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9. 하남상국을 부수다
하남표국주 주오량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망했…… 어.’
총표두 자약성을 포함하여 표사들과 표국에서 일하는 쟁자수들까지 모두 끌려 나와 무릎을 꿇고 있었다.
팽유도는 그에게 의자를 내밀었다.
“앉으시오.”
처억.
철공은 솥뚜껑만 한 손으로 주오량의 어깨를 눌렀다.
“주 국주, 무슨 일인지 아시겠소?”
“도제, 정말 모르겠소이다. 왜 우리들을 핍박하시는 겁니까?”
“몰라서 묻는 것이라면 차라리 좋을 텐데요.”
“…….”
팽유도의 단호한 눈빛에 주오량은 말문이 막히며 등골이 싸늘해졌다.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눈빛에 그와 시선을 똑바로 마주치지 못했다.
“주 국주.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아 미리 말해주겠어요. 당신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은 없소이다. 궁금한 것도 없고. 전부 알고 있으니깐.”
“도제, 신무맹이 아무리 정파의 수장이라고 하나 본 표국은 무림과는 연관이 없소이다. 이런 식으로 신무맹이 함부로 할 수 없소.”
주오량은 당신들은 정파이며 자신들은 상계의 인물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알렸다.
하지만 그건 팽유도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웃긴 양반이군. 분명 알고 왔다고 했건만. 머리가 나쁜 게 틀림없군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소이까?”
튀이이잉!
팽유도는 손가락을 튕겼다.
핏!
주오량의 어깨에 강기가 박혔다.
“욱.”
짧은 비명 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는 휘청거리며 뒤로 넘어졌다.
“신무맹이 함부로 못한다고 생각하는군. 그건 당연한 말이지. 예전의 무림맹이었다면 명분 없이 움직일 경우 탄핵을 받았겠지. 하나 지금은 달라. 신무맹이 움직이고 싶을 때 누군가의 허락을 받아야 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걸황이 바로 신무맹이야. 무림인들도 잘 알고 있지.”
“…….”
팽유도의 미소에서 주오량은 순간 깨달았다.
중원 정파 무림에 신무맹보다 상위의 무림 단체는 없다.
신무맹이 원한다면 그들의 말과 행동이 곧 정의와 법이 될 수 있었다.
하남표국이 무림에 해가 된다고 결정 내린다면 공적이 되어 사라지게 되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이들은 하남표국이 하는 말에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자를 끌고 오세요.”
일동은 뒤로 손을 묶은 채 포박한 사내를 끌고 왔다.
오 호선의 배에서 끌고 온 창천의 인물이었다.
“이자가 누군지 알겠소?”
“…….”
당연히 주오량과 자약성은 그가 누구인지 알았다.
“우릴 너무 무시하는군. 중원 무림에서 창천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시오?”
두 사람은 고개를 숙였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죽을죄를 졌사옵니다.”
고개를 숙인 채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하면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그 방법은…….
협박당해 시키는 일에 무조건 따랐을 뿐이라 말을 하는 것밖에 없었다.
“전…… 단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씩 웃은 팽유도는 주오량에게 다시 물었다.
“위라는 곳이 어디를 말하는 것이오?”
“…….”
주오량은 잠시 머뭇거린 뒤 이내 결심을 했다.
이미 말을 꺼냈으니 감출 필요가 없앴다.
“하남상국입니다.”
“그거야 당연하지 않소? 하남표국주가 하남상국의 명을 받는 게 당연한 게 아니오?”
“…….”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한 팽유도의 목소리.
‘왜……? 하남상국이라고 알려줬건만…….’
주오량은 팽유도의 시선을 똑바로 보았다.
희미한 미소.
무엇인가 내놓으라는 눈빛이다.
‘……하남상국의 생사와 상관없이 어차피 하남표국에서 나의 생명은 끝이 났다.’
모든 것이 끝이었다.
주오량은 혼자서라도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야 했다.
‘국주. 미안하게 되었수다. 한 명이라도 살아야지 않겠소.’
