하기만 해서는 날 이길 수 없을 것이오.”
쐐애애액-!
말을 끝낸 율가복이 안광을 번뜩이며 내공을 끌어 올렸다.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한 줄기 빛이 공손무를 향해 날아갔다.
빛이 허공에서 퍼지더니 이내 수십 줄기가 되었다.
귀신 같은 경지에 공손무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정말 대단하군. 하지만……!’
공손무의 손이 잔상을 일으켰다.
쾌검인 파천광류검을 이용하여 날아오는 빛줄기들을 모두 사라지게 했다.
‘됐다!’
마지막 검기를 쳐 내는 순간, 공손무는 곧바로 반격을 가하려고 했다.
‘으음?’
하지만 뭔가가 좀 이상했다.
검을 휘두르려고 했으나, 이상하게도 검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다.
두 손으로 들 수 없을 정도로.
‘밟고 있어?’
놀랍게도 어느새 날아온 율가복이 발로 공손무의 검을 밟고 있었다.
그 때문에 칼날이 땅에 박힌 상황.
검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공격받는다면 그야말로 끝이었다.
“끝났구먼.”
율가복이 검을 옆으로 휘둘렀다.
공손무는 검에서 손을 떼고 옆으로 굴러 검격을 피했다.
그의 머리카락이 베여 허공에 흩날렸고 가슴팍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
‘젠장!’
공손무는 검을 되찾기 위하여 재빨리 내공을 끌어 올렸다.
그러고는 손바닥을 펼쳐 장법을 날리려고 했다.
“어딜!”
하지만 율가복이 이번에는 한 수 더 빨랐다.
그의 검에서 검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오더니 공손무의 전신을 뒤덮었다.
쿠구구궁-!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요란한 굉음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고,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한 공손무의 몸이 뒤로 날아가 버렸다.
“크으윽!”
공손무의 입가에 핏물이 맺혔다.
내상을 입어 고통스러운 상태였다.
‘어서 내상을 치료해야 해!’
하지만 싸움 도중 운기조식을 할 수는 없는 상황, 공손무는 금강흑갑을 사용하려고 했다.
그러려면 검을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
‘검을 잡아서 집대성을 사용한 다음에 금강흑갑을 사용해야 해.’
저벅 저벅
이때 발소리와 함께 반대쪽에서 율가복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만 항복하는 게 어떻겠소? 그대는 나를 이길 수 없소.”
“절대 항복할 수 없습니다.”
“자꾸 고집을 부리면 팔 한 짝이 날아갈 수도 있소.”
“어차피 천회를 얻지 못하면 죽을 몸, 팔 한 짝 날아가는 것에 겁을 먹을 제가 아닙니다.”
“허허.”
율가복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흐음. 내심 기대를 했건만, 이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오. 의원인 나를 넘지 못하는데 어떻게 천회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 또 어떻게 가문을 구하고 천하를 구할 수 있을까.”
“크윽! 나는 반드시 가문을 구하고 천하를 구할 것입니다!”
공손무는 이를 깨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을 일으켜 검을 찔러 넣었지만, 율가복의 검에 간단히 막히고 말았다.
“발버둥 쳐 봤자 쓸데없는 짓이오!”
율가복이 손에 힘을 주자 돌풍이 일어났다.
돌풍과 함께 공손무의 몸은 또다시 뒤로 날아가 버렸다.
“피를 봐야 깨달을 것 같으니, 어쩔 수 없군. 나를 원망하지 마시오.”
율가복이 내공을 끌어 올리자 칼날에 화염이 휘감겨졌다.
이글거리는 거대한 화염.
화염은 곧 한 마리의 용이 되더니 입을 쩍 벌리며 공손무의 전신을 집어삼켰다.
공손무가 화염에 휩싸이자 승부가 끝났다고 생각한 율가복은 검을 집어넣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뭐지?’
이상한 기운이 기감에 잡혔다.
불길한 느낌에 그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아니?’
무엇을 보았는지 율가복의 눈이 처음으로 크게 떠졌다.
‘어떻게 된 거지?’
분명 화염에 휩싸였던 공손무가 양손으로 검을 잡은 채 두 눈을 감고 있는 게 보였다.
당황한 그와 달리 옆쪽에서 지켜보던 학통은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드디어 또 한 단계 뛰어넘었구나.
절체절명의 상황.
공손무는 또 한 번 스스로 한계를 깨부수었다.
절정의 완숙에서 초절정의 초입에 진입한 것이다.
이전과는 달라진 공력에 율가복의 눈이 날카롭게 반짝였다.
‘이게 뭐지? 좀 전과 분위기가 달라졌다. 대체 어떻게?’
당황함도 잠시, 그는 차분히 내공을 끌어 올리며 선공을 가했다.
파지지직-!
수십 줄기의 검기가 앞으로 쏘아져 나갔지만, 공손무는 더욱 빨라진 취룡보로 잔상을 일으키며 가볍게 피해 버렸다.
움직이는 속도가 너무 빨라 도저히 눈으로 좇을 수 없을 수준이었다.
‘엄청난 속도다. 내 눈으로도 따라잡을 수가 없어!’
파도처럼 위기감이 몰려오자 율가복은 전력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이빨을 깨물며 앞으로 날아갔다.
형형한 안광을 흩뿌리며 검을 휘두르자 돌풍과 함께 굵다란 검기가 날아갔다.
몇 번이나 참격을 날렸지만, 공손무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연이어 공격이 실패하자 율가복의 얼굴에 초조함이 서렸다.
처음으로 자신이 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공격을 아무렇지 않게 피해 버린다. 지금까지와는 달라.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지금껏 이 힘을 숨기고 있었던 건가? 그게 아니라면……?’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한 가지.
‘설마 대련 중에 경지가 상승한 것인가?’
아주 가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무사는 자신도 모르게 한계를 극복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그 무사가 천재일 때만 가능한 일.
‘검혼의 재능을 가졌으니 천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건가?’
이때 공손무가 안광을 번뜩이며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허공을 가르는 칼날.
이 승부를 결정지을 마지막 한 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