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313화 (314/328)

313. 제령운하 되살아나다

맹주전에 다섯 명을 모이게 한 이유.

남하림이 말문을 열었다.

“어젯밤에 자고 있는데 화문자가 찾아왔어요.”

‘그렇군. 화문자의 기였군.’

어제저녁, 이휘연은 익숙한 느낌의 기를 알아차렸다.

다만 가만히 있었던 이유는, 장소가 맹주전이었기에.

그래서 기가 사라질 때까지 조용히 지켜보았다.

당무독이 물었다.

“화문자? 그녀가 왜?”

갑자기 떠났다고 알려진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밤늦게 맹주를 찾아온 이유가 궁금했다.

“엄청 충격적인 내용을 가르쳐 주고 갔어.”

“충격적인 내용이 뭔데요? 혹시 창천주가 따로 있는 건 아니죠?”

팽유도가 별생각 없이 한마디 툭 던졌다.

“……엥.”

남하림이 드물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냐? 유도 말이 맞는 거야?”

당무독은 어이가 없었다.

팽유도가 알아맞힌 것도 놀랍지만, 그보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창천주가 가짜라니 이게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인가.

“부장, 어떻게 된 내용이지?”

“지금의 창천주는 용문자의 육체에 대혼술법을 펼친 게 아니라, 세뇌를 시켰다고 하더군요. 그가 스스로 창천주라 생각하게 만든 거죠.”

“야아아아아!! 놀라고 뒤로 자빠질 일이군.”

“그, 그러게요. 이건 뭐라고 말도 못하겠네요.”

모두 술렁이며 한마디씩 내뱉었다.

“그럼 창천주는 어디에 있지?”

이휘연의 목소리가 굳었다.

“창천에 숨어 있다고 하더군요. 그녀가 들은 게 정확한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가겠다고 했어요.”

“창천주. 진짜 대단한 사람이구나.”

감탄이 안 나올 수 없었다.

“뒤에서 이상한 짓은 다 하는군요.”

“그녀가 말하기를, 창천주는 자신은 혼자 몰래 숨어 지켜보기만 하고 양쪽 세력은 알아서 공멸하기를 원한다는 거야. 그리고 세월이 흐른 뒤 다시 나타나서 새롭게 창천을 만들 계획이라고 했어.”

“그건 어떻게 알았다고 하던가요?”

“세뇌당한 용문자가 중간중간 창천주의 의지를 깨고 나온 듯해. 그때 그녀에게 경고의 서신을 준 것 같다고 했어.”

“음…… 참…… 믿기도 애매하네요. 속임수일지도 모르잖아요.”

“오우, 요즘 유도가 공부를 하는 모양이지? 그렇지. 창천주의 속임수라고 볼 수도 있어. 워낙 잘 속이는 인물이라 이것까지도 의도해서 생각한 거라면…….”

남하림의 생각에, 창천주가 정말로 용문자인 것처럼 하고 화문자를 속였다면 속아줄 수밖에 없을 만큼 완벽한 계획이었다.

“그래서 우린 창천주가 속였든 아니든 상관없이, 눈에 보이는 대로 싸우면 돼.”

“부장, 만일 화문자의 말이 맞다면, 그가 원하는 게 공멸이라고 했지?”

“그렇지 않아도 어제저녁부터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한 가지 답밖에 나오지 않았어. 그녀의 생각이 맞는 것 같아. 무림의 공멸(共滅).”

“공멸이라고?”

“그것밖에 생각나는 게 없어요. 항상 그들이 원했던 건 무림의 멸망이었잖아요.”

“그건 알겠지만 창천까지 사라지게 되잖아. 안 그래?”

“맞아요. 창천주는 창천까지 사라지길 원하는 겁니다. 그가 무슨 이유로 모든 것을 없애려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창천주의 계획.

무림의 공멸.

오직 그만이 혼자 살아남는 것.

팽유도는 고개를 흔들었다.

“허어. 정말 나쁜 사람이군. 자신의 수하들까지 모두 죽이겠다니 용서가 안 될 짓을 하네요.”

“유도의 말이 맞아.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는 꼭 잡아야 해.”

남하림은 다짐했다.

무림인답게 중원을 차지하기 위해 어떠한 수를 사용해도 좋다.

하지만 그는 무림 전체를 죽이려고 한다.

‘창천주, 당신은 절대로 도망가지 못할 것이다.’

* * *

주위는 오직 바위로만 되어 있었다.

들에 피는 풀조차 보이는 않는 황량한 바위산.

그 사이에 단 한 사람 정도가 지나갈 수 있는 동굴이 보였다.

창천원동.

창천의 전인만이 들어갈 수 있는 동굴.

스윽.

원동 앞에 모습을 드려낸 신형.

화문자는 내기를 감추며 닫혀 있는 창천원동을 보았다.

‘이곳을 지키는 기가 없어.’

창천원동이기에 특별히 누군가 지키고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갔다.

그녀는 고민이 되었다.

‘휴우…….’

안으로 들어서기에 두려움이 밀려왔다.

