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을 읽는 막내 공자 116화>
116화. 뜻밖의 인연(2)
복면인이 공손무의 등 뒤를 노리고 있었다.
위기의 순간.
하지만 공손무는 이미 그들의 움직임을 일고 있었다.
학통이 안광을 번뜩이며 백우선으로 복면인을 가리켰다.
-뒤를 조심해라!
‘예! 저도 알고 있습니다!’
공손무가 안광을 번뜩이며 내공을 끌어 올렸다.
그러고는 곧바로 비강검법의 초식을 전개했다.
‘비강회월(飛姜回月).’
검을 몇 바퀴 휘두르자 초승달을 닮은 검기가 회전하며 앞으로 날아갔다.
검기를 본 복면인의 눈이 커졌다.
‘검기라니! 저 어린 나이에 벌써 절정에 이르렀단 말인가!’
콰아앙-!
검기와 충돌하자 굉음과 함께 먼지 기둥이 솟아올랐다.
검기를 맞은 복면인들이 피를 흘리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중상을 입어 신음을 흘렸다.
공손무가 살아남은 한 명에게 검을 겨누며 말했다.
“너희들은 누구냐! 소속을 밝혀라!”
“크윽!”
하지만 복면인은 죽는 그 상황에도 자신의 소속을 밝히지 않았다.
그저 한 곳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을 뿐.
‘누구를 보는 거지?’
공손무는 고개를 돌렸다.
복면인이 응시하는 곳은 아이가 있는 곳이었다.
‘설마 저 아이를 노리고?’
“커억!”
이윽고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복면인은 숨을 거두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척유불이 다급히 달려오며 물었다.
“공자님! 괜찮으십니까!”
쓰러진 복면인을 살펴보던 공손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난 괜찮네.”
“다친 데는 없으십니까?”
“멀쩡하니까 걱정하지 말게.”
척유불이 심각한 표정으로 복면인들을 내려다보았다.
“이 녀석들은……?”
“심문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해. 이 녀석들은 북마교의 살수들이 아니야. 마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이런 벽진 곳에서 활동하는 살수 놈들이라니. 어디 소속인지 짐작조차 힘듭니다.”
“정순한 기운이 아닌 거로 보아 사파 소속 놈들인 것 같긴 한데. 정확히 어디인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군.”
척유불이 복면인들의 품을 뒤지며 물었다.
“이 녀석들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요? 공자님의 목숨?”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이유였지만, 공손무는 고개를 내저었다.
“내 목숨을 노리는 자들은 아닌 것 같네.”
“그럼 공자님을 공격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 생각에는…….”
그의 시선이 옆쪽으로 향했다.
“저 아이를 노린 것 같네.”
“예? 그게 정말입니까?”
“확실한 건 아니지만, 내 느낌에는 그래.”
\척유불은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답이 나오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아이의 정체가 뭐길래 살수들이 쫓는 걸까요?”
“그거야 나도 모르지. 깨어나면 녀석에게 자초지종을 물을 수밖에.”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으음……?”
누워 있던 아이가 신음을 흘리며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눈을 뜨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 여기가 어디지?”
혼란스러운 상황.
두려움을 느낀 아이가 창백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이때 뒤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심해라. 널 해치려는 사람은 여기에 없으니까.”
고개를 돌리자 누군가가 천천히 걸어오는 게 보였다.
“누구십니까?”
“나는 공손세가의 사람이다.”
그의 말에 아이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고, 공손세가요?!”
“그렇다. 왜 그렇게 놀라는 것이냐?”
잠시 머뭇거리던 아이가 이내 표정을 고치며 말을 이었다.
“공손세가는 천하제일검가 아닙니까. 이런 곳에서 그런 대단한 분을 만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제 옷은 어디에 있습니까?”
공손무가 물기가 마른 옷을 집어 들어 아이에게 건넸다.
“여기 있다.”
“앗! 감사합니다!”
아이가 옷을 입자 공손무가 손짓을 하며 말했다.
