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3. 태양궁이 나타나다
여후객잔.
태원평으로 들어서는 하북성의 마지막 마을인 여후촌.
장사꾼들이 왕래가 많은 곳인지라, 객잔 안은 거의 빈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안쪽 자리에 앉은 네 명.
명왕고와 명화진.
부녀 앞에 성철각과 황보궁이 앉았다.
중원의 소문은 멀리 이곳의 객잔까지 흘러왔다.
“철각 형, 안휘사문이 모두 멸문을 당했다고 하네요.”
“거의 일방적으로 당한 모양이더군.”
“신무맹에서 왜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요? 대형이시라면 좋은 계책이 있었을 텐데요. 다음은 산동이란 말이 떠돌고 있어요.”
산동에는 황보세가가 있었다.
“걱정 안 해도 돼. 산동은 안휘성과는 달라. 왜 그런지 알아?”
“모르겠는데요?”
“그 세 곳은 신무맹에 가입을 안 했잖아. 부장은 상관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어.”
“설마요? 그것 때문에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말인가요?”
“완전히 그 이유라고 보기에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내가 아는 부장이라면 이유가 될 수도 있을 거야.”
“아…… 그 이유라면 오히려 다행이네요.”
산동의 두 가문.
황보세가와 산동악가는 초기부터 신무맹의 주요 문파였다.
꼬르륵.
황보궁의 배에서 소리가 났다.
“빨리 안 나오는 모양인가 봐요.”
“그러게. 음식을 시킨 지 꽤 된 것으로 아는데…….”
명왕고가 고개를 들어 주방이 있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그때였다.
점소이가 음식을 들고 주방에서 나왔다.
“이제야 나오는군.”
두 손 가득 음식이 담긴 접시를 조심스럽게 든 채 다가오는 점소이.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손님들이…… 많아서요.”
“…….”
점소이가 식탁에 음식을 내려놓았다.
맛있는 향이 나면서 식욕을 자극했다.
“맛있게…… 드십시오.”
미세하게 점소이의 말끝이 떨렸다.
스윽.
성철각은 자리에서 일어나면 점소이의 어깨를 잡았다.
“이게 어디서 먹는 걸로 장난치는 거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짓이야.”
“왜애애애애……!”
점소이는 발버둥 치며 성철각의 손에서 벗어나고자 했지만, 떨어질 수가 없었다.
“어허, 가만히 있어. 내가 맛있는 고기를 주지.”
성철각이 젓가락으로 고기 한 점을 집은 뒤 점소이 입으로 밀어 넣었다.
“넘겨.”
“으…… 으…….”
점소이는 입안으로 들어오는 고기를 먹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의 의지와 달리 고기는 목구멍으로 점점 들어갔다.
“커어어억!”
식도로 고기가 넘어간 뒤에야, 성철각은 점소이를 놓아주었다.
점소이는 음식을 뱉어내려고 했다.
“궁아. 주방에 가서 한 놈도 남김없이 전부 때려잡아.”
“넵.”
파앗!
육중한 덩치와 달리 황보궁의 신형은 한 줄기 빛이었다.
콰아아앙!!
어느새 주방에 들어가자마자 굉음이 터졌다.
“아아악!”
그리고 비명이 울렸다.
질질질.
황보궁의 손에 잡힌 주방장이 바닥에서 기절을 한 채 끌려 나왔다.
“공자님, 무슨…… 일이신가요?”
“진아. 누군가 음식에 독을 탄 것 같구나.”
“네에……? 아버지, 정말로 독을……?”
객잔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우르르르르-
객잔 안으로 수십 명의 무리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우릴 처음부터 노렸는데요?”
“한 놈만 살려두고 나머지는 치우자.”
“넵.”
황보궁은 곧바로 역무천심공을 일으켰다.
그는 이미 황보제일심공을 구 성까지 완벽하게 깨우쳤다.
마지막 일 성을 남겨두었지만 구 성으로 충분하고도 남았다.
퍼어엉!!
퍼어어엉!
황보궁이 내지르는 황보삼권의 위력을 제대로 받아내는 상대는 없었다.
한 번 펼친 일격에 대여섯 명씩 객잔 벽까지 날아가서 부딪혔다.
