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 진조진인을 잡다
이휘연에게서 흐르는 기.
예전과 달라져 있었다.
‘차분해졌다. 천살성의 살성이 너무나 고요하구나.’
진무도인은 시선을 돌려 의자에 앉아서 흐뭇한 미소를 띠는 현현자의 모습을 보았다.
문득 현현자의 청심청령기가 떠올랐다.
천살성의 살성을 다스릴 수 있다면 청성파의 내공심력밖에 없었다.
청심청령기는 현현자의 모든 것이었다.
‘저분께서 큰 도움을 주셨구나. 고마운 분이시다.’
같은 정파의 도인이라 하나 타 문파에게 기연을 주는 경우는 드물었다.
더구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진기를 전수하지 않았는가.
스윽.
현현자와 시선이 마주친 진무도인은 두 손을 공손하게 올렸다.
진조도인은 죽을 맛이었다.
온몸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무형의 강한 압박과 함께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이휘연의 시선에 몸이 조각조간으로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 놈이…… 이 정도였나?’
그는 이 자리에서 도망가려고 했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왜 스스로 파문을 하려고 하는지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소?”
“이유가…… 이유는…… 네놈 때문이다!! 잘난 네놈 때문에 더러워서 그만둔다! 됐나?”
“이해가 되지 않소. 내가 무당에 들어오기 전부터 당신보다 잘난 분들은 무당에 얼마든지 있었소이다.”
“…….”
“아하, 알겠군. 그런 분들도 앞에서는 실실 웃고 뒤로 가면 욕을 한 건가.”
“그건…… 아니다.”
당황한 목소리가 무엇을 말해주는 지 모두가 알았다.
진조진인은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느꼈다.
‘망할 놈…….’
한마디 말에 역적이 되어 버렸다.
“그게 아니라면 이유가 무엇인지 말을 해보시오. 본인 입으로 하지 못하겠다면 내가 그 이유를 말해도 되겠소?”
‘이…… 놈이.’
진조진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스스로 파문하려는 이유를 제 놈이 어떻게 안단 말인가.
“당신은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지요.”
“내가 무엇을 알고 있다는 말이더냐?”
“창천에서 무당파를 향해 쳐들어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오?”
이휘연의 한마디에 대전이 술렁거렸다.
“검제, 방금 뭐라고 했는가?”
장문인 진무도인이 깜짝 놀랐다.
느닷없이 창천이란 말이 들렸다.
“장문인님, 창천에서 무당을 공격할 것입니다. 이자를 보면서 확실해졌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그래서 검제가 본 파로 온 모양이구나.”
“그렇습니다.”
‘어허…… 이런 일이…….’
창천의 공격.
다급하며 심각한 일임에 틀림없었다.
한데, 창천에서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알면서도 신무맹에서는 아무런 소식도 전해오지 않았다.
더구나 이휘연은 원군도 함께하지 않았다.
진무도인은 이유가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검제. 신무맹에서는 이를 모르는가?”
“몇 사람만 알 뿐 비밀에 붙였습니다.”
“그 이유가 뭔가?”
“죄송한 말씀이지만 창천이 무당을 공격하려는 계획을 바꾸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으음, 저들의 목표는 산동성이 아니었단 말이구나.”
“걸황은 안휘성을 친 후 그들은 정파무림의 핵심을 노릴 것이라 보았습니다.”
“본 파이구나.”
“물론 확신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창천 또한 신무맹이 본 파를 예상할 것이라곤 짚지 못했다는 뜻이군.”
진무도인은 이해가 되었다.
창천에서도 신무맹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을 터.
“장문인님, 이자는 알고 있었습니다. 창천에서 오는 사실을 알고 그 전에 살기 위해 빠져나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파문까지는 즉흥적으로 나온 말인지는 모르나, 창천에서 좋은 자리를 제의했을 테지요. 창천에서 배신자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 핑계를 대고 무당의 멸문과 상관없는 파문을 원한 것입니다.”
