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283화 (284/328)

283. 주양진과 만나다

털썩.

주구붕은 무릎이 깨질 정도로 바닥에 부복을 했다.

“당신이 무슨 짓이냐고 물은 대상이 본인에게 한 말이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는 않을 텐데.”

“…….”

“당신은 신무맹이 마을 길거리에 싸돌아다니는 삼류 건달들의 무리라고 생각되는 모양이구려.”

“그건…… 아니오.”

“지금도 똑같군. 당신이 무림인이 아니라도 신무맹의 맹주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 불량스럽지 않는가?”

“……미안하오.”

“하아, 멍청한 건지 일부러 열받게 만들려고 하는 건지 정말 구별이 안 되는 인간이군. 아프겠지만 당신은 맞아야 정신을 차릴 것 같소이다.”

파앗!

남하림의 손을 떠난 대나무 조각이 주구붕의 허벅지에 박혔다.

“아아악!”

털썩.

그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단번에 앞으로 쓰러졌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도 그는 굴하지 않고 입을 놀렸다.

“이럴 수…… 없소이다.”

“없긴 뭐가 없어? 여전히 대답이 불량스럽군. 이번에는 당신 이마에 이것이 박힐 것이오.”

“그게 무슨……!”

“내가 못할 거라 생각하나? 신무맹의 맹주를 무시한 중앙상국에게 네놈 정도는 얼마든지 본보기로 보일 수 있지.”

중앙상국은 안중에 없다는 말.

주구붕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허억.’

스윽.

자리에서 일어난 남하림의 기세에 그는 몸이 심하게 떨렸다.

남하림의 눈빛.

일반 사람이 낼 수 있는 눈빛이 아니었다.

주구붕은 그제야 상대가 누구인지 알 듯했다.

무림인이었다.

그것도 무림최고의 무인, 걸황 남하림이었다.

그는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양 총관,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까? 신무맹 맹주를 중앙상국에서 가장 더러운 죽군당에 처박아 놓고, 국주란 인물은 나오지도 않는군. 중앙상국이 미치지 않고서야.”

처억.

양삼이 앞으로 나섰다.

“무림과 상계는 서로 가는 방향이 다르지만 중원에서 공존하기에 서로를 존중해야 법입니다.

상계 오대상국으로서 중요한 축을 이룬 중앙상국이지만, 신무맹의 맹주를 무시하는 행동은 상계의 인물이 중원 무림을 무시하는 것과 다름없을 터. 신무맹의 맹주이신 주군께서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더구나 맹주님은 상계에서도 천하제일상국의 주인이십니다. 무림을 떠나 상계의 위계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짓을 하였으니, 겨우 일개 상국의 인물이 주제를 모르는 태도는 죽음으로 다스려야 할 것입니다.”

“그렇군. 죽음으로 다스려야겠지. 양삼은 사리에 밝아서 좋아.”

덜덜덜.

이제 주구붕은 허벅지에 박힌 고통은 느껴지지도 않았다.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

털썩.

그는 그 자리에서 다시금 바짝 엎드렸다.

‘시, 실수했어.’

감당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걸황은 중앙상국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그 또한 천하제일상국의 국주였다.

남천상국에 대한 원한으로 걸황의 출신만 생각했을 뿐, 나머지는 모두 잊고 있었다.

남하림은 밖을 향해 소리쳤다.

“누가 있소이까?”

후다다닥!

죽군당 건물 안으로 향식이 달려왔다.

“부르셨습…… 니까…… 허억…….”

향식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거렸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주구붕의 허벅지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방 안에 흐르는 공기에 숨이 막히면서 몸이 떨렸다.

“저…… 어…… 무슨…… 일로…… 소인을 부르셨습니까?”

“이름이 뮙니까?”

“항식이라 합니다.”

“좋소이다. 이제부터 내가 말하는 것을 똑바로 들으세요.”

“넵, 알겠습니다.”

“밖에서 전부 들은 것으로 압니다. 맞지요?”

