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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읽는 막내 공자 127화 (127/200)

<검을 읽는 막내 공자 127화>

127화. 선산의 침입자들(4)

충격과 공포로 몸을 떨던 야흑성이 중년인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려 했다.

“어서 뒤로 물러나세요! 내가 저 호랑이들을 상대할 테니까!”

“살려 줘! 난 죽기 싫어!”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야흑성은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콰지직-!

“끄아악!”

그 사이 호랑이들이 달려들어 중년인의 몸을 사정없이 뜯어먹기 시작했다.

“아악! 너무 아파! 제발 그만둬!”

고통스러워하는 비명이 사방으로 울려 퍼지며 시뻘건 핏물이 허공에 뿌려졌다.

팔다리 이곳저곳을 뜯긴 중년인은 피 칠갑한 채 땅을 엉금엉금 기기 시작했다.

그나마도 얼마 가지 못하고 털썩 엎어지고 말았다.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아! 나에게는 가족이 있단 말이다!”

어린 시절 보았던 끔찍한 장면의 재현.

처참한 광경에 야흑성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싫어. 이런 거 보기 싫다고!”

공포에 휩싸인 그가 중년인을 외면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뭔가에 부딪혔다.

‘뭐, 뭐지?’

고개를 돌린 야흑성의 눈이 커졌다.

그의 눈동자는 공포로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등 뒤에는 공손무가 미소를 지은 채 서 있었다.

“이제 알겠어? 너와 나의 차이를? 네가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 사이의 격차를 메울 수 없다는 걸?”

“닥쳐라! 감히 이런 짓을 벌이다니! 북마교의 군세가 네놈과 공손세가를 짓밟을 것이다!”

“과연 그렇게 될까?”

“아버지를 잃은 기억을 끌어내어 날 겁먹게 하려는 심산인가 본데, 난 그렇게 나약하지 않아! 난 북마교의 이공자다!”

“아버지? 아직도 저게 네 아버지로 보여?”

“뭐?!”

야흑성은 깜짝 놀리며 고개를 돌렸다.

‘저건?’

온몸을 뜯긴 채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사내.

거기에 중년인은 없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야흑성 본인이었다.

“내, 내가 왜 저기에 있는 거지?”

머릿속을 뒤덮은 거대한 공포.

공포에 지배당해 버린 야흑성은 비틀거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모습을 본 공손무가 피식 웃으며 상체를 숙이더니 그의 귓가에다 속삭였다.

“저게 바로 네 녀석의 앞에 닥칠 미래다. 아무도 없는 심연 속에서 홀로 비참하게 죽는 것. 나와 공손세가에 대항한 벌을 달게 받아라.”

“이놈이 감히……!”

야흑성이 남아 있는 모든 마기를 한데 끌어모았다.

‘마룡흑섬(魔龍黑殲).’

파지지직-!

양손에 잡고 있던 쌍검에서 검은 뇌전이 현란하게 피어올랐다.

‘내 모든 것을 걸고서 네놈을 쓰러트려 주마!’

마기를 품은 두 마리의 용이 공손무의 전신을 집어삼키려 덤벼들었다.

이를 본 학통이 눈을 가늘게 뜨며 소리쳤다.

-놈이 마지막 발악을 하는구나! 이제 슬슬 승부를 결정지을 시간이다!

‘예, 어르신. 저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공손무가 검을 고쳐 잡으며 수직으로 세웠다.

그러고는 나머지 한 손으로 칼날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구천백우(九天白雨).’

쏴아아아.

그러자 칼날이 눈부신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칼날 전체가 새하얗게 물들더니 새하얀 뇌전을 튀겼다.

“크윽!”

구천백우는 구천멸풍검법의 중위 초식 중에서도 난이도가 높은 초식.

속학을 가진 공손무에게도 버거운 것이었지만, 이제는 달랐다.

완벽하게 다룰 수 있었다.

콰지지직-!

공손무가 검을 위로 들어 올렸다.

그러자 진하고 강렬한 기운이 사방으로 휘몰아치더니 새하얀 뇌전의 줄기가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짙은 먹구름이 사방에서 몰려오고 천둥소리가 울렸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온몸을 옥죄는 불길한 느낌에 야흑성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그런데 그 순간.

꾸르르릉-!