“도제, 제 방에 같이 가시면 됩니다.”
“그렇소? 알겠소이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팽유도는 일어나자 채주가 다가왔다.
“이들 모두 철옥에 가두세요.”
“명을 받들겠습니다.”
주오량은 앞장을 서며 개인 거처로 들어섰다.
그의 침상은 거실을 지나가야 했다.
이곳은 하인조차 들어서지 못하는 장소였다.
“많이도 모아두었군.”
거실 중간중간에 값비싼 도자기들이 올려져 있었다.
“가짜입니다.”
휙.
팽유도는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쨍그랑!
푸른빛이 나던 도자기 한 병이 그대로 깨졌다.
‘헉!’
주오량은 숨이 막히는 줄 알았다.
바로 깰 줄은 몰랐다.
눈이 커지면서 손이 떨렸다.
‘망할 놈이……!’
팽유도를 향해 소리를 칠 뻔했다.
“가짜라면서요?”
“아…… 네에…….”
휘익.
이번에는 곤봉으로 길쭉한 금빛 화병을 내리쳤다.
퍽.
채애애앵!
맑은 소리를 내면서 화병의 주둥이 부분이 깨졌다.
“잠…… 잠, 깐…… 만…….”
“무슨 일이 있습니까?”
“제발…… 죄송합니다. 요것들은 전부 진품…… 입니다.”
“……흐음.”
팽유도는 정렬된 도자기들을 보았다.
스윽.
이번에는 황옥으로 만든 자기를 들었다.
“요것도 좋네요.”
“……!”
주오량의 시선은 오직 팽유도의 손에 들린 황옥 자기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주 국주님. 이것 때문에 여기 온 건 아니지요?”
“당연히 아닙니다. 잠시만…….”
그는 두 손을 펴며 팽유도를 진정시키려는 듯한 행동을 하고는 빠르게 책상 서랍을 끝까지 잡아당겼다.
안에서 비밀 서랍이 하나 더 나타났다.
주오량은 손을 넣어 창천과 하남상국, 그리고 하남표국 세 곳에서 주고받았던 서신들과 장부들을 끄집어냈다.
“저어…… 여기 있습니다.”
“고맙소.”
휙.
팽유도는 손에 든 황옥자기를 위로 던진 뒤 서신들과 장부를 잡았다.
‘어…… 어……!’
주오량은 허겁지겁 떨어지는 황옥 자기를 향해 손을 뻗어 무사히 잡아냈다.
‘이게 얼마나 귀한 물건이거늘…….’
다른 건 모두 깨져도 이것만 살아 있다면 괜찮았다.
스윽.
팽유도는 서신들과 장부를 펼쳐 보았다.
‘좋군.’
대충 살펴도 손에 들고 있는 정도의 장부는 충분히 증거가 되고도 남았다.
돌아선 주오량의 등을 툭 쳤다.
스르르륵.
깜짝 놀란 주오량이 황옥자기를 손에서 놓쳤다.
“엇……?!”
아래로 떨어지는 황옥자기의 모습이 너무나 느리게 보였다.
‘아…… 안 돼……!’
휘릭.
다행히 팽유도의 손이 바닥에 닿기 전에 황옥자기를 낚아챘다.
“……!”
“아끼는 물건을 손에서 떨어뜨리면 되겠소. 조심하시오. 보아하니 제일 비싼 물건 같은데?”
“아…… 네에. 고, 고맙습니다.”
하남표국에서의 일은 모두 끝이 난 듯했다.
하남상국과 창천과의 관계에 대한 증거를 찾았다.
하남표국에서 보낸 물량들은 창천에서 가지지 못하도록 수장시켰다.
“채주님, 수고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저희들이 고맙습니다.”
휘익.
팽유도는 하남표국을 떠나는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장강수로채의 수적들은 다들 기분이 좋았다.
수채로 돌아가는 수적선 안에는 하남표국에서 실은 물건들로 가득했다
* * *
죽군당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냈지만 하루에도 서너 번 걸비들이 찾아왔다.