“주, 죽을죄를 졌사옵니다. 소인이…… 몰래…… 들었사옵니다.”

“그것 때문이 아닙니다. 이제부터 그대는 현재 상황을 국주께 그대로 전하세요. 하나도 빠짐없이. 아, 혹시 없던 일을 있는 것처럼 보고했다가는 당신의 머리가 사라질 것이외다.”

“네에…… 알겠습니다. 절대로…… 보고 들은 것만 보고를 하겠습니다.”

“지금 당장 직접 올 생각이 없다면 이자는 죽을 것이며 우린 곧바로 돌아갈 것이라 전하세요.”

“곧바로 국주님께 전해 드리겠습니다.”

후다다다닥!

향식은 급했다.

부상을 당한 주구봉도 있지만 남하림이 화가 나서 돌아간다면 큰일이라 생각이 들었다.

죽군당에서 어떻게 달렸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국주원에 도착한 뒤였다.

* * *

‘괜히 일만 커지게 만들었군.’

주양진도 허락을 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일이 커질 줄은 몰랐다.

너무 자신 있게 나서기에 그를 믿었던 것이 잘못이었다.

“후 선생. 어떻게 하면 되겠소이까?”

주양진은 뒤를 돌아섰다.

스윽.

자리에서 한 명의 백의사내가 일어났다.

빛이 날 정도로 맑은 눈동자와 윤기 나는 머릿결을 뒤로 단정하게 묶은 사내.

주양진은 개인적으로 자문을 해주는 그를 선생으로 모셨다.

“직접 가서 사과를 하셔야지요.”

“알겠소이다. 처음부터 후 선생의 말씀을 따라야 했소이다.”

“지나간 일은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잘못한 일은 바로 고치면 되지요.”

그의 말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가서 국주님의 뜻이 아니었다고 말하시면 됩니다.”

“그가 믿어주겠소이까?”

“지금 일이 벌어진 상황에서 믿고 안 믿고가 중요합니까? 중앙본국의 국주가 사과를 하는 게 중요하지요,”

“그렇지요. 바로 가겠소이다.”

주양진은 곧장 국주실에서 나왔다.

이미 터져 버린 일.

죽군당으로 빠르게 가면서도 후회가 되었다.

‘에이…… 나이가 어려서 상대하기 편할 것이라 하더니…… 남천 놈들은 애나 어른이나 얼마나 교활할 놈들인지 그렇게 당하면서도 잊고 있었군.’

걱정이 되는 것은 이번 일로 혹시나 다른 곳에 불똥이 튀지 않을까 하는 것.

중앙상국이 경제력으로 신무맹을 잡을 수 있을 정도긴 하지만, 반대로 보면 무력으로 중앙상국이 잡힐 수도 있었다.

하남 지역에서 서로 인정하며 좋게 지내는 게 가장 현명했다.

주양진은 죽림을 지나 죽군당으로 헐레벌떡 들어섰다.

들어서면서부터 분위기는 싸늘했다.

접객실로 들어서는 문은 열려 있었다.

후각이 민감한 그는 안으로 들어서자 코를 찡그렸다.

‘피…… 냄새.’

바닥에 거의 엎드려 있는 주구붕을 보았다.

그의 허벅지 아래로 피가 고여 있었다.

“어떻게 된 건가? 괜찮나?”

주구붕은 고개를 돌려 안으로 들어선 주양진을 올려다보았다.

당장에라도 눈에서 눈물이 떨어질 듯했다.

“국…… 주님. 저들이…….”

“그만하게. 자네가 실수를 했네.”

“…….”

주양진은 냉정하게 말했다.

버릴 놈은 버려야 한다.

장사를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실패한 사업에 미련을 가져서는 안 된다.

손해를 보더라도 썩은 부위는 잘라내듯 포기해야 했다.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스윽.

준극남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허어…… 호위의 수준이…….’

주양진 또한 많은 무인들을 만나본 사람이었다.