차르르르-
황보궁을 피해 성철각에게 다가오던 무리들은 날카로운 소리를 앞에서 마주쳤다.
스걱.
목을 스쳐 가는 날카로운 예기에 단번에 십여 명이 쓰러졌다.
“으…… 으…….”
설명할 수 없는 강함.
‘대체…… 이자들이 왜…….’
절대무력의 앞.
반각도 지나가기 전에, 객잔에는 한 명만이 서 있을 뿐이었다.
만구영은 온몸이 떨렸다.
명왕고와 함께 있는 두 명의 사내들.
‘괴물이야. 똑바로…… 알려주지도 않고…….’
까닥까닥.
장신의 청년이 손가락으로 부르고 있었다.
두 사람의 무공을 본 뒤 도망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어디서 왔지?”
“…….”
성철각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검을 주워 들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말하기를, 항상 좋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상대가 희한하게 절대로 말을 안 듣는다고 하더군. 진짜…… 그런 것 같아.”
“…….”
“가끔씩 그런 놈들을 상대할 때 말이지. 대답을 안 할 때마다 하나씩 사지를 잘라내는 것을 보면, 너무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어. 근데…… 막상 내가 당하니 하니 이해가 되네. 우리 여기 손 하나만 자르고 시작하자. 궁아, 이놈 손 올려라.”
황보궁은 만구영의 손을 잡은 뒤 식탁 위에 올렸다.
“으으…… 으…….”
만구영은 달달 떨면서도 설마 내리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휘이익!
하지만 검은 떨어졌다.
그리고 깨끗하게 팔이 잘려 나갔다.
“아아아악!!”
만구영은 비명을 질렀다.
정말로 단숨에 내리칠 줄은 몰랐다.
혈을 눌렸는지 피는 나오지 않았다.
팔이 잘린 고통.
온몸이 소름 끼치는 느낌에 죽고 싶을 정도였다.
“이번에는 반대편 손이다.”
“대…… 인…… 말씀…… 을…… 드리…….”
“어디서 왔어?”
“그…… 게…….”
피이이잇!
그때, 멀리서 날아오는 비검이 느껴졌다.
파아앗!
환보걸선각을 펼치며 날아온 비검을 밖으로 쳐냈다.
“어떤 놈이…….”
성철각은 재빨리 비검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돌아섰다.
그와 동시에 황보궁이 밖으로 뛰어나가려고 했다.
“철각 형, 제가……!”
“됐다. 벌써 사라졌어. 상당히 빠른 놈이야.”
성철각은 인상을 썼다.
만구영은 입에 거품을 문 채 죽어 있었다.
그의 가슴에는 비검이 박혀 있었다.
“궁아, 이번 일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네, 벌써부터 흥분이 됩니다.”
명왕고와 명화진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혀를 내둘렀다.
‘허어…… 일황사제는 다르군.’
두려움보다는 오히려 즐거워하는 성철각을 보니 역시 대단한 젊은이가 확실했다.
‘이 녀석이…… 확실히 용을 물었어.’
* * *
휙.
복면을 벗자 긴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이십 대 후반의 여인.
치켜 올라간 가느다란 눈썹이 강한 인상을 주었다.
“저들은…….”
권소협은 황보궁과 각제 성철각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궁주님께 보고할 상황이군.”
태원평의 원주를 죽여 달라는 청부를 받았다.
대막의 지존 대막태양궁.
정사의 개념은 대막에서 의미가 없었다.
오직 살아남는 자가 가지는 진정한 강자존이 펼쳐지는 곳이, 태양의 후예라 일컫는 대막이었다.
태양궁은 중원의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
중원 또한 마찬가지.
척박한 사막밖에 없는 대막을 얻어봤자 도움이 되는 것도 없었다.
“무슨 일인지 자세히 알아봐야겠군. 괜히 일황사제와 관련되었다가는 본 궁이 다칠 수 있어.”
그녀는 태원평 원주 명왕고를 죽여 달라는 청부만 보았을 뿐이었다.
‘우선 연락을 띄운 뒤 기다려야겠군.’
그녀는 한 가지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객잔에서 기습을 한 순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길에 들어서게 되었음을.
* * *
다각다각.
하북을 넘어선 마차는 한가로울 정도로 천천히 움직였다.
“각제, 빨리 태원평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염려 놓으셔도 됩니다.”
