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287화 (288/328)

287. 하남표국으로 가다

둥둥둥둥.

북소리가 흐르는 강물 위로 울렸다.

긴급 상황을 알리는 소리.

수평선 너머로 마치 기다렸다는 듯 삼십 척의 수적선들이 한꺼번에 강을 거슬러 다가오고 있었다.

‘이거…… 의외인데.’

팽유도는 수적선들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하남표국을 떠나기 전 걸비에게 재빨리 연락을 보냈다.

배를 타고 간다고 했지만, 장강수로채의 수적들이 나타날 줄은 예상 못 했다.

‘수적들이라…….’

하남표국의 표물들을 막기 위해 장강수로채 수적을 보낼 수 있는 인물은 현재 한 명밖에 없었다.

‘하림 형이 사무련을 통해 보낸 게 확실해. 그렇다면…… 왜 수적들이지?’

팽유도는 수적들을 보다 번뜩 미소를 지었다.

창천에게 표물들을 넘기지 않으려면 이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그렇군. 단번에 수장시켜 버리려고 한 거야. 그렇다면……!’

휘익!

팽유도의 신형이 선상에서 사라졌다.

수적선에서 호탕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크하하하! 이놈들, 모두 멈추어라.”

피우우우웅-

퍼어어엉-!

수적선에서 쏜 화포가 허공을 가르며 강물에 떨어졌다.

후다다닥.

선실에 누워 있던 평문국이 북소리를 듣고 선상으로 달려 나왔다.

그러고는 화포를 쏘면서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수적선들을 노려보았다.

장강수로채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수적 놈들이 제삿날인 줄 모르고 찾아오는군.”

평문국은 수적들이 화포를 제대로 맞힐 수 없을 거라 확신했다.

수적들의 목적은 수탈이다.

그들은 물건을 빼앗아야 하지 배를 침몰시키는 것은 목적이 아니었다.

평문국은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다.

저 사내가 있으니 장강의 수적들은 더더욱 겁나지 않았다.

‘저분이 나선다면 장강의 수적 놈들은 모두 물고기 밥이 될 것이다.’

열 척의 배는 수적들의 경고 사격에 앞으로 더 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췄다.

퍼어엉!

펑!

수적선들은 여전히 화포를 쏘면서 열 척의 배를 둘러싸며, 포위망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크크크, 역시 제대로 쏘지 못하는군. 네놈들은 도둑놈들이지.’

일 호선에 탄 일경단주 구정은 수적선들이 좀 더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

‘후후후. 조금만 더 오면…….’

열 척의 배에 나누어 탄 창천일경단이 수적선으로 옮겨갈 수 있는 거리에 들어온다면, 충분히 수적들을 쓸어버릴 수 있었다.

수적선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둥. 둥. 둥. 둥.

수적선에서 북소리가 짧게 울렸다.

끼이이익!

포위하며 다가온 삼십 척의 수적선들이 옆으로 돌아섰다.

척척척척.

곧이어 수적선 상판 위로 수십 기의 화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헉……! 저놈들이……!’

구정의 눈이 커졌다.

퍼어어어엉!

펑펑!

피우우우우웅-

피이이이잉-

수십 발의 폭탄이 터지면서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콰아아앙!

콰아아앙!

“으악……!”

“아아아악!!”

배 상판에 떨어진 폭탄이 터지면서 여기저기 비명이 울렸다.

하지만 그들의 비명은 연이어 터진 폭발에 묻혔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앙!!

아랑채주 척향은 공중을 날아가는 폭탄들을 흐뭇하게 쳐다보았다.

며칠 전 긴급 서신을 받았다.

사무련에서 온 서신.

장강을 따라 내려가는 열 척의 배가 있으니 전부 수장시키라는 내용이었다.

서신 내용에는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까지 적혀 있었다.

창천의 무인들이 타고 있으니 붙는 척하면서 포위한 뒤 화포를 퍼부으면 끝날 것이라 했다.

“크하하하!”

척향은 한 척씩 가라앉는 배들을 보면서 속이 후련했다.

“뭣들 하느냐? 계속 쏴라. 저놈들을 모두 수장시켜라!”

“네엡. 채주님!”

펑! 펑! 펑! 펑!

피우우우웅-

수적선에서 끊임없이 수십 발의 폭탄이 날아왔다.

콰아아앙-!!

콰아아앙!

“이놈들……!”

일경단주 구정은 노기가 솟구쳤다.

목청이 터지듯 소리를 질렀지만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화포만 쏘지 않았어도 간단하게 제압할 수 있었다.

사전에 자신들의 계획이 밖으로 새어 나간 것이 틀림없었다.

“어떤 새끼가…… 감히……!”

이미 다섯 척의 배가 물속으로 잠기고 있었다.

그는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피우우우웅-

피우우우웅-

수십 발의 화포가 계속해서 날아왔다.

이제 제대로 성한 배는 없었다.

가라앉는 것은 시간문제.

살기 위해서는 배를 버려야 했다.

“망할 놈들……! 네놈들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단주님, 물러나야 합니다.”

“크으으으.”