‘후, 계획이 실패하더라도 죽기밖에 더 하겠어?’

그녀는 결정을 내렸다.

석벽 사이의 작은 동굴이었지만 안으로 들어가면서 점점 넓어졌다.

그녀의 걸음이 멈췄다.

눈앞에 나타난 지하 동굴의 석문.

음침한 기가 석문 너머에서 흘러나오는 듯했다.

‘여기 안에…… 그가 있어.’

추정이 아닌 확신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물러날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정확히 그가 살아 있음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생각이 더 강했다.

스윽.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서자,

구우우우웅-

닫혀 있던 석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덜컹.

완전히 열린 석문.

동굴 안은 어둠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슈우우우욱-

차갑고 습한 바람이 그녀의 몸을 지나갔다.

한 발씩 앞으로 걸었다.

어둠을 뚫고 안으로, 안으로 들어섰다.

한 점의 빛이 멀리서 비추고 있었다.

점점 가까이 다가가자, 그 빛은 점이 아니라 공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공간 중앙에 누워 있는 사내를 발견했다.

‘누구…… 지?’

아니, 그녀는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창천원동에 있을 인물이라면 그밖에 없을 터.

“창천주…….”

사내는 눈을 감은 채 움직임이 없었다.

스윽.

제령운화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섰다.

그가 창천주인지 아닌지는 여전히 확인할 수 없었다.

삼십 대 정도의 사내.

‘그냥 목을 베면…….’

제령운화의 손에서 단검이 빠져나왔다.

‘한 번에 끝을 내야 해.’

파아앗!

내력을 끌어 올리며 단검으로 사내의 목을 내리치려고 했다.

쉬이이익!

단검이 바람을 가르며 사내의 목을 향해 떨어졌다.

그때,

번쩍.

눈을 뜬 사내가 손을 들어 단검을 움켜잡았다.

“허억.”

제령운화는 깜짝 놀라며 눈동자가 두 배 커졌다.

“운화, 간이 크군. 나를 죽이려고 하는가.”

“정말로…… 창천주인가요?”

“크크크크.”

그는 대답 대신에 괴소로 대답했다.

스윽.

사내는 검을 잡은 상태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파아앙!

언제 그의 왼손이 나왔는지 제령운화의 앞에서 일장이 뻗어 나왔다.

털썩.

제령운화의 몸에 일장이 부딪히며 세차게 바닥으로 무너졌다.

“우우욱.”

가공할 힘.

그녀는 한 모금의 핏덩어리를 울컥거리며 토해냈다.

“어허…… 여기를 더럽히며 되나. 치워야 하지 않겠는가.”

콰아앙!

창천주가 그녀를 잡은 채 바닥에 쓰러뜨렸다.

슥슥슥.

그리고 그녀의 몸으로 피가 묻은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이제야 조금 깨끗해졌군.”

퍼어억.

그러고는 잡았던 손을 놓으며 그녀를 걷어찼다.

주루루룩-

제령운화는 순식간에 벽까지 밀려갔다.

“내가 모를 것이라 여겼나?”

휘익.

스스스스스-

창천주가 손을 움직이자 쓰러져 있던 그녀가 다시 끌려왔다.

꾸욱.

발아래에 멈춘 그녀의 얼굴을 강하게 눌렀다.

“커어억.”

제령운화가 비명을 질렀다.

파앗!

다시 그녀의 복부를 걷어차자,

“아아악.”

부우웅-

제령운화의 신형이 동굴 벽에 부딪혔다.

* * *

끄으으응.

잠시 기절했던 정신이 돌아왔다.

“운화, 그냥 조용히 살았으면 죽지도 않았을 것을.”

“…….”

“내가 못 잡아서 네년을 가만히 두었다고 생각하느냐? 오래전 나에게 도움을 준 적이 있기에 한 번의 기회를 준 것이건만. 이를 제 발로 차버렸군.”

“큭, 고맙네요. 그때 일을 잊지 않아서.”

“크크크, 난 은원을 잘 따지는 편이지.”

제령운화는 바닥에 쓰러진 몸을 억지로 일으키려 했지만.

“단전을 없애 버렸지. 혹시나 도망을 갈까 싶어서.”

“그냥 죽이세요.”

그녀는 일어나는 것을 포기했다.

“…….”

창천주는 삶을 포기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이유가 뭐지? 네놈들에게 못해준 건 없지 않는가? 게다가 영원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거짓말을 하는군요. 못해준 게 아니라 사냥을 시키기 위해 그만큼만 해준 것이지 않나요?”

“…….”

“방금 영원한 삶이라고 했나요? 대혼술법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 줄 아셨습니까?”

“큭, 크크, 크하하하하!”

창천주는 대소를 터뜨렸다.

“이런, 그동안 불만이 많았군. 내가 네놈들을 죽이려고 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지. 주인이 명령을 내리면 잔소리 말고 시키는 대로 하면 될 것을…… 머리가 컸다고 주인에게 달려들 생각만 하니 죽을 수밖에.”

“우, 우리를 신무맹에 보내려고 한 게 모두를 죽이기 위해서였군요.”