명왕고는 걱정이 되었다.
“우리를 죽이려고 살수들을 보내지 않았소이까.”
“그 정도는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으니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두 분의 무공을 믿지 못하는 게 아니라 살수들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황에 한꺼번에 몰려온다면…….”
“그들은 태양궁의 인물이라 하더군요.”
“네에……?”
명왕고는 화들짝 놀랐다.
북야평의 일대에서 가장 강한 무력 세력이 대막태양궁이었다.
그들의 존재는 북야평에서는 거의 신이나 마찬가지였다.
“각제, 객잔에서 본 그들이 정말로…… 태양궁이었단 말이오?”
“방금 전에 걸비에게 확인을 받았습니다. 그들을 조사한 결과 태양궁의 인물이 확실하다고 했습니다.”
“그럼 더 큰일이지 않소이까? 그들이 우리들을 죽이려고 한다면 각제께서 계신다고 해도 저들의 수는 너무 많소이다.”
“후후후.”
성철각은 대답 대신 웃음을 지었다.
‘뭐지? 이 느긋함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한 두 사람의 표정.
‘내가 무언가를 모르고 있구나.’
명왕고는 그들이 이야기해 주기를 기다렸다.
“태양궁을 상대해 보진 않았지만 강하다고 하더군요.”
“그렇습니다. 북야평에서는 그들의 적수가 없습니다.”
“원주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북야평에서는 적수가 없겠지요. 하지만 그들도 예전에 한 번 크게 당한 적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게…… 무슨…… 말씀이오?”
“용병왕이 계신 용병림에 죽다가 살아났다고 들었소이다.”
“아…… 하…… 기억이 납니다. 근데…… 그게 확인이 된 적은 없습니다.”
십 년 전 소문이 나돌았던 적이 있었다.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던 그 소문.
대막태양궁과 중원에서 온 용병과의 싸움에서 태양궁주가 무릎을 꿇은 사건이었다.
“사실입니다. 그때 당시 태양궁주의 목을 비틀었던 인물이 지금 우리의 주위에 함께하고 있소이다.”
“…….”
신무맹에서 떠나면서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각제, 방금 하신 말씀이 사실이오? 그 말씀은 용병림이 우리를 따르고 있다는 말씀이시오?”
“원주께서는 설마 우리 두 사람만 함께한다고 생각했습니까? 중원에서 머나먼 곳까지 오는데 어떠한 일이 발생할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걸황께서도 아무 말씀이 없으시기에…….”
“아, 혹시나 다른 곳에 말이 들어갈 수 있기에 비밀로 했던 것이지요. 많은 양의 환금호를 손대는 곳이라면 절대로 개인은 아닐 테니까요. 그중 예상으로 태양궁도 말이 나왔기에 걸황이 부탁을 해서 불사투군단의 미공서 님을 비밀리에 태원평으로 보냈소이다. 미공서란 분께서 태양궁주의 멱살을 잡으셨다고 하시더군요.”
“아하…….”
환금호의 범인으로 대막태양궁까지 예상을 했다는 말에 명왕고는 소름이 온몸에 돋았다.
‘역시…… 걸황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이구나.’
“만일 환금호와 그들이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다면 대막태양궁도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 물론 우리를 건드린 이상 손을 볼 것입니다. 받은 건 돌려줘야지 않겠습니까?”
“…….”
북야평의 인물들에게는 죽음의 신과도 같은 존재들을 오히려 죽이겠다고 하는 각제의 목소리.
명왕고는 두려움이 언제 사라졌는지 몰랐다.
“하하하. 진아야. 괜히 걱정을 했구나.”
“네에……! 맞아요. 각제께서 계시니 무슨 걱정이 있겠어요.”
* * *
안휘사대문파가 무너졌다.
창천에 의해 마지막 황산파가 무너지면서, 대문파는 한 곳도 살아남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중원인들의 시선은 안휘성이 아닌 신무맹으로 향하고 있었다.
중원인들은 의아했다.
정파의 수장인 신무맹에서 전혀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창천과 항상 척을 졌던 걸황이었기에 신무맹이 나설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신무맹은 공식적으로 중원 무림에 발표했다.
안휘성까지 가는 시간이 부족했기에 황산파엔 원군을 보낼 수 없었다고.
