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을 읽는 막내 공자 122화>
122화. 금룡 반지(3)
잠시 후, 공손무와 척유불은 목표한 지점에 이르렀다.
‘저기가 바로 천라지망의 약점!’
공손무는 십리천안진으로 살왕의 부하들이 펼친 천라지망의 약점을 찾아냈다.
수적 열세가 심했지만, 약점을 공략한다면 뚫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척 대주.’
‘예, 공자님.’
‘비록 우리가 약점을 공략한다고는 하나, 그것 또한 천라지망의 일부. 절대 얕봐서는 안 될걸세.’
‘물론입니다. 절대 방심하지 않겠습니다.’
‘조금 있으면 천라지망이 나올걸세. 준비하시게.’
‘알겠습니다.’
공손무의 말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천라지망의 범위 안으로 들어왔다.
‘고요하다. 아니, 싸늘하다고 해야 하나?’
기분 나쁠 정도로 고요한 적막감이 주변에 흘렀다.
사방의 어둠 속에서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공손무는 날카로운 안광을 번뜩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천라지망 속으로 들어왔는데도 지켜보기만 할 뿐, 덤비지는 않는구나. 무슨 생각인 거지?’
공격하면 곧바로 반격하여 포위망을 무너뜨리려 했는데, 적들이 생각보다 훨씬 신중하게 움직였다.
이때 옆에서 지켜보던 학통이 백우선을 살랑거리며 말했다.
-놈들이 뭔가를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하다. 조심히 움직여야 할 것이야.
‘예, 어르신.’
쉬이익-!
그런데 잠시 후.
‘뭔가가 움직였다?’
한 무리의 검은 인영들이 사방의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하는구나. 척 대주, 적들이 무슨 일을 꾸밀지 모르니 경계를 늦추지 말게.’
‘예! 공자님!’
이윽고 검은 인영들이 공손무와 척유불을 앞질렀다.
길목을 지키고 있던 그들이 다가오는 두 사람을 향해 창을 찔러 넣었다.
하지만 공손무는 이미 예상한 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척유불에게 전음을 보냈다.
‘척 대주, 지금일세!’
‘예! 공자님!’
공손무와 척유불이 동시에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이히히힝!”
거친 울음소리와 함께 말이 땅을 박차고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 덕분에 창들이 모두 말의 몸통 아래로 지나갔다.
날카로운 예기가 담긴 창들을 모두 피한 공손무는 곧바로 내공을 끌어 올리며 반격을 시작했다.
검을 고쳐 잡더니 안광을 번뜩이며 수직으로 내리쳤다.
‘일검백도(一劍白道).’
검을 세운 듯 하늘로 쭉 뻗은 백색의 검기가 지면을 가르며 나아갔다.
검은 피풍의를 뒤집어쓴 살수들이 저마다 놀란 눈빛을 반짝였다.
그들은 날아오는 검기를 막기 위해 검진을 구축한 다음 내공을 전력으로 끌어 올렸다.
내공을 머금자 그들이 쥐고 있던 단검이 피처럼 붉게 물들었다.
콰가강-!
이내 검기와 검진이 충돌하면서 시뻘건 불똥과 함께 귀를 찌르는 파열음이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살수들은 자신들이 이길 것으로 생각했다.
제아무리 공손세가의 막내 공자라고 할지라도 자신들이 수적으로 훨씬 우세하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크윽! 이 압박감은 뭐지?’
파도처럼 밀려오는 압력에 살수들이 만든 검진이 점점 부서지기 시작했다.
‘이 말도 안 되는 공력! 공손세가의 막내 공자가 설마 이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을 줄이야!’
쉽게 튕겨 낼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공손무의 검기는 상상 이상으로 무겁고 날카로웠다.
그들의 검진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더는 버틸 수가……!’
파도처럼 밀려오는 공력을 견디지 못한 검진이 수 갈래로 쪼개지며 부서졌다.
검진은 부서졌지만, 천라지망은 무너지지 않았다.
살수들이 대열을 정비하며 다음 공격을 준비하였다.
‘지금이다!’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살수들이 대장의 명령에 따라 쇠사슬을 힘껏 잡아당겼다.
양쪽에서 잡아당기자 나무에 묶여 있던 쇠사슬이 팽팽하게 펴졌다.
‘저건?!’
