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281화 (282/328)

281. 조사를 하다

‘들켰나?’

그는 당황했다.

생각지도 못했다.

저잣거리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 안에서라면 자신을 절대로 찾을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할 정도였다.

“이보세요.”

“…….”

그리고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사라졌던 남하림이 틀림없었다.

“조용히 돌아서면 다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뭐, 굳이 도망갈 생각이라면 알아서 하세요.”

잠복을 들킨 이상, 걸황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생각은 접어야 했다.

사내는 뒤로 돌아서며 남하림과 마주 섰다.

‘걸황.’

그가 싱긋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름은요?”

“…….”

의외의 질문이 나왔다.

첫 질문으론 먼저 어디에서 왔는지 물을 것이라 예상했다.

“영문구이오.”

“그게 이름인가요? 내가 보기에 어느 조직에서 아홉 번째라는 말 같군요. 맞소이까?”

사내의 눈동자가 흔들거렸다.

굳이 대답을 듣지 않아도 확인이 되었다.

“그런 것 말고 진짜 이름은 없습니까?”

“소…… 명이오.”

사내는 아주 오래전에 잊은 줄 알았던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 냈다.

“소명, 좋은 이름이군요.”

“…….”

“방금 영문구라고 한 걸 보면 대충 어디서 왔는지 알겠소이다. 창천십문이 있다고 들었는데. 창천영문에서 왔습니까?”

“어…… 떻게……?”

“아하하, 내가 그동안 창천십문의 인물들과 꽤 많이 싸웠지 않습니까.”

물론 창천십문과 싸웠다고 해서 쉽게 알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사실 남하림이 창천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이유는 제령운화에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온 것을 보니 창천영문에서 나를 감시하도록 시킨 모양이군요.”

“…….”

그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걸황에게 들킨 이상 죽은 목숨일 것이 뻔하니까.

하지만 그의 걱정에 반해 남하림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밖으로 나올 때 이상한 기가 느껴져서 확인한 것이니 걱정 마세요. 당신을 죽인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을 것 같으니까. 또 누군가 오겠죠.”

남하림의 말이 사실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나중에 우리가 가거든 저기 노파가 파는 회면 먹어보세요. 맛있어요. 미리 계산은 해놓을 테니 돈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휘익!

남하림은 그대로 앞에서 사라졌다.

‘어디 간 거지?’

사내가 급하게 고개를 돌리자, 다시 두 여인의 곁에 나타난 남하림이 보였다.

‘……자신감인가?’

영문구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일각 뒤.

세 사람은 회면을 모두 먹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며 떠나갔다.

영문구는 망설였다.

따라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되었다.

‘걸황은 처음부터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휘익, 휘익.

그때, 멀리서 손을 흔드는 노파가 보였다.

‘……날 부르는 건가?’

무림인이 아닌 이상 일반인들의 시력으로는 자신을 절대로 찾아내지 못한다.

하지만 그를 정확히 보면서 오라는 손짓을 하고 있었다.

숨은 장소를 알고 손을 흔드는 것인지, 아니면 무작정 흔드는 것인지 궁금해진 영문구가 걸음을 옮겼다.

노파는 한 방향을 보며 계속 손을 열심히 흔들었다.

스윽-

갑자기 노파의 앞에 인영이 나타났다.

“에구머니나……!”

“…….”

영문구는 놀란 노파를 가만히 보았다.

“무슨 일로 나를 불렀소?”

“방금 나간 총각이 저기 느티나무를 보면서 손을 흔들면 누가 온다고 했는디…… 세상에나…….”

노파는 상대가 무림인이라는 것을 알고 말을 함부로 하지 못했다.

“아이구, 잠깐만…… 기다리시오.”

영문구는 노파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러자 노파가 얼른 회면 한 그릇을 만들어 그에게 내밀었다.

“배도 불러야 따라 다닐 수 있다고 전해 달라고 하였소.”

“……고맙소.”

향은 그럭저럭 좋았다.

영문구는 회면을 받은 뒤, 망설이다 한입 먹었다.

“하…….”

단번에 눈이 커졌다.

태어나서 이보다 맛있는 회면은 처음이었다.

걸황이 저잣거리에 나와서 몰래 사먹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엄청 맛있군.’

