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288화 (289/328)

288. 하남표국을 접수하다

덜컹.

재화당으로 들어서는 창천경무당 당주 반주현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축 처진 어깨.

입술은 굳게 다문 채 눈동자는 좌우로 흔들거렸다.

‘휴우…… 이거 참.’

일각 전 창천경무당으로 전서구가 도착했다.

그의 두터운 손에 들린 전서 한 장이 바람에 흔들렸다.

창천재정당 책임자 조경노는 안으로 들어선 그를 올려다보았다.

“불편한 소식을 가지고 온 모양이군.”

“송구하옵니다.”

“뭔가? 이리 줘 보게.”

보여주기 싫은 전서.

반주현은 두 손으로 공손히 내밀었다.

“사내가 손이나 떨고 있다니…… 쯔쯔.”

“죄송합니다.”

조경는 전서를 받은 뒤 읽었다.

이마에 살짝 잡혀 있던 주름이 짙어졌다.

꾸겨진 전서가 바닥 한쪽으로 버려졌다.

“누구 짓이라고 하더냐?”

“그건……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수하들이 수적 놈들의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장강수로채에서 미치지 않고서야 배를 수장시키지 않을 것이네. 분명 누군가 그놈들에게 사주를 한 게 틀림없어.”

“소인도 같은 생각입니다.”

반주현은 대답을 하면서도 표정은 여전히 굳은 채 긴장을 하고 있었다.

조경노에게 보고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아직 더 큰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반 당주, 일은 벌어졌네. 창천주님께 보고할 게 걱정이 되는가?”

“…….”

“중요한 것은 이미 일어난 일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그 일을 어떻게 잘 처리하느냐에 달려 있다네. 알겠는가?”

“죄송합니다.”

“됐네. 일단 수적들이 어디로 가는지 확인하게. 가능하면 그놈들의 배후가 누구인지도 알아보고.”

“넵. 계속해서 추적을 하겠습니다.”

반주현은 밖으로 나갔다.

잠시 생각에 잠겼는지 조경노는 움직이지 않았다.

스윽.

결심을 한 그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지. 보고는 해야 하니깐.”

조경노는 곧바로 창천궁으로 나섰다.

붉은색이 강렬한 건물이 멀리 나타났다.

웅장한 건물.

보는 것만으로도 위엄을 주기에 충분했다.

휘익.

인기척이 조경노의 뒤로 빠르게 다가왔다.

“어이, 어딜 가시나?”

“…….”

조경노는 갑자기 나타난 인물을 무시했다.

“이보게. 깜짝 놀란 모양인가 보군. 하하하. 놀라게 해서 미안하네.”

영문자는 히죽거리며 조경노의 옆에 섰다.

조경노는 말없이 앞을 보며 걸었다.

“경노, 주군에게 가는 길인가? 심심한데 나도 같이 갈까?”

“심심하면 잠이나 자게.”

“어허, 백 년 동안 자다가 일어난 사람에게 또 자라고 하다니. 너무하는 게 아닌가.”

“알아서 하게.”

“하하하. 고맙네. 역시 친구가 있으니 좋군.”

* * *

저벅저벅.

두 사람이 내는 발소리가 대전에 들어섰다.

“오셨습니까?”

사신호위대 대주 목옥창이 허리를 숙였다.

“천주님을 뵙고자 하네.”

드륵.

목옥창은 문을 열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고맙네.”

조경노와 영문자는 안으로 들어섰다.

백색의 천장 아래, 붉은 용이 하늘을 날고 있었다.

홍천룡의 아래에서 창천주가 앉은 채로 두 사람을 맞이했다.

“주군을 뵙습니다.”

조경노는 공손하게 두 손으로 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척.

영문자는 그와 다르게 포권을 하였다.

항상 만나면 투덕거리는 그들이었다.

“두 사람이 같이 왔군.”

“영문자는 오늘 길에 만났습니다.”

“그렇군. 자네의 표정을 보니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일인가?”

“소신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큰일은 아닙니다.”

“차질이라…….”

“중앙상국에서 마지막 물량을 싣고 오던 배들이 모두 수장을 당했습니다.”

“몇 척인가?”

“열 척입니다.”

“열 척이면 제법 큰일이지 않는가?”

