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 북방표국을 멸하다
‘지금이다.’
쉬이이익.
사내의 소매 끝에서 단검이 빠져나오며 이휘연의 목을 향해 그었다.
“손버릇이 좋지 않군.”
휘리릭!
이휘연의 오른팔이 회전하고.
백학량시의 초식을 펼치며 단검을 중간에서 감았다.
타악!
그리고 단편을 출수하며 반동으로 사내의 목을 올려쳤다.
“커어억!”
사내는 순간 숨이 막힌 듯 비명을 지르며 두 손으로 목을 감쌌다.
슥슥.
연이어 두 손으로 사내의 허리와 배를 가격했다.
팔 성의 내력이 그의 몸에 충격을 주었다.
“우우욱.”
몸속의 장기들이 뒤틀리는 고통에 사내는 허리를 숙였다.
‘허어어억, 이…… 놈은…… 누구……!’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동작.
어이없게도 태극권에 당했다는 사실이 황당했다.
시중에도 널리 알려진 무당파의 기본 무공.
하지만 방금 이것은 사내가 본 어떠한 권법보다 강했다.
“정말로 태극…… 권이 맞는…… 가?”
“무당파 도사가 소림사의 무공을 펼치겠소?”
“…….”
우우우웅-
사내는 내력을 끌어 올렸다.
상대는 고수가 확실했다.
죽을 각오로 싸워야 했다.
장소가 좁지만 어쩔 수 없었다.
‘네놈이…… 얼마나 강한지 모르지만 권법이라면 천벽권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슈우우우욱-
고금을 통틀어 최강의 강권이라 알려진 천벽권.
콰과과과과!
쿠우우우우웅-
천둥 소리와 벽력이 떨어지는 굉음이 사내의 일권에서 터져 나왔다.
“쯧, 미친 녀석이군. 이런 건물 안에서…….”
휘리리리릭!
이를 본 이휘연이 양손으로 원을 그리자 붉은 태극의 문양이 선명하게 이어졌다.
양손에 의해 음양의 태극이 그의 앞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샤르르르-
회전하는 태극은 곧바로 벽력권에서 쏟아져 나온 기를 감싸면서 허공으로 흩어지도록 만들었다.
공무자연(空無自然).
천벽권에서 나온 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건…… 태극권이 아니야. 대체…… 대체 네놈의 정체가 무엇이냐?!”
태극권에는 이런 위력이 없었다.
‘태극혜권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얼마 전 태극혜검을 다시금 깨우치면서, 태극권도 심공을 함께 펼친다면 어떻게 될지 궁금했다.
성공이었다.
‘후후, 유용하게 펼칠 수 있을 것 같네.’
스윽.
기분 좋게 태극보를 펼친 이휘연이 사내의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다른 수가 없다면 내가 마무리를 지어주지.”
“이…… 이……!”
사내는 손을 부들거리며 힘을 주었다.
슈우우욱!
마지막으로 펼친 천벽(天霹)의 일권.
하지만,
휘리리릭!
이휘연의 두 손에 휘말린 그의 팔이 비틀어지면서 돌아갔다.
꽈다아앙!
그마저도 소용이 없었다.
바닥에 그대로 드러누운 사내는 얼이 빠진 채 천장을 보았다.
‘제기랄…….’
핏!
사내는 어깨와 목이 따끔했다.
‘뭐…… 지?’
곧이어 온몸에 힘이 빠지며, 사내가 축 늘어졌다.
* * *
툭툭.
누군가 머리를 치고 있었다.
“끄으으응.”
사내가 정신을 차리며 깨어났다.
“일어났는가?”
“……크윽.”
일어나려고 했지만 몸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점혈했소.”
“…….”
“멍청하군. 말은 가능하다. 이름은?”
사내는 입을 다물었다.
어떠한 고문도 이겨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내 입에서 한마디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착각하지 마라. 창천에 대해 궁금한 것은 없다. 어느 정도 알고 있으니까.”