* * *

신무맹의 중앙에 위치한 무림대전을 중심으로 북쪽에 위치한 장소를 태상천이라 했다.

그곳에는 상내원 소속의 태상들이 신무맹에 기거하는 동안 지낼 전각들이 모여 있었다.

신무맹으로 복귀한 뒤, 남하림은 곧장 태상천으로 향했다.

그곳 중 한 전각으로 남하림이 향하자,

척.

태상천 호위무사가 몸을 곧장 세웠다.

“걸황님을 뵙습니다.”

“역 태상님은 안에 계신가요?”

“넵, 쉬고 계실 것입니다.”

“수고하세요.”

남하림은 정문을 넘어섰다.

역위천의 거처인 건물에 가까이 다가서자 단번에 눈에 띄는 네 개의 기둥이 나타났다.

원래 매끈했던 네 개의 기둥이었지만, 이젠 중앙에 한 글자씩 글이 새겨져 있었다.

불(不)사(死)영(永)원(遠).

“이야, 멋지네.”

한 글자마다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드륵.

문이 열리며 역위천이 모습을 드러냈다.

“훗. 고맙군.”

“쉬고 계셨습니까?”

“요즘 조용해서 할 게 없더란 말이지. 이러다 굶어 죽겠네. 어디 할 일이 없는 건가?”

“조용하면 좋지요. 안 그렇습니까?”

“나야 좋지만 애들이 심심하기도 하고 밥도 사 먹어야지 않겠나.”

“그렇지 않아도 의뢰를 할 게 있어 왔습니다.”

“의뢰? 어서 올라오게.”

역위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러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선 남하림이 자리에 앉기도 전에 다급히 물었다.

“무슨 일인가?”

“태원평에서 온 걸 아시지요?”

“알고 있네. 태원평을 들먹이는 것을 보니 이번 일과 관계가 있는 모양이군.”

“네. 태원평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음…… 신무맹이나 개방에서 나서지 않는가?”

“천하제일상국과 연관이 된 일이기에 개인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맹주라 하나 공사의 구별을 확실히 했다.

“하하하하, 잘 왔네. 싸게 해주겠네.”

“고맙네요.”

“태원평의 문제가 뭔가?”

“환금호가 만 근 정도 사라졌습니다.”

남하림은 태원평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자세히 알려 주었다.

역위천은 단번에 확신했다.

“뭔가 더러운 냄새가 나는데?”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제법 큰 놈들입니다. 중원에서 환금호를 필요로 하는 세력은 많지 않을 겁니다.”

“맹주는 대충 어디인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아셨어요?”

“쉬운 곳이면 비싼 우릴 보내겠냐?”

“음…….”

“그 표정은 뭐냐? 설마 본인이 그것조차 생각 못 할 정도라고 본 건 아니겠지? 내가 그래도 호천의 전인이다.”

“일단 두 곳 중 하나입니다. 예전의 북방상국이죠. 하북에서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그들이 움직인다고 하더군요.”

“다른 한 곳은?”

“창천이죠.”

“그들이 왜 환금호가 필요하지?”

“개벽단을 만드는 데 환금호에서 추출한 성분이 필요하더군요.”

“그걸 또 어떻게 알았어?”

역위천은 남하림이 새로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신기했다.

창천에 대해 남들이 모르는 사실까지 전부 알고 있었다.

“저번에 나이 많은 누님이 개벽단이 뭔지 가르쳐 주고 가더군요.”

“나이 많은 누나라면 화문자가?”

“알려주는 대로 개벽단을 대충 만들어 보니 그게 없으면 제대로 효력을 발휘 못 하더군요. 중요한 재료가 확실합니다.”

“그걸 또 만들었어?”

“무독에게 말했더니 좋다고 금방 만들어내던걸요.”

“괴물 같은 놈들…….”

늘 느끼지만 이 다섯 놈들은 정상이 아니었다.

“내가 갈 필요는 없겠지?”

“철각이 갈 겁니다. 굳이 가지 않으셔도 될 것 같네요.”

“알겠다. 우린 투룡군광검을 보내도록 하지.”

삼왕투군이라 부르기도 했던 인물.

정확히 투룡군광검 미공서라 했다.

