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 진조도인을 잡다
번쩍.
무극신창이 폭발했다.
산폭광결(散爆光結)의 초식이 터지면서 공격하던 표사들이 우후죽순 튕겨져 나갔다.
‘어…… 어……!’
표두 권길은 온몸에 힘이 빠져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끝났어. 모든 것들이…….’
북방이란 이름은 더 이상 재기할 수 없을 것이다.
휘이익!
표사들이 쓰러진 자리 위로 십여 명의 인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표사가 아닌 무인들.
당무독은 단번에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창천에서 온 놈들이군.”
“크크크. 죽고 싶어서 안달이 났군.”
저인현은 살기를 내뿜었다.
표사들쯤이야 쉽게 처리할 수 있는 무인.
저인현은 상대가 누구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얕잡아 보았다.
“죽는 건 네놈들이지.”
툭.
당무독은 어깨에 멘 가방 안에서 둥근 물건을 꺼내 가볍게 굴렸다.
데구루루-
바닥으로 구르며 다가오는 둥근 물체.
저인현의 두 눈이 커졌다.
‘이건……?’
콰아아아앙!!
눈앞에서 번쩍이며 터진 폭탄.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에 십여 명의 인영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들의 온몸에는 독침이 박혀 있었다.
‘독제!!’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독천뢰를 던지는 모습.
준극남은 당무독의 등을 보면서 침을 삼켰다.
‘같은 편이라서 다행이지. 만일 적으로 마주친다면…… 으으으…….’
생각하기도 끔찍한 일이었다.
권길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독제를 상대로 무턱대고 덤볐다가는 전부 죽을 수밖에 없다.
‘살려면 여기서 도망가야 한다.’
그는 북방상국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일황사제가 그들을 한 번 봐주었다는 잘 알았다.
‘하기 싫었는데…… 괜히……!’
우루루루-
곧이어 표국 내전에서 한 무리가 빠르게 몰려나오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웬 놈들이 정문을 부수고 쳐들어왔다는 보고를 받은 백진묵이 뛰쳐나온 것.
놈들 중 한 명은 위황창신 준극남의 인상착의와 비슷하다고 했다.
다행히 지금 그의 곁에는 창천의 고수들이 함께 있었다.
‘이들, 이들이라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궁수대들을 준비했다.
하지만 그의 기대는 단번에 무너졌다.
창천의 무인들이 나선다면 두 명 정도는 충분히 막아야 하는 게 아닌가?
기대와 달리,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비참했다.
먼저 나섰던 창천 소속의 무인들은 처참한 죽음을 맞고 쓰러져 있었다.
“어…… 떻게……?”
그는 말문이 제대로 막혔다.
믿기지 않는 장면들.
‘꿈인가?’
찌이이잉-
내력이 울리는 소리.
백진묵은 소리가 난 방향을 보았다.
걸황의 무리들이 확실했다.
그럼에도 백진묵의 표정은 당당했다.
준극남과 당무독을 향해 소리쳤다.
“대체……! 신무맹에서 왜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오?!”
“어처구니없군.”
당무독은 그를 보며 앞으로 나섰다.
“태원평의 일을 모르고 소리를 치는 것인가?”
백진묵의 눈빛이 순간 흔들거렸다.
‘설마…….’
그는 어떠한 연락도 받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다.
백후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백진묵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으니까.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태원평의 일이라는 게 무엇이오?”
“태원평에 숨어 있던 놈들을 모두 제거했소. 그 과정에서 뜻밖의 이름이 나오더군. 북방이라고 말이야. 참고로 북야평에서 지부도 찾아냈소이다.”
“소, 소구척은 어떻게 되었소?”
“깔끔하게 정리했지.”
“백…… 후…… 그는?”
“그는 우리들에게 모든 사실을 알려주고 떠났소이다.”
‘망할 새끼…….’
백진묵의 표정이 굳어졌다.
모든 사실을 불었다면 북방표국은 이미 그 순간 끝이었다.
털썩.
백진묵은 바로 주저앉았다.
여기서 두 놈을 죽인다고 해도 중원에선 더 이상 사업을 할 수 없었다.
환금호로 재기하려던 계획이 완전히 무너졌다.