“그럼, 죽여라.”
“네놈을 죽일 이가 누군지는 궁금하지 않은가? 이휘연이라 한다.”
“……!”
사내의 눈동자가 흔들거렸다.
‘검제가 무당파에? 왜?’
그는 무당파가 아닌 신무맹에 있어야 했다.
“당신이 여기에 왜 있지?”
“그러는 당신은?”
사내는 말문이 막혔다.
결국 두 사람은 같은 이유로 무당파에 온 셈이다.
“당했군.”
사내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창천에서는 신무맹의 시선이 산동성으로 향했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맞아. 우린 처음부터 무당파를 노리고 있을 줄 알고 있었다.”
“검제, 대단한 것은 인정하지. 하나 결과는 바꿀 수 없다. 창천영문은 그동안 네놈들이 상대했던 것과는 다를 것이다.”
“얼마나 대단한지는 만나보면 알겠지.”
이휘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 가야겠군. 마지막으로 죽는 곳이 어디인지 궁금할 것 같아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여긴 옥형옥 중에서도 비밀리에 만든 형옥이고. 그대의 몸에 뿌려 놓았던 냄새는 이미 지웠다. 내가 나가고 난 뒤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또한 문을 닫으면 위로 어떠한 목소리도 들리지 않지. 잘 떠나시게.”
“……!”
철문으로 나가는 소리가 다급하게 들렸다.
사내는 고함을 질렀다.
“차라리 나를 죽여라!”
“굳이 그럴 이유가 있을까. 언젠가는 죽게 될 텐데. 사지만 마비되었을 뿐 입은 움직일 수 있으니 음식은 먹을 수 있을 게요. 잘하면 수십 년 동안 살아 있을지도 모르지.”
사내는 다급했다.
검제의 말이 사실이라면…….
영원히 형옥에 갇힌 채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죽음.
어둠 속에서 움직이지도 못한 채 긴 세월을 누운 채로 살아가야 했다.
원초적인 두려움이 밀려왔다.
저벅.
검제가 밖으로 나가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발소리가 들렸다.
죽음까지 각오했건만 이런 식으로 인생을 어둠 속에서 보내고 싶지 않았다.
끼이익.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 심초요. 검제…… 창천영문 후정단 소속입니다.”
“그게 중요하오? 지금 이 마당에.”
“창천영문이 거의 근처에 왔습니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소?”
“동면촌에…… 동명촌에 도 했을 것입니다. 무당산의 북쪽으로 올라갈 계획입니다.”
“고맙소.”
철컹.
철문이 닫히는 소리.
‘헉……!’
사내, 심초는 당황했다.
이름과 창천영문이 어디에 도착했는지 정보를 가르쳐 주었다.
“검제…… 이 나쁜 놈아…… 네가 그러고도 성인이라……!”
“조용히 하게.”
“……?!”
귀에 익은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혹시… 진조……?”
“맞소이다.”
“아하…… 아…….”
다행이라 하기엔 상황이 좋지 않았다.
다만 혼자가 아니기에 안정이 되었다.
“진조, 여기는 대체 어디냐?”
“어디긴 어디요. 형옥 안이지.”
“…….”
“그래도 죽이지는 않을 모양이군. 그대의 내력만 거두어 갔을 뿐이오.”
“나를 일으켜 봐라.”
심초는 모든 것을 체념했다.
“큭.”
그때, 갑자기 진조진인이 웃음을 터뜨렸다.
“왜 웃는 것이냐?”
“갑자기 생각난 게 있어서. 당신의 말투가 예전부터 상당히 거슬렸잖아. 나를 무시하면서.”
“뭘…… 하는 것이냐?”
심초의 얼굴 위로 진조진인이 다가왔다.
“정말로 움직이지 못하는군. 젊은 놈이 어른께 함부로 말을 하면 안 되지. 일단 맞고 시작해 볼까?”
