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을 읽는 막내 공자 118화 (118/200)

<검을 읽는 막내 공자 118화>

118화. 뜻밖의 인연(4)

소방주의 전각에서 나온 대총관 가불곤은 곧바로 측근들을 소집하였다.

요녕상방의 실세들이 모여 가불곤에게 고개를 숙였다.

“부르셨습니까.”

“너희들에게 시킬 일이 있다.”

“말씀만 하십시오.”

가불곤이 자신의 메기수염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물었다.

“소방주를 데리고 왔다는 놈들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측근 중 나이가 지긋한 중년인이 앞으로 나서며 답했다.

“지금 접객당에 있다고 합니다.”

“접객당?”

“예, 소방주의 명령으로 그곳에서 연회를 즐기고 있습니다.”

“하아! 누구는 속이 시꺼멓게 타는데 누구는 팔자 좋게 연회라.”

어처구니없다는 듯 코웃음을 친 가불곤이 이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측근에게 속삭였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한 치의 실수도 없이 행해야 할 것이야.”

가불곤은 측근의 귀에다 뭐라고 귓속말을 했다.

무슨 말을 들었는지 중년인의 입꼬리가 점점 올라갔다.

이윽고 그가 웃으며 답했다.

“후훗. 정말 탁월한 생각이십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지금 즉시 가서 호위무사들을 집결시키도록 해라.”

“존명!”

중년인이 자리를 뜨자 이번에는 노파가 다가왔다.

시녀들의 우두머리인 시녀장이었다.

“소방주는 어떻게 할까요? 저대로 그냥 계속 놔둬도 되겠습니까?”

“아직은 쓸모가 있으니까 죽여서는 안 돼. 계속 감시만 해라. 그 녀석을 이용해 잡음 없이 상방을 장악한 다음, 쓸모가 없어지면 그때 죽일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가불곤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후훗.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나 가불곤의 시대가 오는 날이.”

그리고 잠시 후.

가불곤의 명령을 받은 무사들이 접객당에 도착했다.

거한이 접객당 앞을 지키고 있는 문지기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놈들은 안에 있겠지?”

“예! 대주님!”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술을 먹고 곯아떨어졌습니다.”

“크큭. 그래? 계획대로 되었구나.”

가불곤은 공손무와 척유불이 먹는 음식과 술에 잠에 빠지는 약을 섞으라고 명령했다.

약에 취한 공손무와 척유불은 곯아떨어진 상태.

그 틈을 타 두 사람을 죽인 후 반지를 빼앗을 생각이었다.

“그럼 어디 들어가 볼까.”

거한이 문을 열고 접객당 안으로 들어갔다.

‘크큭. 정신없이 자고 있구나.’

문지기의 말대로 공손무와 척유불은 코를 골며 잠을 자고 있었다.

잠을 자는 것을 한 번 더 확인한 거한이 부하들을 향해 전음을 보냈다.

‘놈들을 둘러싸라. 만에 하나라도 도망을 치면 곤란해지니까.’

‘예! 대주님!’

무사들이 공손무와 척유불의 주위를 겹겹이 에워쌌다.

‘내가 신호를 하면 놈들을 공격해라. 단칼에 끝내야 할 것이야.’

‘알겠습니다.’

퇴로를 차단한 거한이 안광을 번뜩이며 팔을 내렸다.

공격하라는 신호였다.

“하앗!”

신호를 본 무사들이 동시에 검을 내리쳤다.

수많은 칼날이 공손무와 척유불의 급소를 향했다.

푹 하는 소리와 함께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무사들이 두 사람의 죽음을 확인하자, 거한은 다가가 그들의 옷을 뒤졌다.

‘으음?’

그런데 무슨 일인지 거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없어?’

땅바닥에 널브러진 다른 옷가지들과 봇짐까지 모두 샅샅이 뒤졌지만, 그들이 찾는 물건은 나오지 않았다.

“젠장! 이 녀석들, 금룡 반지를 대체 어디에 숨긴 거지? 얘들아! 주변을 샅샅이 뒤져 봐라! 놈들이 취하여 반지를 흘렸었을 수도 있으니까.”

“예! 대주님!”

무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반지를 찾기 시작했다.

‘어라?’