“많은 양이긴 하나 이미 충분하게 창고를 채워놓았습니다. 여분으로 준비하려고 했던 물량이었습니다. 당분간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습니다.”

“본 천의 재정은 자네가 알아서 하니 걱정은 없다만. 중앙상국이 문제가 된다면 나중에 같은 문제가 생기지 않겠는가?”

“그땐 다른 곳에서 채우면 됩니다.”

“허어. 그렇다면야…… 큰 문제가 되지 않겠군.”

처어억.

영문자는 그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역시 자네는 일 처리 하나는 끝내주는군.”

“주군 앞이다.”

“쩝…….”

영문자는 조경노의 어깨에 올렸던 팔을 내렸다.

“하남표국에서 싣고 오던 배를 수장 시킨 곳은 장강수로채라 했습니다. 창천경무당에게 그들의 뒤를 조사하도록 시켰습니다. 조만간 어떻게 된 일인지 밝혀질 것입니다.”

“장강수로채라면 배후는 사무련이겠지.”

“사무련이라 해도 그 시간에 하남표국에서 움직인 것을 몰랐다면 수장시키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무련에게 누군가 가르쳐 줬다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하남표국의 인물이 아니고서야 수로를 이용해서 물량을 이동시킨다는 내용을 알지 못합니다.”

“하남표국에 누군가 숨어 있었던 건가.”

“그렇습니다. 문제는 간자가 아닙니다. 하남성에서 물동량이 많아진 것을 알아차린 뒤 바로 움직일 수 있는 곳은 한 곳밖에 없습니다.”

“간자를 보낸 곳이 신무맹이라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오대상국도 분명 알겠지만, 사무련에게 부탁하여 배를 수장시킬 수 있는 배짱을 가진 곳은 그들밖에 없습니다.”

“와아아…… 엄청난 놈이군요.”

대화를 듣고 있던 영문자의 입에서 바로 탄성이 나왔다.

상대가 창천임을 알면서도 도전을 한 것은 자신이 있다는 의미였다.

“크하하하! 영문자. 맞다. 걸황은 그런 놈이야. 그래서 재미있다는 것이지.”

‘허어, 주군께서…….’

창천주의 대소를 들었다.

많은 세월 동안 수많은 적을 상대하면서 이와 같이 기분 좋게 웃음을 터뜨린 적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주군, 즐거워 보이십니다.”

“창홍, 그렇게 보이는가? 맞다. 그놈을 생각만 하면 즐거워. 좀 더 이런 기분을 지속되기를 원하고 있지.”

영문자는 궁금했다.

창천주에게 즐거움을 줄 정도의 능력을 지닌 걸황의 존재.

“창홍. 그 녀석을 만나고 싶겠지만 아직은 참게.”

“알겠습니다.”

“어느 정도 쉬었다면 조금 움직여도 괜찮지 않겠나?”

“그렇지 않아도 몸이 살짝 근질거리던 참이었습니다. 어디를 다녀오면 되겠습니까?”

“우선 가까운 안휘부터 시작을 하지.”

“남궁세가는 멸문됐다고 들었습니다.”

“혁련과 문인세가, 황산파를 지워라.”

안휘성 사대문파 중 세 곳을 멸하라는 명령.

“다른 곳은 없습니까?”

“굳이 급하게 다닐 필요가 있겠나. 천천히 즐기면서 다녀오게.”

“주군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척.

영문자는 부복을 하였다.

* * *

장강수로채의 수적선들은 강을 따라 하남표국으로 빠르게 올라갔다.

‘도제…….’

변용을 푼 팽유도의 뒷모습.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무림 최고의 인물이었다.

일동은 다가서지 못하고 멀리서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나오세요. 숨어서 보지 말고.”

“…….”

처음에는 누구에게 말을 하는 건지 몰랐다.

“일동 형, 오세요.”

다른 사람을 찾는 게 아니었다.

일동은 선상에 선 팽유도의 곁으로 조심스럽게 다가섰다.

“부르셨습니까?”

“저번에 내가 아는 형이 있다고 했잖아요. 기억나죠?”

“네. 그렇습니다.”

“하림 형이라고 걸황이라 해요. 알죠?”

