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 마무리
슈우웅-
일월신인은 동시에 일장을 뻗어냈다.
음양합장공(陰陽合掌功)이 출렁거리며 초강유를 삼키려고 했다.
‘이런, 일월…… 그 뭐시기라는 괴물들이군.’
초강유가 그들의 정체를 짐작하고 웃었다.
“천마파천장.”
초강유는 오히려 즐거웠다.
그들의 일장을 피하지 않고 반격했다.
퍼어어엉!
콰아아아아앙!
음양합장공의 내력은 강했다.
천마신공의 내력을 넘어설 만큼.
주르르르륵.
재빨리 천마호신공을 끌어 올리며 내상을 막아냈다.
“늙은 영감들이…… 강하군.”
“과연 천마라 다르다는 건가. 하지만 변천은 우리의 상대가 안 된다. 왜 그런 줄 아느냐? 우리가 한때 변천의 무적호신공이었기 때문이지.”
“……호오.”
그제야 방금 한 수가 이해되었다.
“익숙한 기운이라고 생각했는데 맞았군. 그러고 보니 잊고 있던 변천의 변절자들이구나.”
“클클클. 우린 오래 살고 싶었을 뿐이다. 대혼술법을 익히면 다른 몸에 들어가지 않아도 꽤나 오래 살 수 있거든.”
“다행히 죽을 자리도 알아서 잘 찾아왔군그래.”
“크크크, 여전히 우리를 죽일 수 있다고 믿는가. 혼자서는 절대 우리를 죽이지 못해.”
“그럼 혼자가 아니라 두 명이면 가능하다는 뜻 같은데?”
휘이익!
“제가 함께 싸워도 되겠습니까?”
초강유의 곁으로 팽유도가 내려섰다.
일월신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들 싸움에 나타난 청년의 손에 들린 도신에서 빛이 났다.
“네놈이…… 도제라는 놈인가?”
“맞소.”
초강유는 일월신인과 맞선 팽유도를 지켜보았다.
예전이었다면 자존심이 상했을 일.
하나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천마라는 자존심을 잠시 뒤에 내려놓아야 할 때였다.
“내가 옆에서 지켜보니 비겁하더군요. 한 명씩 싸우든지 아니면 내가 같이 싸우는 게 맞소이다.”
“…….”
일월신인은 대답하지 못한 채 팽유도를 노려보았다.
“별말 없는 것을 보니 허락한 것으로 알면 되겠군요. 뭐, 굳이 허락까지 구한 건 아니지만.”
찌이이잉-
무극천멸반도법(無極天滅半刀法).
묵흑반도의 도명이 울렸다.
시간이 날 때마다 천멸도법에 무극도신공의 무리까지 익힌 뒤 최종적으로 완성한 도법이었다.
만일 혼자였다면 완성하지 못했을 도법이지만, 남하림과 이휘연이 곁에 있어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갑니다.”
타아앗!
한마디 던진 팽유도가 일월신인을 향해 비취류신법을 펼쳤다.
흔들리는 모습으로 허공을 밟고 뻗어나갔다.
우우우우웅-
그들 사이에 다가선 팽유도가 묵흑반도를 수직으로 내리쳤다.
번쩍!
짧은 반도에서 강한 섬광이 터져 나왔다.
콰아아앙!!
섬광을 동반한 뇌전이 그들 중앙에 떨어졌다.
“일광, 피하라!”
하지만,
타앗!
팽유도가 그들이 물러난 자리에 바로 내려앉으며 일광신에게 곧장 달려들었다.
‘커억, 이 녀석이……!’
퍼어어엉!
일광신이 달려오는 팽유도를 향해 손을 연이어 펼쳤다.
하지만 그의 장법도 팽유도의 묵흑반도를 도중에 멈추지 못했다.
타아아앙!
일광신은 장법을 가볍게 쳐내면서 바짝 다가서는 팽유도를 보며, 짧은 순간 두려움을 느꼈다.
“이놈……! 물러나라!”
호신강기를 일으키며 다가오는 묵흑반도를 막아냈지만.
콰아아앙!
일광신은 가슴에 강한 압박을 받으면서 뒤로 밀려 나가야만 했다.
“허…… 억…….”
팽유도의 공격은 끊이지 않았다.
