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 남천상국으로 가다
끄으으응.
사내가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번뜩.
갑자기 눈을 뜬 그가 눈동자를 굴렸다.
‘여기는…… 어디지?’
눈앞이 이상했다.
누군가의 발이 위에 보였다.
‘거꾸로?’
어딘가에 발이 매달려 있는 게 분명했다.
움직이려고 했지만 손은 뒤로 묶여 있었다.
하지만 이것보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내력을 일으켜 보았지만 힘이 나오지 않았다.
단전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허억?! 없어. 단전이…… 사라졌어!’
무인에게 단전은 생명과도 같았다.
스윽.
누군가 가까이 다가오는 소리를 들었다.
휘익.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들리고.
머리를 제외한 전신을 타구봉으로 두들겨 맞기 시작했다.
“아아악!”
퍽퍽퍽.
비명 소리가 울렸지만 구타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커억.”
정신없이 맞은 뒤 다시 기절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끄으으응.
사내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아…… 아…….’
온몸이 찌근거리며 쑤시기 시작했다.
그들끼리 나누는 대화가 들려왔다.
“어라…… 깨어났구나.”
“그래? 우리가 누구냐?”
“개방의 제자잖아요.”
“우리가 익힌 봉법은?”
“타구봉법입니다.”
“그럼 개 패듯이 해야겠지?”
부우우웅-!
타구봉이 다시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퍽퍽퍽퍽!
“아아아악!! 이 미친 거지 놈들이……!!”
사내는 비명을 지르며 다시 정신을 잃었다.
끄으으응.
사내는 또다시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소리를 내지 않고 눈도 뜨지 않았다.
구타자들은 하지만 그가 일어난 것을 귀신같이 알아차렸다.
“어쭈. 조용히 한다고 우리가 모를 거라 생각한 모양인가 보네?”
“그러게요. 다시 패죠.”
퍽퍽퍽퍽퍽!
타구봉이 날아오면서 또다시 죽지 않을 정도로 구타가 시작되었다.
“커어어억.”
사내는 죽고 싶어도 죽지 못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깨어나면 맞고, 맞으면 기절하고, 기절한 뒤 깨어나면 다시 맞는 것뿐.
무한의 반복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봐야 가르쳐 주든지 말든지 할 것인데.
그들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더구나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더 이상 맞기 싫었다.
아니, 이 상황이 싫었다.
스윽.
사내는 다가오는 기척을 보면서 몸이 움찔거렸다.
“소속과 이름.”
“사주천의 백마살입니다. 이름은 정소동입니다.”
그는 태어난 뒤 가장 빠르게 반응을 보이며 대답했다.
모든 것을 가르쳐 주고 죽는 게 더 나았다.
“몇 가지 질문을 하겠어요. 모르는 일이라면 바로 모르겠다고 말을 하세요. 그러면 안 맞습니다. 알겠나요?”
“넵. 알겠습니다.”
“창천주가 정말로 창천을 폭발시킨 게 맞나요?”
남하림이 궁금한 것들 중 가장 알고 싶었던 문제였다.
“네에…… 그가 창천을 무너지도록 했습니다.”
“얼마나 대단하기에 그 넓은 곳이 무너졌지요?”
“창천지를 둘러싼 지형 위에 창천궁을 짓기 전 계획을 세웠습니다.
지하에 유황이 많은 곳을 고른 뒤 언제라도 유황이 올라올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절벽에는 수만 근의 화약을 넣고 난 뒤 잘 무너지도록 만들었습니다.”
‘하아…….’
남하림은 어이가 없었다.
“처음부터 계획을 세웠단 말이군요.”
“네, 그렇습니다. 사주천의 수장께 들은 내용입니다. 절대로 거짓이 아닙니다.”
“…….”
정소동은 갑자기 질문이 멈추자 두려움이 밀려왔다.
스으윽.
매달려 있던 줄이 풀어지면서 바닥으로 몸이 내려왔다.
“…….”
뒤로 손이 묶여 있었지만, 그는 발이 자유롭게 되자 몸을 일으켰다.
“앉으세요. 대답을 잘해줘서 풀어주는 것입니다.”
“고…… 고맙습니다.”
정소동은 바닥에 앉으며 주위를 둘려 보았다.
다섯 명의 사내들과 시선이 마주쳤다.
“다음 질문을 할 겁니다.”
“말씀하시지요.”
“그는 지금 어디에 있지요?”
“형산에 있습니다.”
“호남에 있는 형산을 말하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오래전부터 형산에 옮길 준비를 해놓았습니다.”
“형산이라면 큰 지역인데 어디에 그가 있지요?”
“화엄호에 있습니다.”
“…….”
남하림은 눈동자가 흔들리면서 잠시 말을 멈추었다.
질문을 하는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화엄호에 그가 있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더 이상 물을 말은 없소이다. 돌아가도 좋소.”
“정…… 말…… 입니까?”
정소동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더듬거렸다.
툭.
그의 팔에 묶인 줄을 풀어주었다.
