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 백후를 깨다
소구척은 태원평으로부터 동쪽에 위치한 마을이었다.
성철각과 황보궁은 봇짐상 복장을 한 채, 등에 물건을 지고서 마을 초입에 들어섰다.
북야평에서도 물류가 많이 이루어지는 마을이라 사람들이 많았다.
웅성웅성.
마을 중심가에 들어서자 중원의 여느 마을과 비슷했다.
“형, 사람들에게 물어봐야겠지?”
“그래. 그게 좋겠어.”
황보궁이 마침 다가오는 사내를 보았다.
의복 상인인 듯한 그의 손에는 광목천이 들려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이고, 깜짝이야!”
덩치가 산만 한 청년이 갑자기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니…… 됐다.”
커다란 덩치와 달리 인사성이 좋은 황보궁을 본 사내가 안심했다.
“이곳 사람 같지는 않군. 물건 팔러 온 모양이지?”
“네. 여기에 북방표국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어디인지 모르겠습니다.”
“북방?”
사내는 고개를 좌우로 까닥거리며 모르는 눈빛이었다.
“어…… 처음 듣는데?”
마침 옆에 지나가는 지인을 보았는지 사내가 소리쳤다.
“이봐, 혹시 우리 마을에 북방표국이 있었나?”
“북방? 표국이 있었나? 모르겠는데…… 아, 혹시 동변에 있는 그곳을 말하는 게 아닌가? 가끔 물건들이 꽤 많이 오지 않던가?”
“아…… 맞네. 그러고 보니 표사복을 입은 인물들이 드나들긴 했어.”
사내는 손을 뻗어 동변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저기로 가보게. 장원이 하나 보일 거야.”
“고맙습니다.”
황보궁은 얼른 감사의 인사를 했다.
“허허허, 자네, 인사성이 밝아서 장사는 잘하겠구만. 여기에서 반각도 안 되네.”
성철각과 황보궁은 동변 방향으로 향했다.
사내의 말대로 얼마 걷지 않아 정문이 닫힌 장원이 나타났다.
높은 담벽에 막혀 장원 안은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장원의 규모가 상당히 컸다.
“궁아, 저기다.”
“형, 어떻게 몰래 들어가서 확인을 해볼까요?”
“잠깐만…….”
성철각은 장원의 정문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정상적이라면 정문에 위사가 있어야 했다.
‘틀림없어. 북방표국의 지부가 맞아.’
“그냥 정문으로 들어가자. 몰래 들어갈 만큼 대단한 곳도 아니잖아.”
“알겠어요.”
황보궁과 성철각은 장원의 정문으로 다가섰다.
현판이 달려 있어야 할 정문 위는 비어 있었다.
“수상하긴 해.”
황보궁이 손을 뻗어 문을 밀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형, 안에서 잠겨 있는 것 같은데요?”
“그래? 한 번 두드려 봐. 누가 나오는지 보자.”
“알겠어요.”
탕탕!
황보궁은 커다란 손으로 정문을 두드렸다.
“안에 없습니까?”
황보궁의 목소리는 충분히 컸다.
장원 안에서 듣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안에서는 기척이 없었다.
“나올 때까지 두드려 봐.”
쾅쾅쾅!
이번에는 좀 더 강하게 정문을 쳤다.
황보궁의 힘에 문과 연결된 경첩이 떨어져 나갈 듯했다.
‘어쭈, 이래도 반응이 없어?’
황보궁이 손에 힘을 조금 더 준 뒤 정문을 두드리려는 순간.
짜증이 잔뜩 묻은 목소리가 울렸다.
“어떤 새끼야?”
장원 안에서 화를 내는 소리가 울리며 문이 덜컹 열렸다.
하지만 사내는 밖으로 나오자마자 흠칫했다.
일반 성인보다 큰 덩치가 정문에 손을 올린 채 서 있었다.
“누구…… 요?”
“볼일이 있어 왔소이다.”
“……?”
사내는 황보궁의 등에 짐을 보았다.
일반 봇짐상들이 등에 짊어지고 다니는 것과 같았다.
“이 자식이…… 꺼져. 우린 네놈들 같은 개인 장사꾼들은 상대 안 해.”
“표국이라고 하던데요? 이상하네.”
“뭐가 이상해?”
“환금호 천 근을 실어야 하는데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지?”
“……?!”
사내는 당황했는지 눈동자가 흔들거렸다.
“어…… 디서 왔…… 지?”
“육 총관님이 몰래 다녀오라고 해서 왔어요. 태원평에 갑자기 일이 생기는 바람에 다음 물량을 비밀리에 다른 장소에 숨겨야 한다면서 우리를 보냈거든요.”
“정…… 말이냐?”
스윽.
황보궁은 주섬주섬거리며 허리춤에서 신패를 꺼냈다.
“이거 맞나요?”
“그건……?”
“육 총관님께서 신패를 보여주면 된다고 하던데요.”
육서웅의 신패가 확실했다.
휘익. 휙.
