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 태원평을 정리하다
무림은 요동치고 있었다.
안휘성 세 개의 문파들은 창천의 공격에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중원 무림의 문파와 창천의 힘.
그들의 전력 차이는 천지만큼이나 벌어져 있었다.
창천에서 제대로 싸운다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보여주는지, 이번 싸움을 통해 전 중원 무림인들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의외의 상황도 있었다.
창천의 무서움이 무림인들 사이에 알려지는 동시에, 걸황 남하림을 포함한 일황사제의 위상도 크게 올라갔다.
창천과 싸워 그들을 막아낸 유일한 존재들이었으니까.
중원 무림인들은 알게 되었다.
창천을 막아낼 수 있는 곳은 일황사제가 있는 신무맹 외에는 없다는 사실을.
중원 무림인들의 시선은 두 곳으로 향했다.
창천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들을 막기 위해 신무맹이 어디로 움직일지.
창천의 차후 목표는 어디일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산동성으로 움직이려는 개방을 보았다.
중원 무림에 떠도는 소문처럼, 신무맹은 창천의 다음 공격 목표가 산동성이라고 확신하는 듯했다.
* * *
“후후후. 개방이라…… 신무맹에서 산동성으로 움직인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거지 놈들이 정말로 산동성이라고 믿는 듯하더군요.”
“웃긴 놈들이군. 그런 말을 한 적도 없지 않는가?”
“맞습니다. 완전 멍청한 녀석이지 않소이까.”
중원 무림에서 움직이는 상황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
안휘성을 정리한 후 여러 가지 말들이 많이 떠돌아 다녔지만, 역시 창천의 다음 목표로 가장 유력한 곳은 산동성이었다.
채앵.
창천주와 영문자는 술잔을 부딪쳤다.
“자네가 일을 너무 깔끔하게 처리를 해서 저놈들이 당황하는 것이겠지. 잘 하고 왔네.”
“너무 시시하더군요. 이번에는 좀 더 강한 상대를 만났으면 좋겠소이다. 자, 그럼. 어디를 가면 되겠소이까.”
“강한 상대라면 얼마든지 있어. 그곳에 가면 자네가 상대하기에 재미있을 것이네.”
“그곳이 어디입니까?”
“무당파 정도라면 괜찮지 않겠는가?”
소림과 함께 정도 무림의 최고 문파인 무당파.
“무당이라면 충분히 싸워볼 만한 가치가 있지.”
“주군, 재미있겠소이다. 그렇지 않아도 무당파 도사 놈들을 만나고 싶었거늘. 언제 떠나면 되겠소이까?”
“거지 놈들이 산동으로 떠날 때 자네도 움직이게. 신무맹은 물론 걸황은 전혀 알지 못할 게야. 신속하게 치고 빠지는 것이지. 이번에는 제대로 무당파를 눕히고 오도록.”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스윽.
창천주는 술병을 앞으로 내밀었다.
“한 잔 더 받게.”
“주향이 예사롭지가 않소이다. 하핫.”
“얼른 마시도록. 주인이 찾아오기 전에.”
“……오?”
벌컥!
영문자는 손바닥만 한 술잔에 가득 찬 술을 한 번에 마셨다.
“커억. 이게 무슨 술이오? 화끈해서 좋습니다.”
“경노가 담가놓은 화룡주지. 괜찮은가?”
“경노?”
영문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주군, 한 잔 더 마십시다.”
“그럴까?”
영문자는 술잔에 가득 차오르는 술을 보면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복수를 하는구나.’
“주군, 끝까지 주십시오.”
“허허, 이러다 넘치겠네.”
“괜찮습니다. 원래 술은 넘치는 게 정이 아니겠습니까.”
이번에도 한 입에 술을 마셨다.
“캬아아아- 왜 이리 맛이 좋지?”
“하하하! 정말 좋은 모양이군.”
타악!
영문자는 술잔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렇습니다! 하하!”
덜컹.
그때였다.
문이 다급히 열리며 씩씩거리는 들어서는 인물.
조경노의 시선은 곧바로 탁자 위에 놓인 술병에 꽃혔다.
‘저건…… 내 화룡주인데…….’
술잔을 들고 있는 창천주를 보았다.
“주군, 그건…….”
