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 창천으로
남하림은 천천히 움직였다.
‘잘됐어.’
무림의 일은 거의 정리가 된 듯싶었다.
용문자가 원하는 것은 무림에 정식으로 나오는 것.
창천의 등장.
무림의 입장에서 반가운 일은 아니었다.
마교에 버금가는 거대한 세력.
그럼에도 그들이 지하에 숨어서 무림을 노리는 것보다 지상 밖으로 나온 것이 나은 일이었다.
반대할 것 같았던 정파에서는 오히려 아무 말이 없었다.
신무맹이 계속 유지되기 위해서는 사무련보다 강한 창천이 더 낫다는 명분이었다.
창천이 사라진다면. 걸황과 관련이 깊은 사무련과 마교는 무림에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런 상황이 지속되면, 신무맹의 존재감은 갈수록 희미해질 수 있었다.
가장 좋은 평화는 팽팽한 긴장감이 어느 정도 동반될 때였다.
창천과 공존하겠다는 걸황 남하림의 의견에 무림은 찬성했다.
서로서로 이익을 나누면서, 총무림연합과 창천의 격전이 마무리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죽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날 저녁 용문자를 만났지만, 사실 완전히 신뢰하지 않았었다.
그를 완전히 믿게 된 것은 그와 헤어진 후 제령운화가 보낸 인물이 가지고 온 서신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서신에는 창천원동이란 동굴에서 창천주를 확인했다고 쓰여 있었다.
남하림은 그녀의 신상에 대해서 물었지만, 전령은 바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사내의 무답에 이상이 생겼음을 안 남하림은 지니고 있던 취구단을 전령에게 전해주며 숨어 있도록 전했다.
남아 있는 창천의 일은 용문자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아직 그곳에 남아 있을 창천주의 힘은 미지수다.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용문자가 맡겨달라고 부탁했다.
그들도 방법이 없을 때, 그때 염치없지만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면서.
‘뭐, 염치가 없긴 하지. 하다가 안 되면 우리에게 맡기겠다니.’
어느 정도 이해는 되었다.
용문자는 새로운 천주로 추대를 받았다.
천주가 된 그가 해야 할 일은 하나.
전대 창천주를 제거하는 것이다.
그가 마무리를 지어야 할 일은 새로운 시작이었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저 멀리서 일행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후후후후.”
그가 천하지에서 내려오기를 기다리던 사람들.
시작과 끝을 함께했던 동료들이자 가족들이었다.
파앗!
남하림은 두 팔을 벌렸다.
“아하하! 이제 집에 가서 쉴까요?”
* * *
“허허. 이거 참.”
천하지에서 일어난 상황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
법혼대주와 사주.
창천주의 앞에 두 명의 인물이 부복해 있었다.
“그놈들이 여기로 오는 중이라 했는가?”
“그렇습니다.”
“키우던 개새끼에게 물렸군.”
“창천주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법혼자들이라면 배신자들의 목을 벨 수 있습니다.”
“법혼대주, 그들을 무시하지 말게. 창천십문의 인물들이야.”
“그들이 아무리 십문의 인물이라 해도 법혼자들이 펼치는 제혼술법을 막아내지는 못합니다.”
척!
이번에는 사주가 나섰다.
“창천주님, 법혼대도 있긴 하지만 배신자들은 사주천의 백무살(白霧殺)을 피할 수 없습니다. 명을 내리신다면 당장에라도 배신자들의 목을 잘라올 수 있습니다.”
“글쎄. 자네들이 장담은 하지만 보통 놈들이 아니라서, 하나 굳이 자네들이 나서보겠다면 말리지는 않겠네.”
“법혼대에서 좋은 소식을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법혼대에서 계속 자신 있다고 하니 이번 일은 법혼대주가 맡아서 정리했으면 좋겠군.”
“감사합니다. 절대로 실망을 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법혼대주는 바닥까지 머리를 숙인 후 일어났다.
사주는 밖으로 나간 법혼대주를 끝까지 보았다
‘멍청한 인물이야.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군.’
법혼대가 대단한 것은 사실이다.
저들은 창천십문에서도 강자들이 속한 집단이었다.
“사주, 어떻게 생각하지?”
“법혼대는 실패할 것입니다.”
“왜지?”
“그들은 오직 제혼술법만 믿고 있습니다. 용문자는 대혼술법을 펼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대혼술법의 불완전성을 이미 스스로 수정한 상태입니다.”
“자네 말이 맞아. 그리고 조경노, 그놈이 곁에 있지.”
사주는 정확하게 상황을 읽었다.
법혼자가 자신 있게 나선 이유는 제혼술법 때문이었다.
“법혼대가 당한다고 했으니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말해야겠군. 계획이 없지는 않겠지?”
“이곳을 버리고 새로운 창천궁으로 가시면 됩니다. 이미 오 년 전에 모든 건물들이 완성되었습니다.”
“크크크. 사주, 우리끼리 가는 것은 너무 허전하지 않는가?”