하지만 비공식적인 소문이 신무맹의 인물들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객잔은 소란스러웠다.
“안휘사대문이 신무맹에 가입하지 않아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말이 있어.”
“정말……? 걸황께서는 그럴 분이 아니시지! 아마도 내원에서 결정을 내린 게 틀림없어. 그리고 창천을 막기에 시간이 너무 부족한 건 맞잖아.”
“그건 자네 말이 맞아. 걸황께서는 중앙상국의 일 때문에 안휘성에 대해 신경을 쓸 수 없었겠지. 비록 가입을 안 했다고 해도 가까이 있었다면 도움을 줬을 게야.”
“여하튼 중요한 건 신무맹에서 더 이상 가입을 안 받는다는 거야.”
“당연하지 않겠나. 지금까지 가입하지 않고 있던 문파들이 안휘사대문을 보면서 안 되겠다고 결정을 내린 뒤 가입하려고 하는 건 양심 불량이잖아. 내가 그분이라도 안 받겠다.”
“역시 걸황님께서는 일 처리 하나는 마음에 들게 확실히 하신다니깐.”
“이번에는 산동성이 표적이 될 것이라고 하더구만.”
“정말인가?”
“커어어억!”
술 한 잔을 비운 또 다른 사내는 시원하게 트림을 하였다.
“멍청한 놈들. 창천에서 네놈들이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겠어?”
“이보게, 자네 생각으로는 어디가 되겠나?”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것을 알면 내가 만통자이지 않겠나.”
객잔의 이 층에서 조용히 식사를 하던 일행.
스윽.
만통자는 고개를 일 층 아래로 내밀었다.
“노인장, 다음은 어디를 치겠소이까?”
“…….”
남하림은 싱긋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기 저 사람들이 만통자라면 알 것 같다고 해서요.”
“허어…….”
만통자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남하림은 다시금 물었다.
“그들이 움직인다면 어디를 칠까요?”
“진짜로 물어보시는 겁니까?”
“내가 언제 가짜로 물어본 적이 있나요?”
“……흐음.”
만통자는 생각에 잠겼다가, 이미 결론을 낸 듯 남하림과 시선이 마주쳤다.
“호북을 칠 겁니다.”
“호북이라면 무당파를 친다는 말이군요.”
“무당만 칠 수 있다면 그들이 의도한 바를 얻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의도한 바라는 게 뭔가요?”
“중원 어디든지 창천이 치고 싶은 곳은 칠 수 있다는 뜻을 보여주는 것이겠지요.”
“저번에도 은하궁과 사무련을 공격하지 않았나요?”
“언뜻 비슷하게 보일지 모르나 상황이 다릅니다. 은하궁과 사무련. 두 곳은 무당파와 다릅니다. 두 분 주모님과의 관계를 떠나 두 곳은 동맹의 관계일 뿐입니다. 하지만 무당파는 동맹이 아닙니다. 신무맹에서 가장 중요한 문파들 중 한 곳입니다. 무당파가 창천에게 멸문을 당한다면 수많은 문파들이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후후후.”
만통자는 정확하게 상황을 예측했다.
안휘사대문은 중원 무림에게 창천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릴 목적이었다.
무림을 향해 전쟁의 진정한 시작은 무당파였다.
“맞아요. 내가 창천주라고 해도 무당파를 칠 게 확실해요.”
“하림 오빠, 무당파에 알려야 하는 게 아닌가요?”
“알려야겠지만 그 순간에 창천은 방향을 다른 곳으로 돌릴 거야.”
“그렇다고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무당파가 위험할 수 있을 텐데…….”
“가긴 가야지. 하지만 내가 아니라 휘연 형이 가야 해. 창천은 내가 어디에 있는가에 신경을 쓰고 있을 거야.”
“오빠가 가지 않는다면 신무맹에서는 도움을 주지 못하는 건가요?”
조용히 대화를 듣고 있던 유미령이 나섰다.
“신무맹이 움직이기 힘들다면 우리 은하궁에서 가면 되겠군요.”
“후후후. 그렇지 않아도 부탁을 하려던 참이었어요.”
“알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저번 일로 인해 한 번쯤 움직일 때가 됐다고 생각했으니.”
유미령의 입가에 미소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