“아. 방에 들어가니 향이 좋기에 가지고 나왔네. 자네도 한 잔 마시게.”
“…….”
다른 사람도 아닌 창천주에게 술을 가져갔다고 따질 수 없었다.
“크크큭.”
옆에 나란히 앉은 영문자가 웃었다.
“창홍, 왜 웃는가?”
“안 웃었네.”
“…….”
조경노는 고개를 돌렸다.
비워진 술병을 계속 쳐다봤자 가슴만 아플 뿐.
“경노, 중앙상국이 완전히 넘어갔다더군.”
“나쁘게 되었습니다. 중앙상국의 주인이 걸황으로 바뀌었습니다.”
“능력도 좋은 놈이군. 중앙상국을 날름 먹어 버리다니…… 이건 우리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했겠지?”
“욕심이 너무 과한 인물입니다. 기회가 생기자마자 중앙상국의 접수하기 위해 사전에 움직였습니다.”
창천주는 고개를 흔들었다.
조경노와는 생각이 달랐다.
“그건 아니네. 자네는 욕심이라 했지만 능력이 되기에 가능했던 일이야. 그건 욕심이라 할 수 없지.”
“여하튼 앞으로 피곤하게 되었습니다. 걸황이 거대 상국 두 곳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자네라면 수급하는 데 지장이 없지 않겠나?”
“못하지는 않겠지만 저들의 눈을 제대로 피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스윽.
창천주는 술병을 그에게 내밀었다.
“고생이 많네. 그래도 앞으로 수고를 더 해주게나.”
“너무하십니다.”
“한 잔 받게. 맛이 좋군.”
“…….”
순간 잊고 있었던 화룡주가 생각났다.
‘……앞으로는 좀 더 깊숙한 곳에 숨겨놓아야겠군.’
* * *
산동성 총타를 향해 수많은 개방도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개방의 본 방에서도 원군으로 산동성 총타에 개방도들을 급파하였다.
창천에서 산동성의 어디를 칠지 모르니 사방에 개방도들이 퍼져 나갔다.
신무맹에서도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청룡무력군이 언제라도 출진할 수 있도록 대기했다.
밤이 깊은 시간.
맹주전으로 세 사람이 들어섰다.
이휘연과 당무독, 마지막으로 팽유도.
이들의 기척은 신무맹의 인물들 중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부장, 다녀올게.”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이휘연이 무당파로 떠나기 전에 맹주전으로 모인 것이었다.
“휘연 형, 혼자 가도 되겠어요? 제가 같이 가도 되는데요.”
“괜찮다. 그놈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니 부장 곁에 있는 게 좋을 것 같다. 은하궁에서 원군을 보낸다고 하니 걱정하지 말아라.”
그래도 이휘연 혼자 무당파에 보내는 게 걱정되는지 팽유도가 시무룩해졌다.
“창천은 안휘성의 효과가 떨어지기 전에 최대한 빨리 움직일 게 틀림없어요.”
스윽.
이휘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당파로 떠날 시간이었다.
신무맹에서는 내원 수장 진후도인만 그가 간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같이 가면 좋은데…… 여기에도 보는 눈이 많아서 떠날 수가 없네요.”
신무맹의 맹주인 남하림은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중원의 모든 시선은 남하림이 움직이는 곳마다 따라 움직였다.
비밀리에 움직이지 않는 한 지금부터서는 남하림이 가는 곳이라면 모든 시선들이 따라다닐 것이었다.
“부장은 함부로 움직일 수 없지. 귀찮은 일들은 우리들이 할 테니 신경 안 써도 된다.”
“고마워요, 형. 진후도인께서도 잘 다녀오라고 했어요.”
“그분께 알겠다고 전해줘. 내가 없는 동안 모두 수고들 해.”
이휘연은 세 사람과 일일이 포옹한 뒤 신무맹을 비밀리에 떠났다.
맹주전에 남은 세 사람은 자리에 앉았다.
이휘연은 이미 떠났지만, 팽유도는 아직도 확신이 들지 않았다.
“하림 형, 창천의 다음 목표가 무당파 맞을까요?”
“그거야 내가 창천주가 아닌 이상 정확히 알 수는 없지. 다만 이번에 기습할 거라면 크게 한 방을 노릴 시기야.”