“네 옷 안에 있는 건 하나도 손을 대지 않았다. 몸이 회복대면 네 갈 길을 가거라.”
하지만 그의 말에도 아이는 답을 하지 않았다.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냐?”
잠시 고민하던 아이가 이내 품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공손무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반지?’
아이가 손바닥 위에 올려 내민 것.
그건 다름 아닌 작은 금반지였다.
“이걸 드리겠습니다.”
“보답 같은 건 필요 없다. 그냥 가져가거라.”
“보답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뭐?”
순간 아이의 눈빛이 깊어졌다.
“대협과 거래를 하고 싶습니다.”
뜻밖의 말에 공손무의 눈빛 또한 깊어졌다.
“거래라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이건 집안의 가보처럼 여기는 소중한 물건입니다. 이걸 드릴 테니, 저를 천량현까지 데려가 주십시오.”
“천량현?”
천량현은 요녕성에 있는 마을의 이름이었다.
“예, 저는 천량현에 가야 하는데, 보셨다시피 괴한들에게 쫓기고 있는 상황입니다. 저 혼자 가다가는 언제 죽을지 모르지요. 하지만 천하제일검가인 공손세가의 대협께서 도와주신다면 저는 무사히 천량현에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제발 제 부탁을 들어 주십시오. 도착하면 이것보다 훨씬 더 큰 보상을 얻게 되실 겁니다.”
공손무는 반지를 살펴보았다.
순금으로 만들어졌고 이상한 문양이 새겨져 있는 것만 빼면 특별하게 없는 반지였다.
금으로 만든 반지는 값이 많이 나가지만, 공손무가 목숨을 걸어 가면서까지 취할 물건은 결코 아니었다.
중요한 건 금반지가 아닌 아이의 목적이었다.
그가 아이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천량현에는 왜 가려는 거지?’
천량현은 선산으로 가는 길에 있다.
멀리 돌아가는 길도 아니니 아이와 함께 가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름이 무엇이냐.”
잠시 머뭇거리던 아이가 이내 나직한 어조로 답했다.
“저는 소휘라고 합니다.”
“천량현에는 무슨 이유로 가는 것이냐?”
“죄송하지만, 그건 밝힐 수 없습니다. 부디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옆에 있던 척유불이 전음을 보냈다.
‘공자님, 뭔가 수상합니다.’
‘수상하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목적을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뭔가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괜히 골치 아픈 일에 엮었다가는 선산으로 가는 길이 순탄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옆에 있던 학통 또한 그와 같은 생각인 것 같았다.
-저 녀석의 말이 맞는 것 같다. 넌 할 만큼 하였어. 신분이 불분명한 녀석을 데리고 다니는 건 너무 위험한 짓이야. 저 아이를 노리는 집단이 너를 적으로 돌릴 수도 있으니까.
혈혼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괜히 고집부리지 말고 저 녀석과는 어서 헤어지는 게 좋겠어.
하지만 모두가 반대하는데도 공손무의 생각은 달랐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다. 부탁을 들어주마.”
“정말입니까?”
“그래. 하지만 조건을 바꾼다.”
조건을 바꾼다는 말에 소휘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조건을 바꾼다니, 어떻게 말입니까?”
“일단 지금부터 무조건 우리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조금이라도 어긴다면 그 즉시 각자의 길을 갈 것이다. 알겠느냐?”
소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공손무가 마른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널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면 또 다른 보상을 줄 거라고 했지?”
“예, 어르신들이 꼭 사례를 할 겁니다.”
“돈 몇 푼으로는 우리 공손세가를 이용할 수 없다. 내 소원을 하나 들어다오.”
“소원이요?”
“그래. 어렵겠니?”
잠시 고민하던 소휘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요. 전 재산을 달라는 뭐 그런 소원만 아니면 들어주실 겁니다.”
“나는 그런 파렴치한 사람이 아니다. 어찌 됐든 이걸로 거래 성립이군.”