사내는 좌우로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정문 주위에는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그가 급히 손짓했다.
“뭣들 해. 빨리 들어와.”
“넵. 알겠습니다.”
황보궁과 성철각이 장원으로 들어섰다.
“따라와. 내가 이곳 책임자이신 백후 님께 데려다주지.”
“백후 님이 계세요?”
“그분을 알아?”
“당연히 알죠. 북방상국 시절 돈귀신이라 불린 사람이잖아요.”
“허어…… 하긴 그분이 중원에 유명하긴 했어.”
사내는 백후를 알아봐 주었다는 것에 도취된 듯했다.
곧 장원의 정원을 지나 경내 안으로 들어섰다.
외부인이 보이자 모두 지나가던 걸음을 멈춘 채 두 사람에게 집중했다.
이윽고, 장원에서 가장 화려한 건물에 도착하자, 사내가 전각 안으로 보고를 했다.
“지부장님.”
“무슨 일인가?”
“태원평에서 육 총관이 사람을 보낸 듯합니다.”
“…….”
전각 안에선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밖으로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드르르르륵.
문이 무겁게 열리면서 굳어진 인상으로 나오는 인영.
백후가 틀림없었다.
성철각은 그를 보며 씨익 웃었다.
백후를 보자 확실해졌다.
환금호를 가지고 간 곳이 여기였다.
“오랜만입니다.”
‘저…… 자는……!’
손을 번쩍 든 장신의 인물.
미소를 지은 채 서 있는 그가 누구인지 잊을 리가 없었다.
“다…… 당신이…….어떻게……?”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군요. 중원에서 먼 이곳에 북방표국의 지부가 있다니 신기합니다. 걸황이 이 사실을 알면 어떻게 생각할까요?”
“……!”
‘두 사람뿐인가?’
백후는 얼른 두 명밖에 없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문제는 두 명 중 한 명이 각제라는 것.
“각제…… 우리도 먹고살아야 하지 않겠소. 이 정도도 못하는 것이오?”
“북방상국을 인수하면서 충분히 보상을 해준 것으로 압니다만…… 그게 아닌 모양이외다.”
“보상을 했다고 해서 일도 없이 놀고먹을 수는 없지 않소이까. 사람이라면 일이라도 해야지요.”
“그래서 그 일이라는 게 남의 물건을 훔쳐서 창천에 파는 것이었소?”
‘모두 알고 왔어. 젠장…… 할…….’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우린…… 훔치지 않았소. 태원평의 총관에게 돈을 주고 받아왔을 뿐이외다.”
“겨우 천 근도 되지 않는 뇌물로 만 근 이상을 지불했다고 하면 누가 믿겠소이까.”
‘헉…… 그것까지…….’
도저히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이판사판이었다.
“뭐, 뭣들 하느냐. 이놈들을 잡아서 죽여라!”
우루루루-
백후의 명령에 주위에서 대기하던 수하들이 성철각과 황보궁을 향해 달려들었다.
“궁아, 저자를 잡아. 이들은 내가 처리할게.”
“옙.”
타앗!
황보궁은 바닥을 차며 백후 앞에 다가섰다.
‘헉…… 언제…….’
퍼억!
백후의 복부에 황보궁의 주먹이 박혔다.
“커어어억.”
배 속의 모든 장기들이 튀어나올 뻔했다.
백후는 헛구역질을 하면서 아래로 쓰러졌다.
성철각은 움직이지도 않았다.
휘이이익!
휙!
그저 제자리에서 발만 허공을 움직여도 충분했다.
“아아악!!”
“커어어억-”
달려든 사내들의 비명 소리가 터지면서 사방에 쓰러졌다.
반각이 지났다.
“끄으으응.”
백후의 정신이 돌아왔다.
‘헉…….’
눈을 뜨자 사방에 쓰러져 있는 수하들이 보였다.
허둥지둥거리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내…… 이럴 줄 알았다.’
후회가 밀려왔다.
환금호를 처리하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걸릴 것이라 예상했다.
백후는 정말로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차라리 마음 편하게 지내는 게 가장 좋은 것임을 이제야 알았다.
살아봤자 몇십 년을 더 살겠는가.
마지막으로 기회를 준다면 편하게 살고 싶었다.
“각제, 모든 것을 말하겠소이다.”
“그렇게 하죠.”
백후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감정.
‘허어…… 이런 기분인가?’
* * *
두두두두-
불사투군단은 대막을 가로지르며 빠르게 달렸다.
중원 무림에서 태양궁을 공격하기 힘든 이유는 강해서가 아니었다.
사막 속에 숨어 있는 태양궁의 위치를 정확히 모르기에, 함부로 들어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직 한 곳만이 태양궁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미공서는 선두에 서서 정확히 태양궁을 향해 움직였다.
대막의 모래 폭풍도 불사투군단의 진격을 막아내지 못했다.
“저기, 마지막 언덕만 넘어서면 태양궁이다.”
미공서의 말은 정확했다.
언덕에 올라서자 아래로 푸른 녹지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안에 거대한 성이 나타났다.
