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을 읽는 막내 공자 125화>
125화. 선산의 침입자들(2)
상대가 당황하는 사이 공손무는 재빨리 땅을 박차고 뒤로 물러났다.
야흑성을 쓰러트리려면 더 강력한 기술이 필요했다.
“구천멸풍검법의 중위 초식을 보여 주마. 지금의 수준이라면 네놈을 상대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테니까.”
공손무가 안광을 번뜩이며 검을 치켜세웠다.
강렬한 빛무리가 검 전체를 휘감았다.
너무 눈부셔서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별이 코앞까지 다가온 것처럼 느껴졌다.
다섯 개의 빛무리가 생긴 순간, 검이 수직으로 세워지며 눈부신 빛을 내뿜었다.
‘일검오성(一劍五星).’
다섯 개의 빛무리가 동시에 폭사하며 야흑성을 향해 뿜어져 나갔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기운에 야흑성의 몸이 덜덜 떨렸다.
“커억!”
하지만 이내 시퍼런 안광을 터뜨리더니 자신의 모든 내공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설마 맞받아칠 생각인 건가?’
야흑성은 쌍검에 모든 힘을 집중시켜 파도처럼 밀려오는 기운을 두 쪽으로 가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의 검으로 가르기에는 파도가 너무 두껍고 컸다.
모든 것을 걸고서 검을 내리쳤지만, 눈부신 빛무리는 조금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렬하게 반짝이며 전신을 집어삼켜 버렸다.
‘끝난 것인가?’
잠시 후, 공손무는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뿌연 연기 때문에 야흑성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때 학통이 백우선으로 뒤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조심해라! 놈은 아직 쓰러지지 않았다!
콰아앙-!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뒤쪽에서 폭음이 들리더니 커다란 그림자가 땅에 드리워졌다.
야흑성이 허공 위에서 쌍검을 든 채 공손무를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공손무가 자리를 벗어나려고 하자 야흑성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크하하핫! 도망치려고? 어림없다!”
그가 마기를 끌어 올리자 입고 있던 옷이 바람에 흩날리며 펄럭거렸다.
이윽고 옷의 안쪽에서 직사각형 모양의 종잇조각들이 튀어나와 사방으로 날아갔다.
‘저게 뭐지?’
기이한 문양이 적힌 직사각형 모양의 종이, 그건 다름 아닌 부적이었다.
마기를 품은 수십 장의 부적들이 사방에 흩뿌려지더니 이내 철썩 달라붙었다.
‘이 부적은 대체 뭐지?’
파지직!
공손무가 그 부적을 만지자 강력한 뇌전이 일어나며 손길을 거부했다.
그 모습을 본 학통이 눈을 가늘게 뜨며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흐음. 아무래도 결계에 갇힌 것 같다.
‘겨, 결계요?’
-그래. 네 녀석을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속셈이겠지.
‘마기로 결계를 만들다니. 대체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길래…….’
세상의 모든 것을 가두고 배척하는 마의 결계.
검혼의 재능 덕에 절정 완숙에 이르렀지만, 지금으로선 이 결계를 깨트릴 수 없었다.
공손무가 안광을 번뜩이며 야흑성에게 말했다.
“마기로 결계를 만든 것이냐?”
“그렇다. 모처럼 만난 대어를 놓칠 수는 없으니까.”
야흑성이 공손무를 향해 쌍검을 겨누었다.
“네 녀석을 이용해 천회를 손에 넣을 것이다. 그 누구도 날 막을 수 없어.”
“절대 그렇게는 되지 않을 것이다. 어서 덤벼라. 네 녀석이 내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해 주마.”
파아앗!
대화가 끝나자마자 야흑성이 땅을 박차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안광을 번뜩이며 날아가는 모습이 꼭 한 마리의 야수와도 같았다.
‘정면으로 덤비다니. 어리석은 놈이구나.’
기세가 대단하고 속도도 빨랐지만, 충분히 쫓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공손무는 검을 고쳐 잡으며 내공을 끌어 올렸다.
‘그대로 네놈을 박살 내 주마!’
공손무가 날아오는 야흑성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권강을 두른 주먹이 허공을 가르며 야흑성의 머리를 부수려고 했다.
