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 창천영문 움직이다
중앙상국에서 일어난 사건.
국주 두 사람의 죽음이 발생했다.
하지만 주양진과 주당소의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중앙상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조차 어떻게 된 일인지 알지 못했다.
그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하루가 지난 뒤.
후연에 의해 궁금했던 사건의 전말이 알려졌다.
충격 그 자체였다.
낙양상국의 주당소가 대혼술법에 의한 창천의 인물이라는 것.
그가 두 명의 상국주 주호덕과 주유형을 포섭한 뒤, 중앙상국의 국주인 주양진을 죽이고 모든 것을 창천에 넘기고자 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사실을 알아낸 인물이 걸황이며 창천에 가던 물량 또한 도제에 의해 무사히 막아냈다고 했다.
중원인들은 또 한 번 일황사제를 향해 환호를 했다.
* * *
슥슥.
후연은 장부와 서신들을 살펴보았다.
결정적인 증거들이었다.
“주군. 이것들은 전부 진필입니다.”
“그렇군요. 확실한 증거가 되겠군요.”
타악.
남하림은 옆에 선 팽유도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생했어.”
“별로 어려운 것도 없었어요.”
중앙상국은 끝이 났다.
주호덕과 주유형까지 물러나야 했다.
상국을 이끌어갈 국주들을 한꺼번에 모두 잃게 되었다.
혼란의 시기.
누군가가 빠르게 정리를 해야 했다.
그 사이에서 양삼은 재빨리 많은 사업체들을 거두어들이기 위해 작업을 시작했다.
이미 특인당 소속의 인원들을 동원하여 중원상국의 모든 업체를 조사하도록 시켰다.
양삼이 직접 관리하는 특인당.
북방상국을 인수하면서, 그는 이 과정을 전문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인원이 필요하다는 경험을 했다.
그래서 곧바로 인재들을 뽑은 뒤 교육을 시켰다.
천하제일상국만으로 만족할 남하림이 아니었다.
“양 총관, 어떻게 잘 될 것 같아?”
“이번 일로 더 수월해질 겁니다. 중앙상국들과 거래를 하는 업체들이 많이 당황하고 있습니다.”
“후후후, 잘됐군.”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그럼 그들을 만나러 가볼까.”
남하림은 팽유도와 함께 정원으로 나왔다.
그 뒤로 양삼과 후연이 따랐다.
후다닥!
건물 옆에 멍하니 앉아 있던 다섯 명의 사내들.
팽유도가 중앙본국으로 간다고 하기에 따라나섰는데 설마 걸황 남하림이 있을 줄은 몰랐다.
표사 다섯 명은 남하림을 보면서 다급하게 일어났다.
“편히 쉬세요.”
“아닙니다. 지금도 편합니다.”
“그런가요? 음, 다섯 분이 일을 찾고자 한다니깐, 여기 후 선생의 호위를 부탁하겠어요. 앞으로 이곳을 책임 질 분이니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합니다. 할 수 있겠습니까?”
“넵. 할 수 있습니다. 소인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겠습니다.”
“씩씩해서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걸황님.”
* * *
한자리에 마주 앉은 세 사람.
주호덕과 주유형은 끝이 났음을 알았다.
창천에 동조한 두 사람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졌다.
그들 앞에 놓여 있는 장부들과 서신들은 보지 않아도 무엇인지 알았다.
몇 개는 자신이 보낸 서신도 있었다.
“결정을 내리세요.”
“무…… 무엇을…… 말하시오?”
“살려주는 조건으로 모든 것을 내려다 놓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좋은 가격으로 거두어 줄 테니 어딜 가더라도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겁니다.”
“…….”
“걸황……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오.”
주호덕은 억울했다.
수백 년 동안의 가업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도둑에게 강탈당하는 듯했다.
“상계에서 가만히 있을 것 같소?”