신무맹의 맹주이자 천하제일상국의 국주인 걸황 남하림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팽유도가 말했던 아는 형들.

그들이 일황사제들임을 알게 되었다.

“일동 형이 원한다면 하림 형에게 부탁해서 표사를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 줄게요.”

“정말이십니까?”

“당연하죠. 짧은 시간이지만 동기가 아닙니까. 월봉도 하남표국보다 훨씬 많이 줄 테니 걱정 마세요.”

일동의 얼굴이 밝아졌다.

하남표국에 겨우 합격했는데 한 달도 되지 않아 본의 아니게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고맙습니다.”

“저기 다른 사람에게도 말하세요. 원한다면 모두 소개시켜 준다고요.”

“고맙습니다. 모두 좋아할 겁니다.”

“조금 뒤에 하남표국에 도착할 겁니다. 내 뒤를 따라붙으세요. 우린 국주실에 가서 곧바로 국주를 잡아 하남표국을 접수할 겁니다.”

“넵. 도제님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일동의 심장이 뛰었다.

도제와 함께한다는 생각만으로 온몸이 흥분되었다.

* * *

하남표국의 뒤편으로 정박장이 보였다.

채주 척향이 뒤에서 다가왔다.

“도제님, 도착을 했습니다.”

“화포를 준비하시고 저기 후문을 향해 날리세요.”

“아…… 넵. 알겠습니다.”

도제의 명령은 화끈했다.

일단 퍼붓고 시작했다.

‘마음에 들어.’

척향의 명에 수하들이 화포를 조준했다.

“준비됐습니다.”

“단번에 끝을 낸다. 저기 보이는 문을 향해 쏴라.”

척향은 돌아서며 손을 내렸다.

퍼어어엉!

화포가 터지면서 폭탄이 허공을 가로지르며 날아갔다.

콰아아앙!

하남표국의 후문 위로 수십 발의 폭탄이 떨어졌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이런 것이었나?

하남표국의 인물들은 폭발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밖으로 빠져나왔다.

“대체……!  총표두, 이게 뭐요?!”

하남표국주 주오량과 총표두 자약성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자약성은 폭발이 일어난 후문으로 빠르게 달렸다.

“……이런…….”

후문의 상황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폭발에 의해 후문이 부서져 있었다.

휘익1

그는 재빨리 후문의 성곽 위로 올라섰다.

강에 떠 있는 수십 척의 배를 내려다보았다.

‘어디…… 어디 놈들이지?’

그는 이내 돛대 위에서 펄럭이는 아랑채의 깃발을 확인했다.

“장강수로채에서? 저놈들이 왜?”

어떻게 된 상황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삼십 척의 수적들.

정상적인 하남표국의 전력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나 지금은 거의 칠 할의 전력이 나간 상태였다.

“하필이면……!”

후문이 무너져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후문으로 올라오는 통로는 좁았다.

힘들지만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표사들은 나를 따르라.”

“넵!”

어느 정도 진정이 된 하남표국의 표사들은 총표두 자약성을 따라 통로를 막아섰다.

휘익.

팽유도가 배에서 내렸다.

“통로를 막고 있겠지.”

하남표국의 표사들이 후문을 지키고 있을 터.

후문은 부서졌어도 좁은 통로라 충분히 방어할 수 있는 지형이었다.

‘헷, 하지만 그건 내가 없을 때나 가능한 일이지.’

팽유도는 단번에 뚫을 자신이 있었다.

“내가 앞장서서 적을 밀어낼 테니 채주님은 안으로 들어간 뒤 표사들을 제압하세요. 반항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항복한다면 죽이지는 마시고요.”

“넵, 알겠습니다.”

팽유도는 선두에 서며 후문을 향해 올라갔다.

후문으로 들어가는 길 위로 통로를 막아선 하남표국의 표사들이 보였다.

‘총표두군.’

그리고 표사들 앞에 선 인물을 확인했다.

자약성은 이미 검을 뽑은 뒤 올라오는 젊은 사내를 유심히 내려다보았다.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었다.

젊은 사내는 수적처럼 보이지 않았다.

“멈춰라! 네놈은 누구이기에 본 표국을 침범하는 것이냐?”

“창천과 내통한 하남표국을 접수하고자 한다.”

