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8. 제령운화를 만나다
‘드디어 도착인가.’
이곳에서 새롭게 시작할 것이다.
용문자는 창천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멈춰 섰다.
창천문은 하나밖에 없다.
창천은 사방으로 절벽들이 둘러싼 커다란 분지 안에 세워져 있었다.
창천문의 안에서 입구를 지킨다면 절대로 외부의 적들이 침범할 수 없는 천혜의 요새.
‘역시…… 없군.’
창천 안에서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예상대로 그는 창천에서 나갔다.
“도망을 갔어.”
용문자의 옆으로 궁문자가 나왔다.
창천주에 대한 두려움.
그는 긴장한 채 창천으로 돌아왔지만, 막상 창천주가 보이지 않자 자신감이 생겼다.
‘아무리 강한다고 한들 우리 모두를 상대해서 이길 수는 없지. 괜히 겁을 냈군.’
“제가 앞장을 서겠습니다.”
두려움이 사라진 궁문자는 앞으로 나서며 창천으로 가장 먼저 들어갔다.
그 뒤로 창천의 인물들이 따랐다.
창천은 고요함이 흐르고 있었다.
저벅저벅.
안으로 들어서는 발소리만이 울렸다.
텅 빈 창천궁이 눈앞에 나타났다.
용문자의 곁으로 조경노가 다가섰다.
“천주님, 이제부터 새롭게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한데, 창천궁으로 가까워지면서 점점 강한 냄새가 올라오는 듯했다.
입구에서부터 맡았은 냄새였지만 다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무슨 냄새지?’
그들 주위에서도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 사람이 하나둘 나타났다..
“이건…… 유황……?”
“…….”
그리고, 사방에 유황 냄새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조경노가 노여움에 소리쳤다.
“이 미친놈이!!”
예전에 지나가는 말투로 이곳에 유황을 심어놓았다고 했다.
적이 쳐들어올 때를 대비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창천에 적이 쳐들어올 일은 없었기에 지나쳤다.
‘농담인 줄 알았건만!’
수만의 생명.
그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하든 우리들을 죽이려고 했군! 당장 나가야 해!”
그저 가지고 놀다가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장난감일 뿐.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앙!
창천의 입구에서부터 폭발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창천문을 노린 것이다.
두두두두두-
우우우우웅.
그리고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찌지지직.
마치 지진이 일어난 듯 바닥이 갈라지고 있었다.
퍼어어엉!
퍼어어어엉!
그 사이에서 유황의 연기가 솟아나며 불꽃이 일어나 퍼져 나갔다.
연이어 절벽이 무너지는 듯한 폭발음이 사방에서 일어났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앙!
땅이 꺼지고 절벽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허어…… 어떻게…… 이런 짓을…….’
창천주는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하늘을 날지 않는 한 여기서 살아나갈 수 없다.
두두두두-
머리 위로 수많은 바위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결국 용문자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걸황, 부디 우리의 원수를 갚아주게. 자네와 함께 술 한잔을 나누고자 했는데…….’
그리고,
콰아아아아앙!!
용문자는 세상이 검은 연기에 잠기는 것을 보았다.
* * *
남하림은 신무맹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이제 마지막 하나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용문자가 있으니, 이것도 어쩌면 자연스럽게 정리될 수도 있었다.
마교도 신강으로 돌아갔고 사무련도 원래의 자리로 움직였다.
신무맹에 모였던 정파 소속의 각파의 무인들도 돌아갔다.
평화로운 시간일 정도로 한가했다.
남하림이 신무맹에서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잡다한 일들은 내원에서 모두 처리했으니까.
사제인 네 명도 마찬가지.
아침이 되면 그들은 맹주전으로 자연스럽게 모였다.
다섯 명에 이어 무림삼노인 탈혼마제, 만통자, 장두철도 합류했다.
탈혼마제는 천마 초강유와 함께 마교에 돌아가지 않았다.
마교에 가봤자 재미도 없고 맛있는 음식도 없다면서 신무맹에서 원하는 대로 먹겠다고 선언했다.
더구나 자신을 따르는 두 명의 아우들도 있었다.
며칠 뒤, 은하궁에서 지내던 예설란도 함께했다.
유미령의 곁에서 도움을 주기 위함이었다.
이제 맹주전은 맹주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지만, 딱히 함께하는 일은 없었다.
서로가 편한 대로 자리에 앉아서 자거나 바둑을 두었다.
스윽.
성철각은 흑돌을 바둑판 위에 슬그머니 올려놓았다.
“여기에 놓으면 되나요?”
따악.
탈혼마제는 고개를 숙인 채 바둑판을 보는 성철각의 머리를 때렸다.
“이놈아, 내가 몇 번을 말했느냐? 상대의 수를 미리 읽고 난 뒤 돌을 놓으라고 하지 않았느냐?”
“아하…… 그럼 여기에?”
성철각은 내려놓았던 흑돌을 집으려고 했다.
