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290화 (291/328)

290. 중앙상국을 접수하다

하남상국 국주 주유형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등에서는 식은땀이 싸늘하게 흘러내렸다.

자신의 호위대는 무림인들 중에서도 최고의 무인들이었다.

호위대주 덕운을 어린아이 취급을 하는 그녀의 무공을 보면서 걸황의 존재가 어떠한지 알았다.

‘내가 순간 미쳤다. 신무맹의 맹주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이지?’

바닥에서 신음을 하는 호위무사들.

그들을 보면서 정신이 돌아온 듯했다.

“거, 걸황, 함부로 말을 해서 미안하오.”

“알았으면 됐습니다. 돌아가세요.”

“…….”

주유형은 냉정하게 말한 남하림의 표정을 살폈다.

더 이상 상대하기 귀찮은 듯 고개를 돌린 채 옆을 보고 있었다.

“미안하외다. 하남표국의 일 때문에 흥분을 했소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 일에 대해 나중에 만나서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외다. 돌아가시오.”

축객령.

여전히 남하림은 시선을 마주치지 않은 채로 말했다.

“그럼 가보겠소이다.”

주유형은 고개를 숙였다.

바닥에 쓰러진 호위무사들도 정신을 차리면서 힘겹게 일어났다.

절대무적이라 불린 고수들의 수준이 어떠한지 깨달았다.

죽고 싶지 않다면 함부로 움직이는 게 아니었다.

돌아서서 빠져나가는 주유형의 어깨는 축 늘어져 있었다.

그를 따라 호위무사들도 기운이 빠진 채 뒤를 따랐다.

남하림은 고개를 돌렸다.

주유형과 호위무사들이 죽림길 사이로 사라졌다.

‘그가 아니라면 남은 두 상국 중 한 곳이라는 것인데…… 만나보면 알겠지.’

네 명의 국주들을 만난 뒤 확인을 하면 된다.

“양삼.”

남하림은 죽군당 안으로 들어가면서 그를 찾았다.

양삼은 손에 찻잔을 든 채 나왔다.

“공자님, 부르셨습니까?”

“바빠?”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준 호위가 뭐 하나 싶어서.”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아니, 급한 게 아니야. 차를 다 마시고 갔다 오면 돼.”

“알겠습니다.”

* * *

“크크크크.”

죽군당에서 들려온 한 가지 소식.

멍청하게 자신과 똑같은 실수를 했다.

“그놈이나 나나 형제가 맞긴 하군.”

어릴 적 보았던 그 생각에 남하림이 맹주라는 사실을 잊었다.

가슴이 시원해졌다.

하남상국은 조만간 끝이 날 게 분명했다.

하남표국을 통해서 창천에게 물량을 빼돌린 것이 신무맹에게 들켰다.

중앙본국에서도 적지 않는 물량들이 빠져나갔지만 그 정도는 얼마든지 채울 수 있다.

‘신무맹은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아. 본국에 올 정도면 끝을 보겠다는 것이지.’

창천에게 붙은 하남상국을 그냥 두지 않을 게 틀림없었다.

“국주님.”

문밖에서 내총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부 모였나?”

“네, 그렇습니다.”

“알겠다.”

드륵.

주양진은 문을 열고 나왔다.

내총관이 고개를 숙였다.

팔자 눈썹 때문인지 항상 웃는 얼굴이라 하여 소용자(笑容者)라 불렸다.

“유형의 표정은 어떠하던가?”

“평소와 다르게 풀이 죽은 듯 조용했습니다.”

“크하하하. 걸황에게 제대로 당한 모양이군.”

방금 전까지만 해도 좋지 않았던 기분이 완전히 바뀌었다.

“죽군당에는 연락을 했는가?”

“사람을 보냈습니다.”

“좋아, 잘했네. 그럼…… 난 구경이나 하면 되겠군.”

중앙상국의 네 국주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해주면 모든 것은 걸황이 알아서 처리를 하겠다고 했다.

“후후후, 소용자. 어서 갑시다.”

휘이익.

회의실로 가는 주양진의 걸음걸이는 가벼웠다.

* * *

드륵.

주양진은 회의실 문을 열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세 사람.

