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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읽는 막내 공자 128화 (128/200)

<검을 읽는 막내 공자 128화>

128화. 낙향의선(1)

쪽지의 내용은 꽤 충격적이었다.

‘은소소가 보낸 거잖아?’

정검각의 은소소가 보내온 쪽지.

놀랍게도 거기엔.

‘낙향의선이 날 만나고 싶어 한다고?’

낙향의선이 누구던가.

환생 전에는 파괴된 단전을 고칠 수 있다는 말을 들었고.

지금은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진 않지만, 전설적인 의원으로 통하고 있었다.

그런 인물이 자신을 콕 집어 만나고 싶어 하다니.

‘평소라면 곧바로 만났겠지만…….’

지금은 낙향의선보다 천회가 더 중요했다.

천회를 찾지 못하면 공손무는 손목의 있는 검의 맹세에 잡아먹히고 말 테니까.

‘나중에 만나자고 해야겠구나.’

하지만 쪽지의 마지막 부분을 본 공손무는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이, 이게 뭐야?’

낙향의선과의 만남을 서둘러야 할 이유가 생긴 것이다.

‘천회의 행방을 알고 있다고? 아니, 낙향의선이 어떻게?’

놀랍게도 낙향의선이 천회의 행방을 알고 있으니 자신과 만나자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내가 천회를 찾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 설마 아버지가 보낸 건가?’

무엇 하나 속단할 수 없는 상황.

고민에 빠지자 옆에서 지켜보던 학통이 백우선을 살랑거리며 공손무에게 말을 걸었다.

-흐음. 이참에 한 번 만나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구나.

‘그 또한 나름대로 어떤 목적이 있을 겁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저에게 천회에 대한 행방을 알려 주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것 또한 일리가 있는 말이구나.

혈혼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전생에서는 어땠는지 몰라도 지금은 완전히 남이니까, 섣불리 믿어서는 안 되겠지.

낙향의선은 마침 선산 근방에 있는 마을에 있었다.

공손무는 그를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서두르기로 했다.

‘그럼 출발해 볼까.’

*   *   *

공손세가 선산 근처의 어느 산골 마을.

“흐어어어…….”

한 노인이 무기력한 표정으로 입을 벌린 채 동냥을 하고 있었다.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흔한 거지로 보였다.

“이런 산골 마을에도 동냥하는 거지가 있을 줄이야.”

“그러게나 말일세.”

그곳을 지나가려던 약초꾼들은 거지를 보고 혀를 찼다.

“으음?”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분명 혀를 차며 그냥 지나가려 했는데.

자꾸만 눈길이 간다.

뭔가 알 수 없는 힘이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느새 두 약초꾼은 홀린 듯이 그 노인 앞에 섰다.

“어라? 우리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그러게나 말이야. 어서 다시 갈 길 가세.”

약초꾼들은 다시 갈 길을 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어흠!”

머리를 울리는 듯한 헛기침 소리.

약초꾼들이 고개를 돌리자 노인이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다.

거지가 뚫어지게 바라본다.

평소 같았으면 뭘 보는 거냐며 신경질을 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이유는 모른다.

묘하게 사람을 잡아당기는 힘이 노인에게 있었다.

“아이고! 어르신! 이거 더운 날에 고생이 많으십니다!”

약초꾼은 품에서 돈을 꺼내 노인 앞에 있는 표주박에 넣었다.

“도저히 그냥은 못 가겠구만.”

그 옆에 있던 약초꾼도 마찬가지였다.

그 모습을 본 노인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껄껄! 고맙소. 내 이 은혜는 잊지 않으리다.”

“예, 건강히 지내십시오. 그럼 이만.”

돈을 헌납한 약초꾼들은 다시 길을 떠났다.

그런데 잠시 후.

“어라?”

노인과 멀어지자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다.

그것뿐이랴.

조금 전의 자신이 한 행동이 이해되질 않기 시작했다.

“왜 내가 저 노인에게 돈을 준 거지?”

“그러게나 말이야. 내가 잠시 미쳤었나 봐. 조금 있다가 한잔 거 하게 걸치려고 모아 두었던 돈인데. 그걸 거지한테 홀라당 주다니.”

“어쩔 수 없지. 다시 가서 돈을 가져오는 수밖에.”