척유불이 전음으로 다시금 반대의 뜻을 전했다.
하지만 공손무는 단호한 눈빛을 보냈다.
‘이미 결정될 일일세.’
‘하지만 공자님!’
‘따로 생각이 있어서 그러니 내 말에 따라 주게.’
공손무가 거듭 믿어 달라고 하자, 척유불도 더는 말릴 수 없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학통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구나. 저 녀석을 왜 데리고 가는 것이냐? 단순한 동정은 아닌 것 같다만.
혈혼 또한 마찬가지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 뭐 잘못 먹은 거야? 왜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
하지만 공손무는 대답 대신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내 예상대로라면 이 녀석은…….’
* * *
공손무 일행이 떠나고 얼마 뒤.
피풍의를 입은 정체불명의 사내들이 타 버리고 남은 장작들 주위로 한둘씩 모여들었다.
선두에 있던 자가 바닥의 흔적을 살피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흐음.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군.”
이윽고 두 명의 무사가 다가오더니 한쪽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당주님, 강가에서 저희 측 정찰대원들의 사체를 발견하였습니다.”
“하루가 지나도 돌아오지 않더니, 결국 죽은 것이었나. 시체를 수습하여 양지바른 곳에 묻어 주어라.”
“존명!”
부하들이 자리를 뜨자 명령을 내린 사내가 피풍의의 모자를 벗었다.
“애송이 한 놈 때문에 이게 대체 무슨 생고생인지.”
놀랍게도 사내의 정체는 적안혈수(赤眼血手) 팽을광이었다.
그는 과거 공손무와 함께 천룡표국의 국주를 궁지로 몰아넣은 적이 있었다.
또한 련주의 아들을 죽여 부련주의 자리에 오르려는 야심가였다.
그가 혀를 차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역시 이 정도로는 죽일 수 없는 건가. 안 본 사이에 실력이 더 늘어는 것 같군.”
옆에 있던 복면인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맞장구를 쳤다.
“공손세가의 막내 공자아 이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니. 소문이 과장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봅니다.”
“내가 만나 봤다 하지 않았느냐. 하지만 내가 온 이상, 제아무리 녀석이라고 해도 별수 없지. 적당한 기회를 봐서 총공격을 퍼부어 놈에게서 그 아이를 빼앗는다.”
놀랍게도 팽을광의 목표는 소휘였다.
“존명!”
부하들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이자 팽을광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곧 만나게 되겠구나. 공손무.’
한편 그 시각, 공손무는…….
“여기야?”
“예, 여기가 바로 저희 집입니다.”
부지런히 걸음을 옮긴 공손무 일행은 하루 만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들의 눈에 고래등같이 큰 거대한 장원이 보였다.
장원 대문의 현판에는 요녕상방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현판을 확인한 척유불이 놀란 표정을 소리쳤다.
“요녕상방? 설마 너, 요녕상방의 자제였냐?”
여기까지 왔으니 더 숨길 것도 없다는 듯, 소휘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예, 저는 요녕상방의 후계자입니다.”
요녕상방은 요녕성에서 제일 잘 나가는 상방으로, 공손세가와도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 곳이었다.
척유불이 고개를 돌려 공손무에게 전음을 날렸다.
‘도련님, 설마 그걸 노리신 겁니까?’
‘정답이네. 현재 우리 파벌에는 자금이 더 필요해. 저 녀석은 우리 파벌의 소중한 자금줄이 될 것이야.’
공손무는 소휘를 이용하여 요녕상방을 자신의 파벌로 끌어들일 생각이었다.
‘대체 어떻게 그가 요녕상방의 자제란 걸 아신 겁니까?’
‘입고 있는 옷과 귀중품으로 보아 명문가 자제임은 틀림없을 터. 그런데 저 녀석이 천량현에 데려다 달라고 하지 않았는가. 천량현에 있는 명문가는 요녕상방밖에 없어. 그래서 생각했지. 소휘를 이용해 내 파벌의 힘을 키우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