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 창천영문 멸하다
걸비가 움직였다.
그 뒤로 개방도들이 움직였다.
방주 오종은 걸비의 보고를 받았다.
“푸하하하! 창천에서 여기를 향해 올라오는 중이라는군.”
“방주님, 웃을 일이 아닙니다.”
영충은 인상을 썼다.
전쟁이 눈앞에 있었다.
창천에서 쳐들어온다고 소문을 듣고 걱정이 되었다.
“이보게, 추개. 거지가 무슨 걱정이 많은가?”
“창천이 쳐들어온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들과 싸울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합니다.”
“준비? 벌써 끝난 것으로 알고 있네. 우리가 뭘 또 준비해야 하지?”
“우리만 준비를 하면 뭐 합니까? 신무맹과 다른 문파에도…….”
휘익. 휘익.
오종은 손을 내저었다.
“어허.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우린 천하제일대개방이네. 그런 놈들은 우리들끼리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네.”
“…….”
“그동안 이때를 대비해서 본 방의 제자들이 얼마나 노력을 했나? 이번 기회에 무림에 개방의 힘을 제대로 보여 줘야 하지 않겠나!”
방주 오종의 말처럼 걸황의 도움으로 의해 개방도들은 불철주야 수련에 집중했다.
그 과정에서 영충 또한 무공이 한 단계 올라선 상태였다.
“그건…… 그렇지만. 이번에 오는 놈들은 창천에서도 가장 강한 자라고 했습니다.”
“클클클. 그는 우리가 맡을 필요도 없네. 걸황이 있거늘 무슨 걱정을 하는가.”
영충의 안색이 밝아졌다.
“걸황이 오는 중입니까?”
“그뿐만 아니라 다섯 명 모두 온다고 하는군. 이번에 제대로 할 모양인가 봐.”
“모두가 오는 것이라면 창천과 전면전을 하는 것이군요.”
“걸황이 그러더군. 시작과 끝은 개방이 할 일이라고.”
쿵.
영충은 심장이 튀었다.
“맞습니다. 그 일은 당연히 개방에서 해야지 않겠습니까.”
중원 최고의 문파라는 자존심.
일황사제의 신화는 개방의 영원한 신화였다.
“어디에서 창천을 맞이할 것입니까?”
“걸황이 말하기를 개봉평에서 맞이하는 게 좋겠다고 하더군. 그곳에서 구만구천대개방진을 펼치겠다고 했네.”
“알겠습니다. 곧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구만구천대개방진.
구만구천은 사람을 수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다.
개방도 한 명도 빠짐없이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의미였다.
영충은 흥분이 되었다.
젊은 시절 꿈을 꾸어본 적이 있었다.
지금의 현실은 마치 그때의 꿈과 같았다.
무림의 안위가 아닌, 무림인이 되기 전에 꾸었던 꿈을 개방을 통해 이루고 싶었다.
방주실을 나서는 영충의 발걸음은 가벼우면서도 힘이 있었다.
* * *
개봉으로 올라가는 남하림과 일행들.
일황사제 다섯 명과 함께 황보궁, 신소소, 만통자가 함께 움직였다.
두두두두두두두-
그 뒤로 준극남이 신창강기군을 이끌고 일행의 뒤를 따랐다.
멀리 개봉평의 초입이 보였다.
창천영문을 맞이할 장소.
그들보다 하루 빨리 도착했다.
오늘이 지나가기 전에 대평원을 중심으로 사방에서 개방도들이 도착할 것이었다.
“하림 형, 저기.”
개봉평에 가까이 다가서자 팽유도가 한 곳을 가리켰다.
“본진이군.”
개봉에서 나온 개방의 본진.
개봉평에 도착한 뒤 남하림과 일행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방주님께 가죠.”
남하림은 바로 움직였다.
웅성웅성.
개방 본진의 진영에서 술렁거렸다.
개봉평으로 다가오는 일행들.
개방도들은 그들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았다.
무림최고의 인물.
개방의 전설.
일황사제가 왔다.
“후후후. 오는군.”
방주 오종은 선두에서 남하림과 함께 다가오는 네 사람을 보았다.
내력을 끌어 올리지 않았지만 다섯 명의 신형에서 보이는 기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이 녀석들은 볼 때마다 놀라게 하는구나.’
하루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다섯 명의 제자들.
이들만으로도 창천영문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방주님, 그동안 만수무강하셨습니까?”
“허허허. 잘 지냈느냐?”
탁탁.
오종은 남하림부터 한 명씩 안으며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들 주위에 많은 시선들이 다섯 명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온다고 고생이 많다.”
“당연히 와야 할 길입니다.”
오종은 든든했다.
다섯 제자들을 보니 어느 누가 쳐들어와도 두렵지 않았다.
“창천은 내일이면 도착할 것 같더군.”
“걸비에게 들었습니다. 창천보다 먼저 도착하기 위해 빨리 움직였습니다.”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알겠습니다.”
