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5. 사람을 얻다
하남표국에서 지내는 첫째 날.
팽유도는 표사들이 지내는 숙사로 안내를 받았다.
신입들이 지내는 표사들의 숙사는 그늘이 짙은 장소에 세워져 있었다.
킁킁.
안으로 들어가자 퀴퀴한 냄새가 밀려왔다.
“쳇. 너무하군. 아무리 신입이지만…….”
일차 관문에서 가장 먼저 바위를 옮긴 사내, 철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투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방 하나에 두 개의 침상이 놓여 있었다.
일동은 팽유도와 함께 한 방에서 지내기로 했다.
“흠…… 이 정도 냄새는 양호하네.”
팽유도는 침상에 몸을 그대로 누웠다.
‘일단 들어오긴 했어. 나를 돈 많이 밝히는 놈으로 알겠지.’
그들에게 준 첫인상은 성공적이었다.
반대편 침상에 누워 있던 일동은 갑자기 생각난 듯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아 참. 문 옆에서 기습을 할 줄 어떻게 알았지? 혹시 표국에 아는 사람이 있어? 누가 미리 알려준 게 맞지?”
“없는데요.”
“뭐? 오로지 감으로 그걸 알았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은데?”
팽유도도 따라 몸을 일으키고는 그를 보며 마주 앉았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답이 나와요. 일단 합격자들을 한꺼번에 안으로 데리고 들어간 게 아니라 한 명씩 부르는 것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고요.”
“으음…….”
“그 이유에 뭐가 있을까요? 당연히 시험이겠죠? 게다가 한 사람씩 들어간 뒤 바로 문이 닫히더군요. 그건 안에서 일어난 일을 보여주지 않을 거라는 뜻이지요. 이 정도면 기습을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던 거예요.”
“너, 진짜 똑똑하구나.”
“…….”
“왜……? 내가 무슨 말을 잘못했어?”
“그게 아니라, 나도 똑똑하다는 말을 들을 줄은 몰라서요. 난 머리가 나쁜 줄 알았거든요. 헤헤, 하긴 그 두 형이 워낙 머리가 좋긴 하죠.”
팽유도의 입가에 미소가 나왔다.
* * *
하남표국의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팽유도는 눈을 천천히 떴다.
‘뭐지?’
막사 밖에서 움직이는 소리들이 들렸다.
‘이른 시간인데.’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난 뒤 저녁에 받은 표사복으로 갈아입었다.
십여 대의 짐마차에 쟁자수들이 바쁘게 짐을 내리고 있었다.
짐마차 주위로 표사들이 뭉쳐 있었다.
“선배님들 안녕하십니까?”
팽유도는 그들을 향해 다가서면서 큰 소리로 인사했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얼굴.
표사라고 하기보다는 산적에 더 가까워 보이는 인상을 가진 사내였다.
“누구냐?”
복장은 표사복이었지만 처음 보는 얼굴일 터.
팽유도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어제 새로 들어왔습니다. 도유라 합니다.”
“훗. 신삥이군. 난 완추라 한다.”
“완추 선배님이시군요. 반갑습니다.”
완추는 경계를 바로 풀었다.
“삼 조에서 새롭게 뽑았다고 한 놈 중 하나이군. 근데 여긴 무슨 일이냐?”
“자다가 시끄러워서 무슨 일인가 나왔습니다. 지금 표행에서 도착하신 모양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 무슨…… 당연히 표사들이 해야 할 일이지. 표행을 하다 보면 잠을 자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며칠 동안 잠을 못 잘 수도 있다고.”
“그렇군요. 사실 제가 표사는 처음이라 잘 모릅니다. 앞으로 완추 선배님께서 저에게 많은 지도편달을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하, 알겠다. 오전 중으로 정리가 끝날 텐데 오늘 저녁에 신입들과 한 잔해야겠군.”
“감사합니다.”
완추는 팽유도의 사근사근한 성격이 마음이 들었다.
“완 조장.”
그때, 멀리서 완추를 부르며 다가오는 표두가 있었다.
팔뚝에 붉은색 띠가 두 줄.
표두 온강은 다가오면서 완추와 함께 있는 젊은 표사를 노려보았다.