하남표국에서 급히 날아온 전서를 펼쳐 보았다.
‘후후후.’
남하림은 미소를 지었다.
“하남표국의 일이 잘된 모양인가 보네요. 곧바로 이곳으로 합류를 하겠다는군요.”
일행들은 전서를 읽었다.
하남상국에서 창천과 관련된 자료들을 확보했다는 내용이 간략하게 적혀 있었다.
중앙상국은 갈수록 상황이 좋지 않았다.
‘여기까지가 중앙상국의 운인가?’
상황이 벌어진 것은 어쩔 수 없다.
중요한 것은 후처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신무맹에서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빠르게 대처했어야 했다.
그에게 이야기를 했건만…….
본국주 주양진에게선 다급함이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 중앙상국을 떠날 것이라 말을 꺼냈다.
아쉬움에 떠나지 말고 좀 더 함께하자고 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잡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동안 수고했다면서 좋은 곳에 가서 잘 지내라고 인사만 할 뿐이었다.
그동안 충고했던 게 그에게는 듣기 싫은 잔소리로 들렸음을 알았다.
후연은 중앙상국에 대한 정을 끊었다.
“주군, 세 명의 상국주들이 내일이면 도착을 할 것입니다.”
“생각보다 빨리 오는군요.”
“그들이 항상 원하던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일이 많아도 달려왔을 것입니다.”
“그 정도로 서로 떨어지기를 원하는 것입니까?”
“전대에서도 이런 시도가 있었다고 했지만 넘어갔습니다. 누군가 통합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흩어지는 게 기정사실이었습니다.”
“서로 힘을 모으면 오히려 좋지 않는가요?”
“보통의 경우라면 서로 합친 게 낫습니다. 하지만 이들 네 형제의 집안들에서 말들이 너무 많습니다.”
“각자의 집안에서 욕심을 부리는군요.”
“맞습니다. 그들이 각자 상국의 주인이라 해도 중앙본국에 의해 잡혀 있어 계속해서 요구를 해왔습니다. 세 곳의 상국에서 마음대로 할 수 없기에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지요.”
“지금쯤이면 신나게 오고 있겠군요. 어떻게 될지도 모르면서…….”
남하림은 이미 결정을 내린 뒤였다.
중원오대상국 연합회에 천하제일상국의 국주로서 안건을 올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NAME?
예전 같았다면 말도 되지 않는다며 제안을 거부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남하림의 안건을 무시할 수 없다.
그는 신무맹의 맹주이자 걸황이었다.
“준 호위.”
“주군. 말씀하십시오.”
“분명 세 곳의 상국 중에서 군사들과 함께 오는 곳이 있을 거야. 준 호위는 그놈들이 수상한 움직임을 보인다면 신창강기군으로 바로 제압시키도록 해.”
“알겠습니다.”
* * *
두두두두-
중앙본국으로 들어서는 무리들 위로 하남상국의 깃발이 펄럭거렸다.
신향상국과 낙양상국은 이미 반시진 전에 도착했다.
하남상국 국주 주유형의 표정은 노기로 가득했다.
중앙본국으로 달려오던 도중 하남표국에서 올라온 소식을 들었다.
휘익!
정문에 도착한 그는 신경질적으로 말 위에서 내리고는 정문 위사를 향해 다짜고짜 물었다.
“걸황이 어디에 있지?”
“죽군당에 계십니다.”
“죽군당에?”
그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중앙본국에서 가장 낮은 등급의 손님들이 지내는 건물에 걸황이 있을 줄은 몰랐다.
“덕운. 죽군당으로 간다.”
“국주님…….”
주유형의 명에 호위대주 덕운은 망설였다.
“무슨 일이지?”
“그는…… 신무맹의 맹주입니다.”
“맹주라서 본 상국의 표국을 마음대로 쳐들어와도 된다는 말이군.”
“그건…… 아닙니다.”
‘어린 새끼가…… 걸황이라는 칭호를 붙여줬더니 건방져졌어.’
어릴 적 코흘리개 시절부터 남하림을 잘 알았다.