“오랜만이군. 십 년 만인가? 여기는 변한 게 없는 것 같군.”
타앗!
미공서는 말고삐를 잡아당기며 말허리를 가볍게 찼다.
“가자!”
불사투군단은 모래 언덕 아래를 달리기 시작했다.
* * *
“큰일 났습니다!”
태양전으로 달려오는 수하가 소리쳤다.
태양궁주 살유탑은 인상을 썼다.
“왜 호들갑이지? 누가 쳐들어오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어떻게 아셨습니까? 지금 궁 밖에 이상한 무리들이 달려오고 있습니다.”
“하하하하! 어떤 미친놈이 본 궁에 쳐들어온다고?”
살유탑은 대소를 터뜨렸다.
대막에서 태양궁보다 강한 세력은 없다.
누가 쳐들어와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고 확신했다.
“누구냐? 그놈들이?”
“그들 무리 속에서 불사(不死)과 투군(鬪軍)의 깃발이 보였다고 했습니다.”
‘커…… 억.’
살유탑은 갑자기 숨이 막히는 듯했다.
불사와 투군.
‘설마…… 불사투군이라면 투룡군광검 미공서……!’
살유탑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밖으로 나가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했다.
휘익!
그는 태양전에서 순식간에 밖으로 사라졌다.
‘무슨 일이지?’
성문으로 빠르게 달려가던 살유탑의 눈에 걱정이 앞섰다.
자신에 허벅지에 깊은 상처를 남긴 인물.
용병왕을 제외한다면, 용병 최고의 인물이 그였다.
“아…… 씨이이이!”
갑자기 그가 왜 태양궁을 공격하려는 거지?!
멀리 성문이 보였다.
처어억!
살유탑이 성문 위에 내려섰다.
“궁…… 주님.”
모든 인물들이 살유탑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불사투군단이라고?”
“네…… 그렇습니다.”
살유탑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성 밖으로 내밀었다.
‘헉.’
성문 밖에서 대가하던 한 명의 얼굴을 확인했다.
‘망…… 했다. 그가 틀림없어.’
살유탑은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허벅지가 쑤시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성 밖에서 거대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 궁주! 방금 도착한 것을 아네. 할 이야기가 있어 찾아왔다네.”
“…….”
주위에 보는 수하들의 시선.
대답 없이 숨어 있을 수는 없었다.
스윽.
살유탑이 기둥 뒤에서 앞으로 나왔다.
“투룡군광검 미공서께서 대막까지 올 줄은 몰랐소이다.”
“돈만 제대로 받는다면 용병이 어딘들 못 가겠소이까?”
“혹시 어디와 계약을 했소이까?”
“그건 알 필요 없고. 서로 멀리서 소리를 지르니 목이 아프지 않은가? 만나서 이야기합시다.”
“본인은 이대로 여기에서 할 말만 하는 게 좋소이다.”
“궁주가 귀찮으면 내가 알아서 들어가리다. 그 대신 중간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불사투군단은 잘못이 없네. 미리 경고했네.”
“…….”
십 년 전에도 똑같았다.
문을 굳건하게 닫았지만 성문이 뚫리면서 그들이 쳐들어왔다.
그리고 기억하기 싫은 그와 비무를 가졌다.
그날 이후로 그는 성문을 철단목으로 튼튼하게 바꾸어 달았다.
불사투군단에서 열 명의 용병이 앞으로 나섰다.
치지지지지직!
한 명씩 폭격탄을 꺼낸 뒤 심지에 불을 붙였다.
성문 위에서 그 모습을 본 살유탑은 심장이 덜컹거렸다.
‘용병 놈들은 적당한 것을 모른다고 하더니!’
재빨리 막지 않으면 성문이 산산조각 날 수 있었다.
“잠시만! 그건 반칙이다!”
살유탑을 얼른 그들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미공서는 그의 목소리를 못들은 것처럼 손을 떨어뜨렸다.
“문을 폭파하라.”
“넵.”
휘이이익!
휘이이익!
열 개의 폭격탄이 허공을 날아오르며 태양궁의 성문 앞에서 터졌다.
콰아아아앙!!
찌지지직-
폭발음과 함께 성문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폭격탄의 충격에 살유탑의 몸이 좌우로 흔들거렸다.
“저어…… 미친…….”
성문의 한쪽 부분이 완전히 깨진 채 날아갔다.
두두두두-
불사투군단이 성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큰일 났다. 빨리!’
태양궁주 살유탑은 싸우기를 포기했다.
자존심 따위는 없었다.
그의 신형은 빠르게 성문 아래로 내려갔다.
“태양궁은 모두 뒤로 물러나라!”
콰아아앙!!
태양궁의 성문이 완전히 부서지면서 불사투군단이 쏟아져 들어섰다.
그 뒤로 투룡군광검 미공서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하, 궁주. 반갑네. 죽지 않고 있으니 또 만나게 되는구려.”
“아…… 네에. 투룡군광검을 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