그는 수하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비상 탈출용 배를 내려놓았다.

“모두 배를 버려라.”

구정의 명에 모두 배에서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허엇……!”

평문국도 비상 배로 탈출했다.

허망한 시선으로 가라앉는 배를 보았다.

‘이게…… 이게, 모두 재수 없는 그놈 때문이야!’

휘익.

평문국은 고개를 돌려 누군가를 찾았다.

‘이 새끼가 어디로 갔어?’

“누가 도유, 그놈이 어디 있는 줄 알아?”

“저어…….”

맨 뒤에 앉아 있는 표사가 힘없이 손을 들었다.

“그놈이 어디 있지?”

“화포가 떨어지기 전에 강물에 뛰어드는 것을 봤습니다. 이번에 뽑은 신입들과 함께…….”

“……!”

수상했다.

“망할 새끼…… 내 손에 잡힌다면 모두 사지를 찢어 버릴 테다!!”

* * *

“이봐, 줄을 내려!”

팽유도는 수적선을 향해 헤엄쳤다.

“저놈들은 뭐야?”

수적들이 배 밖으로 고개를 내밀자, 강물에 여섯 명의 표사와 기절한 사내 하나가 떠 있었다.

“하남표국의 표사들 같은데? 정신 빠진 놈들이잖아.”

“그러게. 반대로 가야 되잖아.”

“어떻게 하지?”

“일단 잡아 올려.”

휘익!

수적들은 강물 아래로 밧줄을 내렸다.

휘익.

팽유도는 밧줄을 잡고 수적선에 가뿐히 올라섰다.

우루루루.

구경거리라도 난 듯 수적들이 모여 들었다.

“여기 채주가 누구요?”

“…….”

수적들은 뜬금없이 채주를 찾는 젊은 표사를 보면서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 새끼가 미쳤나? 네놈이 뭔데 채주님을 찾아?”

“나? 도제.”

“도제?”

“그 도제? 큭, 크하하하하!”

순식간이 대소가 터졌다.

함께 올라탄 다섯 명의 표사들도 어이가 없었는지 팽유도를 보았다.

‘내가 미쳤지. 이놈을 왜 따라…….’

철공은 화포가 떨어지기 전 갑자기 달려와서 뛰어내리라는 말에 얼떨결에 팽유도와 일동의 뒤를 따랐다.

“에휴.”

어차피 말로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팽유도는 주먹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퍽! 퍽! 퍽! 퍽!

십여 명의 수적들이 단번에 나가떨어졌다.

“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렸다.

“이, 이놈! 무슨 짓이냐?!”

팽유도는 내력을 일으키며 사자후를 터뜨렸다.

“채주가 누구요?”

* * *

척향은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도제님을 뵙습니다.”

“본의 아니게 시끄럽게 한 듯하오.”

“아닙니다. 저놈들의 눈이 짧아서 도제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누굴 탓하겠습니까? 지들 복이지요.”

“하하하, 채주께서는 호탕하십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채주 척향과 대화를 하는 팽유도의 모습.

‘아…… 도제이시구나.’

일동은 며칠뿐이지만 함께 지내면서 그가 보통 사람과 달랐던 이유를 알았다.

그뿐만 아니라 나머지 네 명의 표사들도 함부로 말을 한 게 생각이 났는지 안절부절못했다.

“도제님, 이제 어떻게 하심이…….”

하남표국과 창천과의 연관성에 대해 증거는 이미 가졌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내.

오호선의 돛대에 있던 창천일경단의 인물.

팽유도는 강물에 뛰어들기 전에 그를 기절시킨 후 끌어내렸다.

‘하림 형이라면…….’

항상 모든 생각의 기준은 남하림이었다.

그라면 어떻게 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남하림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면 된다.

‘하림 형이라면 증거를 찾았으니 하남표국을 접수했을 거야.’

팽유도는 결정을 내렸다.

“음…… 채주가 잘하는 걸로 할까요?”

“그게…… 무슨…… 말이십니까? 제가 잘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수적이 무엇을 잘합니까? 하남표국을 접수하죠.”

“……!”

척향은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도 괜찮은지…… 요?”

“내가 앞장을 서겠습니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한 번 털어보죠.”

일황사제의 도제가 함께하는데 겁이 날 게 없었다.

“넵. 알겠습니다!”

“그럼, 출발합시다.”

두우우우웅!

수적선은 곧장 하남표국으로 향했다.

* * *

죽군당으로 걸비가 비밀리에 찾아왔다.

한 장의 서신을 건네주었다.

‘유도가 잘하고 있군.’

열 척의 배를 수장시킨 후 하남표국으로 올라가는 중이라 했다.

남하림은 서신을 유미령에게 보여 주었다.

서신을 읽던 그녀도 입가에 웃음이 나왔다.

“후후, 꼭 하는 행동이 당신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 같군요.”

“내가? 설마…….”

“아니라는 말인가요? 사무련에 연락을 한 그때부터 이미 여기까지 생각을 하지 않았나요?”

“앗. 형님, 정말이에요?”

신소소가 물었다.