“어허…… 어떻게 그대가…….”
진무도인은 굳은 표정으로 진조진인을 보았다.
끝났다.
정말로 창천에서 연락이 왔다.
무당파의 분위기를 알려달라는 내용과 함께 창천영문에서 공격할 것이라 했다.
“큭, 크하하하! 그래, 맞소! 이놈의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소! 하나 창천이 오는 사실을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오! 무당은 창천에 의해 하나도 남김없이 중원 무림에서 사라지게 될 테니까!”
휙!
이휘연의 주먹이 진조진인의 얼굴을 가격했다.
“더러운 입으로 무당을 말하지 마라.”
퍼어억!
진조진인의 고개를 돌아가면서 바닥에 다시 주저앉았다.
“크크크크.”
그는 쓰러진 채로 괴소를 터뜨렸다.
“이노오옴!! 조만간 네놈도 그분에 의해 목이 잘려 나갈 것이다!”
“당신의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오.”
“네놈이 왔다고 해서 도움이 될 것 같으냐?”
“안 되는 이유가 있나?”
“크크크크. 잘났다 잘났다 하니 네놈이 강한 줄 아는군! 하지만 아무리 강해도 일만의 창천영문을 상대로 이길 수 있다고 보는가? 이미 늦었다. 지금쯤이면 거의 도착했겠지. 멍청한 놈, 차라리 신무맹에 알렸다면 멸문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 이건 잘난 척하는 네놈 때문이다.”
“좋은 정보군. 그 정도면 싸울 맛이 나겠어. 지금까지 창천과 싸웠지만 너무 시시했지. 일만이라면 싸워볼 만하다.”
이휘연의 자신만만한 표정은 허풍이 아니었다.
“큭,. 검제, 강한 척해도 속으로 떨고 있다는 것을 안다. 며칠 내에 무당은 세상에서 사라지게 될 거라고!”
“내기할까? 창천이 사라질지, 아니면 무당파가 사라질지.”
“…….”
“아니지. 그 전에 당신이 먼저 죽을 테니 결과는 알 수 없을지도 모르겠군. 아니면 결과를 알 때까지 살려줄까?”
쉬이이익-
핏핏핏핏!
이휘연의 손에서 기가 뻗어 나가며 진조진인을 점혈시켰다.
쿠웅.
그는 몸이 굳어진 채 바닥에 쓰러졌다.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인물.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낀 이유가 이것이 아니었을까.
진무도인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듯싶자 궁금한 것을 모두 묻기로 했다.
“검제,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겠네. 창천에서는 산동성을 공격한다고 소문이 나지 않았느냐? 게다가 개방에서 바로 움직인다고 들었다. 두 군데를 동시에 공격하려는 것인가?”
“제가 모두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주위의 시선들이 이휘연에게 집중되었다.
“우선 그 전에 저자를 처리하는 게 좋겠습니다.”
“현우는 이자를 끌고 가서 옥에 가두어라.”
자소궁 호천대주 현우도사가 움직이지 못한 진조진인을 끌어냈다.
힘없이 축 처진 그의 모습을 보면서 어느 누구도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후, 이휘연은 신무맹에서 무당파에 오기까지 일어났던 일을 설명했다.
자소궁의 대전에 모인 무당파의 주요 인물들은 이제야 이해가 되었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검제, 신무맹이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를 알았네. 상대가 일만 명이라 하네. 걸황이라면 어떻게 좋은 계획을 세웠을 텐데 아닌가?”
진무도인은 걱정이 되지 않았다.
걸황이 어떠한 인물인지 어느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신했다.
일황사제는 서로에 대해 끈끈하게 이어져 있다.
특히나 걸황이 네 명에게 느끼는 감정은 가족이었다.
검제를 홀로 적진에 보내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
“장문인님께서는 걸황에 대해 잘 아시는 듯합니다.”