“시간은 영원합니다. 조금씩 채우시다 보면 지금처럼 모여 있을 것입니다.”
“큭, 그렇긴 하나 저놈들도 대혼술법을 펼쳤으니 살아 있을 게 아닌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법혼대가 실패하면 사주천에서 곧바로 나설 것입니다.”
“오호, 사주천에서 나선다면 믿을 수 있겠지. 자네는 마음만 먹는다면 본인도 죽일 수 있지 않을까?”
“…….”
사주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말이 없는 것을 보니 내 말에 긍정한다는 뜻인가?”
“아닙니다. 소신이 어떻게……!”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사실대로 말하게. 사주천의 진정한 목적에 대해서.”
사주의 눈빛이 흔들거렸다.
‘모를 것이라 여겼거늘. 전부 알고 있었단 말이군.’
창천주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제천마신궁의 그가 생각이 나는데.”
“…….”
“정말 강했지. 구천의 전인들이 그를 상대로 싸워 겨우 이겼으니까.”
창천주의 입에서 무림인들은 알지 못하는 비사가 흘러나왔다.
사주는 긴장했는지 침을 삼켰다.
“난 상관하지 않으니 편안하게 있게.”
“언제 아셨습니까?”
“흐음…… 사주천에서 한 명씩 구천의 전인들을 죽이고자 할 때 알게 되었지. 제천마신궁의 살수단 사주천이 움직이면 특이한 백무향이 나지 않는가.”
“그걸 알면서 왜 지금까지 가만히 있었습니까?”
“나를 죽이려고 하지 않았으니까. 다른 이유는 없다.”
“…….”
창천주가 다시 물었다.
“왜 지금까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지?”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창천주님께 대혼술법을 익힌 뒤, 당시의 수하들은 모두 죽고 홀로 긴 세월을 보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 집착할 필요가 있을까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그렇군. 자네가 생각을 바꿨다고 하니 앞으로 잘 때 걱정이 없겠군.”
“죄송합니다. 미리 말씀을 드려야 했습니다.”
“되었다. 이제는 내 곁에 자네만 있지 않는가. 물론 현 상황이 나쁜 건 아니지. 언제 가는 것이 좋을까.”
“창천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가시면 됩니다.”
“지금이라도 가면 되겠군.”
“알겠습니다. 여기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터뜨려 흔적을 없애라. 이럴 때 사용하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결과는 똑같군.”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크하하하! 재미있겠어. 나중에 불구경이나 하지.”
창천주는 목청껏 대소를 터뜨렸다.
* * *
스스스스-
법혼대주는 어둠을 틈타 군막으로 들어섰다.
간이 침상에 누워 있는 인물을 노려보았다.
‘아직 모르고 있군. 대단한 녀석인 줄 알았는데…….’
침상에 누워 있는 인물은 용문자.
‘조용히 죽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그의 소매 안에서 독침기가 빠져나왔다.
핏핏핏.
침상을 겨누는 동시에 독침이 쏟아져 나갔다.
침상위에 수십 발의 독침이 꽂혔다.
하지만 방금 전까지만 해도 침상위에 있던 용문자의 신형이 보이지 않았다.
‘사라…… 졌다?’
타앗!
법혼대주는 그와 동시에 군막 밖으로 튀어나갔다.
스걱.
날카로운 검기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법혼대주는 재빨리 허리를 뒤로 접으며 검기를 피하면서 물러났다.
“용문자!”
“누군가 했더니 법혼대주군. 천하의 법혼대주가 도둑놈이라니 웃기지 않소?”
“이 변절자 놈들.”
“변절자라…… 그자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우린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 그대도 잘 알고 있을 텐데.”
“시끄럽다. 네놈은 내 손에 죽을 것이다.”
“당신, 착각하는 것 같군. 난 대혼술법을 익힌 적이 없다.”
“모르고 있는 건 네놈이다. 제혼술법이 극에 이르면 대혼술법을 익히지 않은 정상적인 혼도 제압할 수 있다.”
“오호, 그런 능력이 있었소이까?”
용문자의 비꼬는 말투에 법혼대주의 표정이 굳어졌다.
“내 말이 장난처럼 들리는 모양이지?”
“기분이 나쁜 모양이구려. 얼마나 대단한 술법인지 상대해 보고 싶소이다.”
“이놈…… 후회하지 마라!”
잉잉잉잉잉-
법혼대주가 제혼술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용문자는 움직이지 않고 그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았다.
강한 이명음이 용문자의 눈과 귀를 비집고 들어갔다.
‘제혼술법에 한 번 빠지면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 이건 네놈이 보인 자만의 결과이니 원망 말거라!’
용문자의 정신을 조만간 그의 손에 들어올 것이다.
곧 제혼술법의 이명음이 사라지면서 용문자의 눈빛이 투명하게 변해갔다.
‘성공이다.’
용문자의 정신을 완벽하게 제압했다.
“이놈, 바닥에 엎드린 후 머리를 내밀어라.”