“이거 참 어이없군.”
그때, 백진묵 뒤로 그와 함께 나왔던 사내가 실소를 지었다.
“독제라 했나?”
“…….”
“일황사제, 네놈들은 언젠가 한번 붙어보고 싶었다.”
“창천의 인물이군. 우리와 붙어볼 정도의 실력이 된다고 보는가?”
“크크크큭. 똑바로 들어라. 난 창천동문의 동문백군장 종형소다. 조금 있으면 여기로 동문백군이 몰려올 것이다.”
“친절하게 알려줘서 고맙군.”
당무독은 준극남과 눈빛을 교환했다.
“여긴 혼자 있어도 괜찮으니 정리하고 오시죠.”
“알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준극남은 바로 돌아서며 밖으로 나갔다.
혼자 남겨두었지만 당무독에 대해선 전혀 걱정이 없었다.
차라리 걱정되는 쪽은 상대방이었다.
종형소는 혼자 밖으로 나간 준극남을 보며 인상을 썼다.
“설마 그 혼자서 동문백군을 맡겠다는 것은 아니겠지?”
“왜 못 맡는다고 생각하지? 그는 걸황의 천상호위 위황창신 준극남이오.”
“…….”
독제 당무독이 자신 있게 말하자 오히려 종형소가 당황했다.
퍼억!
그리고 힘없이 주저앉은 백진묵을 걷어찼다.
북방표국은 이미 끝이 났다.
“한심한 놈.”
종형소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우우우웅-
그리고 전신의 내력을 끌어 올렸다.
“독제, 여전히 나를 얕잡아 보는군.”
“당신이 약하니까.”
“크크크. 내가 약하다고? 멍청한 놈. 넌 이미 죽은 목숨이다!”
스윽-
순간 당무독의 뒤에 모습을 드러낸 인영.
동시에 상대의 검이 당무독의 목 앞에서 멈췄다.
“크크크. 독제, 어떤가?”
“뭘 말하는가?”
“목에 칼이 닿는데도 허세를 부리는군. 내가 한마디만 삐긋하면 그대의 목이 잘릴 텐데. 제발 살려달라고 부탁하면 생각은 해보지.”
“참 나, 잠시 장난을 받아줬더니 진짜인 줄 아네.”
당무독은 목에 닿은 검을 두 손가락으로 잡았다.
“……!”
종형소의 눈이 커지면서 수하에게 다급하게 소리쳤다.
“어서 그놈을 죽여라!”
“이거 너무 기대감을 준 것 같소이다.”
당무독이 옆으로 비켜서자 어느샌가 수하의 목에 비침이 꽂혀 있었다.
수하를 제압한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언제……?”
“당신이 내 뒤로 다가올 때 던져 놓았지. 오늘 처음 실전에 사용한 놈이오. 정확히 삼 보 뒤에 사지 마비가 되는 것으로 봐서 삼보마비독으로 이름을 지어야겠소이다.”
“……!”
핏핏핏!
당무독은 손가락을 튕겼다.
종형소는 고개를 숙여 허벅지를 내려다보았다.
작고 얇은 비침이 박혀 있었다.
“이건…… 뭐지?”
“뭐긴. 삼보마비독침이지.”
“비…… 겁하게…….”
“어이가 없군. 난 독침 전문가야. 독침을 안 쏘면 어떻게 싸우라는 것인지. 참 매번 답답해.”
“독…… 제라는 놈이…….”
“위명에 걸맞게 제대로 독침을 쏟아줄까? 많이 아플 텐데.”
“…….”
우우우우-
당무독은 두 손에 내력을 끌어 올린 뒤 손바닥을 폈다.
파아아앗!
손바닥에서 퍼져 나온 일천 개의 비침들.
스으윽-
당무독이 천천히 방향을 돌리며 종형소를 향했다.
‘헉.’
“네놈이 원했으니 어쩔 수 없군. 이건 천살비우(千殺飛雨)라고 하지.”
휘익!
양손을 앞으로 뻗자,
슈우우우우욱.
일천 개의 비침이 종형소를 지나쳤다.
핏핏핏핏핏핏!