중앙상국에서 무공을 익힌 수하들도 많았다.

한데 준극남에게서 흐르는 기세는 그들과 본질적으로 달랐다.

“본인이 이곳의 국주일세. 맹주를 만나고자 하는 바이네.”

“안녕하십니까? 양삼이라 합니다.”

준극남에 이어 양삼이 다가섰다.

‘상군이라는 젊은이군.’

서궁상국의 국주와 같은 별호이기에 중원인들은 구별을 위해서 신상군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대의 아버지인 남천뇌인과는 친분이 꽤 있다네.”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께 국주님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맹주 걸황께서는 어디에 계시는가?”

“죽군당을 구경하신다면서 두 분 부인님과 나가셨습니다.”

“…….”

주양진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상대가 신무맹의 맹주가 아니라면 화를 냈을 것이다.

중앙상국에서 시끄럽게 일을 만들어놓고 당사자는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게다가 그의 수하인 양삼이 비꼬아 한마디 툭 던졌다.

“오래 기다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죽군당이 좁아서인지 조만간 들어오실 겁니다.”

“……미안하네.”

“신무맹에는 귀빈이 아니라도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서 방마다 욕실을 마련해 놓았는데 여긴 없군요. 주군께서 목욕을 좋아하시는 편이라 개인 욕실이 없으면 안 되십니다.”

거지가 무슨 목욕이냐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렇지 않아도 이미 매군당으로 자리를 옮기도록 말을 해놓았네.”

“아닙니다. 중앙상국에서 신무맹 맹주를 특별히 모신 장소인데 어떻게 옮길 수 있겠냐고 하셨습니다.”

때리는 시부모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이 있다.

주양진은 시선을 돌려 주구붕과 마주쳤다.

‘어휴…… 저놈 때문에…….’

죽군당에 들어와서 계속 놀림을 당하고 있다.

스윽.

안으로 들어서는 기척이 들렸다.

“앗, 주 아저씨 아니신가요?”

휘익!

남하림은 얼른 손을 내저으며 고쳐 말을 했다.

“이런, 너무 반가워서 옛날처럼 말했습니다. 주 국주님, 오랜만입니다.”

“걸황, 오랜만이네. 우리가 안 본 지 거의 십 년이 되어가는 듯하군.”

“하남에 있으면서 한번 찾아온다는 게 너무 바빠서요. 이해해 주세요. 신무맹의 맹주가 되니 얼마나 많은 일이 생기는지. 오늘에서야 겨우 시간을 빼서 인사차 들렀어요.”

“이해하네. 신무맹의 맹주라면 정파무림의 최고인이 아닌가. 본 상국에 시간을 내주어서 고맙네.”

“아, 그리고 소개시켜 드릴 사람이 있습니다. 소문은 들으셨겠지만 제 부인이 될 여인들입니다.”

남하림은 유미령과 신소소를 가리켰다.

유미령은 먼저 고개를 숙였다.

“유미령이라 합니다.”

“반갑소이다. 그대는 천하제일의 사내를 얻었군요.”

“하하하! 주 국주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그게 아니죠. 은하궁의 궁주이자 얼마 전에 검후로 인정받은 대단한 여인을 부인으로 얻은 제가 복이 많은 거죠.”

남하림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안녕하세요. 신소소라 해요.”

이번에는 신소소가 밝게 인사를 했다.

“반갑소이다.”

“소소의 아버지는 아시겠지만 사무련의 부련주시죠.”

남하림은 두 명의 여인을 소개를 마치자 앉을 자리를 권했다.

“누추하지만 앉으시죠.”

“…….”

주양진은 여전히 바닥에 쓰러져 있는 주구붕을 보았다.

“저기…… 주 당주를 그만 보내주면 안 되겠는가?”

“이자는 신무맹의 맹주를 무시한 사람입니다. 어떻게 할지 고민 중이라서요. 신무맹에서 제가 무시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 말입니다.”