용문자가 앞으로 다가오며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엎드려야 했는데.
뚝.
용문자는 허리를 숙인 상태에서 어떠한 행동도 없이 그대로 멈췄다.
“똑바로 하지 못할까? 엎드린 뒤 목을 내밀어라!”
법혼대주는 소리를 질렀다.
“하하하. 어이가 없군.”
분명 성공했다고 확신했었다.
“……!”
용문자가 허리를 폈다.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제혼…… 술법에 걸리지 않았느냐?”
“애들 같은 짓에 잠깐 장난으로 놀아줬을 뿐이다.”
“…….”
“분명 말했을 텐데. 그런 유치한 짓에는 걸리지 않는다고 말이지.”
퍼어어엉!
콰아아앙!
진영의 군막들 사이에서 굉음이 터졌다.
우르르르르-
밖으로 도망치듯 나온 법혼자들.
상대의 반격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법혼자들은 중앙으로 포위된 채 빠져나갈 기회를 찾고 있었다.
“음…… 보아하니 한 명도 성공하지 못한 것 같군.”
이미 망신은 당하고도 남았다.
제혼술법이 통하지 않으면 그들과 싸울 힘이 없었다.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창천십문의 수장들을 상대했던 법혼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대혼술법을 펼친 그들에게 제혼술법을 펼쳤지만 실패했다.
용문자는 처음부터 총무림연합을 치기 위한 무리에 법혼대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중간에 몰래 빠져나간 게 확실했다.
창천주의 명 없이 움직이지 않는 법혼대가 독자적으로 사라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법혼대는 다른 인물에게 명을 받고 있는 것이다.
법혼자가 두려운 이유는 제혼술법 때문이다.
다행히 제혼술법의 파훼법이 있음을 법혼대는 몰랐다.
조경노에게 제혼술법을 막을 수 있는 무음금청법(無音禁聽法)을 익혔다.
‘여기를 빠져나가야 한다.’
법혼대주는 주위를 살폈다.
문제는 어떻게 이들의 포위를 풀고 도망갈 수 있느냐다.
“지금 도망갈 생각이라면 포기하는 게 좋을 것이다.”
처억.
법혼대주는 허리에 달린 주머니에서 연무탄을 꺼냈다.
“이거나 먹어라.”
휘익!
바닥으로 떨어지는 연무탄.
스르르르-
용문자의 신형이 미끄러워진 얼음판에 지나가는 듯 움직였다.
타앗!
그러고는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연무탄을 하늘 위로 강하게 찼다.
슈우우우욱.
공중으로 솟구친 연무탄이 강한 소리를 내며 터졌다.
콰아아앙!!
그들 머리 위로 백색의 연기가 휘날렸다.
‘젠장…….’
연무탄마저 실패를 하자 그는 바닥에 부복했다.
“용문자님, 제가 여기에 온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요?”
“소인도 새로운 삶을…….”
“그만. 그대의 말을 더 이상 듣기 싫다.”
법혼대는 광문자를 죽인 원수였다.
절대로 살려줄 수 없었다.
휘익.
용문자는 손을 들어 기를 뻗어냈다.
일지선.
법혼대주의 이마에 구멍이 나며 단숨에 목숨이 끊어졌다.
그와 동시에 포위된 법혼자들의 목이 달아났다.
신문자가 다가왔다.
“천주님, 큰일 날 뻔했습니다. 조경노 님의 도움이 계시지 않으셨다면 당했을 것입니다.”
“법혼자가 사라진 이상 그 외에 적수는 없어 보입니다.”
궁문자의 입가에 미소가 보였다.
“궁문자,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오. 그에게는 백무의 살인자라는 사주천이 남아 있소.”
“사주천도 어차피 살수의 조직입니다. 경계만 똑바로 서면 두렵지 않습니다.”
“그들은 보통의 살수들이 아니네. 그 조차도 두려워한 기억이 나니까.”
“잘못된 기억일 것입니다. 그가 살수를 두려워했다는 게 믿을 수 없습니다.”
궁문자는 모든 것이 자신이 있었다.
‘너무 들떠 있군.’
“그대의 말처럼 내가 잘못 알았으면 좋겠군. 여하튼 조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걸세.”
“알겠습니다.”
궁문자는 자신의 군막으로 물러났다.
여전히 입가에서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용문자를 수장으로 모시는 일은 나쁘지 않았다.
천주가 누구든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지금 그를 대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예전의 창천주 앞에서라면 긴장한 상태로 두려움을 항상 지니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현 용문자의 앞에 서면 두려움은 없었다.
이것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법혼자들이 없는 세상에 우리들을 막을 수 있는 인물은 거의 없다.’
창천주가 없어도 대혼술법을 펼칠 수 있었다.
개벽단은 신문자가 있기에 걱정이 없었다.
시간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예전의 창천주처럼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
단 마음에 걸리는 것은 창천주의 존재였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무조건 그를 죽여야 한다.’
궁문자는 눈에 살기가 뻗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