종형소는 호신강기를 일으키며 강막을 펼치려고 했지만, 이미 그의 몸은 마비가 되어 움직일 수 없었다.
천살비우가 그의 몸에 박히지 않는 곳이 없었다.
콰아아앙!!
그와 동시에, 표국의 밖에서 굉음이 들렸다.
‘저기도 조만간 끝이 나겠군.’
* * *
현현자는 여전히 이휘연의 등에 업힌 채 주위를 구경했다.
“이렇게 올라가니 무당산도 별로 험하지 않구나.”
“다행입니다.”
이휘연이 지나가는 길옆 아래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이 펼쳐져 있었다.
“무당 도사 놈들은 왜 이런 곳에 도당을 만들었는지 모르겠어. 올라오다 보면 중간중간에 경치도 좋고 기운도 좋은 곳이 많거늘. 더구나 장삼봉 조사께서도 청화지에 터를 잡으셨다고 하셨지 않았느냐?”
“음양의 기를 잘 받는 곳이 금정이라 하여 후손들이 옮겨 천주봉 주위에 터를 지으셨다고 들었습니다.”
“허허허. 무당에겐 음양이 중요하지. 하지만 그것도 너무 과하면 탈이 나는 법이다.”
“그래서 조화를 익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따아악!
현현자는 손에 든 타구봉으로 가볍게 때렸다.
“이놈아, 멍청한 네놈이 나를 가르치려 드느냐?”
“죄송합니다.”
“헛똑똑이로다. 조화가 바로 세상을 알아도 모르는 척하는 법이다. 아무리 개방의 거지가 되었다고 하지만 도사란 놈이 그것도 모르느냐.”
“태사부님의 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쯔쯔. 네놈을 데리고 한 십 년 동안 가르치고 싶다만 바쁜 녀석이라 어쩔 수 없군.”
“항상 태사부님의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클클클. 많이 맞을 텐데 괜찮으냐?”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면 언제든지 맞아도 됩니다.”
“이런 얼빠진 녀석이 있나. 세상이 맞는 게 좋다는 놈은 네놈밖에 없을 것 같구나. 클클클.”
현현자는 기분이 좋았다.
“걸황이란 놈이 그렇게 대단한 녀석이냐?”
“네. 그렇습니다.”
“네놈보다 더?”
“태사부님께서 알아도 모르는 척하시라고 하셨지만, 그는 그럴 필요가 없는 인물입니다. 세상의 이치가 맞지 않는 인물이 걸황입니다.”
“오호…… 정말 궁금한 녀석이로구먼. 기대가 되는구나.”
“……만나보시면 아시겠지만…… 그의 성격이 단순한 면도 있어 걱정이 됩니다.”
“클클클. 그 녀석이 걱정이 되는 모양이구나.”
“…….”
이휘연은 이것만은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제 걱정은 부장이 아니라 태사부님께서 화를 엄청 내시지 않을까 싶어서입니다…….’
* * *
검제가 자소궁으로 들어선다고 연락이 왔다.
처음 보는 노도를 업은 채 산문에서부터 올라왔다는 보고였다.
‘무슨 일인고.’
장문인 진무도인은 신무맹으로부터 따로 연락을 받은 게 없었다.
검제 이휘연이 혼자서 올 이유가 없었다.
스윽.
진무도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문인, 어디를 가십니까?”
“검제가 온다고 하지 않소. 예의를 다해 맞이해야지요.”
“흐음…… 검제가 오는데 장문인께서 나가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진조진인이 딱딱하게 말을 했다.
여전히 일황사제에게 앙금이 남아 있었다.
“진조 사제, 검제가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그의 앞에서는 내색은 하지 말게.”
“장문인, 문파의 어른이 유자배 제자에게 눈치를 봐야 하겠습니까?”
“허허. 자네는 아직도 검제가 본 파의 삼대제자라고 보고 있는가? 장문인으로서 충고를 하겠네. 검제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이나 말을 하게 된다면 자네를 내쫓을 것이네.”
“장문인,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이오? 저를 내쫓는다고 하셨소이까?”
“그러하다네.”
“좋습니다! 마음대로 하시지요.”
“자네에게는 이제 장문인의 말조차 무시하는군.”