약초꾼들은 다시 돈을 가져가기 위해 발길을 돌려 노인에게 갔다.

“저기, 어르신. 죄송합니다만…….”

그들은 노인에게서 다시 돈을 돌려받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엥?”

노인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런 생각은 말끔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것뿐이랴, 오히려 더 돈을 주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이고, 어르신! 얼굴이 많이 상하셨습니다! 오늘 끼니는 제대로 드셨는지요?”

“허허. 내 얼굴이 그리 많이 상했소? 보다시피 피죽도 제대로 못 먹는 처지라…….”

약초꾼은 집에 가져가야 할 돈까지 표주박에 담아 버렸다.

“이것 받으시고 어디 객잔에 가서 제대로 된 식사나 한 끼 하십시오.”

“이렇게나 많이 주다니. 정말 괜찮겠소?”

“저는 괜찮습니다. 돈은 또 벌면 되니까요.”

“허허. 참으로 고맙소. 아직 세상이 망할 때는 아닌가 보오. 그대와 같이 인자함을 갖춘 사람이 남아 있는 거 보니.”

그 옆에 있던 다른 약초꾼은 아예 상의까지 벗어 노인에게 주었다.

“날이 추운데 너무 얇게 입고 다니십니다. 이거라도 입으십시오.”

“허허. 정말 고맙소.”

“예,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그럼 이만.”

약초꾼들은 다시 길을 떠났다.

그러고는 한 고개를 넘지 못하고 다시 멈추어 섰다.

“에취! 아니 이게 뭐야? 내가 옷을 안 입고 있는 거지?”

“어라? 마누라한테 줘야 할 돈이?”

옷과 생활비까지 빼앗기자 이제는 화가 날 지경이었다.

“그 노인 얼굴만 보면 갑자기 머리가 이상해지는 것 같아.”

“그래. 뭔가 사술을 쓰는 게 분명해.”

그들은 씩씩거리며 다시 거지 노인을 만나러 갔다.

노인은 잠이 오는 듯 끔뻑끔뻑 졸고 있었다.

“이보시오!”

“으음? 아아. 또 오셨소?”

“또 오기는 개뿔, 잔말 말고 우리가 준 돈을 돌려주시오.”

“내 옷도 어서 주시오! 추워 죽겠으니까.”

하지만 노인은 그럴 마음이 없어 보였다.

“어찌 한 번 준 걸 다시 빼앗아 간단 말이오?”

“그쪽이 사술을 써서 우리 마음을 조종한 것을 알고 있소! 좋은 말로 할 때 돌려주시오!”

“사술? 그대들이 보기에는 이게 사술같이 보이오?”

노인이 안광을 번뜩였다.

파도처럼 거대한 존재감이 약초꾼들을 짓눌렀다.

“히이익!”

거대한 공력에 짓눌린 약초꾼들은 공포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고는 뒤로 돌아보지 않고 도망쳐 버렸다.

약초꾼들이 사라지자 노인은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저 미친 노친네. 또 두 명을 홀라당 벗겨 먹어 버렸군. 정말 수완이 좋다니까.”

“별다른 기술도 없어 보이는데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한 걸까요?”

꾸벅꾸벅 졸고 있는 노인을 몰래 염탐하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

그 마을에서 오래 산 개방의 거지들이었다.

거한이 덩치에 맞지 않게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노인을 노려보았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지금 중요한 건 저 노인을 가만히 놔두면 우리가 일자리를 잃는다는 거다. 손가락만 쪽쪽 빨게 생겼단 말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긴, 처리해야지.”

“저 노인을 말입니까?”

“그래. 일단 말로 겁을 줘 보고, 그게 안 되면 힘으로라도 몰아내야지.”

하지만 말과 달리 거한은 섣불리 노인에게 접근할 수 없었다.

방심했다가는 조금 전의 사람들처럼 홀라당 다 줄 게 뻔하니까.

“어쩔 수 없구나. 오랜만에 몸을 푸는 수밖에.”

“헉! 설마 무공을 사용할 생각이십니까?”

“그래. 개방 총단에서 배운 무공을 펼친다면, 저런 노인 하나쯤 쫓아내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오오! 어서 저 녀석을 쫓아내 주십시오! 두목!”

“어흠!”

거한이 헛기침을 하며 노인을 향해 걸어갔다.

싸움은 기세.