주유형에게 남하림의 기억은 걸황이자 맹주가 아니었다.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생각되었다.
“죽군당으로 간다.”
“알겠습니다.”
주유형의 선두로 이십 명의 호위대가 뒤를 따랐다.
세 사람은 죽군당 정원에서 다정스럽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후르륵.
“하림 오빠. 처음 마시는데 죽향이 좋아요.”
“알았어. 양삼에게 말해서 구해볼게.”
“네. 고마워요.”
멈칫.
유미령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입술을 조심스럽게 닦았다.
“불청객이 오는군요.”
“오랜만에 몸을 풀어보는 건 어떻겠소?”
유미령은 미소를 지었다.
“그럴까요?”
“앗, 형님, 저도요!”
신소소도 바로 알아차렸는지 얼른 나섰다.
잠시 후 죽림길 사이에서 한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남상국의 주유형. 근데…… 아니군.’
그가 창천이 인물이 아닐까 의심했었다.
‘흐음, 하남표국 때문인 건 알겠지만. 수하들을 이끌고 온 것을 보면 내가 꽤나 만만하게 보인 모양이군.’
하남상국의 국주였지만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주의를 줄 필요가 있었다.
‘뭐, 여기 두 사람이라면…….’
‘팔자 좋군.’
주유형은 정원에 놓인 목조 의자에 앉아서 차를 마시는 젊은 사내와 두 명의 여인을 보았다.
‘저 녀석이…….’
어릴 적 얼굴이 조금 남아 있었다.
그가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있는 남하림을 향해 물었다.
“네가 남하림인가?”
타앗.
유미령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동시에 일장을 뻗었다.
슈우우욱-
은하대멸장이 주유형을 감쌌다.
‘헉……!’
밤하늘에 혼자 떠 있는 듯한 착각과 함께,
스스스슥.
멀리서부터 푸른 공간이 사라져 갔다.
콰아아아앙!
엄청난 폭음과 함께 열풍이 몰아쳤다.
‘대체…… 이년은……!’
주유형과 달리 덕운은 그녀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았다.
‘은하궁주 유미령이다.’
“제법이군. 오 성의 내력을 막아내는 인물이 있다니.”
덕운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방금 그 한 수가 겨우 오 성의 공력이라 했다.
“감히 신무맹의 맹주를 어린아이 부르듯 하다니. 중원 무림을 욕보인 자는 죽음이다.”
스르르륵-
아공만영보(亞空滿映步)가 유미령의 몸으로 펼쳐졌다.
뒤에서 그 모습을 본 남하림에게서 만족스러운 탄성이 나왔다.
“오…… 그분과 거의 대등할 정도의 보법을 펼치다니 수련을 많이 하셨네.”
슈우우욱.
또 한 번의 은하장이 그녀의 손에서 펼쳐졌다.
길게 뻗어 나온 푸른빛.
그 사이에서 하늘의 별들이 모두 떨어진 듯했다.
퍼어어억!
덕운의 가슴과 주유형의 가슴에 동시에 충격이 떨어졌다.
“아아악!”
뒤로 날아가면서 주유형은 소리를 질렀다.
쿠우웅!
그들은 십여 장 날아간 뒤 바닥에 쓰러졌다.
파앗.
신소소도 바로 움직였다.
가만히 구경을 하다가는 모든 게 바로 끝날 판이었다.
우루루루루-
급히 신무극수를 펼치자 천둥 소리가 울렸다.
호위대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젊은 여인의 손에서 펼쳐지는 굉음의 장력.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마주치지 못한 무력이 그들 앞에서 펼쳐졌다.
“으으으으으악!”
콰아아아앙!
두두두두-
호위대 머리 위에서 수십 발의 폭뇌격이 떨어졌다.
신소소는 바닥에 사뿐 내려앉았다.
“……아.”
연이어 두 번째 출수를 준비했지만 땅에 서 있는 호위대는 한 명도 없었다.
“다들…… 재미없게 왜 이러세요.”
투덜거린 신소소를 보면서 주유형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일부러 도발을 당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