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284화 (285/328)

284. 합격하다

웅성웅성.

하남표국의 정문 앞 광장은 수많은 지원자들로 가득했다.

‘진짜 많네. 요즘 일자리가 부족하다고 하더니…… 이거 합격하려면 장난 아니겠는걸.’

무용변상공을 익힌 뒤 얼굴을 변용한 팽유도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분위기를 살폈다.

‘하남표국이라…….’

신무맹에서 떠나기 전 남하림에게 하남표국에 대해서 들었다.

하남표국.

작년까지만 해도 호북성 표강상국에서 운영하던 표국 중 하나였다.

당시 표강상국은 갑자기 나타난 남하림에게 표강표국과 호북상국을 빼앗기듯 돌려주게 되면서, 자금력이 부족하게 된 상태.

이후, 그 사실을 알게 된 하남상국에서 거부할 수 없는 제시를 했다.

자금력 확보가 절실했던 표강상국과 때마침 표국업체가 필요했던 하남상국의 이익이 서로 맞았던 것이다.

표강상국은 두 배의 이익을 남기며 하남상국에 하남표국을 넘겼다.

표강상국의 입장에서 튼튼한 사업체를 팔긴 했지만 손해는 아니었다.

남하림에게 표강표국을 임대받아 예전에 거래했던 업체들 일부를 인수하면서, 충분한 자금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

하남상국은 중앙상국의 연합 상국으로, 이곳의 국주는 중앙본국 국주의 둘째 동생이었다.

‘하림 형이 말하기를 하남상국의 주유형이 손해를 좀 보면서까지 하남표국을 산 이유가 있을 거라고 했어.’

우연일지 모르나 하남상국을 넘어간 이후 하남표국의 물동량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하남표국의 주 활동 반경은 강서성 표행이었다.

‘창천이 바로 강서성에 있지.’

하남표국에서 이루어지는 물동량이 정확히 어디로 이동하는지 증거를 확보해야 했다.

“…….”

그때, 뒤에서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타악!

등을 치는 사내의 손길.

피할 수 있었지만 현재 팽유도의 대외적 무공 수위는 일류였다.

표사들의 대부분 무공 수위는 일류정도였으니까.

간혹 뛰어난 표사들은 절정 초입에 도달하기도 했지만, 괜히 상승의 무공을 펼치는 것은 오히려 남들 눈에 잘 띌 수 있었다.

“아야!”

팽유도는 놀란 척 표정을 지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흐엑, 철각 형만큼이나 크네.’

고개를 들어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나이는 삼십 대 후반 정도.

허리에 수(秀) 글자가 적힌 붉은색 천을 두른 사내였다.

가끔 스스로 뛰어나다고 주문을 거는 인물들이 허리에 차고 다니는 것이었다.

“왜요?”

“어디서 왔지?”

“하북에서요.”

“오호…… 억양을 보니 하북이 맞구만. 하북 어디인가?”

“낭방에서요.”

“허어. 이런 우연이 있나. 난 낭방의 문안 출신이라네. 자네는 어디서 왔나?”

“고안요.”

“하하하, 동향인을 여기에서 보는구만. 반갑네. 난 일동이라고 하네. 아우 이름이 뭔가?”

“도유. 도유요.”

탁탁탁.

그는 정말로 반가운 듯 팽유도의 덥석 안고 등을 두드렸다.

“도유 아우도 표사를 하려고 왔는가?”

“네에. 일자리가 필요해서요.”

“음…… 그 체격에 어디 싸움이라도 제대로 하겠는가?”

“제가 이래 봬도 힘은 좀 씁니다.”

그는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시선으로 팽유도를 내려다보았다.

“허어, 내가 동향의 형으로서 알려주겠네. 웬만하면 지원하지 말고 그냥 가는 게 어떤가. 표사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직업이야. 겨우 힘 좀 쓴다고 개나 소나 표사를 할 수 없지.”

“아하하, 그런가요.”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잃고 싶지 않다면 표사는 안 하는 게 좋을 게야.”

“그럼…… 그 어려운 표사 일을 형님께서는 왜 지원하십니까?”

“누가 하고 싶어서 하겠나.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먹고살아야 하지 않겠나. 이 짓이라도 해야만 다섯 식구들이 굶지 않고 살아가지.”

“아…… 그러네요. 가장의 비애군요.”

“내 말을 잘 들었으면 그만 포기하게. 젊으니 표사가 아니라도 할 일이 있을 것이네.”

“알겠어요. 생각해 볼게요.”

두우우웅!

그때, 북소리가 울렸다.

하남표국 안에서 중년 사내가 나오면서 소리쳤다.

“표사에 지원하는 사람들은 모두 모이시오.”

우르르르르-

광장에 모여 있던 수많은 지원자들이 달려갔다.

두우우웅!

첫 번째 시험은 체력.

쿠우우웅-

오 척의 길이의 원형 모양 바위.

지원자들은 마치 바닥에 박혀 있는 듯한 바위를 멀거니 올려다보았다.

“이 바위를 옆에 표시한 곳까지 옮기면 합격이오. 단 내력을 사용해서는 안 되오. 만일 내력을 조금이라도 이용한다면 바로 탈락이오.”