군막으로 들어갔다.
방주 오종을 따라 각자 자리에 앉았다.
개봉평에서 만나기로 결정을 내린 사람은 걸황이었다.
“걸황, 내일이면 그들이 개봉평에 도착하네. 우리는 어떻게 할 계획인가?”
“따로 계획은 없습니다.”
남하림의 대답에 군막에 모인 그들은 의아한 시선으로 남하림을 보았다.
“그게 무슨 말인가?”
서신에는 구만구천대개방진을 펼치겠다고 적혀 있었다.
“오직 실행만이 있을 뿐입니다. 창천에서 도착하는 즉시 싸울 것입니다.”
“다른 건 없느냐?”
“없습니다. 개방의 강점으로 싸우면서, 무서움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려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남하림은 미소를 지었다.
구만구천대개방진을 펼치는 이유는 한 가지였다.
대인원으로 밀어붙이겠다는 뜻.
“알겠네. 걸황의 뜻을 따르기로 하지.”
* * *
두우우웅!
창천영문의 무인들이 개봉평으로 천천히 들어섰다.
그와 동시에 개방도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많군. 거지 놈들이 이렇게 많았나?”
사방에서 모여드는 개방도들.
개봉평으로 오면서 이런 보고를 받지 못했다.
영문자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준비를 한 듯하군. 이러지 않고서는 이렇게 많이 모이지 않아.”
뿌우우우웅-
탁탁탁탁!
개봉평으로 내려오는 개방도들.
나팔 소리와 타구봉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구만구천대개방진에서 걸걸한 장타령이 울렸다.
“어어어어어절씨구구구구구…… 저어어어어어얼씨구!”
선창에 이어 후창의 타령들이 사방에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중구난방 울렸다.
“어어어어어어어어어얼씨이이이구 드러러러러간다!”
“저어어어어어어어어얼씨구 너어어어어간아아아아다-”
두두두두두두두두-
이번에는 전방에서 수백 명의 개방도가 달려오기 시작했다.
‘저…… 놈은…….’
수많은 개방도 사이에서 눈에 익은 모습.
걸황 남하림이 틀림없었다.
분명 그와 싸우기를 원했다.
그렇기에 개방을 친다는 목적으로 여기까지 달려왔다.
근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건 아닌데…….
여태껏 걸황의 움직임은 막아내기 위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개방이 먼저 움직였다.
개봉평을 포위한 개방을 보니 마치 창천과 전면전을 목적으로 싸우려는 듯하지 않은가.
‘창천과 끝까지 갈 작정이군.’
영문자는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남하림의 얼굴을 보면서 확신했다.
“오늘 일진이 사납겠어.”
타앗!
영문자는 그 자리에서 신형을 날리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거어어어얼화앙! 받아라!”
남하림은 홀로 달려오는 영문자를 노려보았다.
처음 보는 구 척 장신의 사내.
하지만 그의 기세를 보면서 누구인지 단번에 알았다.
우우우우웅-
달려오던 영문자 주변의 모든 기가 요동쳤다.
“저자는 내가 맡겠어.”
번쩍!
만리추풍신법이 펼치자 남하림의 신형이 빛처럼 쏟아져 나갔다.
‘빠르군.’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움직임.
하지만 영문자는 그를 똑바로 찾을 수 있었다.
챠르르르-
묵연광검이 긴 타원을 그리며 남하림을 감싸기 시작했다.
탁탁탁탁!
남하림은 타구봉법을 펼치며 묵연광검을 강하게 두드렸다.
가볍게 치는 듯했지만 한 방 한 방마다 영문자의 손이 울렸다.
‘저번에 상대했을 때보다 강해졌다.’
영문자의 이마에 주름이 생겼다.
본래의 육신을 찾지 못했다면 힘에 밀렸을 것이었다.
슈우우욱-
강룡십팔장의 무룡파천.
남하림은 물러나는 영문자를 향해 왼손으로 일 장을 펼쳤다.
영문자는 호신강기를 펼치는 동시에 묵연광검으로 몸을 감쌌다.
콰아아앙!!!
기의 부딪치며 동시에 밀려났다.
“…….”
“…….”
남하림과 영문자는 서로를 노려보았다.
두 사람의 싸움만 잠시 멈췄을 뿐.
개방과 창천영문의 격돌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싸움에는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했다.
“걸황, 어떻게 된 거지?”
“무엇을 말하는 것이오?”
“강해졌군. 저번에는 분명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어떻게 된 것이지?”
“궁금한가 봅니다? 당연히 수련을 열심히 했으니 실력이 늘었겠지요. 안 그렇소이까?”
“맞는 말이군. 수련을 하면 늘긴 하지.”
“당신도 저번에 봤을 때보다 훨씬 강하꾼요. 평소에도 생각했지만 창천은 신기한 사람들이 많아.”
“나도 신기하긴 해.”
콰아아아앙!!
거대한 기가 사방에서 터지는 굉음이 들렸다.