“크크크, 맞다. 네놈들은 모두 사라지는 것이지. 그리고 난 다시 새롭게 시작할 것이다.”

우우웅-

창천주는 손에 내력을 올렸다.

“운화, 그만 죽어야겠다.”

슈우우욱!

창천주의 손에서 내력이 뻗어나갔다.

퍼어억!

제령운화의 가슴에 일장이 쏟아졌다.

“컥.”

외마디 비명과 함께 그녀의 숨이 멈췄다.

“멍청한 년. 죽고 싶어서 여기까지 들어오다니…… 사주(死主), 이년을 밖에 버려라.”

스으으으-

흰 연기가 죽은 그녀의 몸을 감쌌다.

샤르르르-

그리고 동굴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창천주는 사라진 모습을 지켜보았다.

“저년이 이곳을 알고 있다는 것은 용문자, 그놈 짓이겠지.”

어렴풋 예상은 했던 일이었다.

“하나 네놈이 완전히 깨어나지 못했다면 의미는 없다. 내 통제를 벗어날 수 없을 테니.”

창천주는 다시 자리에 누웠다.

번쩍.

그의 두 눈이 번쩍거렸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용문자의 시선을 통한 하늘이었다.

* * *

휘이이이잉-

절벽 아래에서 솟구치는 바람 소리.

사주는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여기에 버리면 간단하겠지.”

휘익.

그는 손에 끌고 왔던 시체를 던졌다.

절벽 아래로 너무나 가볍게 떨어지는 시신.

안개에 의해 이미 그녀의 시신은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면 신선이라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겠군.”

사주는 뒤를 돌아서면서 다시 백색의 연기로 변했다.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시신.

타앗!

그때,

‘당겨라!’

티이이잉!

안갯속에서 팽팽하게 당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퍼어어어어얼러러러럭-

커다란 천 조각이 퍼지면서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냈고.

불쑥 튀어오른 천 위로 죽은 시신이 떨어졌다.

“뭣들 하느냐? 빨리 그분을 모시지 않고.”

“넵, 알겠습니다.”

십여 명의 사내들이 제령운화의 시신을 거두었다.

그들은 창천빙문 소속의 수하들.

쏘옥.

수하 중 한 명이 그녀의 입에 환단을 밀어 넣었다.

“화문자…… 님.”

그들 모두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깨어나기를 염원했다.

“커억.”

그때, 숨을 멈추었던 제령운화가 거친 호흡을 하며 목에서 핏덩어리를 토해냈다.

“하아…… 하아…….”

그녀는 숨을 내몰아 쉬었다.

“화문자님…… 괜찮으십니까?”

“어…… 괜찮아.”

말과는 다르게 그녀는 온몸에 힘이 빠져 움직일 수도 없었다.

한동안 그대로 누운 채 가만히 위를 쳐다보았다.

안개에 가린 채 절벽 위가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야. 예상대로 그가 스스로 처리하지 않고 사주에게 맡겨서 여기로 떨어뜨렸어.’

만일 창천주가 직접 처리했다면 여기에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누운 채 이마에 한 손을 올렸다.

‘다음에는 이 짓도 못하겠군.’

시간이 지나자 어느 정도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누웠던 몸을 일으키자, 그녀의 앞으로 수하들이 긴장한 채 서 있었다.

“다들 고마워.”

“아닙니다. 혹시나 떨어지지 않으실까 걱정했습니다.”

“몸이 나을 때까지 여기에서 쉬는 게 좋겠어.”

“넵. 알겠습니다.”

수하들이 그녀가 편히 쉴 수 있도록 뒤로 물러났다.

‘정말로…… 창천주가 살아 있을 줄은. 이 사실을 빨리 걸황에게 알려야 해.’

* * *

창천이 먼저 움직였다.

중원 무림인들의 이목은 과연 그들이 어디를 향해 갈 것인지로 집중되었다.

창천의 행군은 멈추지 않았다.

호남성을 넘어 하남의 땅.

그리고 곧장 남양성으로 향해 움직였다.

“창천주님께서 직접 오실 필요는 없으십니다.”

궁문자는 내키지 않았다.

상대가 총무림연합이라고 하나 창천십문의 힘이라면 충분히 밀어붙일 수 있다고 확신했다.

“궁문자. 자만을 하는가?”

“…….”

“자네가 걸황을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다면 내가 나서지 않겠네. 됐는가?”

“그게…… 아니라…….”

궁문자는 대답을 똑바로 못했다.

현 무림에서 걸황과 무력을 나눌 수 있는 인물은 창천주밖에 없었다.

영문자까지 그에게 죽음을 당했다.

그는 영문자와 싸워 이길 수 있다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 또한 괴물이나 마찬가지였다.

궁문자는 그와 직접 싸울 생각이 없었다.

“걸황은 내가 맡겠네. 나머지는 자네들이 맡아서 처리를 하야 하지 않겠나.”

“넵. 잘 알겠습니다.”

궁문자는 물러났다.

‘쳇. 본전도 못 건지다니…….’

옆으로 물러나는 그의 인상이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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