따악.
또 한 번 소리가 성철각의 이마에서 울렸다.
“네놈은 싸움할 때 잘못했다고 물릴 수 있다고 보느냐?”
“죄…… 송합니다.”
타아악.
탈혼마제는 백돌을 놓은 뒤 큰 소리로 소리쳤다.
“이 한 수에 네놈의 집이 박살이 나지 않았느냐?”
“아…… 그렇구나. 마노께서는 바둑을 정말 잘 두시네요.”
“클클클! 내가 조금 두는 편이긴 하지.”
꼬르륵.
탈혼마제는 고개를 삐쭉 내밀며 맹주전 안을 보았다.
“흐으음. 밥 때가 된 것 같은데…….”
“일형, 그러게 말입니다. 오늘은 무슨 음식이 나올지…….”
만통자도 고개를 같은 방향으로 돌린 채 입맛을 다셨다.
스윽.
그때, 맹주전으로 들어서는 기척이 들리며, 내원 수장 진후도인이 찾아왔다.
‘흐으음.’
그의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참 진귀했다.
‘몇 번을 봐도 적응이 안 되는구나.’
무림 최고의 인물들이 아무렇게나 앉아 각자 다른 모습들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이휘연이 먼저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
“쉬고 있었는가?”
진후도인은 먼저 세 명의 노인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우리는 신경 쓰지 말고 볼일 보게나.”
“알겠습니다.”
그의 곁으로 남하림이 다가왔다.
“표정을 보아하니 좋지 않는 소식인 모양입니다.”
“맹주, 방금 창천을 감시하던 걸비에게서 소식이 왔네.”
진후도인의 목소리가 무거웠다.
“창천에 문제가 생겼습니까?”
“창천이 무너졌다고 했네.”
뚝.
정원의 모든 움직임들이 순간 멈췄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무너졌다는 게?”
“창천의 지형이 폭발했다고 했네. 하나도 남김없이 무너진 듯하네.”
“아…… 설마 창천주란 인간이…… 전부 매장을 시켰다는 것입니까?”
“확인은 못했다고 하지만 아마도…… 그런 것 같네.”
남하림은 가슴이 철렁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그곳에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맹주께서?”
“직접 확인을 해야겠습니다.”
창천의 수만 명을 그대로 매몰시켰다는 충격적인 말이었다.
세상에 어떠한 곳도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그놈을 죽이지 않으면 정말로 큰일 날 것 같군.”
“일형, 그러게 말입니다. 그는 제정신이 아닙니다.”
“사람이 순리에 맞게 살아야 정상인 것을…… 이미 사람이 아닌 모양이로다.”
* * *
남하림은 가슴이 답답했다.
용문자와 나누었던 약속이 기억났다.
걸비들의 소식이 연이어 신무맹에 전해졌다.
창천을 둘러싼 사방이 무너지고, 바닥까지 무너지면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했다.
그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남하림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우선 사람들을 보내 무너진 곳에서 살아 있는 사람들을 찾고자 했다.
그리고 곧바로 다섯 명과 함께 창천으로 향해 출발했다.
그들은 한시라도 잠을 잘 수 없었다.
거의 잠도 자지 못하고 달린 덕분인지, 절반의 시간을 줄인 뒤 창천에 도착했다.
완전히 무너진 현장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무너진 현장을 치우는 일은 단기간에 끝을 낼 수 없었다.
“대체 어떻게 했기에 여기가 무너진 거야.”
“사방으로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어. 하루 이틀에 끝낼 일이 아니야. 수십 년 동안 꾸준히 공사를 했던 게 틀림없어.”
“이미 수십 년 전에 모두 죽일 계획을 쩐 거라고? 그가 키운 수하들이잖아.”
남하림은 굳은 표정으로 한마디 말도 없이 현장을 두리번거렸다.
혹시나 하는 기대에 무너진 잔해 속에서 주변을 살폈지만, 사람의 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전혀 없어.’
남하림은 힘없이 무너진 바위에 앉았다.
용문자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무림에 나올 것이라 좋아했었다.
“잘 가시오. 그대의 원수는 꼭 갚아주겠소이다.”
고개를 숙인 남하림의 눈에서 침울함이 떨어졌다.
한편에선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창천이 무너진 현장을 보는 여인이 있었다.
일각 전에 나타난 다섯 명의 사내들.
‘저들은…….’
눈에 익은 모습들.
그녀는 다섯 명의 청년들이 일황사제임을 바로 알아보았다.
반가운 마음에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녀는 절뚝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이 있는 방향으로 걸었다.
남하림이 힘없이 앉아 있었다.
“하림 형!”
건너편에서 팽유도의 목소리가 들렸다.
팽유도와 함께 힘겹게 걸어오는 여인.
벌떡.
제령운화가 틀림없었다.
심한 부상을 당한 듯 걸음이 부자연스러웠다.
휘익.
