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279화 (280/328)

279. 태원평으로

중원오대상국 중 한 곳.

중앙상국의 물동량이 수상했다.

“그들에 대한 조사는?”

“이미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들의 물량들이 어디에서 어디로 움직이는지 확인 중입니다.”

중앙상국에서 이런 일을 일어날지 예상조차 못했다.

“보통 일이 아니군. 평소보다 세 배의 물동량이면 일개 성의 일 년 치에 해당하지 않아?”

“조금 모자람이 있겠지만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겁니다.”

뜻하지 않게 나타난 중앙상국.

‘좋은 현상은 아니야. 이들 뒤에 누군가 있어.’

중앙상국 자체에서 움직이는 물동량은 절대로 아니었다.

남하림은 국주 주양진에 대해 잘 알았다.

그는 도전적인 성향을 가진 인물이 아니었다.

돌다리도 두드린 후 건너갈 정도의 성격이었다.

‘조사를 해볼 필요가 있어.’

그런 인물이 세 배의 물량을 거래한다고 하면 중앙상국에 어떠한 일이 발생한 게 맞았다.

“무엇인가 나오는 즉시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부탁해. 혹시 위험한 일이라도 생기면 곧바로 이야기해. 무리하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그럼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양삼은 빠르게 맹주전을 나섰다.

* * *

‘아…… 너무 멀다.’

마차 창문 틈에 턱을 걸친 여인.

눈 아래가 시퍼렇게 변해 있었다.

그리고 축 처진 눈가.

긴 여행에 지친 듯 피곤함이 가득했다.

펄럭!

그녀가 탄 마차 위로 태원평의 깃발이 휘날렸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 있으면 남양성에 들어선단다.”

명왕고는 수염을 쓰다듬었다.

힘들기는 그도 마찬가지.

‘멀긴 멀구나.’

그 또한 허리가 뻐근했다.

좌석이 푹신하다고 해도 긴 시간 동안 한자리에 앉아 있었던 탓인지 엉덩이도 묵직했다.

이 정도로 힘들 줄 알았다면 남양성으로 직접 찾아오는 것을 한 번 더 고려해 봤을 것이다.

“…….”

창문을 보며 한숨을 쉬는 딸아이.

딸아이가 웬일인지 직접 신무맹을 보고 싶다며 간곡히 부탁하기에, 성화를 이기지 못하고 데리고 오게 되었다.

‘이 녀석이 왜 오려고 하는지 알지. 근데…… 과연 그가…… 어떻게 생각할지…….’

만일 그와 잘된다면 태원평의 입장에서는 용을 품는 격이다.

아버지로서 마음속으로 열렬히 응원을 해줄 수밖에 없는 상황.

일황사제는 중원 제일의 사내였다.

‘음…… 중원에는 미인들이 많다고 하던데…….’

명왕고는 명화진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경국지색의 발끝이라도 따라갈 정도의 미모 정도라도 좋으련만.

‘내 딸이라 해도 특이한 게 없어.’

객관적인 사내의 시선으로 딸은 예쁘지는 않았다.

“진아, 혹시…….”

“네?”

명왕고는 말을 멈추었다.

괜히 미리 말해 기를 죽일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가 신무맹에 있을지 모르겠다. 워낙 바쁜 사람이지 않느냐?”

“그, 그분요? 그럴지도 모르지만, 으음,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요.”

“아…… 그래? 그러면 되겠구나.”

명화진은 그를 생각했는지 저도 모르는 새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아빠.”

“왜?”

“좀 더…… 빨리 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알겠다. 거의 마지막이니 좀 더 빨리 가도록 하마.”

명왕고는 마부석과 연결된 작은 문을 열었다.

“최대한 빨리 가게.”

“넵, 알겠습니다.”

두두두두-

선두에서 달리던 마차는 속력을 올리기 시작했다.

* * *

부녀는 드디어 신무맹 정문에 도착했다.

마부석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원주님, 도착을 했습니다.”

“아, 알겠네.”

명왕고는 슬쩍 들뜬 명화진을 바라보았다.

마차에서 내리기 전부터 옷매무새를 매만지고 있었다.

“…….”