“누구지?”
“이번에 삼 조에서 뽑힌 녀석입니다.”
팽유도는 얼른 그를 보며 허리를 숙였다.
“도유라 합니다.”
“도유? 아, 네놈이 첫날부터 월봉이 작다고 투덜대던 놈이군.”
“……아,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네놈을 맡은 평 표두를 만났다.”
“그냥 물어본 건데…… 표사도 돈 받고 하는 일 아닙니까.”
“크크크, 진짜 골 때리는 놈이군. 그런 말은 혼자서 하든지 아니면 네놈과 마음이 맞는 놈과 둘이서 몰래 하는 것이다.”
“아, 알겠습니다. 다음부터서는 조용히 혼자서 말하겠습니다.”
꾸벅.
팽유도는 고개를 숙인 뒤 바로 돌아섰다.
“어딜 가지?”
“완추 선배께서 시간 날 때 자는 것이 좋다고 해서요. 가서 마저 잠이나 자려고요.”
팽유도는 아무렇지 않게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면서 온강은 어이가 없었다.
“허어…… 무슨 저런 놈이 있지? 골 때리는 놈이 하나 들어왔군.”
* * *
국주실로 돌아온 주양진은 가슴이 답답했다.
남하림이 찾아온 이유를 말하지 않았지만 무엇 때문인지 알 듯했다.
사실 주양진은 중앙상국의 물동량이 늘어났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깜짝 놀랐다.
자신도 모르는 물량들이 중앙상국의 여러 사업체에서 빠져나가고 있었으니까.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곧장 감사를 보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과 연락이 끊어졌다.
‘세 번이나 몰래 보냈건만…….’
비밀리에 보낸 감사조도 마찬가지였다.
그들과 연락이 끊어진 지 벌써 며칠이 지났다.
일이 커지는 것은 바라는 바가 아니었기에, 주양진은 상계에서 조용히 넘어가 주길 바랐다.
하남에서만 일어난 일이니 다른 상국에서는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천하제일상국에서 결국 알아낸 모양이었다.
정상적이라면 물동량이 많아지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비정상적인 움직임은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군.”
중앙상국의 네 개 연합상국 중 한 곳에서 하남성의 물동량을 움직이고 있는 게 확실했다.
가장 유력한 상국은 하남표국을 움직이는 하남상국.
“국주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밖에 후연이 찾아왔다.
“들어오시지요.”
드륵.
문이 열렸다.
“후 선생.”
“어떻게 되었습니까? 만나서 이야기는 잘됐는지요.”
“다행히 넘어가기로 했소이다.”
주양진은 간략하게 죽군당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설명했다.
“잘하셨소이다. 어째든 잘못은 상국에서 먼저 했습니다.”
“그…… 렇지요.”
처음부터 주구붕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일이 터지면 아쉬움이 많고 후회가 밀려왔다.
“국주님, 이왕 일어난 일입니다. 후회를 한들 의미가 없지요.”
“지당한 말씀입니다. 단지 일어나지 않아도 될 일이란 생각이 들었소이다.”
두 사람은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후연은 궁금한 것을 물었다.
“신무맹의 맹주가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라 했습니까?”
“그건 아직 말을 하지 않았소이다. 나중에 따로 만나서 찾아온 용건에 대해서 말을 하겠다고 했소이다.”
“굳이 따로 만나서 말할 게 있소이까? 이왕 만난 김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으셨습니까?”
“걸황이 조용한 곳에서 만나고 싶다더군요. 나중에 연락을 주겠다고 하니 그때 만나면 알게 되겠지요.”
“음…… 혹시 국주께서는 예상이라도 되는 게 있소이까?”
“하남성의 물동량이 아닐까 생각됩니다만…….”
“역시 그렇군요. 문제가 될 줄 알았소이다.”
신무맹의 맹주가 찾아올 만한 이유는 지금은 그것에 없었다.
그 정도의 양은 군수물량과 비교해도 적지 않는 양이었다.
신무맹에게는 민감한 부분이었다.
“후 선생, 신무맹에서 알았소이다. 어떻게 대응을 하면 되겠소이까?”