“미안하네. 내가 나서야 하는데 내상 당주가 이번 일을 맡겨달라고 했다네. 내 얼굴을 봐서 넘어가주면 안 되겠는가?”

“제 얼굴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

주양진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후 선생이 무조건 빌어라 했다.’

스윽.

주양진은 허리를 숙였다.

오대상국의 국주인 그가 거짓이라고 해도 함부로 할 수 없는 행동을 보여주고 있었다.

“미안하네. 내가 진심으로 사과를 하겠네.”

“흐음…… 이거 참. 국주님께서 애원하시듯 말씀을 하시니 어쩔 수 없군요.”

“고맙네.”

그는 얼른 엎드려 있는 주구붕을 세웠다.

“뭣 하는가? 신무맹의 맹주께 빨리 고맙다고 하지 않고.”

“감…… 사합니다.”

주구붕은 고개를 숙여 말을 했다.

그는 자신 때문에 허리를 숙인 국주를 볼 면목이 없었다.

“그만 물러가서 빨리 치료를 하게.”

“네…… 에…….”

그는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죽군당은 잠시 고요해졌다.

방에 흐르는 긴장감에 주양진의 입안에 침이 고였다.

“걸황, 본 국에 찾아온 이유가 뭔가?”

“인사차 들렀다고 했다면 믿겠습니까?”

“난…… 남천의 사람이 하는 말은 잘 안 믿는 편이네. 사실이면서도 거짓을 말하고 거짓을 사실처럼 말하지 않나.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상계에서는 남천에 대해 평판이 좋은 걸로 압니다.”

“다른 곳에는 잘하겠지. 안 그런가?”

“후후후, 저희가 잘하는 편이지요.”

“그럼 말해보게. 정말로 무슨 일로 찾아왔는가? 신무맹의 힘으로 누르고 싶어서 온 것은 아니라고 보네. 남천은 그 정도는 아니니깐.”

“국주님, 너무 남천을 미워하시는 게 아닙니까?”

“지금까지 당한 게 한두 번이라면 넘어가겠네.”

“어휴. 당한 사람이 잘못 아닌가요. 여하튼 오늘은 별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네요. 나중에 따로 만나서 이야기 하는 게 좋겠습니다.”

“굳이 나중에 할 게 있는가?”

“주위에 쥐새끼들이 많아서요. 굳이 지금 이야기하실 거면 모두 치울까요?”

따악.

남하림은 손가락을 튕겼다.

파앗.

준극남의 신형이 사라지는 동시에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악!”

“아아악-!”

주양진의 눈이 커졌다.

죽군당을 감시하던 광양단 소속의 무사들이 싸늘한 죽음으로 바닥에 떨어졌다.

“여기서 회의를 하면 되겠습니까? 아니면 조용한 곳에서 단둘이 이야기를 나눌까요?”

“……!”

광양단 소속의 수하들을 모두 죽일 순 없었다.

남하림의 앞에서 점점 몸이 움츠러들었다.

‘하필 남천의 자식이 천하제일인이 될 줄은…….’

남하림의 신형에서 나온 절대자의 기.

천하제일인이 바로 눈앞에 앉아 있었다.

무력과 재력.

그는 이미 천하제일상국과 신무맹을 가졌다.

중앙상국을 죽이고자 한다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서궁상국과 동문상국은 이미 그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었다.

“알…… 알겠네. 나중에 따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세.”

“그렇게 하지요.”

중앙상국에 찾아온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남하림을 보며, 그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대신 죽군당을 나서기 전 정말로 궁금한 듯 물었다.

“걸황, 한 가지는 알려줄 수 있겠는가?”

“뭔가요?”

“본 상국에 해가 되는 것인가?”

“어쩌면…… 해가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요.”

단번에 주양진의 표정이 굳어졌다.

다른 인물도 아닌 신무맹 맹주의 한마디 말은 중원 전체를 흔들 수 있었다.

“혹시…… 본 상국의 물동량 때문인가?”

“글쎄요. 나중에 이야기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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