퍼어억!
진조진인이 그의 얼굴을 향해 발길을 했다.
“크크크크, 그동안 기분 나빴던 게 시원하게 풀리는군!”
“아아아악! 진인…… 그만……!”
“아직 멀었다.”
퍽퍽퍽퍽.
진조진인은 가슴에 차여 있던 화가 풀릴 때까지 심초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 * *
백진묵은 고개를 숙였다.
그는 북방상국의 재기를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인 환금호에 손을 댈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한 번은 용서할 수 있지만 두 번은 아니지요.”
“저희들도 먹고살아야 해서…….”
“죽을 때까지 충분히 먹고살 수 있는 금액으로 보상을 해준 걸로 압니다만, 생계를 들먹이니 이해가 안 됩니다.”
“…….”
“이거 참…… 당신은 방법이 없군요.”
핏!
당무독은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욱.”
가슴에 충격을 받은 백진묵이 소리를 질렀다.
휘익!
그때, 당무독이 던진 작은 환단이 그의 목 안에 들어갔다.
“커어억?!”
“방금 입에 들어간 건 전신마비독이라고, 죽을 때가지 사지가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지요.”
“으……? 으…….”
백진묵의 온몸이 꼬이기 시작했다.
그의 모습을 보던 북방표국의 인물들은 절로 눈살을 찌푸렸다.
게다가 입에서 거품까지 뿜어내며 바닥을 뒹굴었다.
덜덜덜.
온몸이 바들거리며 떨었다.
백진묵을 보면서 북방표국의 인물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이젠 당신들 차례군.”
털썩.
당무독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 명도 빠짐없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독제님, 한 번만…… 용서를 해주십시오. 담부터는 절대로 나쁜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북방상국 출신이 아닌 사람은 일어나라.”
“……!”
여기저기에서 엉거주춤 한두 명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차피 조사하면 거짓인지 아닌지 밝혀진다. 지금 이 자리에서도 거짓말하는 놈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당무독의 엄포에 그들은 주눅이 들었다.
스으윽.
일어나려던 인물들 중 서너 명이 다시 앉았다.
“내가 누군지 안다면 이런 짓을 하면 안 되지.”
핏핏핏!
당무독의 손에서 독침이 뻗어나갔다.
“아아악!”
일어났다가 앉은 그들 또한 비명 소리와 함께 입에 거품을 물며 기절했다.
중원무림에서는 성인으로 추앙받는 일황사제.
하지만 그들에게는 지옥의 사신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다.
“우선 당신들은 옆으로 나오시오.”
이십여 명이 옆으로 빠져나갔다.
“당신들이 하던 일이 나쁜 일이라는 것을 사전에 알았던 사람은 손을 드시오.”
“…….”
그들은 서로 눈치를 보면서 모두 손을 들었다.
전부 좋지 않는 일임을 알면서도 그만두지 못한 것은 월봉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그들 중 한 명이 다시 머리를 바닥에 조아렸다.
“독제님, 소인이 죽을죄를 졌습니다. 나쁜 짓인 줄 알면서도 열 식구가 먹고 살아야 해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머지들은 나쁜 짓인지 알면서도 그냥 한 모양이군. 반성이 없는 것을 보면.”
“…….”
당무독은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 후 돌아섰다.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자신이 책임을 지는 법이다.”
준극남이 앞으로 나섰다.
“신창강기군은 이놈들에게 환단을 먹여라.”
“옙.”
* * *
창천에게 환금호를 몰래 납품하다 신무맹에 걸린 북방표국에 대한 소문이 퍼져 나갔다.
독제는 두 번 다시 용서하지 않았다.
북방표국에서 오직 한 명만 무사할 뿐, 나머지 표국의 인물들은 모두 전신마비를 당했다.