역위천의 친우이자 불사투군단의 수장인 그가 나서는 것은 호천이 움직이는 것과 같았다.

“고맙습니다.”

“고맙긴 내가 고맙지. 근데 미광서는 조금 비싸.”

“황금 만 냥이면 되나요?”

“에엥?”

갑자기 큰 금액을 부르자 흠칫 놀랐다.

아무리 많아도 오천 냥 정도를 생각했다.

“너무 적나요? 더 올릴까요?”

“아니…… 됐다. 내가 돈에 미친 것도 아니고 만 냥이면 적당하지. 흐음…….”

“선금으로 드릴까요?”

“뭐 우리 사이에…… 나중에 줘도 되고 지금 줘도 되고…….”

“알겠어요. 양 총관에게 말해 놓을 테니 시간 나는 대로 찾아가면 됩니다.”

“고맙구만. 근데 언제 출발할 거냐?”

“호천에서 움직이는 것을 몰라야 하니 태원평 근처에 가서 기다리면 될 겁니다. 아 참, 신무맹 주위에 이상한 놈들이 많아요.”

“무슨 말인지 알겠다. 아무도 모르게 태원평으로 움직이도록 하지.”

“부탁하겠어요.”

* * *

하루가 지났다.

명왕고와 명화진을 태운 마차가 태원평으로 먼저 출발했다.

성철각과 함께 황보궁도 같이 태원평으로 움직이기로 결정을 내렸다.

“두 사람, 고생 좀 해줘.”

“부장 괜찮아. 고생은 뭘…… 안 그래도 따분했는데 잘 됐지.”

성철각은 기분이 좋았다.

태원평까지 먼 길이지만 왠지 그녀와 함께하는 길은 힘들지 않을 것 같았다.

“궁은 어때?”

“대형, 저도 좋아요. 철각 형 곁에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원래는 성철각 혼자 가기로 했다.

그런데 이틀 전 저녁, 황보궁이 홀로 찾아와서 태원평에 갈 때 함께 가고 싶다고 부탁을 했다.

남하림은 당연하게 허락했다.

“그렇게 해. 궁아도 당당한 우리 동료잖아.”

“넵. 고맙습니다.”

남하림은 두 사람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미공서께서는 벌써 움직였을 거야. 중간중간 연락을 자주 하면 돼.”

“알겠어. 궁아하고 다녀올게. 우리가 다녀올 동안 다들 잘 지내.”

“우리 걱정하지 말고 철각하고 궁도 조심하고. 나중에 보자.”

성철각과 황보궁은 짧게 인사를 한 뒤 먼저 신무맹을 나섰다.

* * *

성철각과 황보궁이 떠난 뒤 일행은 곧바로 맹주전으로 모였다.

주인이 없는 두 개의 자리.

든 자리는 몰라도 빠진 자리는 안다고 했다.

“두 사람이 없으니 너무 허전하네.”

“그러게요. 신무맹을 떠난 지 반시진도 안 됐는데 벌써 뭐 하고 있나 궁금한걸요.”

“태원평 일은 두 사람이 알아서 할 테니 신경을 끊고, 지금부터서는 우리 할 일을 해야겠지.”

“부장, 무슨 일이야?”

“중앙상국의 일을 들어서 알 거야. 하남성에서 그들의 물동량이 세 배나 더 많이 움직이고 있어.”

“……흠.”

태원평의 일만큼이나 큰 사건이 틀림없었다.

“그들 뒤에 누군가 있는 게 확실해.”

“설마 그들이 아니겠지?”

그들 모두 창천을 떠올렸다.

“그건 확인을 해봐야겠지.”

“어떻게 확인을 하지?”

“양 총관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하남상국에서 운영하는 하남표국이 최근에 상당히 바쁘다고 들었어.”

“답은 나왔네요. 하남표국을 족치면 되지 않나요?”

팽유도는 간단하게 생각했다.

“그들을 족쳐서 알아낸다면 좋지. 근데 쉽게 가르쳐 주지 않을 거야. 중앙상국이 나선다면 증거가 없는 한 반격당할 수 있어.”

“그런가요?”

팽유도는 아쉬운 듯 살짝 찡그렸다.

“그들이 물건들을 어디로 표행을 하는 지 알아봐야겠어.”