“이제는 비밀리에 움직일 이유가 없을 듯합니다. 곧장 하남표국에 연락을 해서 표국주를 송환하도록 하시지요. 누가 명을 내렸는지 확인을 하셔야 합니다.”
“본인이 중앙상국의 국주라 하나 하남표국에 직접 명을 내릴 수는 없소이다. 하남상국에서 허락을 하지 않는다면 쉬운 일이 아니겠지요.”
“하남상국에서 거부를 하지 못하도록 압박을 해야지요.”
“그렇게까지…….”
“국주님, 똑바로 대처를 하지 못한다면 중앙상국은 멸문당할지 모릅니다.”
“…….”
중앙상국의 멸문.
주양진의 표정이 굳어졌다.
심각한 일이기는 하나 물동량이 많아졌다고 해서 멸문을 당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하남성에서 움직인 물동량은 중앙상국의 재산이기에 사실 무림과는 상관없을 수 있었다.
그것 가지고 멸문을 들먹이는 후연의 말이 듣기 싫었다.
‘멸문이란 말을 믿지 않는군.’
후연은 그를 보면서 느꼈다.
주구붕이 나선다고 할 때도 좋지 않다고 확실히 말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주구붕의 뜻을 따랐다.
평소에는 일을 잘 처리하지만 가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우유부단함이 보이기도 했다.
게다가 고집이 강한 면이 있었다.
하나 한 가문의 수장이라면 고집을 포기할 줄도 알아야 했다.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 해도 포기할 줄 아는 게 수장의 덕목 중 하나였다.
‘떠날 시간이 된 듯해.’
후연은 그에게 목숨을 걸 정도의 충성을 다하지 않았다.
도움을 주는 조언자로서 중앙상국에 지냈을 뿐.
주양진 또한 간혹 조언을 받는 정도로 후연을 대하였다.
“후 선생, 일단 하남상국의 아우에게 부탁해서 하남표국의 표국주를 부르도록 하겠네.”
“그렇게 하시지요.”
후연의 마음은 이미 떠나갔다.
한 번 말해서 듣지 않는 사람이 두 번 말한다고 들을 리가 없었다.
주양진은 그의 목소리에서 성의가 없음을 읽지 못했다.
“주 아우에게 연락을 해야겠군요.”
그는 밖을 향해 수하를 불렀다.
* * *
후연의 발걸음은 힘이 없었다.
‘오 년이라…….’
제법 오랫동안 밥을 먹고 지낸 곳이었다.
실망을 내려놓고 떠날 시간이었다.
“잘 먹고 간다.”
그는 얼마 되지 않는 물건을 챙기기 위해 거처로 돌아가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죽군당으로 가는 길이 중간에 나타났다.
“…….”
중원에 소문이 난 인물.
북방상국을 밀어내고 천하제일상국을 세운 걸황 남하림.
젊은 나이에 신무맹의 맹주에 오른 인물이기도 했다.
‘궁금하군.’
예전부터 한 번쯤 만나보고 싶었다.
한 번 가볼까.
휘익.
후연은 바로 몸을 돌려 죽군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대나무 숲으로 된 길.
대나무 잎이 주는 초록빛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향식은 죽림 길 사이로 들어온 인물을 발견했다.
“앗…… 후연 선생님이 아니십니까?”
뜻밖의 인물이 나타날 줄 몰랐다.
향식은 깜짝 놀라며 후연의 앞으로 얼른 달려갔다.
“혹시 걸황께서 안에 계시는가?”
“네…… 계십니다만…….”
드륵.
죽군당의 문이 열리며 준극남이 나왔다.
“주군께서 만나 뵙고자 하십니다.”
“본인을 말이오?”
“그렇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고맙소이다.”
후연은 죽군당으로 올라선 뒤 준극남을 따라 방으로 들어섰다.
남하림은 일어나서 그를 반겼다.
“어서 오시지요. 남하림이라 합니다.”
“후연입니다.”
“귀인께서 오셨군요. 여기에 앉으시지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귀인이라니요. 소인은 일개 범부에 지나지 않는 사람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귀인이 틀림없습니다. 방금 전 죽림에서 나오실 때 빛을 보았습니다.”