그는 말없이 먼저 마차에서 내렸다.

신무맹 정문에 십여 명이 서 있었다.

그들 중 선두에 있던 젊은 사내가 다가왔다.

“태원평의 원주이신 명왕고님이십니까?”

“맞소이다만…….”

“전 천하제일상국의 총관을 맡은 양삼이라 합니다.”

“아……!”

무림인들 사이에서는 어떠한지 모르지만, 상계에서 양삼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처음 뵙겠소이다. 상군(商軍)이 이렇게 젊은 분일 줄 몰랐소이다.”

“고맙습니다. 원주님께서 먼 길을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이번 기회에 무림을 천천히 구경하면서 왔습니다.”

“저분이 명화진 소저이시군요.”

양삼의 시선이 뒤로 향했다.

마차에서 내린 명화진이 명왕고의 곁에 다가섰다.

“맞습니다.”

스윽.

명왕고는 그녀를 슬쩍 앞으로 밀었다.

“진아, 어서 인사를 올리도록 해라. 이분께서 상군이시다.”

“처음 뵙겠습니다…… 명화진이라 해요.”

“소저의 이름을 가끔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반갑군요.”

“제…… 이름을 어떻게요?”

“가끔 각제님과 술을 마실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한 번씩 소저의 이름에 듣곤 하지요.”

파앗!

그녀의 얼굴이 환하게 펴지며 입꼬리가 올라갔다.

‘다행이야……! 잊지 않으셨어.’

스쳐 지나갔다면 스쳐 지나간 것인데.

기억을 해주다니 정말 고마웠다.

양삼은 혹여 소박한 마중으로 보여 자칫 태원평이 무시당한 기분이 들지 않도록, 그에게 양해를 구했다.

“여긴 신무맹입니다. 천하제일상국으로 모셨다면 더 성대하게 환영회를 열어드렸을 텐데, 원주님께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상군,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도 상국은 많이 봤습니다. 신무맹이 어떠한지 궁금하던 찰나였지요.”

“후후후, 다행입니다. 전 혹시나 부담감을 느끼지 않으실까 걱정이 됐습니다.”

양삼은 앞장을 섰다.

“안으로 드시지요. 제가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상군께서 직접 안내를 해주신다니 감사합니다.”

명왕고와 명화진은 그의 뒤를 따랐다.

양삼은 신무맹으로 들어선 뒤 귀빈각으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원주님, 이곳에서 휴식을 하시면 됩니다. 맹주님께 도착을 했다고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양삼이 밖으로 나오려고 할 때였다.

“저어……!”

명화진은 호기롭게 양삼을 불렀다 흠칫했다.

싱긋.

양삼의 입가에 미소가 나왔다.

“그분께 명 소저께서 오셨다고 따로 연락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앗, 네에, 감사합니다.”

* * *

귀빈각 정문 위사.

원구찬의 눈이 커졌다.

황금빛 걸복이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반시진 전에 들어선 태원평의 귀빈을 만나기 위해 오는 것임을 알았다.

그는 몸을 똑바로 선 채, 사내가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팟!

원구찬은 허리가 꺾일 정도로 숙였다.

“고생이 많습니다.”

“아닙니다.”

“당분간 부탁하지요.”

스윽.

남하림과 양삼, 그리고 성철각이 귀빈각으로 들어섰다.

세 사람은 정원을 지나 죽화실로 곧장 움직였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명왕고는 문밖에서 들려온 소리를 들었다.

‘언제……?’

문밖에 다가올 때까지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 들어오셔도 됩니다.”

명왕고와 명화진은 문을 향해 섰다.

드르르륵-

문이 열리면서 남하림이 먼저 죽화실로 들어왔다.

그 뒤로 성철각과 양삼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의 문 높이와 비슷할 정도의 장신의 사내.

성철각을 본 명화진의 눈이 커졌다.

싱긋.

성철각은 안으로 들어서며 명화진과 시선이 마주치자 미소를 지었다.

순간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스윽.

남하림은 가볍게 포권을 했다.

“원주님, 반갑습니다. 본 맹까지 오시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걸황을 뵙습니다.”

예전에도 뛰어났던 두 사람.