그리고,
그들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또한 두 사람이 생과 사의 공간에 들어서 있었다.
순중과 검제 이휘연의 대결.
스걱.
순중의 검이 잘려 나갔다.
‘이런……!’
순중의 위험이 느껴졌지만 영문자는 그에게 달려갈 수 없었다.
“어딜 보는 겁니까? 우리 싸움도 끝이 나지 않았거늘!”
슈우우욱-
강룡십팔장이 연이어 펼쳐졌다.
극강의 내력을 필요로 한 장법은 보통 양손으로 동시에 펼칠 수 없었다.
하지만…….
남하림은 가능했다.
오른손에는 감운뇌벽의 초식과 왼손에는 천풍이룡의 초식.
서로 몸을 비틀며 승천하려는 듯한 두 용이 내뿜는 장강(掌罡)이 교차했다.
‘이건 있을 수 없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남하림의 무공.
하나 믿기지 않는 눈으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가만히 당할 수 없다.’
번쩍!
영문자의 단전이 단심광에 의해 폭발했다.
“일천단(一天斷).”
묵연광검에서 길게 뻗은 광사(光絲)가 이어지면서 두 마리의 용이 내뿜는 장강을 베었다.
파아아아아앗!
묵연광검을 잡은 손.
검붉은 힘줄이 불끈 올라오면서 터져 나갈 것 같았다.
“아아아아악!!”
그는 목이 터지듯 기합을 내며 떨리는 손으로 남아 있던 모든 내력을 쏟아냈다.
찌지지지직-
장강을 가르며 나가는 묵영광검.
‘베…… 어진다!’
조금만 더 가면 완전히 벨 수 있었다.
하지만.
묵연광검의 움직임이 멈추며 뒤로 밀려 나가기 시작했다.
‘욱…….’
처억.
영문자는 양발을 벌리며 발바닥에 힘을 줬다.
덜덜덜덜-
두두두둑.
발이 떨리면서 힘을 이기지 못해 근육의 힘줄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뚜우욱.
강한 나무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본래의 몸을 되찾은 영문자.
그만큼 버틴 것도 다른 인물이 아닌 그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양천의 천괴지체.
세상을 그대로 받아들인 힘의 무게를 영문자가 받아내기엔 어려웠다.
쿠우우웅!
거대한 고목이 넘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영문자의 두 무릎이 완전히 부러졌다.
곧바로 일어나고자 했지만 다시금 주저앉았다.
“키킥, 이런 어이가 없는 짓이 있나!”
황당한 상황에 고통도 느낄 수 없었다.
털썩.
영문자는 일어나기를 포기한 채 하늘을 보며 대자로 누웠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날씨 좋군. 이런 날씨에 죽는 것은 억울한데.”
오랜 시간을 살아왔다.
사람이라면 죽기 전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눈앞에 지나간다고 했다.
“뭐지? 난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데. 헛살았군. 크크크크.”
손에는 여전히 묵연광검을 쥐고 있었다.
휘익.
영문자는 그에게 다가온 남하림 앞으로 묵연광검을 툭 던졌다.
“걸황, 부탁 하나만 하자.”
“뭔가요?”
“마지막은 내 검에 죽고 싶다. 들어줄 수 있겠는가?”
“원한다면.”
“고맙군.”
영문자는 힘겹게 상체를 일으켰다.
“죽기 전에 한 가지만 묻자. 대체 무슨 수련을 했기에 이리 달라졌는지 궁금하군.”
“양천의 무공을 완벽하게 익혔을 뿐이죠.”
“양천의 무공이라…… 별게 없다고 봤는데 그게 아니었군. 아프지 않게 부탁한다.”
“살고 싶지 않나요?”
“힘들게 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혹시나 나를 살려주고 싶다면, 저놈들이나 부탁하지.”
남하림은 바닥에 떨어진 묵연광검을 잡았다.
찌이이잉.
묵연광검이 빛을 내면서 강한 공명음을 냈다.
스르륵.
묵연광검의 연검 틈 사이로 빛이 흘려 들어가면서 또 한 번의 빛이 났다.
‘신기한 검이군.’
빛이 강해지면서 묵연광검은 점점 투명해져 갔다.
자세히 보지 않는 이상 묵연광검을 찾을 수 없었다.
“다시 본래의 주인을 찾아갔군.”
“본래의 주인이라니 무슨 말이죠?”
“그 검은 양천의 전인을 죽인 뒤 얻은 검이다.”
구천의 조율자.
영문자가 양천의 전인이었던 은무조의 목을 벤 뒤 얻은 검이었다.
‘그래서 거부감이 전혀 없었군.’
무단기를 받아들이는 검을 보며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영문자는 눈을 감았다.
“이제 그만 보내주게.”
쉬이이익-
검신이 사라진 묵연광검은 이미 영문자의 목을 벤 뒤였다.
투욱.
창천영문의 수장.
영문자의 죽음과 함께 창천영문은 중원에서 사라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