“단전은 어쩔 수 없소. 당신은 그곳으로 돌아가든 말든 알아서 하시오.”
“…….”
정소동은 물러나면서도 뒤에서 죽이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저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내가 불었다는 사실을 모를 거야.’
그는 창천으로 돌아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 * *
제령운화는 침상에 누운 채 가만히 움직이지 않았다.
남하림은 창천주에 의해 파괴가 된 그녀의 단전 위에 손바닥을 올려놓았다.
양천의 무단기는 상대의 내력을 사라지게 하고, 무용하게 만들 수 있지만 반대로 단전에 새롭게 불어 넣을 수도 있었다.
우우우웅-
남하림의 손바닥에서 황금빛이 솟구치며 그녀의 원단으로 조금씩 흘려 내려갔다.
산산조각 났던 그녀의 단전 조각들이 황금빛에 의해, 살아남았던 원단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스으으응-
그녀의 원단이 황금빛을 내면서 흩어졌던 단전의 내력들을 조금씩 끌어당겼다.
우우웅-
남하림이 내력을 진하게 전하면서 황금빛도 점점 강해졌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원단도 단단해지며 단전의 모양으로 만들어져 갔다.
스으윽-
남하림은 손바닥을 그녀의 단전에서 거두어들었다.
“다행이네요. 단전이 살아났어요.”
“고…… 마워.”
침상에 누워 있던 그녀는 우는 듯 목소리가 갈라졌다.
“일어나지 마세요. 잠시 누운 채로 계셔야 합니다. 며칠 지나면 괜찮을 테니 당분간은 운기를 안 하시는 게 좋겠어요.”
“알겠어. 진짜 고마워.”
“편히 쉬고 계세요. 우린 밖에 있을 테니 혹시나 필요한 게 있으면 부르시고요.”
“고마워…… 정말…….”
“아니에요. 우리가 고맙죠.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알았잖아요.”
타악.
남하림은 밖으로 나온 뒤 문을 닫았다.
기다리고 있던 네 명이 동시에 일어났다.
“성공한 모양인가 보네.”
“다행히 원단이 강해서 단전을 복원했어.”
“다행이다.”
“그렇지.”
“나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
“알겠어.”
남하림은 객실 밖으로 나갔다.
휘이이잉-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많은 생각들이 지나갔다.
스윽.
남하림이 뒤를 돌아섰다.
“휘연 형…….”
“무슨 일이지??”
“…….”
이휘연은 물론 다른 네 사람 또한 분명 남하림에게 선뜻 말 못 할 일이 있음을 알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우리에게 비밀이 없었잖아.”
“맞아요.”
“지금은?”
“지금은…….”
스윽.
이휘연은 남하림의 어깨를 가볍게 잡았다.
“화엄호가 뭐지?”
“형, 남천상국 선조들의 위패가 모신 장소가 화엄호에 있어요.”
“…….”
이휘연도 마찬가지였다.
충격을 받은 듯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잠시 말이 없었다.
이휘연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우연의 일치가 아닐까?”
“아니…… 아닙니다. 창천주가 모를 리 없어요. 수년 전부터 그곳에 새로운 창천을 세웠다고 했어요. 그때는 우리와 싸우기 전이에요. 난 개방에 가기 전에도 그곳에서 공사를 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가보자. 가서 살펴보면 되잖아?”
“형, 이번 일은 저 혼자 가겠어요.”
“하림. 안 된다. 혼자서는 위험해.”
“부탁할게요.”
“…….”
결국 이휘연은 그의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한 가지 약속만 지켜준다면 혼자 보내주겠다.”
“네. 그게 뭔가요?”
“꼭 살아서 돌아와라.”
“……형, 제가 항상 이야기했죠. 좋은 세상 일찍 죽지 않을 거라고. 호주머니에 있는 돈 전부 다 쓰고 죽겠다고. 그리고 전 걸황이잖아요.”
“하하, 맞다. 넌 걸황이다. 중원무림총맹주가 바로 남하림이지.”
덥석.
이휘연은 남하림을 강하게 안았다.
“기다리고 있겠다. 최대한 빨리 돌아오면 좋겠구나.”
“그렇게 할게요. 신무맹에 돌아가거든 그녀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잘 말해주세요.”
“그렇게 하마.”
“나중에 보죠.”
휘이이익!
남하림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이휘연 곁으로 세 사람이 다가섰다.
“휘연 형, 괜찮을 겁니다. 우리 부장이잖아요. 우주제일인을 어떻게 할 수 있는 인물은 없어요.”
“철각 형 말이 맞아요. 하림 형은 강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몸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하림 형이잖아요.”
“맞습니다. 부장은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다구요. 그리고 방금 말하지 않았습니까? 나중에 보자고.”
성철각과 팽유도, 당무독이 한마디씩 하며 남하림이 사라진 방향을 한동안 지켜보았다.
* * *
창천의 소문은 중원을 진동시켰다.
창천지의 대폭발에 의해 수만 명이 한꺼번에 몰살당한 사건이 하나도 빠짐없이 상세하게 퍼져 나갔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속에서 무의를 입은 청년은 조용히 음식을 먹었다.