쇠사슬을 본 공손무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쇠사슬을 이용해 날 말 위에서 끌어내릴 생각이구나!’
공손무는 재빨리 말의 고삐를 잡아당겨 다시 한번 허공으로 도약하게 했다.
“이히히힝!”
‘이 녀석이 갑자기 왜 이래?’
하지만 이번에는 말이 말을 듣지 않고 괴로운 듯 몸부림을 쳤다.
옆에 있던 학통이 눈을 가늘게 뜨며 어둠 속을 노려보았다.
-누군가 네 말에 장난을 치고 있는 모양이구나.
‘장난이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 옛날 북방의 몽고족에게는 말을 극도로 흥분시키는 뿔피리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인간의 귀에 전혀 들리지 않지만, 말에게는 마치 비명처럼 끔찍한 소리가 들린다지.
말을 버리지 않는 이상, 지금으로서는 맞설 방법이 없는 상황.
“젠장!”
공손무는 억지로 말을 이끌어 이곳을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퍼어억-!
‘크윽! 걸린 건가?’
앞쪽에 준비되어 있던 또 다른 쇠사슬 함정에 결국 말의 다리가 걸리고 말았다.
“이히히힝!”
애처로운 울음소리와 함께 말이 넘어지자 공손무는 안장을 벅차고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지금이다!’
빈틈을 본 살수들이 어둠 속에서 튀어나와 그를 덮쳤다.
절체절명의 상황.
공손무는 몸을 틀며 재빨리 내공을 끌어 올렸다.
매서운 열풍과 함께 검붉은 예기를 품은 단검들이 그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단검들의 속도가 빨랐지만, 공손무는 뭐든지 빨리 배우고 익히는 속학을 가진 몸.
한 차례 경험한 암기들의 움직임을 놓칠 리 없었다.
‘일검풍룡(一劍風龍).’
범상치 않은 기운이 주변을 휩쓸더니 이내 거대한 소용돌이가 되어 공손무의 전신을 휘감았다.
단검들이 소용돌이와 충돌하자 귀를 찌르는 굉음이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정말 제법이군. 고작 열다섯 살의 나이에 이 정도의 성취를 이루었을 줄이야. 하지만 아무리 실력이 좋더라도 천라지망을 깨지는 못할 것이다!’
살수들이 내공을 끌어 올리자 단검들이 소용돌이를 조금씩 뚫고 들어갔다.
‘됐어! 이제 조금만 있으면 놈의 숨통을 끊을 수 있을 것이야!’
팽팽했던 힘의 균형이 깨지고, 살수들 쪽으로 승기가 기울기 시작했다.
이대로 간다면 공손무는 쓰디쓴 패배를 맛볼 게 뻔했다.
날카로운 예기를 품은 단검들이 공손무의 전신을 뒤덮으려는 순간.
우웅-!
정체불명의 진동과 함께 단검을 휘감고 있던 기운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살수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말도 안 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살수들은 재빨리 내공을 더 불어넣었지만, 단검의 기운은 계속 약해져만 갔다.
공력이 빠르게 사라지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단검을 거두어야 했다.
‘우리의 힘을 흡수했어?’
놀랍게도 공손무가 일으킨 소용돌이는 단순히 공격을 막는 용도가 아니었다.
공격한 상대방의 내공을 빼앗아 더 큰 힘으로 역공을 가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일검풍룡의 진짜 힘이었다.
살수들이 뒤로 물러나자 소용돌이 안에 있던 공손무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일검풍룡은 구천멸풍검법의 하위 방어 초식이다. 방어 초식이긴 하나 보통의 것과는 다르게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
살수들의 기운을 흡수한 소용돌이가 작아지더니 공손무의 전신 대신 그의 검을 휘감았다.
‘나 공손무가 고작 이런 곳에서 발목을 잡힐 수는 없지!’
공손무가 안광을 번뜩이며 검을 세차게 내리쳤다.
검붉은 소용돌이가 굉음을 내며 지면을 갈랐다.
“이런……!”
위기를 느낀 살수들은 재빨리 단검에 공력을 둘러 방어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파도처럼 밀려오는 공력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살수들이 미끄러지듯 뒤로 밀리더니, 이내 뒤쪽에 있는 나무와 바위와 충돌하였다.
폭음이 잦아들고 뿌연 연기가 사방을 뒤덮었다.