한 번의 동작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연계.
일월신인의 진정한 힘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해야 더 강력히 발휘되는 것이었다.
일광신은 틈틈이 떨어져 있는 월광신과 합류하고자 기회를 보았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팽유도의 공격을 막아내는 사이, 천마 초강유가 월광신을 향해 공격했다.
쏴아아아아아아-
월광신은 눈앞에 펼쳐진 마기를 향해 월공력을 뿜어냈다.
퍼어어엉!!
“크크크크, 따로 노니 별것도 없군.”
우우우우우-
초강유의 오른손에 검은 마기가 부풀어 올랐다.
천마대멸천(天魔大滅天).
“배신자 영감. 그만 끝을 내볼까? 크하하하하!”
스으으으으응-
소용돌이치는 흑구가 월광신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으으으으으.”
월광신은 신음을 참으며 월공력을 펼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멀리서 일광신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렸다.
“월광! 빨리 피하라!”
월광신도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천마대멸천을 눈앞에 두고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스스스스스-
콰아아아앙!!
월광신을 삼키고 지나간 자리 뒤로 커다란 굉음이 터졌다.
일광신은 당장에라도 달려가려고 했지만, 앞을 막아선 팽유도에 의해 움직일 수 없었다.
“비켜라!!”
그는 다급하게 일공력을 뻗어내며 팽유도에게 달려들었다.
냉정을 잃은 그의 공격은 허점이 많았다.
척!
팽유도는 묵흑반도를 머리 위로 올린 뒤 양손으로 고쳐 잡았다.
무극천멸반도법 일도단천(一刀斷天)의 기세.
초식은 간단했다.
머리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면 될 뿐.
하지만 죽음까지도 각오할 기세로, 오직 한 동작만을 펼쳐야 한다.
무음무행(無音無行).
일광신이 눈앞에서 멈췄다.
그가 펼친 일공력은 무(無)로 돌아갔다.
한 발을 내민 팽유도의 발아래 묵흑반도가 내려와 있었고.
스으으윽.
눈앞에서 멈추었던 일광신의 신형에 붉은 선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쿠우웅.
그리고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일광신의 허무한 죽음.
동시에 월광신 또한 몸이 녹아내리면서 차가운 시신으로 변해갔다.
* * *
챠르르르르-
환보걸선각이 괴음을 내며 눈앞을 지나갔다.
핏핏핏핏핏.
철각반의 사이에서 철비늘이 가늘게 튀어 오르며 잠문자의 가슴을 베었다.
“커억.”
잠문자는 정신이 없었다.
일황사제 중 가장 약할 것이라 알려진 인물이 각제 성철각이었다.
검제의 검과 도제의 도, 그리고 독제의 강력한 독과 달리, 각제는 특색이 없다고 했다.
‘무, 무림은 각제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어.’
각제의 철각반은 검과 도, 독에 비해 절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각제…… 강하군.”
“내가 강한 게 아니라 당신이 약한 것이지요.”
“…….”
성철각의 말은 틀린 게 아니었다.
‘내가 약하다고? 네놈이 너무 강한 것이겠지.’
하지만 성철각의 눈동자는 정말로 약한 자를 보는 듯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이런 멍청한 놈에게 당하다니…… 어이가 없군.’
“당신…… 지금까지 한 번도 져본 적이 없군요.”
“…….”
“전력으로 싸우지 않으면 금방 죽을지도 모릅니다.”
“나…… 를 무시하는 것인가?”
“사실대로 말을 했을 뿐인데…… 성격이 좋지 않네요. 부장이 말하기를, 무공도 성격이 좋아야 잘 받아들인다고 하더이다.”
“그 부장이 누구냐?”
“아…… 부장이라고 하면 모르는구나. 우주고금절대무적제일인 걸황이 우리 부장이외다.”
“…….”
뭔가 모자라는 듯한 말에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우리 부장이 얼마나 똑똑한지 모르지요? 그의 말만 들으면 전부 해결이 됩니다. 당신들은 여기에서 모두 끝이 날 거란 뜻이지요.”
성철각은 오직 남하림만을 믿었다.
그의 말을 따르면 절대로 손해는 보지 않을 것이다.
덕분에 일황사제의 각제로 당당히 이름을 올리지 않았던가.