휘이익-!
‘아니?’
하지만 그 순간, 야흑성의 신형이 눈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마치 원래부터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느려터진 놈. 검혼의 재능을 가졌다면서 실력이 고작 이 정도냐?”
쐐애애액!
칼날이 공손무의 등을 스쳐 지나갔다.
‘이형환위를 사용했어?’
순식간에 몇 장 떨어진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최상승 신법인 이형환위.
야흑성은 이형환위를 이용해 공손무의 뒤쪽으로 이동하여 일격을 가한 것이다.
“하앗!”
공손무는 곧바로 뒤를 돌아 야흑성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내기를 머금은 칼날이 야흑성의 목을 그었다.
“커헉!”
치명상을 입은 야흑성이 피가 줄줄 흐르는 목을 감싸 쥐며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승부는 끝난 듯 보였지만, 무슨 일인지 공손무의 표정은 별로 좋지 않았다.
옆쪽에 있던 학통이 눈을 가늘게 뜨며 속삭였다.
-너도 눈치챘느냐?
‘예, 저건 가짜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바닥에 쓰러진 야흑성의 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이내 한 줌의 먼지가 되었다.
이윽고 지면이 흔들리면서 거대한 목소리가 허공을 울렸다.
“크하하핫! 날 죽인 줄 알고 좋았을 텐데. 이것 참 아깝게 되었구나. 네 녀석은 평생을 노력해도 나를 잡을 수 없을 것이다.”
공손무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설마 마기로 분신까지 만들 수 있을 줄이야. 대체 언제 바꿔치기한 거지?”
“내 결계에 갇힌 이상, 넌 절대로 날 이길 수 없다. 지금까지 본 건 맛보기일 뿐, 진짜는 지금부터다.”
야흑성이 마기를 끌어 올리자 사방의 부적에서 검은 뇌전이 피어올랐다.
뇌전과 함께 검은 물방울이 생기더니 이내 그 속에서 야흑성을 똑 닮은 분신들이 걸어 나왔다.
야흑성과 똑같은 모습을 한 마흔 명의 분신.
그들 모두 쌍검을 든 채 공손무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공손무는 곧바로 야흑성의 전략을 간파했다.
‘분신을 이용해 수적 우위로 날 잡겠다?’
하지만 그런 전략에 당할 공손무가 아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정리해 주지.’
공손무가 검을 고쳐 잡더니 안광을 번뜩이며 수직으로 내리쳤다.
‘일검백도(一劍白道).’
검을 세운 듯 하늘로 쭉 뻗은 백색의 검기가 지면을 가르며 쏘아졌다.
야흑성의 분신들은 검기를 막기 위해 재빨리 검진을 구축했다.
“크하하핫! 그 정도 기술로 우리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어림도 없는 일이지!”
마기를 머금은 검들이 붉게 변했다.
파지지직-!
이내 검기와 검진이 충돌하면서 시뻘건 불똥과 함께 귀를 찌르는 파열음이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크윽! 대단한 압박감이다!’
야흑성은 미간을 찌푸렸다.
쉽게 튕겨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공손무의 검기는 상상 이상으로 무겁고 날카로웠다.
검진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더는 버틸 수가……!’
콰가가강-!
이윽고 귀를 찌르는 폭음과 함께 검진이 부서져 내렸다.
폭발 속에서 분신들도 대부분 모두 사라졌다.
공손무가 뿌연 연기를 뚫고 밖으로 나와 주변을 살폈다.
“분신들과 싸울 마음은 없다. 개수작 부리지 말고 어서 본모습을 드러내라!”
“크하핫! 기껏 결계에 들어온 먹잇감을 놔주라는 말이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걸 보니 죽을 때가 다 된 것이로구나.”
공손무는 기감을 집중하여 숨어 있는 야흑성을 찾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곧 무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결계 때문에 기감이 제대로 느껴지질 않는구나. 마치 안개처럼 마기가 사방에 깔려 있어서 놈의 위치를 찾아낼 수가 없어.’
분신들을 아무리 죽여도 부활하기 때문에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
공손무는 어쩔 수 없이 한 가지 결정을 내려야 했다.