주호덕과 주유형은 들어선 그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어…… 어…… 됐네. 그만들 앉게.”

주양진은 두 손을 뻗으며 자리에 앉도록 했다.

어색한 듯한 얼굴로 세 사람이 자리에 앉았다.

“이거 참…… 너무 오랜만에 얼굴들을 보는군.”

“그러게 말입니다. 자주 만나야 하는데 워낙 먹고사는 게 바빠야 말이지요.”

하관이 발달된 듯 사각형의 턱선에 육중한 느낌을 준 인물.

신향상국 국주 주호덕은 팔짱을 낀 채로 말했다.

“둘째 형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요즘 치고 들어오는 놈들이 많아서 먹고 살기가 빡빡합니다.”

넷째 낙양상국의 국주 주당소도 한마디 하였다.

주양진은 두 사람과 달리 심각한 표정을 짓는 주유형을 보았다.

‘후후후. 죽을 맛이겠군. 하긴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동안 안하무인이었지.’

언젠가는 한 번 세게 당할 줄 알았다.

‘하필이면 신무맹과 척을 지는 창천과 연관이 되다니…….’

장사꾼은 줄은 잘 서야 했다.

괜히 불똥이 튈 수 있기에 항상 돌다리도 두들기고 난 뒤 건너가야 하는 게 장사꾼이었다.

“유형 아우, 무슨 일이 있는가? 왜 얼굴이 죽상인가?”

“…….”

주유형의 눈에 노기가 뿜어져 나왔다.

“지금 나를 놀리는 게요?”

“허허. 이 사람이…… 누가 누구를 놀린다 말인가. 눈에 보이는 대로 물어봤을 뿐이다.”

타아앙!

주유형은 탁상을 내리쳤다.

“지금 놀리는 게 아니라면 칭찬하는 것입니까?”

“이 자식이 어디서 화풀이를 하는 거야? 딴 곳에서 얻어터지고 온 주제에 괜히…… 열받으면 한 번 더 가서 따지든지.”

“…….”

“그리고 분명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을 텐데. 무림의 일에 끼어드는 게 아니라고 당부를 하셨다. 잘못은 분명 네놈이 했어.”

“젠장…….”

주유형은 짜증을 내면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주당소와 시선이 마주쳤다.

‘……당소…….’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는 시선이 있었다.

주양진은 신경을 쓰지 않는 척하며 그들을 보았다.

‘이것들 봐라. 뭔가 있는 것 같은데…….’

탁탁.

주양진은 탁자를 가볍게 두 번 쳤다.

“자자. 잠깐만 주목들 하게.”

주양진을 향해 세 사람의 시선이 고정되었다.

“오늘 여기 모인 이유는 알고 있을 것이라 보네.”

“정말로 그 일 때문에 우리를 부른 게 맞습니까?”

“아우들이 계속해서 원하는 것을 혼자 안 된다고 할 수도 없고 해서, 이번에 결정을 짓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네.”

“잘 생각하셨습니다. 어차피 지금도 중앙상국의 이름 아래 있지만 서로 다른 사업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 다만 그동안 내가 반대를 한 것은 본 상국이 네 개로 상국으로 나누어진다면 중원오대상국의 지위를 잃기 때문이었다. 무슨 의미인지는 알겠지?”

“형님, 이름밖에 없는 오대상국이란 위명이 뭣이 중요합니까? 똑바로 운영을 못하면 북방상국도 망하는 게 현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린 오대상국이란 틀에 잡혀 다른 지역에서 큰 사업을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긴 하지. 그 대신 다른 지역의 상국에서 들어오지 못했던 하남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도 알겠지?”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주당소의 말에 주양진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나를 얻고자 욕심을 부린다면 두 개를 잃을 수 있거늘.’

중앙상국이란 틀이 사라진다면 각각의 상국은 얼마든지 다른 지역에 사업을 하는 데 걸림돌이 없었다.

그들은 이익만을 위해 중앙상국의 해체를 원하고 있었다.

“좋네. 오늘 어렵게 모였으니 그 부분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보세.”

“고맙소이다.”

“흐음…… 호덕 아우에게 고맙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군.”

똑똑.

문밖에서 기척이 들렸다.

‘왔군.’