“…….”

젊은 사내의 말에 자약성은 순간 흠칫거렸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우리가 창천과 거래를 하든 말든 네놈이 상관할 일은 아니다.”

“무림을 말살시키려는 창천에게 물량을 공급하는 하남표국이다. 창천은 중원 무림의 적이거늘. 당당하게 창천과 거래한다고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하남표국도 무림의 해를 입히려는 게 확신하군.”

“대체 네놈이 누구이기에…….”

“이분께서는 도제 팽유도 님이시다!”

일동이 큰 소리로 대신 알렸다.

‘도제?’

자약성의 이마에 주름이 생겼다.

도제의 위명만으로 주눅이 들었다.

“넌……?”

팽유도의 곁으로 나온 일동과 그의 뒤에 선 네 명을 알아보았다.

최근에 표사로 뽑힌 다섯 명이었다.

“네놈들은…… 분명……!”

이들이 왜 수적들과 함께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총표두, 경고하겠소. 무기를 버리고 스스로 포박을 받는다면 살려주겠소이다. 하지만 본인의 앞을 막는다면 신무맹의 이름하에 무림을 배신한 적으로 간주하여 제압하겠소.”

“…….”

상대는 일황사제의 도제라고 했다.

탁탁.

도제라 불린 젊은 사내는 곤봉으로 한쪽 손바닥을 치고 있었다.

‘도제라면 분명 반도인데…… 저건 곤봉이다. 혹시 거짓말인가……?’

상대가 도제라고 했지만 아무것도 확인이 된 것 없었다.

어쩌면 도제가 아닐 수 있었다.

“그대가 도제라는 증거는 있소?”

“…….”

팽유도는 피식 웃었다.

그의 질문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하림 형의 말처럼 몸소 실천이 없으면 안 믿는군.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지. 실력으로 믿게 만들 수밖에.’

“총표두, 증거가 뭔지 바로 가르쳐 주겠소이다.”

타앗!

비취류신법의 공허취장(空墟取障)을 펼치며 자약성의 앞으로 다가섰다.

‘헉……!’

흐르는 기에 주향이 퍼져 나갔다.

팽유도의 신법이 허공을 밟으며 흐느적거렸다.

퍽!

둔탁한 타격 소리가 났다.

그와 동시에 자약성의 얼굴이 휙 돌아갔다.

“이 정도면 충분히 증거가 될 수 있겠소?”

“……!”

자약성은 무방비처럼 앞에 선 팽유도를 보았다.

당연히 반격을 못할 것이라 생각했는지 팽유도의 내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놈, 방심을 하고 있다. 지금이 잡을 수 있는 기회다!’

손만 뻗으면 팽유도의 가슴에 찌를 수 있었다.

손에 든 검의 날이 번쩍거렸다.

자약성은 일검에 전력의 내력을 실어 보냈다.

파앗!

탄결종의 구결로 펼친 일검.

하지만,

‘없다……?’

분명 검날에 베어져야 할 감촉이 느껴지지 않았다.

당황한 눈빛에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며 눈꺼풀이 부르르 떨렸다.

“멋진 반격이었소이다. 당신의 움직임이 아주 잘 보였다는 게 문제지만.”

휘릭.

팽유도의 손안에서 한 바퀴 원을 그리며 회전하는 곤봉이 보였다.

퍽퍽퍽퍽.

곧 곤봉으로 내리치는 소리가 울렸다.

한 번의 공격에 자약성이 정신을 거의 잃어버릴 정도로 강한 위력이었다.

하지만 팽유도는 넘어지려는 자약성의 멱살을 잡은 뒤 곤봉으로 어깨를 내리쳤다.

이미 그의 쇄골은 완전히 부서진 듯 한쪽 팔이 너덜거렸다.

뒤에서 그 모습을 본 표사들은 앞으로 달려들지 못했다.

휘익!

팽유도는 멱살을 잡았던 자약성을 옆으로 내던졌다.

그리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표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본인의 타구봉에 머리가 깨질 분은 누구요? 당신인가?”

“커어억. 아…… 닙니다!”

팽유도의 뒤로 수많은 수적들이 살기를 내뱉고 있었다.

털썩.

표사들은 검을 버리고 바닥에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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