‘어쩔 수 없지. 무리해서라도 그 기술을 사용하여 결계를 깰 수밖에.’
그가 내공을 끌어 올리며 검을 고쳐 잡았다.
‘일단 이것부터 시작할까.’
내공을 끌어 올리자 지면이 울리고 천지가 요동쳤다.
‘일검잔월(一劍殘月).’
공손무가 형형히 빛나는 검을 세차게 휘둘렀다.
돌풍과 함께 초승달 모양의 검기가 허공에 흩뿌려졌다.
눈부신 검기들이 날아오자 선두에 있던 분신의 자세가 달라졌다.
‘흑성뇌검(黑星雷劍).’
검은 뇌전이 분신의 쌍검을 휘감았다.
이윽고 분신이 쌍검을 휘두르자 검은 뇌전으로 만들어진 검기가 앞으로 날아갔다.
콰가가강-!
흑성뇌검과 일검잔월이 충돌하며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귀를 찌르는 굉음과 함께 뿌연 연기가 주변을 뒤덮었다.
“하앗!”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기합 소리와 함께 야흑성이 연기를 뚫고 나왔다.
그러고는 곧바로 쌍검을 공손무의 어깨에다 박았다.
그 모습을 본 야흑성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크하하핫! 잘난 체하더니 꼴 좋구나! 지금이라도 항복한다면 목숨만은 살려 줄 용의가 있다. 어떠냐?”
“크큭. 항복? 웃기지 마시지. 항복을 해야 할 건 내가 아니라 바로 너야.”
이때 상처를 입은 공손무의 모습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야흑성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뭐야? 어디로 갔……?’
순간 야흑성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진한 살기가 온몸을 타고 기어오르고 있었다.
“누구냐!”
그가 재빨리 몸을 돌려 검을 휘둘렀으나 상대의 검이 더 빨랐다.
푸른 내기를 머금은 칼날이 공손만의 검을 쳐 내고 그의 가슴팍을 그었다.
“크악!”
야흑성은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그를 벤 건 놀랍게도 공손무였다.
“무슨 사술을 부린 것이냐! 설마 너도 결계를?”
“이건 결계 같은 게 아니다.”
“그럼 무엇이란 말이냐! 어깨에 쌍검이 박히는 걸 분명히 보고 느꼈는데! 어떻게 이리 멀쩡할 수가 있어!”
“내가 멀쩡한 건 당연한 것이다. 애초에 아무것에도 당하지 않았으니까. 넌 내 진법에 속은 것이다.”
“진법……?”
공손무는 그의 눈앞에다 비단 주머니를 흔들어 보였다.
“그래, 이 진창석(陣暢石)으로 만든 환영팔괘진(幻影八卦陣)에 속은 거지.”
공손무가 입꼬리를 올리며 야흑성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네 녀석이 만든 결계 안에서 죽여 주마.”
“후훗. 크하하핫!”
광소를 터뜨린 야흑성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내 공격을 한번 피했다고 너무 기고만장하는구나!”
분신들이 일제히 쌍검을 뽑아 들더니 공손무를 향해 던졌다.
‘흑성난무(黑星亂舞).’
퍼버버벅!
검은 마기를 머금은 백여 개의 쌍검들이 모두 공손무의 전신에 꽂혔다.
목부터 시작해서 발끝까지 촘촘히 박혀 빈틈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아아…….”
시야가 흐릿해지면서 머리가 하얘지는 느낌.
죽음이 공손무의 영혼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끝난 것인가?’
야흑성은 이번에야말로 자신이 승리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건 크나큰 착각이었다.
화르륵!
‘으음?’
이때 야흑성의 눈에 반짝이는 무언가가 비추어졌다.
‘결계가 사라지고 있어?’
놀랍게도 사방의 벽과 지붕에 붙여 놓았던 부적들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부적들이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지자 섬뜩한 목소리가 허공을 가득 울렸다.
“네 녀석이 해치운 게 정말 나라고 생각하느냐? 미안하지만, 너는 이미 내 진법에 사로잡혔다. 즉, 네 녀석의 결계는 이미 깨지고 없다는 거지.”
말이 끝남과 동시에 분신들이 모두 사라지더니 야흑성의 본체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