내공을 갈무리한 공손무가 연기를 뚫고 앞으로 걸어갔다.
어둠 속에서 튀어나왔던 살수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피를 흘리며 죽어 가고 있었다.
“젠장.”
살수들이 모두 죽었건만, 무슨 일인지 공손무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공자님, 어서 피하셔야 합니다.”
뒤쪽에 있던 척유불 또한 마찬가지였다.
“놈들이 펼친 천라지망이 설마 이 정도로 촘촘했을 줄이야. 약점을 찾지 못했다면 지금 죽어 있는 건 저놈들이 아닌 우리였겠어.”
“예, 정말 무시무시한 천라지망입니다.”
공손무는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자신에게 덤빈 살수들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을.
더 무시무시한 실력을 지닌 살수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약점이라고 찾은 곳이 이럴진대, 정면 승부를 했다면 얼마 가지 않아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크하하핫!”
아니나 다를까, 그들이 움직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광포한 웃음소리와 함께 검붉은 피풍의를 입은 살수들이 나타나 앞을 가로막았다.
“우리가 펼친 천라지망을 빠져나가려나 본데. 포기해라. 아무리 발버둥 쳐 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너희는 이미 우리에게 완전히 포위되었으니까.”
“베도 끝이 없는 게 마치 쥐새끼들 같구나.”
“뭐, 뭐라?”
“너희들은 누구냐. 아무리 살수라도 이름 정도는 가지고 있을 것 아니냐.”
“흥! 건방진 놈. 우린 살왕님의 직속 정예부대인 적살대(赤煞隊)다.”
적살대!
공손무는 그 이름을 잘 알고 있었다.
‘한 번 맡은 의뢰는 절대 실패하지 않고, 한 번 점찍은 먹잇감은 절대 놓치지 않는 살왕의 비밀 병기! 요녕상방이 설마 적살대까지 고용했을 줄이야.’
공손무의 표정이 굳어지자 살수들이 기세등등해졌다.
“네 녀석의 머리와 반지를 가져가면 요녕상방에서 거액을 주기로 했거든. 미안하지만, 네 녀석의 목숨과 반지를 가져가겠다.”
말을 끝낸 살수가 손을 위아래로 빠르게 움직여 풍차처럼 휘둘렀다.
동시에 내공을 끌어 올리자 검푸른 물결이 양손 사이에서 넘실거렸다.
“하아앗!”
살수가 손을 앞으로 뻗자 검푸른 기운이 굉음을 내며 공손무를 향해 날아갔다.
강력한 장력이 돌풍을 일으키며 날아오자 공손무의 눈이 커졌다.
‘천근 바위도 가루로 만드는 내 장법을 맛보아라! 제아무리 공손세가의 막내 공자라 할지라도 내 장법 앞에서는 뼈도 못 추릴 것이다!’
콰가가강-!
귀를 찌르는 굉음과 함께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뿌연 먼지가 주변을 뒤덮자 살수들이 키득거리며 말했다.
“크큭. 드디어 끝났군.”
“놈의 시체와 반지를 가지고 어서 가시죠.”
“그래야지.”
살수들이 공손무와 척유불의 시체를 가지러 연기를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순간.
쿠구구구-!
지면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기운이 연기 너머에서 뿜어져 나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살수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갑자기 어디서 이런 기운이?’
이윽고 무엇을 보았는지 살수들이 하나같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입을 벌렸다.
“마, 말도 안 돼! 내 장법을 맞고 살아 있다니!”
놀랍게도 공손무와 척유불은 멀쩡한 모습으로 연기 속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공손무가 안광을 번뜩이며 자세를 다잡았다.
“감히 나에게 장법을 날리다니. 네 녀석만큼은 절대 용서하지 못한다.”
쉬이익-!
공손무가 파공성을 일으키며 살수들에게 달려들었다.
날카로운 예기를 띤 칼날이 허공을 가르며 살수의 목을 노렸다.
‘크윽! 이대로 당할 수는 없다!’
살수는 재빨리 몸을 돌려 공손무의 검격을 피했다.
아슬아슬하게 칼날이 스쳐 지나가자 살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됐다. 이제 반격을 하면!’
살수가 단검으로 반격하려는 순간.
쐐애애액-!
‘어라?’
그는 단검을 휘두를 수 없었다.
양손이 절단되어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