주양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참, 그리고 이 자리에 한 사람을 초대했다네. 회의를 하기 전에 할 말이 있다고 하더군.”

“…….”

그는 직접 문 앞으로 걸어갔다.

“들어오시지요.”

세 명의 국주들은 안으로 들어선 사내가 누군지 고개를 내밀었다.

황금색 걸복을 입은 사내.

중원에 그런 이는 한 명밖에 없었다.

‘걸황이 죽군당에 있다고 하더니 여기에는 무슨 일이지?’

남하림의 등장에 그들의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찾았어. 이자였군.’

남하림은 안으로 들어오면서 세 명의 국주 중 한 명과 시선이 마주쳤다.

낙양상국 국주 주당소.

‘왜…… 웃지?’

그는 히죽거리며 웃는 남하림의 미소를 보았다.

“걸황이 본국에 계시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근데 상국의 주요 회의를 하는 자리에까지 참석을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건 본인이 본국의 국주님을 대신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불편하게 서 있지 말고 모두 편안하게 앉으시지요.”

중앙상국의 네 국주들은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얼마 전에 본인은 중앙상국과 관련이 된 한 가지 좋지 않는 소식을 들었소이다. 그게 뭔지 아십니까?”

“걸황, 무엇을 말하는 것이오?”

“실망이외다.”

남하림의 눈빛이 변했다.

“…….”

그들은 숨을 죽였다.

슈우우욱.

무형의 압박이 밀려왔다.

“다른 곳에서는 알고 있는데 어째 당사자들이 모른다는 게 말이 된다고 보시오?”

“걸황, 지금 우리들을 놀리는 것이오? 모를 수도 있지 않소이까?”

남하림은 굳이 친절하게 알려줄 필요가 없었다.

“안 되겠군요. 본인은 조용히 해결을 하고자 했소이다. 근데…… 여러분의 반응을 보니 그런 생각을 접어야겠소. 신무맹의 뜻대로 할 테니 그렇게 아시오.”

남하림의 단호한 경고.

하지만 세 국주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걸황, 미안하외다. 잠시 화를 푸시는 게 어떻겠소이까.”

주양진이 얼른 나섰다.

이 자리에서 남하림이 화를 내고 돌아간다면 일이 오히려 크게 번질 수 있었다.

무림맹과 달리, 신무맹은 하남성에 있다고 하나 경제적으로 중앙상국에 피해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신무맹이 작심한 채로 움직인다면 중앙상국은 큰 어려움을 당할지 몰랐다.

“호덕, 사실대로 말하게. 걸황께서 온 이유를 정말로 모른다고 보는가? 신향상국의 대륙상단에서 백만 냥 정도의 물량이 빠져나간 걸 모를 것 같나?”

“…….”

“문제는 수많은 물량이 어디로 빠져 나갔냐는 것이네.”

주양진의 물음에 세 명 모두 입을 열지 못했다.

특히 주유형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문제 때문에 하남표국이 쑥대밭이 되어 버렸다.

“유형, 정말 네가 창천과 내통을 했다는 말이더냐?”

“형님…… 그게…….”

주유형은 말을 하려고 했지만 한 명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낙양상국 주당소.’

남하림은 여전히 보지 않는 척 시선을 돌렸다.

혼령안을 속일 수 없었다.

주당소의 눈동자에 두 개의 영혼이 스쳐 지나간 흔적이 보였다.

그리고…….

오래전 자신을 내려다보았던 눈빛의 주인이 바로 그였다.

‘이상했던 느낌이 바로 이것이었어.’

대혼술법이었다.

“본인이 한마디 하지요. 오늘 이후로 중앙상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업의 영업은 잠시 중단하겠소이다.”

“걸황, 무슨 말을 하는 것이오? 대체 신무맹에서 어떤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이다!”

“어떤 자격이라 하셨소? 당신들은 신무맹의 적인 창천과 거래를 했소이다.”

“그들과 거래를 한다고 해서 잘못되었다는 말이오? 무림에서 관여할 일은 아닌 걸로 알고 있소.”

주당소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주 짧은 순간 눈빛에 살기가 뻗어 나왔다.

상국이 누군가와 거래한다고 해서 신무맹에서 제재를 가하는 일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낙양상국에서는 돈만 되는 일이면 모든 게 통용이 되는 모양이군요.”