남천상국의 본국.
장사현은 수많은 장사꾼들로 수많은 객잔들은 항상 복잡했다.
이 층 창가에 앉아서 소강이 내려다보이는 정면에 세워진 거대한 상국이 보였다.
남하림은 하루 전날 마을에 도착한 후 객잔에서 보냈다.
남천상국으로 들어가기에 아직 마음의 정리가 되지 않았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창천주와 남천상국의 관계.
공신과 남천상국의 관계.
양천의 전인 상무우 사부와 남천상국의 관계.
이 모든 것들이 인위적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궁금했다.
타아악!
식탁을 내리치는 소리였다.
가슴에 명(鳴)의 글씨가 새겨져 있는 표사복을 입은 사내였다.
‘산명(山鳴)상단 사람이군.’
남천상국의 하청으로 장사와 표국업과 함께 겸하는 중견 상단이었다.
주로 광동성의 일을 맡아서 처리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오?”
“딴 짓을 하는 것을 보니 전부 먹은 듯해서…….”
남하림은 객잔을 둘러보았다.
손님들이 많아 비어 있는 자리가 없었다.
“그렇군요. 앉으시면 됩니다.”
남하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
산명상단의 표사 안적은 뒤에 서 있는 여인의 눈치를 보았다.
상단주의 여식으로 평소에 그녀를 사모했다.
사내다움을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그는 기회라고 여겼다.
“뭐야, 저 녀석. 쳇.”
안적은 인상을 펴며 그녀에게 자리에 앉도록 했다.
“영 소저, 앉으시지요.”
“저어…… 방금 저분께 실례가 된 게 아닌가 모르겠어요.”
“괜찮습니다. 어차피 식사를 다 했다고 했습니다.”
“거의 드시지 않은 듯한데…….”
그녀의 말처럼 탁자에는 거의 손도 대지 않을 정도로 음식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우리가 잘못한 것 같네요. 그분께…….”
“아닙니다. 그냥 간 것을 보면 입맛이 없는 모양입니다.”
“…….”
그녀는 얼굴을 굳힌 채로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앉았다.
‘아…… 괜히 그 녀석 때문에 무례한 놈으로 인식됐잖아. 괜히 점수를 잃었어!’
남하림은 객잔 아래로 내려온 뒤 마을을 거닐었다.
변한 건 없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과 장사꾼들이 물건을 사고팔고 있었다.
무작정 시장을 거닐었다.
그들 사이에 간간이 거지들까지 바닥에 앉아 있었다.
“후후후.”
거지도 종류가 많음을 이제는 잘 알았다.
‘저자는…….’
한눈에 봐도 세상에 둘도 없는 거지의 모양새.
하지만 그의 두터운 손등 위엔 타구봉을 내리친 수련을 한 흔적이 있었다.
‘여기에도…… 세상에 없는 곳이 없군.’
스윽.
남하림은 자연스럽게 그의 곁에 쪼그리고 앉았다.
“잘됩니까?”
스윽.
거지는 고개를 돌리며 말끔하게 생긴 청년을 보았다.
“거지가 무슨 장사를 한다고 잘될 게 있습니까요?”
“거기 통 안에 든 게 뭡니까?”
“뭐긴 뭐요. 동전 한두 개 있겠지요.”
“그런가요? 내가 보기에는 아닌 것 같은데.”
“이 양반이……무슨 말을?”
거지는 통을 들여다보았다.
“…….”
황금빛이 나는 동전이 하나 들어 있었다.
“뭐 하는 사람이오?”
스윽.
남하림의 허리춤 안에서 목패를 슬쩍 보여주었다.
개방신패 남하림.
황금색 풋대자루 모양의 매듭이 보였다.
‘하나…… 둘…… 일곱…… 여덟…… 헉…… 그렇다면…….’
“내가 잠시 일이 있어 집에 왔어요.”
“아…… 아…… 하.”
걸황 남하림이 자신 옆에서 함께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걸…….”
“쉿. 내가 왜 이런 옷을 입고 왔겠어요.”
“아…… 하, 죄송합니다.”
“어떻게 부를까요?”
“평군이라 부르시면 됩니다.”
“여기 분타주는 어디에 있지요?”
“마죽거리에 있습니다.”
“내가 왔다는 일은 절대로 알려지면 안 됩니다. 신무맹도 모르고 개방도 모르는 일입니다.”
끄덕.
평군은 비밀로 한다는 말에 고개만 움직였다.
“후후후. 대답은 해도 됩니다.”
“아…… 네에…… 죄송합니다.”
“내일 찾아갈 테니 분타주께 언질을 해주세요.”
“넵. 당장 가서…….”
“평군, 이번 일은 무림을 위한 일입니다.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건 분타로 가는 길에 회식이라도 하세요.”
남하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에게 관심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을 만큼 자연스러웠다.
남하림은 시장을 나온 뒤 남천상국으로 향했다.
모든 생각을 정리했다.
‘난…… 개방의 걸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