“크아악!”

귀를 찌르는 듯한 벽력음과 함께 하늘 위에서부터 거대한 압력이 지면을 강타했다.

온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졌고, 야흑성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이윽고 하늘에서 쏘아 내려오는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릎까지 꿇어 버렸다.

그 모습을 본 공손무가 입꼬리를 올리며 천천히 다가왔다.

“네 녀석의 힘은 잘 보았다. 교주의 제자인 것은 맞는 것 같구나. 그건 인정해 주지. 하지만 말이다.”

공손무가 안광을 번뜩이며 상대의 눈을 직시하였다.

“아무리 교주의 제자가 대단하다고 해도 내가 가진 검혼의 재능을 뛰어넘지는 못한다. 너희들과 나 사이에는 평생을 공들여도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있으니까.”

“네 이놈……!”

꾸르르릉-!

이때, 천지를 뒤흔드는 듯한 벽력음과 함께 먹구름의 소용돌이 속에서 붉은빛이 반짝였다.

초식이 절정을 향하고 있었다.

“하앗!”

공손무가 기합을 내지르자 하늘 위에서 뾰족한 무언가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검의 칼날처럼 생긴 검기였다.

칼날들이 소나기처럼 하늘에서 끊임없이 쏟아졌다.

“크아악!”

사방에서 쏟아져 내리는 칼날에 야흑성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가 고통의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마지막 발악도 헛수고로 돌아가자, 야흑성은 진정으로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그가 공손무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소리쳤다.

“제발 살려 줘! 난 여기서 죽기 싫어! 이렇게 죽을 수 없는 몸이란 말이다!”

“누군가에게 부탁하려면 정중하게 말해야지. 어린아이도 아니고, 떼를 쓴다고 내 마음이 움직일 것 같으냐?”

순간 야흑성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지며 어둠이 드리워졌다.

패배와 절망에 젖은 눈빛.

모든 것을 포기하고 체념한 표정이었다.

이윽고 그가 상체를 일으키더니 두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내가 졌다. 아니, 내가 졌소. 패배를 인정하오.”

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굴욕감이 밀려오는지 목소리와 몸이 파르르 떨렸다.

“제발 목숨만 살려 주시오. 그대가 원하는 건 뭐든지 다 할 테니까, 제발 목숨만은!”

“뭐든지 다 하겠다고?”

“그렇소.”

잠시 고민하던 공손무가 이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좋아. 살려 주지.”

“그, 그게 정말이오?”

“그래. 하지만 그냥 살려 주지는 않을 것이다. 네가 언제 배신할지 모르는 일이니까.”

뜻밖의 말에 야흑성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게 무슨 말이오? 그냥 살려 주지는 않을 거라니? 나는 배신하지 않을 것이오! 정말이오!”

“북마교 이공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정도로 난 순진하지 않아. 그래서 나는 지금부터 숙부님의 진법을 이용하여 너의 자아를 빼앗을 생각이다.”

충격적인 말에 야흑성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자아를 뺏는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네 녀석이 다른 마음을 먹지 못하도록 자아를 없앨 것이다. 오직 내가 명령하는 것만을 충실히 수행하는 꼭두각시로 만드는 거지.”

“무, 무슨! 안 돼! 내가 꼭두각시라니!”

야흑성이 도망가려고 했지만, 진법 안에서 그가 도망갈 곳은 없었다.

“환영백경의 마지막 단계를 시작하겠다.”

공손무가 두 눈을 감으며 내공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온몸에서 새하얀 기운이 피어올랐다.

“크아아아!”

새하얀 기운이 주변을 뒤덮자 야흑성이 고통의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끄윽!”

야흑성의 상태가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가만히 있는 모습.

처음의 그 패기와 여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공손무가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내 말이 들리느냐? 들리면 고개를 들어 보아라.”

이윽고 야흑성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의 얼굴에는 충격도 공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어떠한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감정이 아예 메말랐다는 게 맞을 것이다.

패기 넘치게 반짝이던 눈동자는 먹물을 섞은 듯 혼탁했고, 온몸에서 느껴지던 기세 또한 사라진 상태였다.

말 그대로 폐인이 되어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 알겠느냐?”

“주인님입니다.”