“그렇소. 우린 장사꾼이오. 난 무림에서 말하는 정사마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않소.”

“알겠습니다. 상국주께서 그런 생각을 하는데 더 이상 이 자리에서 무슨 말을 하겠소이까. 난 본국의 국주께서 부탁을 하기에 잘해보려고 했소. 상국은 상국대로 장사나 잘하시오. 우린 우리대로 적이라고 생각되면 모든 것들을 죽여 버리면 그만이외다.”

“걸황. 상계에서 가만히 있을 것 같은가?”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소이다만…… 이미 상계에 이와 같은 사실을 대해 연락을 하기로 했소이다. 그들도 본인의 뜻에 따를 것이오.”

“…….”

걸황은 천하제일상국의 국주이기도 했다.

상계에 대해 모르지 않았다.

중앙상국을 제외한 네 곳의 상국은 걸황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남하림은 돌아서서 주양진과 마주 보며 씨익 웃었다.

“국주님. 결정을 내려야겠습니다.”

“…….”

“죽군당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알겠소. 이거 미안하게 되었소이다.”

“국주님의 잘못이겠습니까? 원하는 바가 다르니 가는 길도 다른 것이지요. 난 국주님만큼은 함께 가는 길이면 좋겠소이다.”

드륵.

남하림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귀찮은 고민을 하지 않도록 저들이 판을 만들어주었다.

“그냥 전부 때려 부수면 되겠군.”

죽군당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타악.

주양진 또한 돌아선 채 문을 세게 닫았다.

멍청한 놈들.

모두 죽고 싶은 것이다.

그들의 운명을 창천에 걸었음에 틀림없다.

‘난 네놈들과 다른 길을 갈 것이다.’

“하하하!”

주양진은 웃으면서 돌아섰다.

* * *

죽군당에 돌아오자 준극남이 들어와 있었다.

“주군,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군사들을 끌고 온 곳이 있던가?”

“네. 상국 주위를 살폈습니다. 세 곳 모두 각각 일천의 군사들을 마을 초입에 놓아두었습니다.”

“세 곳 모두? 그건 약간 의외인걸.”

“분명 이유 없이 군사들을 잔뜩 데리고 오진 않았을 것입니다.”

“이유는 한 가지겠지. 두려운 거야. 내가 중앙상국을 찾았다고 하니 정체가 들켰다는 생각이 들었을 거야.”

남하림은 자리를 고쳐 앉았다.

세 곳 모두 군사들을 끌고 왔다는 건 한통속이라는 뜻이 분명했다.

‘후후후. 바라던 바지.’

남하림은 결정을 내렸다.

“준 호위. 그들 모두 정리해라.”

“주군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남하림의 시선이 이번에는 양삼을 향했다.

“양삼은 이들 세 곳 상국들이 하는 모든 사업들을 접수하도록 해. 오늘 이후로 중앙상국은 네 곳 으로 나누어질 거야.”

“오대상국에서 떨어져 나가겠군요. 알겠습니다.”

“전쟁이면 굳이 적을 살려줄 이유는 없잖아. 우리가 먼저 차지해서 가져야지 않겠어?”

“지당한 말씀이십니다. 굳이 남들 좋은 일 시켜줄 이유는 없습니다.”

양삼 옆에 앉은 후연을 보았다.

“그리고 후 선생께서는 양 총관을 도와주었으면 합니다. 앞으로 이들이 했던 모든 사업체들은 후 선생께서 관리하셔야지 않겠습니까.”

“네. 주군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스윽.

남하림은 두 손을 뻗어 유미령과 신소소의 손을 잡았다.

“두 분께서도 혹시 모르니 준 호위를 도와주면 좋겠소이다.”

“알겠어요. 준 호위와 함께하지요.”

“오빠, 걱정 마세요.”

“후후, 그렇다고 일선에 나서라는 말은 아니야.”

“알겠어요.”

동료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신소소도 이제는 중요한 일에 함께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흡족했다.

“저어…… 천주님, 저는 무엇을 하면 됩니까?”

“영웅은 항상 마지막에 나서는 겁니다.”

“흐음. 그렇지요.”

만통자의 표정이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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