남화림과 성철각은 그때와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천룡들이시다.’

명왕고는 자연스럽게 존댓말이 나왔다.

“안녕하세요. 원주님.”

성철각이 인사를 했다.

“아…… 네, 각제께서도 잘 지냈습니까?”

“별일 없으니 잘 지낸 것 같습니다.”

남하림은 자리를 가리켰다.

“모두 앉지요.”

“그러지요.”

다섯 명이 자리에 앉았다.

스윽.

성철각은 앉으면서 명화진과 시선이 다시 마주쳤다.

그녀의 신경이 성철각에게 온통 집중되어 있을 때였다.

남하림이 불쑥 말을 걸었다.

“명 소저도 함께 오셨구려.”

“아! 네에…….”

성철각을 보던 명화진은 흠칫거리며 대답이 떨렸다.

“신무맹까지 오느라 힘드셨을 텐데요.”

“아닙닏. 오는 도중에 재미있게 구경을 하면서 왔어요. 신무맹도 구경하고 싶었고요.”

“재미있었다고 하니 다행이네요. 신무맹에 온 걸 환영합니다. 음…… 기껏 신무맹까지 오셨는데, 혼자 구경하시기에는 어려움이 많으실 것 같고. 흐음, 양 총관에게 부탁을 해서 안내할 수 있도록 사람을 보내 드리지요.”

“……!”

“아, 그게 아니면 혹시 원하시는 분이라도?”

어쩔 줄 몰라 하던 명화진은 시선을 돌려 성철각을 보았다.

“부장, 내가 안내를 할게.”

“오, 그럴래?”

“멀리서 오셨잖아.”

“그래. 철각에게 부탁하면 되겠군.”

명화진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바쁜 일 없으면 지금 안내해 드려도 될 것 같다. 내가 원주님과 얘기하면 되니까 말이지.”

“그럴까? 안 그래도 사업 이야기는 내 체질이 안 맞잖아.”

성철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명 소저, 괜찮으시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벌떡!

그녀는 대답도 없이 빠르게 일어났다.

“가시죠.”

“네에……!”

명화진은 성철각을 따라 삐걱거리며 얼른 밖으로 나갔다.

‘후후후.’

명왕고는 문을 닫고 사라진 그녀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걸황께서 짓궂은 듯하십니다.”

“재미있지 않습니까?”

“하하하, 그렇긴 합니다.”

두 사람은 잠시 웃음을 지었다.

남하림은 그가 찾아온 용건을 물었다.

“먼 길을 오신 걸 보면 무슨 좋지 않는 일이 생겼는지요?”

“공식적으로 알린 상황이 아닙니다. 혹시나 해서 태원평에서도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심각한 일이군요.”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몇 달 전부터 환금호의 일부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누군가 손을 댄다는 말씀이시군요.”

“네, 그렇습니다.”

“혹시 조사를 해보았습니까?”

“비밀리에 조사하기 위해 외부에 청부를 넣었지만 그들 모두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남하림과 양삼은 서로 마주 보았다.

다른 물건도 아닌 환금호라면 문제가 되었다.

“지금까지 사라진 양은 어느 정도 입니까?”

“아무리 못해도 만 근이 넘을 것입니다.”

만 근의 양.

조금씩 손을 댈 양이 아니었다.

“그 정도의 양이라면 표시가 났을 텐데요?”

“재배지에서 곧장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사라진 만 근의 환금호.

금액도 금액이지만 그 정도의 양이면 환각제를 만들어 중원 전체에 퍼뜨릴 수 있을 정도였다.

상당히 심각한 문제임에 틀림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조사를 해야 하겠군요.”

“감사합니다. 걸황께서 도움을 주신다고 하시니 안심이 됩니다.”

스윽.

양삼은 두 사람 앞으로 계약서를 내밀었다.

“환금호에 대해 문제도 있지만 우선 계약에 대해서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명왕고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는 계약서 내용을 자세히 읽었다.

앞전의 계약과 같을 것이라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스윽.

명왕고는 계약서 한 부분을 두세 번 더 자세히 읽었다.

“상군, 여기 이 부분이 잘못된 것 같소이다.”