그런데 이때, 책상 밑을 뒤지던 시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누군가의 인기척이 등 뒤에서 느껴진 것이다.

‘뭐지?’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돌린 그녀는 뭔가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꺄아악!”

비명과 함께 그녀가 의식을 잃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갑작스러운 비명에 무사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쏠렸다.

“무슨 일이야?”

“왜 저러는 거지?”

무사들이 시비의 상태를 확인했다.

거한이 눈살을 찌푸리며 그들에게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냐?”

“아무래도 기절한 것 같습니다.”

“기절? 아니 왜?”

“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소리를 꽥 지르더니 쓰러졌습니다.”

“아주 지랄 났네. 지랄 났어. 신경 쓰지 말고 어서 반지나 찾아!”

“예! 알겠습니다!”

거한은 고개를 돌려 시체 쪽을 보았다.

공손무와 척유불은 조금 전과 같이 피를 잔뜩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

‘시체를 보고 충격을 받아 쓰러진 것 같지는 않고. 그럼 대체 왜 기절한 거지?’

하지만 딱히 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의문을 뒤로한 채 거한 또한 반지 수색을 재개했다.

그런데 잠시 후.

‘으음?’

등 뒤에서 이상한 기척이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가 보는 듯한.

이상한 느낌에 거한이 고개를 돌렸다.

“헉!”

무엇을 보았는지 그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뭘 그리 놀래?”

“마, 말도 안 돼! 네가 어떻게?!”

놀랍게도 공손무가 미소를 지은 채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네 녀석이 어떻게 살아 있는 것이냐!”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뭘 그리 찾고 있는 거야? 아, 설마 이걸 찾고 있는 건가?”

공손무가 미소를 지으며 품에서 반지를 꺼냈다.

무사들이 찾는 금룡 반지였다.

“역시 네놈이 가지고 있었구나!”

“미안하지만 이건 이제 내 것이야. 너희 도련님이 여기까지 데려와 준 보상으로 나에게 넘겨준 거라고.”

“헛소리 하지 말아라! 그건 우리 요녕상방의 신물! 너 따위 것에게 넘겨줄 수 없다!”

“너 따위? 허허. 이것 참.”

공손무가 안광을 번뜩이며 내공을 끌어 올렸다.

쿠구구구-!

거대한 기운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감각에 무사들이 깜짝 놀라며 뒷걸음질을 쳤다.

“이, 이 녀석이?”

두르륵-!

이때 누군가가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대총관님!”

대총관 가불곤이었다.

바깥에서 대기하다가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호위 부대를 이끌고 들어온 것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그, 그것이…….”

거한이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뭐? 죽었는데 살아났다고? 그게 지금 말이 되는 소리냐?”

“분명히 죽었습니다! 제 부하들이 똑똑히 보았다고요!”

무사들이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가불곤이 눈을 가늘게 뜨며 공손무에게 소리쳤다.

“대체 무슨 사술을 부린 것이냐!”

“사술? 미안하지만 이건 사술이 아니다.”

“사술이 아니라면 대체 뭐란 말이냐! 너와 네 부하의 목이 잘리는 걸 똑똑히 보았다고 한다. 피가 튀는 것까지 보았는데 어떻게 살아 있는 것이야!”

“내가 멀쩡한 건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당하지 않았으니까. 너희들은 내가 사용한 진법에 속은 거다.”

“뭐? 진법?”

공손무는 그의 눈앞에다 비단 주머니를 흔들어 보였다.

“그래. 이 진창석으로 만든 환영팔괘진(幻影八卦陣)에 속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인진과 달리 기문진을 설치하려면 사전에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한다.

따라서 실전보다는 중요한 장소를 지키거나 함정을 팔 때 주로 사용되었다.

진창석을 이용하면 이런 기문진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었다.

공손무가 경악을 금치 못하는 무사들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다 끝났다. 너희들의 패배다.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해라.”

“흥! 멍청한 놈! 주위를 둘러보아라! 이곳은 내 부하들로 겹겹이 둘러싸여 있다. 고작 두 명 주제에 누굴 겁박하는 것이냐!”

가불곤이 손가락으로 공손무가 들고 있는 반지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당장 그 반지를 내놓아라! 그건 우리 상방의 신물이니라!”