“우리도 끝을 냅시다. 당신들은 이미 안으로 들어왔소이다.”
“……!”
갑자기 잠문자의 눈이 커지면서 경악으로 물들었다.
‘여기는…….’
언제 무강삼천대진에 들어온 거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포위당했어.”
세 방향으로 흩어진 상태에서 공격하던 창천궁문, 창천동문, 창천잠문이 중앙에서 서로 뭉쳐 있었다.
“끝을 낼까요?”
휘이익!
성철각의 다리가 움직였다.
정신을 차린 잠문자는 뒤로 물러난 뒤 반격을 시도했다.
챠르르르르-
긴 원을 그리는 환보걸선각.
‘우선 사정권에서 벗어나야 해!’
최대한 안정권으로 물러나야만 한다.
하지만,
피이이이잉!
잠문자는 철각반을 둘러싼 철비늘이 하나로 이어져 있을 줄은 알지 못했다.
마치 연검처럼 움직인 철비늘이 물러난 잠문자를 향해 뻗어갔다.
휘리리릭!
철각반에서 뻗어 나온 철비늘이 순간적으로 그의 목을 감았다.
“커어억.”
신음과 함께 빠져나오려는 발버둥이 커졌다.
챠르르르-
스스스슥.
하지만 날카로운 철비늘의 날에 잠문자의 목에 수많은 혈선이 생겼다.
성철각에겐 적당히란 말이 없었다.
투욱.
잠문자의 죽음.
그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죽음을 당했다.
* * *
‘잠문자가……!’
궁문자는 몸이 떨렸다.
총무림연합의 진법에 포위되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흔들리는 눈동자.
‘왜…… 왜……?’
창천주가 이끄는 본진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이 무강삼천대진을 공격하는 동시에, 본진이 들어와야만 했다.
“당황했나? 걸황이 말하더군. 그는 창천주가 아닌 용문자라고.”
“……뭐?”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마음 한편으로는 아닐 거라 생각했던 게 사실이었다.
“용문자에게 배신을……!”
휘익!
그때, 그의 앞으로 황금 걸복을 두른 청년이 내려섰다.
‘걸황!’
궁문자는 남하림의 신형에서 흐르는 기에 서너 걸음 뒤로 물러났다.
“당신들은 용문자에게 배신을 당한 게 아닙니다. 창천주에게 토사구팽을 당한 것이지.”
“그…… 말이…… 무슨 뜻이오?”
“창천주는 무림의 공멸을 원하고 있다는 뜻이외다.”
“고, 공멸이라니…… 대체 무슨 말을. 그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강한 부정을 하는군요. 그대도 느끼고 있었다는 뜻인 듯한데.”
“……!”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 했다.
창천주라면 충분히 실행하고도 남을 인물이라는 것을, 사실 그도 알고 있었다.
“왜…… 우리까지…… 왜?”
“내가 방금 이야기하지 않았소. 토사구팽이라고. 사냥은 할 만큼 했으니 늙고 잔머리 굴리는 개는 사라질 때가 되었던 거지요.”
“…….”
“그에게 개라는 동물은 오로지 사냥감을 물고 오는 것이거든.”
궁문자는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충격에 빠졌다.
수백 년 동안 그를 위해 개같이 충성을 다했다.
이것이 충성을 다한 결과인가?
“창천주는 용문자를 세뇌시킨 뒤 모두를 속이며 창천도 무림과 함께 사라지기를 원했소이다.”
“큭, 크크크크. 크큭.”
궁문자는 괴소가 나왔다.
모든 것들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았다.
본진에 남아 있는 나머지 인물들은 광문자와 화문자, 조경노와 친분이 있었다.
“왜…… 이런 사실을 우리들에게는 미리 알리지 않았지?”
“내가 그 이야기를 해준다고 한들 당신들 세 명이 믿었겠소? 아니면 용문자가 이야기한들 믿었겠소이까?”
“크크크. 맞다. 믿지 않았겠지.”
걸황 남하림의 말이 맞았다.
절대로 믿지 않았을 것이었다.
구원을 나오지 않은 게 이해가 되었다.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소이까?”
“……아니. 죽이면 끝나는 상황에 굳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으니까.”