“허허허, 걸황이 누구인가. 세상에 그런 능구렁이가 어디 있을까. 분명 검제를 보내면서 안배를 두서너 가지 숨겨놓았을 게 분명하네.”
“맞습니다. 창천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신무맹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그 대신 무당산 주위로 은하궁에서 비밀리에 원군을 보냈습니다.”
“허허허. 은하궁이라…… 나도 그 생각은 전혀 못했네. 창천에서도 예상을 못하고 있겠군.”
“그렇습니다. 창천은 신무맹의 움직임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무당파를 치기 위해 올라오는 순간 은하궁에서 그들의 뒤를 칠 것입니다.”
“역시 걸황이지 않는가. 산동성으로 움직이는 개방으로 창천에게 미끼를 던지고 은하궁으로 마무리를 하려는 모양이야.”
“그리고 또 있습니다.”
“그렇지. 은하궁 외에도 다른 안배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네.”
“검문에서도 도움을 주기로 했습니다.”
“후후후. 검문이라…….”
진무도인의 얼굴에 미소가 단번에 나왔다.
은하궁과 검문.
중원 최고의 힘을 지닌 문파들이었다.
두 문파에서 도움을 준다면 창천의 본진이 쳐들어온다고 해도 막아낼 자신이 있었다.
안색이 밝아지는 건 장문인 진무도인뿐 아니라 나머지 도인들도 같았다.
“장문인님, 지금부터는 조용히 준비를 하는 게 좋습니다.”
“알겠네.”
장문인 진무도인은 각 당급의 도인들에게 명을 내렸다.
“검제의 말을 들었을 것이네. 저들이 이번에는 우리를 건드릴 모양인가 보네. 걸황의 말에 의하면 중원 무림에 가장 충격을 줄 수 있는 문파라고 하지 않는가.
모두 자부심을 가지고 그들에게 정파의 힘을 보여주도록 하세나.”
“장문인, 걱정 마시지요. 그들은 절대로 무당산을 오르지 못할 것이외다.”
“진경, 자네가 있어 늘 든든하다네. 앞으로 나오게.”
무당파의 제일 무력당인 천주당.
진경진인이 포권을 하며 한 걸음 나섰다.
장문인 진무도인은 옥좌 옆에 내려놓았던 검집이 낡은 한 자루의 검을 들었다.
진무도인은 앞으로 나온 그에게 검을 건넸다.
“이번 결전의 수장은 진경이 맡을 것이네.”
“최선을 다해 무당의 영광을 세상에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진경진인은 두 손으로 검을 받은 뒤 돌아섰다.
* * *
진무도인은 이보다 공손한 자세를 취한 적이 없었다.
사부였던 공영진인에게도 긴장하며 대한 적은 없었다.
“허어. 그때 그 아이가 자네였단 말인가?”
“네. 어르신. 제가 맞습니다.”
“클클클. 공영이 말년에 거두었다는 제자가 자네였구만.”
“어르신께 어떻게 감사의 인사를 올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난 아무것도 한 일이 없네.”
“검제를 살려주시지 않으셨습니까?”
“클클클. 저 녀석이야 내가 없어도 알아서 잘 살아갈 놈이었네.”
“살아갈 수 있지만 늘 불안했겠지요.”
“근데 그 녀석은 어디에 갔느냐?”
“예전에 사부와 지냈던 유유암에 갔을 것입니다.”
“사부와 정이 꽤나 깊은 모양이구먼.”
“천살성을 타고난 검제를 끝까지 책임졌던 이가 진양이었습니다.”
“그래도 그가 있어서 다행이었군. 그 녀석이 무당을 버리지 않은 이유가 사부 때문이었을 테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제가 정말로 큰일을 하고 떠났지요.”
이휘연은 천천히 유유암으로 올랐다.
사람이 인적이 끊어진 지 오래되었는지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사부님, 제자 유운이 왔습니다.’
이휘연은 불이 꺼져 있는 방을 향해 절을 하였다.