“굳이 하기 싫다면 안 해도 됩니다. 그 대신 당신은 신무맹에 끌려가야 할 것이외다. 그리고 이건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말하는데, 신향상국과 이제부터 장황상단은 천하제일상국과 거래를 맺을 것이라 했소이다.”
“뭣이? 그들까지 협박을 했소?”
“상계를 잘 모르시오? 상황에 맞게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이 누구인지?”
“…….”
“시간이 지날수록 상국의 값어치는 떨어질 것이외다. 내일이면 반토막이 날 수도 있소.”
주유형은 결정을 내렸다.
“알겠소이다. 걸황의 뜻에 따르겠소.”
“이봐, 유형! 무슨 짓을 하는 것인가?”
주호덕은 그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형님, 끝났소이다. 걸황의 말처럼 좋은 가격에 받고 그것으로 조용히 지내지요.”
“이건…… 가문을 파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가문을 따지시는 분이 혼자 살고자 중앙상국을 나가고자 했소?”
“…….”
주유형의 어깨를 잡고 있던 그의 팔이 부르르 떨렸다.
타앗!
“모두 끝났습니다. 우리의 시대는 이미 저물었습니다. 이제는 걸황의 시대입니다.”
주유형은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능력이 닿지 않는 욕심을 부린 탓에 두 명의 형제까지 죽었다.
이미 끝은 정해져 있었다.
다만 인정하기 싫었을 뿐.
“……걸황, 모든 것을 넘기겠네.”
“좋은 선택입니다.”
“다만…… 한 가지 부탁을 들어줄 수 있을지 모르겠소.”
주유형은 담담하게 말했다.
더 이상 잃을 게 없었다.
“무엇입니까?”
“중앙상국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으면 하오.”
“그렇게 하죠.”
“…….”
생각지도 않은 듯 너무 간단하게 대답한 남하림을 보면서 주유형이 오히려 당황한 표정이 나왔다.
“정…… 말이십니까?”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않나요?”
“고맙습니다.”
주유형은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다.
자신들이 손을 뗀다고 하여도 중앙상국은 주인만 바뀔 뿐 살아 있는 것과 똑같았다.
“……중앙상국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다면 나도…… 물러나겠소이다.”
주호덕도 결심을 내렸다.
“결정을 잘 했소이다. 나머지 일들은 여기 양 총관과 후 선생과 이야기를 나누시면 됩니다.”
남하림과 팽유도는 회의실에서 나왔다.
“하림 형, 거의 끝이 난 것 같네요.”
“내부적으로 해결할 게 많지만 거의 끝이 났지.”
“이번 일로 창천에 관해서 잘된 건가요?”
“그들에게는 별 영향을 주지 못했을 거야.”
“네에? 정말요? 하남표국에서 가는 물량들을 모두 수장시켰는데요?”
“지금까지 그들에게 들어간 물량을 봤을 때 그 정도 양은 예비용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거야.”
“그 정도로?”
“후후후. 실망했어? 하남표국에 보낸 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간 거야. 충분히 일을 잘하고 왔어.”
“헤헤헤. 그런가요?”
팽유도는 미소를 지었다.
남하림에게 칭찬을 받는 일은 대단한 일이었다.
“준 호위.”
“주군. 하명하십시오.”
“당분간 이곳에서 남아서 양삼의 명에 따라 움직였으면 해. 국주의 명 없이 움직인 곳들은 모두 제거하고.”
“주군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 * *
피우우웅-
혁력세가의 하늘 위로 신호가 날아올랐다.
세가주 혁력위는 전방에서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적을 모았다.
세 번의 참패.
전력을 다해 적을 막고자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적이 지나가는 뒤로 살아 있는 수하들은 아무도 없었다.
오직 죽음만이 그들 뒤에 있을 뿐이었다.
“막을 수 없어. 오늘이 혁력세가의 마지막이구나.”
혁력위는 가슴이 차가워졌다.
비통한 가슴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하여도 함께 식사를 하던 가족들, 그리고 수하들이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갑자기 나타난 창천의 무인들.