내력을 발산하는 것만으로도 노인이 겁먹고 도망가리라 생각했다.

‘그럼 어디 한번 해 볼까?’

마침내 거한은 노인과 마주했다.

“하아앗!”

이윽고 그가 기합을 넣으며 내공을 끌어 올렸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것일까, 고개를 숙이고 졸던 노인이 천천히 머리를 들어 올렸다.

‘헉! 이, 이건!’

노인의 눈과 마주친 거한은 마음속에 동정심이 솟아오르는 걸 느꼈다.

오늘 동냥으로 받은 모든 돈을 당장이라도 그의 앞에 바치고 싶었다.

거지 왕초인 그가 돈을 바치고 싶다니.

거한은 노인의 능력에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 네놈의 사술에 홀리지 않아!’

거한이 내력을 발산하여 머릿속을 침범한 기운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그것을 눈치챘는지 노인의 눈빛에 이채가 감돌았다.

“호오. 이것 참 재밌구먼. 그럼 나도 힘을 좀 써 볼까?”

노인도 안광을 번뜩이며 내력을 끌어 올렸다.

두 사람 사이에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뭐, 뭐야? 이 노인도 내공을 가지고 있었어?’

노인의 힘에 조금 당황했지만, 거한은 내공을 더욱 끌어 올렸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노인의 것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잡아먹혀 버렸다.

“커헉!”

노인이 내뿜는 기운을 이기지 못한 거한은 몸을 부르르 떨더니 이내 거품을 물며 기절해 버렸다.

“두, 두목!”

거한이 쓰러지자 숨어 있던 거지들이 달려 나왔다.

“두목! 정신을 좀 차려 보십시오!”

“말도 안 돼! 우리 두목이 지다니!”

혼란스러운 사이, 노인이 자리를 서둘러 정리하며 일어났다.

‘에잉. 소란스러우니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야겠구먼.’

그가 뒤를 돌아보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나를 보러 온 손님도 왔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잠시 후.

“후우…….”

노인은 나뭇가지로 땅을 짚으며 산을 오르고 있었다.

“에휴. 내가 내 다리를 너무 믿었구먼. 여기서 보자고 한 내 입을 때려 주고 싶을 지경이야.”

힘겹게 산 정상에 오른 노인의 눈앞에 누군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한 소년이 산 정상의 나무 아래에서 경치를 감상하고 있었다.

노인이 다가가자 그가 고개를 돌렸다.

소년의 정체는 다름 아닌 공손무였다.

“혹시 낙향의선이십니까?”

그의 말에 노인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허헛. 낙향의선이라. 세간에서 날 그렇게 부르기는 하지. 내 진짜 이름은 율가복이라고 하오.”

공손무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포권을 취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공손세가의 막내 공자, 공손무라고 합니다.”

“소문은 익히 들었소. 검혼의 재능을 가졌다지?”

“예, 그렇습니다.”

공손무는 포권을 거두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비루한 차림의 노인, 특별함 같은 건 없어 보였다.

‘가문승 때도 그랬지만, 정말이지 평범하게 생겼군. 특별하게 느껴지는 기운도 없어.’

이윽고 율가복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 제자의 의뢰를 그대가 들어줬다고 들었소.”

“예, 그렇습니다.”

“검을 완전히 파괴했다고?”

“검을 빼앗아 간 무리와 교전하는 중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차라리 잘 되었어. 보관하고 있기에는 영 찜찜한 물건이었거든.”

공손무의 말은 거짓.

혜광에게서 빼앗은 흑령의 힘은 공손무가 학통의 진능으로 흡수했으니까.

이때 학통이 눈을 가늘게 뜨며 그에게 말했다.

-잡소리는 됐고, 그것부터 어서 물어보거라. 천회에 대해서 어떻게 아는지 말이다.

혈혼 또한 그의 생각과 같았다.

-맞아! 우리에겐 시간이 없어! 네가 천회와 맺은 검의 맹세가 언제 또 폭주할지 모르잖아! 이런 곳에서 폭주하면 답도 없다고!

공손무는 그들의 말대로 본론을 꺼냈다.

“시간이 없어 본론부터 말하겠습니다. 천회에 대한 행방을 알고 계시다던데, 그게 정말입니까?”

“흐음…….”

잠시 뜸을 들이던 율가복이 이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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