“거참, 이런 코딱지만 한 게 보물이라니. 요녕상방이 그 정도로 궁핍했나?”

“뭐, 뭐라고! 네 이놈! 감히 본방을 모욕하다니! 아무리 공손세가의 막내 공자라고 하더라도 용서할 수 없다! 모두 뭣들 하느냐! 어서 저 녀석을 잡아 내 앞에 무릎을 꿇려라!”

무사들이 안광을 번뜩이며 공손무를 향해 달려들었다.

척유불이 나서려고 하자 공손무가 그에게 전음을 보냈다.

‘내가 저들을 상대하지.’

‘예! 공자님!’

공손무가 검을 고쳐 잡더니 곧바로 수직으로 내리쳤다.

‘일검백도(一劍白道).’

검을 세운 듯 하늘로 쭉 뻗은 백색의 검기가 지면을 가르며 나아갔다.

“거, 검기다! 놈이 검기를 사용했다! 어서 검진을 펼쳐라!”

무사들이 검기를 막기 위해 내공을 끌어 올리며 검진을 만들었다.

“우리 요녕상방은 절대 지지 않는다! 제아무리 공손세가의 직계라고 할지라도 본방의 검진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내공을 잔뜩 머금은 수십 개의 칼날이 앞으로 날아갔다.

이내 검기와 충돌하면서 시뻘건 불똥과 함께 귀를 찌르는 파열음이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압력에 거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크윽! 이 압박감은 뭐지? 이게 정말 저 녀석의 힘이라고?’

쉽게 튕겨 낼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공손무의 검기는 상상 이상으로 무겁고 날카로웠다.

지금 만든 검진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더는 버틸 수가……!’

파도처럼 밀려오는 공력을 견디지 못하고 검진이 두 갈래로 쪼개져 버렸다.

공기가 찢기는 소리와 함께 백색의 검기가 무사들의 몸을 갈랐다.

“끄아악!”

검기를 맞은 무사들이 피를 흘리며 땅바닥에 쓰러졌다.

부하들이 순식간에 죽어 버리자 가불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마, 말도 안 돼! 내 부하들이!”

혼란을 틈타 공손무가 가불곤의 뒤쪽으로 이동한 척유불에게 반지를 던졌다.

“척 대주!”

“예! 알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고 있다는 듯 그가 안광을 번뜩이며 검을 휘둘렀다.

파천광류검법의 상위 초식을 사용하자 눈부신 섬광과 함께 벽과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굉음이 울려 퍼지고 뿌연 먼지기둥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콜록! 콜록! 대총관님! 괜찮으십니까!”

“크윽. 나, 나는 괜찮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건물이 무너지면서 목재와 돌무더기가 대총관을 덮쳤지만, 부하들의 발 빠른 대처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어서 놈들을 찾아라! 이 주변에 있을 것이다!”

“예! 대총관님!”

쿠구구구-!

무사들이 주변을 수색하려는 순간, 갑자기 지면이 울리고 공기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저, 저기에 놈들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공손무가 안광을 번뜩이며 내공을 끌어 올리고 있었다.

“어서 놈을 막아라! 내공을 사용하지 못하게 막아!”

하지만 무사들은 공손무의 곁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척유불이 파천광류검법을 사용하여 그들의 팔을 잘랐기 때문이었다.

“크아악!”

요녕상방의 무사들이 쓰러지자 공손무가 하얀 숨을 내뱉으며 초식을 전개했다.

‘일검광류(一劍光流).’

안광을 번뜩이며 검을 내지르자 공기가 진동하고 땅이 울렸다.

엄청난 위력에 살아남은 무사들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대총관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 몸이 떨릴 정도라니!’

이윽고 바람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내공으로 이루어진 수십 개의 칼날이 거센 물결처럼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콰가강-!

내공으로 만들어진 칼날이 접객당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그것도 모자라 뒤쪽에 있던 다른 건물들 또한 형체도 없이 날려 버렸다.

피와 연기가 사방을 뒤덮으며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 벌어졌다.

‘척 대주, 지금일세. 어서 여기서 벗어나세.’

‘존명!’

혼란스러운 틈을 타 공손무는 척유불과 함께 그 자리를 벗어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