궁문자뿐 아니라 동문자 역시 남하림의 말을 인정했다.
그들은 허탈했다.
긴 시간 믿고 있던 인물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것에 무너져 내렸다.
궁문자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삼만의 수하들이 죽음 앞에 두려워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도 배신을 당했다는 충격이 더 클 것이다.
“한 가지 묻겠소. 그대들은 창천주에게 복수하고 싶소?”
“……당연한 말을 하지 마시오.”
“그대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소. 그를 만나겠소이까?”
걸황이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기회를 주는 이는 총무림연합의 수장인 걸황이 아닌가?
“기회만 있다면 누군들 만나지 못하겠소이까?”
“알겠소이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남하림의 시선과 마주친 당무독이 공중으로 연막탄을 던졌다.
퍼어어엉!
붉은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 * *
잠시 뒤.
스으으으윽-
무강삼천대진의 무림인들 사이로 두 명의 인물이 다가왔다.
‘창천…… 아니, 용문자와 조경노 님이시다.’
그들을 본 창천의 무인들이 술렁거렸다.
남하림이 다가온 두 사람을 맞이했다.
용문자가 먼저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수고하셨소이다. 이야기는 잘됐소이까?”
“그럭저럭. 나머지는 그대에게 맡기겠소이다.”
“부탁을 들어줘서 고맙소이다.”
“별말씀을. 우리도 더 이상 피를 보지 않고 조용히 끝나는 게 좋지요.”
용문자는 시선을 돌렸다.
굳은 표정의 궁문자와 눈이 마주쳤다.
“이렇게 되어서 미안하게 되었소이다.”
“용문자라고 들었다.”
“잠깐만.”
그때, 조경노가 손을 들며 나섰다.
“죄송하지만 먼저 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용문자에게 고개를 숙인 조경노가 말을 이었다.
“궁문자, 우리의 창천주는 늘 한 분 밖에 계시지 않네. 우리를 죽이려고 했던 그는 창천주가 아닐세. 그대가 보는 분이 우리의 천주님이시다.”
“……!”
조경노의 뜻.
창천주는 창천에 숨어 있는 인물이 아니라, 눈앞에 함께 있는 용문자라고 선언했다.
궁문자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동문자와 시선을 마주치자,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죽음이 두려운 게 아니라 그동안의 신념이 무너진 것이 더 두려웠다.
스윽.
그는 무릎을 꿇었다.
궁문자의 옆으로 동문자도 함께했다.
“천주님, 소신 궁문자 인사드립니다.”
궁문자의 목소리가 울리자, 수만의 창천의 무인들이 하나둘씩 제자리에서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 * *
천하대전의 막이 내렸다.
총무림연합의 승리로 끝이 났지만 아무도 이겼다고 하지 않았다.
의미 없는 싸움.
누군가에 의해 일어난, 서로가 원하지 않은 싸움이었다.
그리고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행히 초반에는 사상자들이 생겼지만, 무림 전체가 움직인 것을 생각하면 적은 피해라 할 수 있었다.
총무림연합은 두 번 다시 모일 수 없겠지만, 그들은 만장일치로 걸황 남하림을 총맹주로서 영원히 기억하기로 했다.
천하지가 내려다보이는 장소에 올라온 두 사람.
남하림과 용문자는 한동안 말없이 천하지를 보았다.
“할 말이 없으면 그만 가보겠네.”
“조심하세요.”
“그 말밖에 없는가?”
“듣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앞으로 서로 좋은 사이로 지내자 등등…… 이런 말도 있지 않는가?”
“이미 서로 좋게 지내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창천주, 그 양반은 조심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아직도 그를 따르는 인물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자에 대해서 모든 것이 알려졌네. 더 이상 따를 사람은 없을 거야.”
“그건 아무도 모를 일이지요. 너무 지나친 믿음은 다칠 수 있습니다.”
“알겠네. 꼭 그대의 말을 명심하지.”
“그리고…… 그곳에 이미 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연락 한번 주세요.”
“그렇게 하지.”
스윽.
용문자는 손을 내밀었다.
처억.
남하림 또한 그의 손을 잡았다.
따뜻한 느낌이 서로의 손을 통해 느껴졌다.
“그만 가네.”
휘이이익!
용문자의 신형이 스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