다른 곳에 원군의 연락을 띄울 수도 없었다.
저벅저벅.
절대 무인의 발걸음.
혁력위는 다가오는 사내를 노려보았다.
“당신은 누구시오?”
“영문자라고 하지.”
“본인이 도전을 해도 되겠소이까?”
“귀여운 놈이군. 네놈의 선조인 혁력서도 내 앞에서는 꼼짝도 못해 말을 꺼내지도 못했는데.”
“…….”
“원한다면 한 수 받아보지. 덤벼라.”
천무십광검법을 대성했던 혁력제일기인.
혁력세가의 중흥기를 맞이했던 인물이 조부인 혁력서였건만.
그런 인물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니.
‘일검에 내 모든 것을 담는다.’
그에게 두 수는 의미가 없었다.
그의 목숨을 끊기 위해서는 단 한 수에 걸어야 했다.
스으으으윽.
내력을 끌어올리며 최후의 초식 무량천하의 자세를 잡았다.
“겨우 천무십광검법으로 나를 상대할 모양인가? 혁력가가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이유가 있었어. 선조를 뛰어넘을 수 있는 후손이 없군.”
“……!”
휘릭!
영문자는 신법을 펼치며 앞으로 쭈욱 뻗어나갔다.
“지금 공격 안 하면 그 한 수도 펼칠 수 없다.”
“야아아아압! 죽어라!!”
혁력위는 다가오는 그를 향해 최후 초식을 펼쳤다.
피이이이잉-
무형의 검식이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영문자를 조여 갔다.
‘이겼다.’
영문자는 전혀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못한 듯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훗. 이 정도밖에 안 되나?”
파아아앙!
영문자의 단전에서 밝아지던 빛이 폭발을 했다.
단심광(丹心光)은 세상을 녹이며 혁력위의 검을 녹였다.
“헉헉헉.”
혁력위는 거친 숨을 쉬었다.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수십 개의 혈선이 보였다.
그 사이로 피가 흘려내려 가슴은 붉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쿠우웅!
혁력위의 몸이 앞으로 무너지면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고개가 숙여지며 숨이 끊어졌다.
“쳇. 재미없군. 너무 시시해.”
혁력세가에 오면서 조금이라도 흥미가 생길 것이라 기대했다.
“문인세가도 이러면 곤란한데…….”
창천영문의 다음 목표는 문인세가였다.
* * *
콰아아아앙!!
문인세가의 정문이 무너졌다.
그리고,
한 시진이 지나기도 전에 문인세가 가주 문용의 목이 날아갔다.
* * *
은하궁으로 향하는 황금 마차.
남하림은 중앙상국의 마무리는 양삼과 후연에게 맡겨 놓은 뒤 떠나왔다.
“하림 형.”
남하림을 부르는 목소리에서 정말로 궁금증이 느껴졌다.
“왜?”
“정말로 중앙상국의 주인이 형이 되는 거야?”
“맞아.”
“두 개의 상국의 주인이 되는 거네? 우와, 좋겠다.”
“나쁘지는 않지.”
“나도 좋아요. 부자 형이 있으니깐.”
“그래?”
마차에 탄 뒤 만통자는 거의 말이 없었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어젯밤에 천체가 흔들렸다. 격변이 시작된 거야.’
그동안에도 창천이 움직였지만 천체가 이번 경우처럼 심하게 요동친 적이 없었다.
“노인장, 무슨 걱정을 하는 겁니까?”
만통자는 여전히 얼굴이 긴장에 굳어 있었다.
“혹시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어제저녁에…….”
“천체가 흔들렸다고 말하는 건가요?”
“……보셨습니까?”
“당연히 봤죠. 그래도 현천의 수장이라면 한 번씩 살펴봐야지 않겠어요?”
“큰일입니다. 이런 경우는 이십 년 전 이후로 처음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 어렵다고 해서 내일도 어려운 게 아니거든요. 항상 변하는 게 세상이니 다가올 일에 대해서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준비는 하면서요.”