“아닙니다. 그동안 상호 계약을 잘 이루었기에 국주님께서 일 할을 더 올리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휙.

명왕고의 표정은 곧바로 감동에 빠졌다.

“걸황, 너무 과한 게 아닙니까? 일 할을 올려준다면 저희들이야 좋지만 천하제일상국에게는 손해가 날지도 모릅니다.”

“하하, 장사꾼이 손해 날 짓을 왜 하겠습니까? 본 상국도 충분히 계산을 한 뒤 올린 것이니 신경을 안 쓰셔도 됩니다.”

“이러면 걸황께 너무 신세를 지는 것 같습니다.”

“그건 아니지요. 서로 상부상조를 하는 게 아닙니까. 본 상국도 태원평을 통해 북야평에 거의 독점적으로 거래를 하고 있으니 우리들이 고맙다고 해야 합니다.”

어릴 적부터 장사를 하는 데 항상 한쪽만 이익을 봐서는 안 된다고 배웠다.

상대방과 거래를 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에게 이익이 더 많이 가도록 하는 것이라 했다.

슥슥.

명왕고는 계약서에 주저 없이 서명을 했다.

* * *

남하림은 귀빈각에 나온 뒤 바로 호법전에 연락을 보냈다.

드륵.

당무독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무슨 일이야? 느낌이 빡 오는 엄청난 독을 만들고 있었는데.”

“왔냐? 일단 자리에 앉아.”

당무독은 자리에 앉으면서 한 명이 보이지 않았다.

“철각은?”

“명 소저와 함께 신무맹을 안내하고 있어.”

“기다려야 하는 거야?”

“됐어. 우리끼리 회의해도 괜찮아.”

드륵-

문이 열리면서 황보궁과 신소소, 어느새 만통자까지 어떻게 알았는지 합류를 했다.

남하림은 모이게 한 일에 대해서 알려 주었다.

“태원평에서 누군가 환금호를 손대고 있는 모양이야.”

“간이 큰 놈이군. 함부로 취급할 수 없는 물건이잖아. 대체 어느 정도야?”

“만 근 정도.”

“…….”

남하림과 양삼을 빼고 전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팽유도가 확인차 물었다.

“얼마라고요? 만 근이 맞아요?”

“그렇다더군.”

“명 원주가 만 근을 잃어버리는 동안 그냥 가만히 있었던 거야? 바보도 아니고?”

“태원평에 들어온 뒤가 아니라, 재배지에서 바로 사라졌대.”

“딱 답이 나오네, 그럼. 재배지를 관리하던 놈들을 족치면 되지 않아?”

“외부 사람을 시켜 조사를 했는데 전부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했어.”

“전부 죽었군.”

이휘연이 한마디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음…….”

일순간 잠시 정적에 잠겼다.

“우리가 가서 조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부장, 당연하긴 한데…….”

당무독은 대답을 하면서 생각에 잠겼다.

“신무맹의 일은 아닌 것 같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괜히 신무맹을 움직였다가는 십중팔구 싫은 소리를 듣게 되겠지.”

남하림은 사람의 심리를 잘 알았다.

지금이야 아무런 일이 아닌 것 같지만 훗날에 사소한 것도 큰일이 될 수 있었다.

“신무맹이 아니면 본 방이 움직여야겠지?”

“휘연 형, 확인되지 않는 일에 본 방이 움직일 수 없어요.”

“본 방도 아니라면…… 그냥 우리만 가는 거? 창천에서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잖아. 여기도 비우기엔 시기가 좋지 않아.”

“그분께 부탁을 하죠. 역 태상이라면 상관없을 겁니다.”

“용병이라…… 좋은 방법이다.”

이휘연은 바로 마음에 들었다.

호천을 이용하겠다는 남하림의 뜻.

괜찮은 생각이었다.

팽유도가 물었다.

“그들만 보낼 수는 없지 않나요? 우리들 중 누군가 한 명은 가야 할 것 같은데.”

“흐, 태원평에 갈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지.”

“아…… 맞네.”

남하림의 말에 모두 조용히 인정했다.

현재 자리에 없는 한 명.

태원평에 갈 사람은 그가 최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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