시험관의 말에 지원자들이 웅성거렸다.

바위의 무게는 아무리 못해도 백오십 근은 되어 보였다.

내력이 없이는 힘든 무게.

처어억!

그때, 지원자들 중에서 덩치가 큰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크크크. 이 정도는 애들 장난이지.”

퉷!

슥슥.

사내는 손바닥에 침을 뱉은 후 손을 비볐다.

곧바로 두 팔을 크게 벌리며 바위를 덥석 껴안았다.

“합!”

짧게 기합을 내면서 바위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뒤뚱거리며 가볍게 한 발씩 옆으로 옮겼다.

쿠우웅.

그는 정확히 원을 그린 자리에 내려놓았다.

“성공.”

“와우…….”

지원자들은 단번에 성공을 시킨 그가 부러운 듯 소리를 질렀다.

그 뒤로 수백 명이 도전했지만 바위를 옮길 수 있는 지원자들은 거의 삼십 명 정도일 뿐.

남아 있는 지원자들도 몇 명 되지 않아다.

‘흐음, 할 수 있을까?’

팽유도는 바위 앞으로 나가는 사내를 흥미진진하게 바라보았다.

동향인이라고 했던 장신의 그가 과연 들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일동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고향에 있을 식구들을 생각했다.

스으으윽.

두 팔을 펼치자 마치 커다란 새가 날개를 펼치는 것과 같아 보였다.

거의 감싸 안은 듯, 그의 팔 안에 바위가 들어왔다.

“이이이이잇!”

일동이 기합을 지르며 껴안은 뒤 힘을 썼다.

뿌지지직!

온몸 전신에 힘줄이 튀어나올 듯했다.

한 발…… 한 발…….

그의 얼굴이 붉게 타올랐다.

쿠우웅!

“허억허억.”

숨을 헐떡이면서 바위를 내려놓았다.

“합격이오.”

시험관의 말에 그는 이마에 흐르던 땀을 닦아냈다.

“다음 도전자는 앞으로 나오시오.”

마지막 지원자 한 명만이 남아 있었다.

‘나가볼까?’

팽유도가 앞으로 나섰다.

덩치는 지원자들 중 가장 작았다.

무공을 익힌 흔적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약해 보였다.

팽유도를 보면서 어느 누구도 합격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시작하라.”

“저기까지 가면 되는 겁니까?”

“맞다.”

“내력만 안 쓰면 됩니까?”

“맞다.”

“네. 알겠습니다.”

시험관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딱 보니 팔이 짧아서 바위를 안을 수도 없었다.

바위를 잡자마자 포기할 게 확실했다.

하지만 시험관의 기대는 단번에 깨졌다.

팽유도는 바위에 두 손을 기댔다.

“우우욱.”

표시가 나지 않게 온 힘을 다하는 듯 바위를 밀었다.

“어…… 어……?”

쿠우우웅!

구경하던 지원자들이 바닥으로 쓰러지는 바위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팽유도는 그들을 둘러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데굴데굴.

그러고는 원형 기둥 모양의 바위를 힘들이지 않고 굴렸다.

척.

팽유도는 굴러가는 바위에 발을 올려 세웠다.

옮겨야 하는 위치에 정확히 멈췄다.

시험관은 고개를 돌려 뒤편에 앉은 인물을 보았다.

하남표국의 총표두 자약성으로 하남의 무림에서도 제법 이름깨나 있는 무림인들 중 일인이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험관은 손을 들어 외쳤다.

“합격.”

“감사합니다.”

팽유도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일차 관문에서 떨어진 지원자들은 너무 쉽게 합격한 팽유도를 보면서 부러움과 질시의 눈길을 한 번에 보냈다.

그들도 팽유도가 했던 것처럼 충분히 할 수 있었다.

두우우웅!

북소리가 다시 들렸다.

“일차 합격자들은 표국 안으로 한 명씩 들어오시오.”

시험관은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일차 합격자 수는 총 서른두 명이었다.

* * *

‘이거 참…….’

또 그가 뒤에서 다가왔다.

모르는 척하기도 힘들었다.

타악!

일동이 또 한 번 팽유도의 등을 쳤다.

“머리 좋은데?”

“그런가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그게…… 제가 아는 형님이 항상 말하기를, 눈에 보이는 대로 생각하지 말고 다른 생각으로 본다면 또 다른 방법이 보인다고 했어요.”

“오우. 멋진 말인데? 대단한 사람인가 보군.”

“일동 형처럼 키 큰 형님이 항상 우주제일이라고 할 만큼 대단한 형님이죠.”

“키 큰 형님? 아는 형도 많네. 또 있어?”

“몇 명 안 돼요. 친한 형이 네 명 정도 있죠.”

형들을 떠올린 팽유도가 씩 웃었다.

신무맹을 떠나온 지 며칠 되지 않았건만, 벌써 형들의 얼굴이 그리워진 것 같았다.

한편, 앞에서는 시험관의 신호에 따라 한 명씩 표국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우리도 들어갈 준비하자.”

일동이 돌아서는 순간, 팽유도가 슬쩍 뒤에서 그를 잡아당겼다.