소문이 퍼지면서 한편으로는 과한 제재라는 말도 나왔지만, 유통한 물건이 환금호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거의 대부분 잘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채애애앵!
중년 사내가 손에 든 병을 신경질 적으로 던졌다.
“망할 새끼…….”
창천신문의 수장 신문자.
창천의 개벽단 제조 책임자이기도 했다.
대혼술법을 익힌 창천의 인물들에게 개벽단은 꼭 필요한 환단이었다.
개벽단을 복용하지 않으면 정신분열증으로 죽을 수 있으니 복용은 필수였다.
개벽단 하나의 환단을 제조하는 데 필요한 환금호의 양은 열 근.
석 달에 한 알씩 복용해야 하기에 환금호의 수급은 꾸준히 이루어져야 했다.
근데 그 일을 중간에 방해했다.
독제 당무독.
당문 출신이며 현재는 개방에 속한 인물.
중원 최고의 다섯 명 중 일인이었다.
“웃긴 녀석이군.”
북방표국에서 행한 소문을 들었다.
그들을 죽이지 않고 전신마비독을 써서 전부 사지마비를 시켰다고 한다.
“차라리 죽이던가? 악마 같은 놈!”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죽는 게 더 나을 수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전신이 마비된 그들의 독을 해독하고자 해도 전부 실패했다고 했다.
“흥, 한 번 만나서 독에 관해 이야기는 나눠보고 싶네.”
그 또한 독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자신했다.
‘뭐 어쨌든 그건 나중 문제고…… 당장 급한 건 환금호에 대한 수급이야. 젠장.’
창천을 위해서는 개벽단이 끊어지면 큰일이었다.
‘빨리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더 큰일이 일어날지도…….’
그는 몇 년 동안 창천주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젠장…… 오랜만에 한소리 듣겠군.”
탁탁탁.
그는 몸에 묻은 가루를 신경질적으로 털고 제조실 밖으로 나왔다.
“아…… 진짜 무서운데…….”
여전히 창천주에게 보고하자니 겁이 났다.
‘휴우우우.’
창천궁이 가까워질수록 신문자의 얼굴에 긴장감이 돌았다.
‘어떻게 말을 꺼내지?’
첫 마디가 욕을 더 먹고 덜 먹고를 결정할 텐데.
여러 가지 생각으로 정신이 산만해지려는데.
타악!
누군가 뒤에서 다가와 어깨를 툭 쳤다.
“아, 깜짝이야!”
“뭐 하나?”
신문자는 심장이 철렁거렸다.
싱긋 웃는 표정의 인물.
조경노가 마치 숨어 있다가 튀어나온 듯했다.
“조경노 님, 깜짝 놀랐습니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는가? 얼굴을 보니 세상이 무너져도 모르겠군.”
“아…… 그게…….”
신문자는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창천주의 최측근이 조경노와 영문자다.
‘이분과 함께 간다면…….’
신문자는 우선 조경노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조경노 님, 백하수오로 만든 술이 있는데…….”
번뜩.
조경노의 눈이 커졌다.
“오호. 그 귀한 술을…… 무슨 부탁이 있는가.”
“그게…… 환금호를 거래하던 북방표국 놈들이 독제에게 걸려 사지마비가 되었습니다.”
“환금호는?”
“모두 빼앗겼습니다. 수습이 불가능한 것은 아닌데 귀찮은 일들을 다시 처음부터 하려고 하니 한숨이 나옵니다.”
“심각한 일이로군. 주군께서 한소리 하겠는데.”
“그렇습니다.”
신문자는 풀이 죽었다.
탁탁.
조경노는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주군을 뵙고자 가는 길이네. 같이 들어가세나. 내가 두 소리 들을 게 있으면 한소리만 듣도록 해주겠네.”
“조경노 님, 정말 감사합니다. 나중에 제 거처에 가서…….”
“쉿. 조용히 하게. 이건 절대로 주군께도 비밀로 해야 하는 일이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