“…….”
후연은 미소를 짓는 남하림을 자세히 보았다.
만물을 압도하면서도 포근하게 담을 수 있는 기운이 그의 눈빛에 가득하였다.
“혹시 이곳의 사람이신가요?”
“아닙니다. 잠시 몸을 의탁했을 뿐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떠나려고 했습니다.”
“실례되는 질문이지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람 따라 흐르는 게 제 인생입니다.”
“아, 괜한 질문을 한 듯하군요. 그렇다면 혹시 그 바람을 잠시 저에게 맡겨놓을 수 있을는지요.”
후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밥은 많이 먹지는 않습니다. 잠 잘 곳만 있으면 됩니다.”
“후후, 감사합니다. 좋은 분을 곁에 모셔서 기쁩니다. 어떻게 부르면 되겠습니까?”
“그냥 선생으로 불러주시면 됩니다.”
“후 선생님.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남하림은 방 안에 있던 일행들을 소개시켜 주었다.
후연은 그들 중에서 노인이 누구인지 소개를 받자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만통자님.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허어. 노부를 아시오?”
“천기를 읽으신다는 만통자님에 대한 소문을 많이 들었습니다. 현자들 사이에서 만통자님께서는 성인으로 불러지고 있습니다.”
“하하하, 후연이라고 했는가. 우리 앞으로 잘 지내보도록 하세나.”
씨익.
만통자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려 남하림과 시선을 마주쳤다.
* * *
“역시…… 하남의 물동량 때문에 오셨군요.”
“그것도 이유이긴 합니다만 그 이유만이었다면 사람을 보내 따로 확인을 했을 겁니다.”
“그럼 다른 이유도 있다는 것입니까?”
“한 가지 확인할 게 있어 왔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중앙상국에서 한 사람을 찾고자 합니다.”
“누굴……?”
“확실하지 않지만 네 명의 국주 중 한 명이지요.”
후연은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이유가 있으십니까?”
“이번 사태의 주범입니다.”
“그들을 만나보면 주범인지 아실 수 있습니까?”
“아마도.”
문제는 중앙상국의 네 국주를 한꺼번에 보는 것은 어렵다는 것.
“걸황께서는 어떻게 할 생각이셨습니까?”
“주 국주께 부탁을 하려고 했지요.”
‘음…….’
후연은 고개를 흔들었다.
“말로 해서는 안 될 겁니다.”
“그건 본인도 잘 압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야 움직이는 분이시죠. 아마 물동량이 많은 것을 가지고 왜 문제를 삼으려고 하는지 반박을 하실 테고요.”
남하림은 잘 알고 있었다.
주양진의 성격에 대해 사전에 파악한 뒤 찾아왔다.
“제가 중앙본국에 왜 수하들을 이끌고 왔을까요?”
“그건…… 이 사람도…….”
일천의 기마대와 함께 도착을 했다는 말을 들으면서 후연도 궁금했던 부분이었다.
“어떻게 하든 주 국주가 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지요.”
“……!”
“생각하시는 게 맞습니다. 후 선생님이 보기에 본인과 함께 온 수하들이 협박처럼 보입니까?”
“…….”
후연은 말문이 막혔다.
“굳이 협박이라면 혼자 와도 됩니다. 수하들이 힘들게 여기까지 올 필요는 없지요. 하지만, 사람은 기회가 왔을 때 가질 수 있으면 가지는 것이지요.”
남하림의 미소를 보았다.
‘협박이 아니라면…… 대체…… 설마 중앙상국을……!’
후연은 충격을 받았다.
‘정말로 중앙상국을 가지고자 한다. 엄청난 인물이야.’
남하림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신무맹의 맹주가 상국을 접수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신무맹이 아니라고?
그게 아닌가?
“본인에게는 무림보다는 상계제일인이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소이다.”
상계제일인.
중원에서 단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남하림은 그 꿈을 좇고 있었다.
“주 국주님께는 미안하지만 본인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중앙상국은 끝을 낼 것입니다. 그분께서 생각을 잘 하셔야 할 텐데요.”
걸황은 이미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