“왜?”

팽유도가 그의 곁에 바짝 붙어 섰다.

“제가 다른 사람보다 감각이 뛰어나거든요. 저기 정문 옆에 누군가 있는 것 같아요.”

“……?”

일동은 정문을 노려보았다.

전혀 어떠한 낌새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겠지?’

이 청년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바위를 굴려 일차 관문을 통과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정문 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했다.

“다음!”

시험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동은 정문을 올라서기 전에 뒤를 돌아보았다.

팔짱을 낀 채 느긋하게 쳐다보는 팽유도와 시선이 마주쳤다.

스윽.

다시 몸을 돌린 일동은 정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설마…….’

정문이 닫히는 동시에, 양쪽 옆에서 날아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데구루루-

일동은 재빨리 몸을 구르면서 머리 위로 날아오는 목검을 피했다.

“합격.”

총표두 자약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허억, 만일 몰랐다면 못 피했을 거야.’

일동은 상기된 표정으로 일어났다.

‘진짜잖아.’

팽유도가 말한 대로 정문 옆에 숨어 있었다.

“합격자는 오른쪽에 서라.”

“네엡.”

이십 명이 먼저 들어왔지만 합격자는 자신을 포함해서 다섯 명밖에 없었다.

일동은 숨을 죽이며 정문으로 들어오는 지원자들을 보았다.

퍽.

퍽.

그들은 갑자기 나타난 목검을 피하지 못했다.

“커억.”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마지막 한 명만이 남았다.

팽유도의 모습이 아직 보이지 않았다.

‘이제 도유인데…….’

어떻게 빠져나올지 기대가 되었다.

끼이익!

정문이 열렸다.

숨어 있던 두 명의 무인은 팽유도가 안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휘익!

팽유도가 손에서 돌덩어리 하나를 안으로 던졌다.

갑자기 나타난 움직임에 정문 양옆에 숨어 있던 사내들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면서 목검을 휘둘렀다.

부우우웅.

부우우웅.

두 개의 목검이 허공을 지나쳤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돌덩어리.

‘헉. 속았다!’

‘이런, 젠장!’

그들은 재빨리 정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지만.

빠악!

펏!

팽유도는 머뭇거리지 않고 두 명의 얼굴을 향해 곤봉을 휘둘렀다.

털썩.

두 명은 단숨에 기절했다.

“……합격…….”

“엇, 이게 시험이었습니까?”

시험관을 기절시킨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앞선 다섯 명의 합격자들은 두 사람의 공격을 피하거나 막아냈다.

‘제법이군.’

총표두 자약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만에 괜찮은 놈이 들어왔군.”

휘익.

그는 팽유도를 향해 손짓을 했다.

팽유도가 그의 앞으로 다가섰다.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는가?”

“조금 있으면 스물둘이 됩니다.”

“어디 출신인가?”

“하북 고안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왔습니다.”

“하북에서 멀리도 찾아왔군.”

“신무맹에 들어가고자 했는데 마침 인원이 전부 찼다고 해서 내년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그 일 년 동안 먹고는 살아야 하기에 지원을 했습니다.”

“알겠네. 아 참. 그리고 본 표국도 일 하기에는 괜찮네.”

“…….”

팽유도는 일부러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하남표국에는 관심이 없는 척.

“허어. 내 말이 거짓이라고 보는군. 지내보면 알게 될 거네.”

“알겠습니다.”

자약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합격자는 총 여섯 명.

생각보다 적은 인원이지만 만족스러웠다.

표행에 표사의 수는 중요하지 않다.

열 명의 표사보다 한 명의 강한 표사가 나았다.

마지막으로 합격한 팽유도는 꽤 괜찮은 물건인 것 같았다.

자약성이 내원으로 들어간 뒤, 시험관이 다가왔다.

“내 이름은 평문국 표두이다. 네놈들은 앞으로 내 밑에서 표사로 일할 것이다. 앞으로 내 명을 잘 따르도록.”

“넵, 알겠습니다.”

“나를 따라오도록. 표국에서 지낼 막사와 생활할 시설들을 가르쳐 주겠다.”

“저어…….”

팽유도가 손을 들었다.

“뭔가?”

“월봉은 얼마입니까?”

“…….”

평문국은 어이가 없었다.

“그게 중요한가?”

“목숨 걸고 싸우는데 당연히 중요하지 않습니까? 여기엔 가족들도 부양해야 할 사람이 있거든요.”

“은전 열 냥이다.”

“에게, 그것밖에 안 되나요? 완전 박봉이네요. 다른 곳은 많이 주던 것 같은데…….”

“어디에서 많이 준다는 말이지? 그곳에 가지 왜 여기에 지원했지?”

“알았나요? 알면 지원 안 했죠.”

“이…… 자식이. 하기 싫으면 그만둬.”

스윽.

팽유도 앞으로 일동이 나섰다.

“아이고, 아닙니다요. 이 녀석이 그냥 하는 소리라서…….”

“……앞으로 교육 잘 시켜.”

“예예. 알겠습니다.”

휘익!

평문국은 화가 난 채로 돌아서며 밖으로 나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