대청에 앉아 있는 사부의 모습이 떠올랐다.
“싸늘할 줄 알았는데…… 그 정도는 아니구나.”
가끔씩 청소를 하였는지 깨끗하게 유지된 상태였다.
이휘연은 한동안 대청에 앉아 멍하니 앞을 보았다.
세상은 너무나 평온하게 보였다.
모든 것을 잊고 조용히 지내는 것도 좋을 듯했다.
유유암을 밝히는 달이 움직였다.
올라온 지 시간이 제법 지났다.
스윽.
이휘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사부님께서 기다리시겠군.”
유유암을 물러나기 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돌아보았다.
‘사부님, 그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에는 이곳에서 하루를 머물고 가겠습니다.’
* * *
드륵.
이휘연은 방문을 조용히 닫았다.
돌아서 나가려는데, 방 안에서 현현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잘 때는 자는 것이니라.”
“네, 알겠습니다.”
이휘연은 방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라는 그의 뜻을 이해하였다.
현현자가 한 말처럼 바로 침상에 누웠다.
오랜만에 무당의 냄새를 맡으면서 눈을 감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잠을 자고 있던 이휘연은 다시 눈을 떴다.
‘누구지?’
천살성의 감각을 피할 수 있는 기는 없었다.
‘방향은…… 옥형옥이군.’
현재 옥형옥에 갇혀 있는 인물은 진조진인.
침입자의 목적은 그를 구하거나 죽이려고 것일 터.
‘네놈들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휘익.
이휘연의 신형이 침상에서 사라졌다.
샷샷샷샷-
어둠 속을 뚫고 빠르게 달리는 사내.
‘킁킁. 대체 이놈은 어디에 있지?’
사내는 코를 실룩거리면서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후각을 따라 도착한 장소는 옥형옥의 입구.
당황한 눈빛이 흘렀다.
‘이…… 놈이…… 잡혔단 말인가?’
무당파의 상황에 대해 하루에 한 번씩 소식을 받아야 했다.
갑자기 끊긴 연락에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직접 찾으러 온 것.
‘우선…… 안에 들어가서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한다.’
사내의 신형이 빠르게 움직이며 옥형옥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제집 드나들듯 다니다니 간이 크군.’
이휘연이 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차례 차가운 시선을 준 이휘연도 옥형옥으로 신형이 사라졌다.
저벅저벅.
사내는 안력을 높이며 형옥의 주위를 살폈다.
가로 세로 한 뼘 정도 되는 옥문의 구멍 사이로 옥방을 확인했다.
확인하는 족족 텅 빈 채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꽁꽁 숨겨놓았군.
열 개의 옥방 중 마지막으로 남은 하나.
드륵-
철문으로 된 확인창을 옆으로 젖혔다.
어둠이 짙었지만 안력을 올리자 사람이 있는 것이 보였다.
“찾았다. 여기 있군.”
그리고 옥방의 손잡이를 잡는 찰나, 뒤에서 기척이 들렸다.
“창천에서 왔나?”
사내가 움찔거렸다.
바로 뒤에까지 다가온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고수…….’
돌아서는 순간 목이 잘릴 것 같은 싸늘한 기운이 밀려왔다.
“돌아서라. 목이 잘리지는 않는다.”
“…….”
사신 같은 차가운 목소리.
마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했다.
사내는 천천히 돌아섰다.
‘도…… 사.’
상당히 젊은 도사였다.
“넌…… 누구냐?”
“눈이 보이지 않나?”
“무당에는 기척을 내지 않고 나를 찾아낼 수 있는 인물이 없다.”
“무당을 모욕하는군. 목이 잘릴 걱정을 하는 인물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
“창천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중원 무림을 너무 얕잡아보고 있어. 내가 보기에는 별 차이도 없거늘.”
‘건방진 놈. 나를 바로 죽였어야 했다. 그게 네놈이 죽는 이유가 될 터!”
사내는 한순간을 노리며 매섭게 뒤를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