야흑성의 말에 공손무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옆에 있던 학통 또한 미소를 지었다.

-진법의 최종기술이 제대로 먹힌 것 같구나.

‘예, 어르신. 실제로 누구한테 써 보는 것은 처음이라 조금 걱정했는데, 기술이 잘 들어간 것 같습니다.’

공손무의 질문이 이어졌다.

“네 녀석의 이름은 무엇이냐?”

“야흑성입니다.”

“내가 이름이 무엇인지, 소속이 어디인지 알고 있느냐?”

“이름은 공손무, 대 공손세가의 막내 공자님이십니다.”

“북마교에 대해서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내게 알려 줄 수 있겠느냐?”

야흑성이 고개를 푹 숙이며 답했다.

“물론입니다.”

“너는 지금부터 나의 것이다. 나에게 반하는 행동과 말을 할 수 없다. 오로지 내 명령에 복종해야 할 것이야.”

말을 끝낸 공손무가 북마교의 정보를 얻기 위해 명령을 내리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콰아앙-!

고분고분하던 야흑성의 몸이 갑자기 복어처럼 부풀어 오르더니 이내 굉음을 내며 폭발했다.

그와 동시에 수백 개의 독침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갑작스러운 폭발과 독침에 공손무의 눈이 번쩍 떠졌다.

옆에 있던 학통이 다급히 소리쳤다.

-설마 분신지체였을 줄이야! 뭣하냐! 어서 검막을 펼치지 않고!

‘이런 젠장!’

함정인 것을 깨달은 공손무는 곧바로 내공을 끌어 올리며 검을 휘둘렀다.

백색의 빛을 가진 검막이 그의 주위로 펼쳐졌다.

폭발의 충격과 독침들이 검막에 부딪치며 귀를 찌르는 폭음이 일어났다.

“크악!”

간신히 막기는 했으나 충격을 이기지 못한 공손무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뿌연 연기가 주변을 뒤덮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콜록! 콜록!”

잔해들 속에서 공손무가 기침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검막이 부서졌지만, 폭발의 충격과 독침으로부터는 몸을 지켰기에 큰 상처는 입지 않았다.

그가 옷의 먼지를 털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녀석은?’

-분신지체는 이미 폭발하여 사라졌다.

‘분신지체라니. 그게 대체 무엇입니까?’

-일반적인 분신과는 궤를 달리 하지. 본체와 모든 것이 똑같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다만 분신지체는 공력의 소모가 극심했다.

일 갑자 이상의 공력을 가진 사람이 최소한 공력의 절반을 사용해야 겨우 하나 만들 수 있을 정도였다.

‘녀석은 진짜 사람처럼 말도 하고 검법까지 사용했습니다.’

-그게 분신지체의 무서움이다. 본체보다 위력은 약하지만, 똑같이 기술을 사용할 수 있으니까.

‘야흑성 본인이 아닌 그가 만들어 낸 분신지체였다니.’

북마교의 중요 정보를 알아낼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건만, 모든 것이 수포가 되고 말았다.

-아쉽게 됐구나. 놈들을 일단 선산에서 몰아낸 것으로 만족해야겠지.

야흑성을 사로잡는 건 다음 기회를 노려야 했다.

공손무는 주변을 둘러보며 기감을 펼쳤다.

‘놈들의 부하들도 다 도망친 것 같습니다.’

-분신지체가 당했으니 어쩔 수 없었겠지.

‘일단 이 주변을 살펴봐야겠습니다. 백부님의 행방에 대한 단서가 남아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공손무는 전각들을 살펴보며 공손광의 행방에 대한 단서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전각들 대부분이 무너졌고 사람 한 명 남아 있지 않아 단서를 찾기는 불가능했다.

선산을 올라가 보았지만, 천회는커녕 아무것도 남아 있는 게 없었다.

북마교가 오기 전에 모두 짐을 싸서 도망친 것 같았다.

‘본가에도 알리지 않고 대체 어디로 간 거지?’

공손무는 일단 그곳 근처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그리고 다음 날 이른 아침.

‘전서구?’

이른 아침부터 전서구 한 마리가 날아왔다.

전서구의 다리에는 작은 쪽지가 붙어 있었다.

‘이건?’

쪽지를 떼어 내어 내용을 확인한 공손무의 눈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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