“어떻게요?”

“알아본 바에 의하면 표사를 뽑는다고 하더군.”

“표사를요?”

“맞아. 어때? 한번 해볼래?”

남하림의 말뜻은 표사로 지원하라는 의미였다.

“하림 형, 제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을까요?”

“이걸 익혀봐.”

스윽.

언제 준비를 했는지 남하림이 한 권의 얇은 책자를 아래에 내려놓았다.

표지에는 아무런 글이 적혀 있지 않았지만,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은 새것처럼 보였다.

“형, 이게 뭔가요?”

“얼굴을 변화시킨다는 무공서인데 무용변상공(無容變狀功)이라 적혀 있더군.”

“……!”

고금제일이라 할 수 있는 전설적인 신도(神盜)의 절대변용술이었다.

만통자가 놀란 눈으로 아래에 놓인 책자를 보았다.

‘너무 깨끗한데? 무용변상공은 최소한 이백 년이 넘었다고 보는 무공이거늘.’

“혀어어엉! 이걸 어떻게 구했어요?”

“예전에 현천무옥에 들어갔을 때. 혹시나 필요할까 싶어서 외워두었지.”

한 번 읽고 모든 내용들을 외웠다는 남하림.

게다가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잊지 않은 게 더 신기했다.

“천주님, 제가…… 한 번…….”

“그렇게 하세요.”

만통자는 혹시나 표지만 새것으로 바꾼 게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스윽.

한 장의 표지를 넘겼다.

남하림의 말이 맞았다.

시작하는 첫 글자를 보면서 알았다.

남하림의 서체가 맞았다.

“이런, 노인장. 내가 그것을 몰래 훔쳐왔다고 생각하는 거요?”

“그게 아니라…… 정말로 외웠는지 싶어 확인을 하려던 것입니다. 대단하시네요.”

“후후후후, 그 정도는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까?”

“…….”

순간 회의실이 고요해졌다.

“……쩝. 철각하고 궁이 보고 싶다. 이럴 땐 ‘역시 부장이 우주 제일이야’라고 해줄 텐데.”

스윽.

팽유도는 무용변상공을 집어 들었다.

“알겠어요. 이걸 익힌 뒤에 표사로 잠입할게요.”

“부탁할게.”

“걱정 마세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유도가 표사가 돼서 알아보는 동안 나도 양 총관하고 중앙상국에 가려고 해.”

“직접 간다고?”

당무독이 물었다.

“신무맹이 하남성에 있으니 얼굴이라도 비추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 오대상국인데 인사차 가는 것도 나쁘지 않고.”

이휘연이 물었다.

“그것 때문은 아니겠지?”

“확인할 사람이 있어서요. 직접 만나야 확신이 설 것 같아요.”

“나도 같이 갈까?”

“부맹주가 휘연 형이잖아요. 휘연 형까지 신무맹에 안 계시면 안 돼요. 신무맹에 계시면서 다급한 일이 생기면 곧바로 처리해 주세요. 그리고 무독은 전체적으로 신무맹 관리를 해주면 돼. 조만간 창천에서 움직일 것 같아.”

“알았어. 나도 그런 느낌이 들어.”

남하림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이휘연과 당무독을 보았다.

“만일 신무맹에서 처리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안 움직여도 돼.”

“내원에서 반발이 심하면?”

“잘라내야지. 여긴 우리가 만든 거잖아. 절이 싫으면 중이 나가는 거야. 안 그래?”

“흐흐. 알겠어.”

“우리와 같이 갈 사람들만 가면 될 뿐이야.”

‘부장은 여전하구나.’

남하림의 생각에 당무독은 마음이 편해졌다.

스윽.

신소소는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저는요?”

“뭘?”

“무슨 일을 하면 돼요?”

“소소는 당연히 나하고 중앙상국에 가야지.”

“아! 넷! 중요한 일인가 싶어서 같이 안 가는 줄 알았어요.”

척.

이번에는 만통자가 손을 들었다.

“소신도 따라 가겠습니다.”

“아니, 노인장은 그냥 여기에 쉬세요.”

“천주님.”

만통자는 눈을 부릅뜨며 남하림을 보았다.

“허어…… 알았어요…… 그러다가 눈 튀어나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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