“굳이 무당파를 가리킨 이유가 있어요? 소림사도 있잖아요.”
“소림사는 신무맹에서 원군이 나서기에 가까워서 쉽게 칠 수 없을 거야.”
“무당파는요?”
“소림사와는 달라. 그들의 움직임이 중간에 발견된다고 해도 충분히 치고 빠질 수 있는 시간이 될 거라 예상할 거야. 물론 화산파도 있긴 하지만 무당파보다는 중원 무림에 주는 충격이 약하지.”
“아하…… 결국은 어떻게 하더라도 무당파밖에 없다는 결론인가 보네요.”
“다시 말하지만 완전히 맞을 순 없어. 주사위는 던져졌고 우리의 예상이 맞기를 바라는 수밖에. 지금쯤이면 은하궁에서도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을 거야.”
당무독은 팔짱을 낀 채로 말했다.
“은하궁과 무당파라면 정말 강하긴 해. 하지만 안휘삼문을 단숨에 몰아낸 그들을 막아내려면 희생이 따를 수도 있을 거야.”
“두 곳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해?”
“이번에 나온 녀석들은 예전에 상대했던 놈들보다 더 강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무독도 그런 생각을 했구나. 나도 그런 느낌이 들었어.”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팽유도가 또 걱정이 되었다.
“그러면 안 되지 않나요?”
“음…… 두 사람에게 말은 안 했는데, 혹시나 해서 검문에 부탁을 해놨어.”
“정말요?”
“아직 답장이 안 와서 말을 못한 거야. 내일이면 올 것 같아.”
“아…… 혹시 휘연 형은 검문에 대해서 알고 있어요?”
“아직 모르지. 확답이 오면 따로 휘연 형에게 연락하면 돼.”
당무독은 처음과 다르게 안심이 되었다.
“검문까지 합쳐진다면 확실하게 이길 수 있을 거야.”
“역시 하림 형은 모든 것을 생각하는구나.”
“후후후.”
남하림은 웃음을 지었다.
무당파에 관해서는 충분히 의견을 나누었다.
남하림은 태원평의 일에 대해서 말을 꺼냈다.
“방금 전에 태원평에서 연락이 급하게 왔어.”
“앗. 정말요? 철각 형과 궁이 잘하고 있는가요?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했거든요.”
“보내온 내용을 보니 환금호가 꽤나 많은 곳과 연관이 된 모양이더군. 태원평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살인 청부를 받은 대막태양궁이 찾아왔다는 내용과, 재배지에 갔더니 그곳 촌장이 창천의 인물과 함께 북방표국이라는 곳과 관련이 있었다고 적혀 있어.”
“어라? 나쁜 놈들은 전부 연관이 되어 있네요.”
“후후후. 그렇다고 봐야지.”
“그것들을 알아낸 것을 보니 철각 형이 열심히 하고 있네요.”
“부장, 역 태상께 부탁해서 용병림이 같이 간 게 잘한 일 같아.”
멀리 태원평으로 간 성철각과 황보궁 두 사람.
당무독과 팽유도는 전서를 보자 한결 안심이 되었다.
* * *
태원평으로 돌아가는 길.
성철각은 우선 알아낸 사실에 대해 전서를 띄웠다.
북방표국과 창천이 관련된 사건이었다.
꾸물거릴 수 없는 문제라 확신했다.
태원평에 도착한 후엔 곧바로 총관 육서웅을 심문장으로 끌어냈다.
육서웅은 포박을 당한 채로 무릎을 꿇었다.
그의 앞에 촌장집에서 찾아온 서류들이 있었다.
‘음…….’
성철각은 그가 아는 사실을 그대로 적어놓은 진술서를 읽었다.
그를 촌장으로 추대한 인물이 바로 총관 육서웅.
두 사람은 북방표국의 인물에게 뇌물을 받아 포섭을 당한 뒤 환금호를 뒤로 빼내어 그들에게 몰래 주었다고 했다.
성철각은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그들은 어디에 있지요?”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직도 정신을 딴 곳에 두는 모양이군요. 살기 싫다면 이야기하지 마시죠. 편하게 해주겠소이다.”
“죄송…… 합니다.”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위치가 없군요.”
“소, 소구척에 그들의 지부가 있습니다.”