“응. 맞아. 분명해. 사무련에 연락을 하여 장강수로채에게 하남표국의 배를 모두 수장시키라고 명을 내렸잖아. 그건 하남표국을 접수하라는 뜻이기도 해.”

“아항…….”

“도제도 당연히 알았겠지. 장강수로채를 보낸 것을 보면서.”

짝짝!

남하림은 박수를 쳤다.

그녀의 대답이 맞음을 인정한 것.

양삼이 물었다.

“공자님, 도제께서 하남표국으로 간다면 소문이 날 겁니다.”

“어떻게 나올지 잠시 상황을 주시해보지.”

“하남상국의 일이라고 하나 중앙상국에서도 반발을 하지 않겠습니까?”

“반발을 한다면 더 좋지. 하남표국과 창천과의 관계를 알았으니 중앙상국에서 어떻게 말을 할지 궁금하군. 어쩌면 이번 기회에 중앙상국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고.”

후연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송구한 말이지만 걸황께서 중앙상국을 얻겠다고 한다면 중원인들과 상계에서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이 됩니다.”

“후 선생께서 염려하시는 부분이 무엇인지 압니다. 오대상국 중 하나인 중앙상국을 본인이 가지고자 한다면 무림이나 상계에서도 안 좋게 보겠지요. 너무 많은 욕심을 부린다고.”

“맞습니다. 아무리 신무맹의 맹주이시라 해도 맹주께서 개인적으로 중앙상국을 거둔다고 하면 반발이 심할 거라 생각이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남하림은 천하제일상국의 국주이기도 했다.

이 또한 엄청난 힘이 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서 중앙상국까지 차지를 한다면 남하림의 힘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게 분명했다.

“괜찮아요.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남하림은 그런 부분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신무맹에서는 반발을 못하는 이유를 가르쳐 줄까요?”

“…….”

“신무맹이 무림 정파의 연합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정파의 연합이 아니십니까?”

후연은 무림인이 아니었다.

특별히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무림맹이 해체된 후 창천이란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세워진 정파무림의 연합이라 여겼다.

“신무맹을 누가 만들었다고 생각하시나요?”

후연은 질문의 의도를 똑바로 파악했다.

“걸황께서 만드신 것입니까?”

“후후후.”

남하림은 웃음으로 대신했다.

‘그렇군.’

신무맹이 곧바로 반발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았다.

신무맹은 중원 무림의 연합이지만 결국은 걸황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세력이라는 것이었다.

“후 선생. 그리고 겨우 두 개밖에 안 되는 상국으로 욕심이 많다고 하기에는 지나치지 않습니까?”

남하림의 미소에서 느꼈다.

‘엄청난 인물이다. 세상 전체를 담을 수 있는 사람.’

“세상은 넓습니다. 이왕 세상에 나왔다면 넓은 세상을 가지고 싶지요.”

“…….”

“난 그 세상을 많은 이들과 함께 가려고 합니다. 사내가 큰일을 하려면 혼자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난 일만 잘 저지를 뿐이지요. 내가 사고 친 일을 맡아서 책임질 사람은 따로 있는 법이거든요. 앞으로 후 선생께서 그 일들을 해주시면 고맙게 생각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걸황 남하림에 대한 생각들이 바뀌었다.

중원의 뛰어난 수많은 인물들 중 한 명일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난 멍청한 놈이구나.’

스스로 자책을 했다.

누구보다 사람을 잘 본다고 자신했던 자신감은 거짓이었다.

후연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공손하게 절을 하였다.

“소신, 걸황님을 주군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후 선생 같은 분을 곁에 두어서 운이 좋네요.”

* * *

주양진은 곧바로 다른 상국 세 곳에 전서를 보냈다.

그들이 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어서.

바로 중앙상국의 연합 해체에 관한 의견을 나누자는 것이었다.

그동안 그들은 줄곧 본국인 주양진에게 해체에 대한 요구를 줄기차게 해왔다.

하지만 주양진은 그들의 의견을 무시했다.

중앙본국의 허락 없이 신향상국, 하남상국, 낙양상국은 그들의 뜻대로 해체할 수 없었다.

중앙본국에서 이들 상국에 가진 지분을 명확하게 처리해야 가능한 문제였다.

“평소에는 연락해도 오지 않는 녀석들이 해체에 대해서 의논하자고 하니 달려오는군.”

그들이 친형제라고 해도 결국에는 경쟁자들이었다.

그들 세 개의 상국은 뭉치고자 하지 않았다.

“후, 이번에 사고를 친 곳은 세 놈들 중에 분명 한 놈이겠지. 어쩌면 잘된 것일 수도 있겠군.”

중앙상국까지 끝장을 낼 각오로 걸황이 직접 찾아왔다.

‘그는 직접 만나면 누군지 알 수 있다고 했어.’

걸황의 행동으로 봐서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세 곳 중 한 곳이 사라지게 된다면 둘 정도는 얼마든지 본국에서 상대할 수 있었다.

‘좋아.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 있겠어.’

주양진은 꿈을 꾸기 시작했다.

중원상국을 하나의 상국으로 합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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