“…….”
남하림의 미소 띤 얼굴에서 편안함이 느껴졌다.
오전 내내 걱정을 한 게 허무할 정도였다.
똑똑.
마부석에서 문을 두드렸다.
“걸황님.”
“알겠어요. 마차를 멈추세요.”
남하림은 마차에서 내렸다.
개방에서 제일 바쁜 인물들.
황금마차 앞에서 걸비가 허리를 숙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팽유도는 그에게서 전서를 받아 들었다.
“하림 형, 여기.”
전서를 읽은 남하림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것 때문이었군.’
하늘이 어지러웠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완전 속전속결이군.”
압도적인 전력 차이가 아니고서는 두 세가를 한 시진 만에 전멸시킬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은 황산파로 움직인다고 했다.
“하림 형, 어떻게 할까요? 그들은 모두 안휘사대문입니다. 황산파까지 전멸을 당하면 안휘성은 창천에 떨어집니다.”
“세 곳 모두 신무맹 가입은 안 한 것으로 아는데?”
안휘성의 대문파들은 남궁세가와 친분이 깊은 곳들이었다.
그들 입장에서는 걸황이 세운 신무맹에 대해 좋은 감정이 없었기에 가입을 하지 않았다.
“네. 가입을 안 했지만…… 황산파의 경우에는 구대문파와도 친분이 깊은 사이예요.”
“됐어. 여하튼 신무맹에 가입을 안 한 문파를 위해 달려갈 필요는 없어. 그리고 이번에 나온 창천의 무인들은 빠르고 강해. 우리가 황산파로 가는 동안 끝날 거야. 신무맹에서 인원을 뽑은 뒤 아무리 빨리 가도 그들을 막을 수 없어. 안휘총타에서도 시간 내에 가지 못하겠지만 굳이 개방 형제들의 목숨을 잃고 싶지 않아.”
팽유도는 알 듯했다.
어렵고 안 된다고 하지만 그들을 막고자 한다면 혼자서라도 달려갔을 것이었다.
‘하림 형에게는 갈 이유가 없는 거야. 굳이 황산파를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없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남하림의 행동은 마치 속 좁은 사람처럼 보일 수 있었다.
무림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항상 달려갔던 일황사제들이었으니까.
무림의 존경을 받는 일황사제였기에, 이번 일도 당연히 황산파에 달려갈 것이라 확신했다.
“신무맹에서 움직일 시간이 너무 부족하니 황산파는 그곳에서 물러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본인의 뜻을 그대로 정확히 전달하세요.”
“넵. 알겠습니다.”
휘익.
걸비는 사라졌다.
남하림과 팽유도는 다시 마차에 올라탔다.
유미령은 마차 밖으로 따라 내리지 않았지만 어떤 상황인지 들었다.
남하림이 하는 일에 참견을 하는 게 아닌지 싶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가 그냥…… 염려가 되어서 하는 말입니다. 이번 일로 혹시나 안 좋은 말들이 무림에 소문이 날지 모르겠군요.”
“걱정해 주어서 고마워요. 하지만 좋게 말하든 안 하든 상관없습니다. 물론 사람이라면 좋은 소리를 듣고 싶겠지요. 하지만 그런 것에 연연하다 보면 소중한 것들을 잃을 수 있소이다. 잘라낼 게 있다면 포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해요.”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요.”
“후후후. 사람이 항상 좋다가도 한 번 틀어지면 싫어지는 게 사람 마음이죠. 내 사람이 아니면 남들이 어떻게 되던지 크게 신경 안 써요.”
“역시…… 형이야. 그럼 문제없겠네. 진작 저들도 신무맹에 가입을 했으면 괜찮을 거잖아.”
팽유도의 말에 신소소도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사람들이 아쉬울 때만 찾더라. 평소에 이상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유도 오빠, 안 그래요?”
“맞습니다. 작은 형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