“알겠소이다. 쫓겨나가는 것보다 차라리 내가 스스로 자진해서 나가겠소이다. 이제 됐소이까?”
진조진인은 눈을 부릅뜨며 목소리를 올렸다.
장문인은 그의 생각을 읽었다.
“그렇군. 자네는 나갈 생각을 하고 있었어. 검제는 단지 나가지 위한 명분이 필요한 것이었던 모양이네. 내 말이 맞는가?”
“…….”
“왜 대답을 하지 않는가? 정정당당하게 무당을 나가겠다고 말할 자신이 없는 모양이지?”
진조진인은 무엇인가 하고 싶은 말을 꾹 참는 듯 보였다.
“됐소이다. 천살성을 가진 녀석이 무공이 강하다고 해서 떠받는 짓거리를 더 이상은 못 보겠소이다.”
“허허. 어찌 생각이 그렇게 꼬였소이까?”
휘익!
그는 허리에 찬 신패를 뜯어낸 후 장문인 진무도인에게 던졌다.
“오늘부로 난 무당파의 도인이 아니외다.”
휙.
진조진인은 자소궁을 나가려고 몸을 돌렸다.
‘헉!’
언제 뒤에 다가왔는지 익숙한 사내의 얼굴이 나타났다.
이휘연은 등에 현현자를 업은 채 진조진인을 노려보았다.
“비…… 켜라!”
이휘연의 눈빛에 순간 몸이 흠칫거렸다.
진조진인은 목소리가 떨렸다.
“당신이 무당파를 스스로 나가겠다고?”
“…….”
“내가 알고 있던 그 진조란 인물이 과연 나 때문에 파문하겠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군.”
“시끄럽다. 비켜라.”
“시끄러운 건 당신이다. 감히 무당파의 본전에서 외부인이 소란스럽게 소리를 치고 있지 않은가?”
“이…… 놈이……!”
진조진인은 옆으로 비켜섰다.
하지만 이휘연은 팔을 뻗어 그의 앞을 막았다.
“잠시 기다려.”
“뭣이……!”
휘익!
진조진인은 신법을 펼치며 빠져나가려고 했다.
“무당파를 파문하는 자가 감히 무당의 무공을 펼치다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 무당에게 받은 것들은 모두 내려놓고 가라.”
휘리리릭!
이휘연은 그의 도포자락을 잡은 뒤 감았다.
퍼억!
그리고 단전을 향해 태극무력장을 펼쳤다.
‘커억,’
옆으로 빠져나가려던 진조진인의 몸이 휘청거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죄송하지만 잠시 이자를 막아주십시오.”
웅성.
급작스러운 상황에 도인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웅성거렸다.
“검제의 말대로 그를 막으시오!”
장문인의 명을 듣자 십여 명의 도인들이 진조진인의 포위하며 막아섰다.
“클클클. 재미있구나. 나를 내려놓아라.”
“태사부님, 알겠습니다.”
진무도인은 등에서 내린 노도인의 신분이 궁금했다.
‘태사부님이라…….’
무당파의 고인은 아닌 듯했다.
청아한 기.
맑은 현기를 가진 도문은 사천의 청성파였다.
“장문인. 노도는 청성의 만우라고 하네.”
만우라 하면…….
“현현자님을 뵙습니다.”
진무도인뿐만 아니라 대전에 든 모든 도인들이 깜짝 놀랐다.
심지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진조진인까지.
“클클. 나중에 따로 인사를 나누세. 지금은 바쁜 듯하니.”
“알겠습니다.”
스윽.
이휘연은 의자를 준비했다.
“클클. 고맙구나.”
현현자는 자리에 앉아 상황을 주시했다.
“장문인님. 갑자기 소란을 일으키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니다. 무슨 일이더냐?”
“파문을 한 그에게 질문을 해도 되겠습니까?”
“검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괜찮네.”
“감사합니다.”
이휘연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진조도인의 앞으로 다가섰다.
그를 포위했던 도인들이 물러났다.
“일어나시오.”
“…….”
진조진인은 이휘연의 뜨거운 시선을 받아낼 수 없었다.
그의 신형에서 흐르는 도기에 위엄까지 느껴졌다.
전에 봤을 때와 또 다른 강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