“북방표국과 거래를 하는 것 같던데 예전 북방상국이 맞지요?”
“네…… 그렇습니다.”
육서웅은 사실대로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촌장에게서 찾아온 증거들만으로도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들의 수장이 누굽니까?”
“그들…… 수장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소인이…… 연락을 주고받은 사람은 백후라고…….”
“백후라 했소?”
“네, 그렇습니다.”
북방표국의 정체가 그의 이름 하나에 확실해졌다.
“혹시 마지막으로 다른 말은 없소?”
“무슨…… 말씀이신지……?”
“사람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걸 보니 살고 싶은 생각이 없군요.”
“저어…… 소인이 아는 모든 것을 말했습니다.”
“그건 아니죠. 아직 한 가지 더 남아 있을 텐데요.”
“대체 무슨 말씀을……?”
육서웅은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묻지 않았기에 말을 하지 않은 게 있긴 했다.
그냥 넘어가는 줄 알았다.
“진술서를 보니 대막태양궁에 대한 내용이 조금 부실하더군요.”
“그게 무슨……?”
“북방표국에서 대막태양궁에 청부를 시킨 것처럼 진술이 되어 있더군요.”
“…….”
“북방표국은 굳이 태원평의 원주님을 죽일 이유가 없소. 그 이유가 뭔지 아시오? 그건 태원평과 걸황의 관계를 그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 괜히 건드렸다가 시끄러운 일이 일어나면 안 되기 때문이외다. 원주께서는 이 환금호가 사라진 사실을 아무도 알리지 않았는데, 평막무력단과 청부를 받은 대막태양궁이 왔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잘 알겠지요.”
육서웅은 몸이 떨렸다.
성철각은 그런 그를 내려다보았다.
“내부의 인물. 당신이 태양궁에 청부한 것이겠지.”
“죽을죄를 졌습니다! 목숨만 살려주시면……!”
슈우욱-
성철각은 그대로 일 장을 뻗었다.
퍼어억!
장력은 그대로 육서웅의 얼굴을 강타했다.
털썩.
육서웅은 그대로 뒤로 넘어가면서 숨을 쉬지 않았다.
“……엇, 죽었어?”
“그런 모양인데요.”
“오랜만에 손을 사용하니 조절이 어렵구나. 적응이 안 되는군.”
“그런가 봐요.”
성철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태원평에서 일어난 사건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마무리만 하나씩 처리하면 되었다.
* * *
원주의 회의실에 네 명이 모여 앉았다.
성철각과 황보궁, 그리고 미공서와 원주 명왕고.
범인을 찾아낸 뒤 차후 어떻게 움직일지 결정을 내려야 했다.
태원평에서 육서웅에 동조한 인물은 총 여섯 명.
전부 내정의 업무에 관여된 인물들로 그들 모두 정리를 했다.
“원주님, 태원평의 일은 거의 정리가 되었습니다.”
“각제. 고맙소이다.”
명왕고는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그 외 일들은 여기 미공서 님께서 정리를 하실 겁니다.”
“아…… 네에…….”
이번에는 미공서를 향해 포권을 했다.
이들이 도움을 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성철각은 이미 모든 것을 계획한 듯 머뭇거리지 않고 명령을 내렸다.
“미공서 님께서는 대막태양궁을 만나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하겠네. 한 번쯤 만나고 싶었지. 그를 만난 뒤 앞으로 태원평을 건드리지 못하도록 잘 이야기하겠네.”
“고맙습니다. 그동안 우린 북방표국을 만나고 오겠습니다.”
“사람이 필요하면 조금 지원을 해줄 수 있네. 창천과 연관이 되었다면 필요할 것 같지 않는가.”
“괜찮습니다. 그곳 표국에는 창천의 무인들이 없을 것입니다.”
“…….”
해야 할 일을 설명하는 모습이 마치 걸황을 보는 듯했다.
성철각이 새롭게 보였다.
그동안 보아왔던 성철각이 아니었다.
‘걸황과 함께 있을 때는 소극적인 인물인 줄 알았건만.’
태원평에서 본 그는 전혀 달랐다.
어느 누구보다 똑똑하고 결단력이 있었다.
‘그렇군. 걸황이란 별이 워낙 밝다 보니 사제들의 빛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