남하림은 그녀의 곁에 다가섰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괜찮아. 단전이…… 부서진 것 말고는 조금 지나면 나을 거야.”
그녀의 손을 얼른 잡았다.
남하림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단전이 완전히 부서졌어. 그래도 다행히 원전은 살아 있다.’
“난 괜찮아. 죽을 정도는 아니거든.”
“누가 이렇게 했습니까?”
“창천주. 그래도 다행히 죽지는 않았잖아.”
“제가 단전을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말이라도 고마워.”
제령운화도 깨진 단전에 대해서 잘 알았다.
뼈가 부서진 경우 시간이 지나면 낫는다.
하지만 단전은 뼈가 아니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제가 고칠 수 있습니다.”
남하림의 표정은 거짓이 아닌 듯했다.
“그럼…… 난 좋지.”
그녀의 눈동자는 슬픔에 잠겨 있었다.
“여기에 창천의 많은 사람들이 묻혀 있어.”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그녀의 기억 속에서 지나갔다.
남하림은 힘겨워하는 그녀를 부축했다.
“제가 꼭 그를 잡아서 책임을 묻도록 하겠어요.”
“수하들이 그의 뒤를 따라갔어.”
“정말입니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만간 돌아올 때가 됐어.”
“잘됐네요.”
* * *
그녀와 함께 객잔에 들어선 지 반시진이 지날 즈음.
창천주의 뒤를 미행했던 수하가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혈흔이 그의 몸에 퍼져 있었다.
“커어억.”
제대로 말도 하지 못했다.
당무독은 얼른 그의 입에 환단을 넣었다.
숨이 끊어질 듯했던 그가 마지막으로 기운을 차리며 그녀를 불렀다.
“화…… 문자님.”
“두공, 정신 차려.”
“모두…… 모두가 죽었습니다. 그는…… 형…… 산에…… 있습니다.”
투욱.
사내의 숨이 끊어졌다.
그는 죽음으로 임무를 완수했다.
사내의 죽음에 마지막 수하까지 모두 잃은 제령운화.
남하림의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는 무림을 위해 최선을 했습니다.”
“흑흑흑.”
그녀는 울음을 참으며 흐느꼈다.
울음은 그가 죽을 때까지 참기로 했으니까.
그때,
스스스스-
백무가 주위에서 피어올랐다.
“크크크. 역시 한 놈을 살려두니 화문자를 잡게 되는군.”
휘이익!
이휘연이 백무를 향해 태극흑검을 그었다.
스걱.
백무가 정확히 일직선으로 나누어졌다.
“네…… 놈은 누구냐?”
뚝뚝.
백무 속에서 붉은 피가 아래로 떨어졌다.
“검제.”
“…….”
백무가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퍼져 나갔다.
“검제. 역시 검이 날카롭군. 처음에는 몰라서 당했지만 지금부터서는 다르다.”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좋을 것 같군. 내가 못 볼 줄 알겠지만 어디에 있는지 전부 보인다.”
“……설마…… 내가 속을 줄 아느냐?”
“믿고 안 믿고는 네놈이 알아서 하겠지.”
“…….”
휘리리리릭!
백무가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사람 말을 안 믿는군.”
핏핏핏핏.
이휘연이 백무를 향해 태극흑검을 앞으로 찔렀다.
카아아아앙!
백무 속에서 검을 막아내는 소리가 들렸다.
‘……이 녀석. 정말로 말처럼 내가 어디 있는지 정확히 보고 있다.’
무턱대고 공격을 하는 게 아니었다.
태극흑검을 쳐내며 뒤로 물러났다.
순간 고민이 되었다.
물러나야 할까. 아니면 계속 싸워야 하는가.
“이들이 사주천의 인물이야! 백무가 사라지기 전에 빨리 잡아야 해!”
“그런가요?”
당무독이 나서는 동시에 소매에서 비침이 쏟아져 나갔다.
팟팟팟팟팟팟.
비침이 백무 안으로 사라졌다.
“욱.”
짧은 비명 소리가 울렸다.
그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일황사제가 무섭다고 해도 백무살을 뚫지 못할 것이라 확신했었다.
완전한 착각이자 오산이었다.
이들에게 백무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챠르르르-
온몸을 싸늘하게 만드는 괴음.
‘이건 뭐지?’
터어어엉.
고개를 돌리는 순간, 눈앞에 번쩍이면서 폭광이 터진 줄 알았다.
피이이이잉!
몸이 수차례 돌면서 바닥에 넘어졌다.
백무가 사라지자, 객실 바닥에 사내의 본 모습이 드러났다.
“안녕하시오.”
황금 걸복을 입은 청년.
가까이 다가온 남하림과 시선이 마주쳤다.
“물어볼 게 많은데. 일단 도망 못 가게 맞고 시작하죠.”
퍼어어억!
남하림은 그의 얼굴을 가격했다.
단 한 방에 그는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