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 혼마신 나타나다
‘대체…… 어떻게…….’
마뇌는 바닥에 쓰러진 도혁신을 보았다.
혈적마군단과 철갑마단이 앞을 막아섰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척, 척, 척, 척.
일천의 마인들.
마천궁 주위로 천마신마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마의 이대친군인 천마수호위와 천마신마군이다.
‘천마신마군! 이놈들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어……!’
우우우우웅-
천마후가 울리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두두-
땅이 흔들거릴 정도로 강력한 내력이 뿜어져 나왔다.
마교에서 이와 같은 내력을 지닌 소유자는 그밖에 없다.
유일무이한 존재.
“천…… 마!”
천마신마군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인영.
흑색의 도포를 두른 천마 초강유가 마뇌의 눈에 들어왔다.
마뇌는 긴장하여 몸이 굳었다.
손바닥에는 땀이 흥건하며 등에는 빗물처럼 땀이 흘러내렸다.
‘살아 있었단 말인가?’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천마는 죽었거나 심각한 중상에 빠져 있을 거라 확신했다.
‘내가 당했어.’
이제야 함정에 빠졌음을 깨달았다.
천마는 후관도를 일부러 통과시킨 것이다.
‘지마문을 통해 마교 안에 들어오도록 만들었어. 내가 마검군에게 연락을 하도록 거짓 정보를 흘렸다. 이제 마교 안에서는 이런 머리를 쓸 수 있는 놈은 없을 텐데……!’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했지만, 당장 급한 일은 뒤로 물러나야 할지 아니면 그대로 싸워야 할지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마뇌, 당황한 것 같군.”
“이게…… 천마, 당신의 생각이오?”
“하핫, 마뇌는 본인을 너무 무시한 것 같군. 이 정도 머리는 본인도 있소.”
“…….”
대소를 터뜨리는 천마를 보면서 확신했다.
‘누군가 있어.’
수십 년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마교에서 어느 누구보다 천마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변수가 있는 상황에서 싸울 수 없다. 마교를 칠 수 있는 기회는 많아. 물러날 수밖에 없군.’
무리하면서 싸울 필요는 없었다.
후퇴하는 것은 어렵지는 않았다.
후관도와 지마문은 여전히 자신들의 수중에 있다.
조금 피해가 있을지 모르지만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다.
그리고 마교 내에 한 가지 안배를 해놓았다.
충분히 마교를 어지럽게 한 뒤 재차 공격할 수 있었다.
“……천마, 오늘은 날이 아니군. 우린 다음을 기약해야겠네.”
“천문자, 천마와 충분히 싸울 수 있소이다! 무슨 말을 하는 것입니까?”
마뇌의 뜻에 하진강이 발끈했다.
그는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천마신마군이 강하다고 하나 자신들의 힘도 강했다.
변천의 인물이었던 그는 여기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끝을 내야 했다.
마뇌는 반발하는 하진강을 보면서 짜증이 올라왔다.
‘이런 멍청한 놈들과 큰일을 하는 것도 힘들군.’
하진강이 계속 뭐라 떠들었지만 마뇌는 무시했다.
“그만! 주위를 보고도 이길 수 있다고 보는가?”
“…….”
“천마에게 당했네. 마검군을 미끼로 내민 이들의 함정에 빠진 걸세.”
“천마신마군은 밀어낼 수 있소.”
“허, 정말 답답한 사람이군. 지금 기세로는 우리가 밀리네. 싸우고 싶다면 알아서 하게. 우린 물러날 테니.”
마뇌가 곧바로 후퇴의 명령을 내리려고 할 때였다.
우르르르-
‘뭐지?’
후관도를 지키고 있던 수하들이 이쪽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흑영대 대주 판도공이 다급하게 달려왔다.
“무슨 일인가?”
“그게…… 여 단주가……!”
‘여 단주?’
“북명신군 여방초를 말하는 것인가?”
“그렇소이다!”
후관도는 책임지고 있던 흑영대는 갑자기 나타난 북명단과 여방초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밀려났다.
결국 판도공은 지마문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본진과 합류를 위해 안으로 들어왔다.
차라리 밖으로 빠져나갔다면 살아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이젠 후퇴도 할 수 없게 되었군.’
후관도를 북명단에게 빼앗긴 이상 물러날 곳은 없었다.
본의가 아니라도 싸워야 했다.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할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상황까지 오게 되다니…….’
그는 늘 싸움의 승패는 힘이 아닌 머리라고 생각했다.
얼마든지 힘을 들이지 않고 마교를 접수할 자신이 있었다.
‘이 정도는 쉬울 것이라 여겼는데…… 모든 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군.’
마뇌는 모든 것을 잊었다.
지금 이 순간은 머리보다 힘이 더 중요했다.
“크하하하!”
또 한 번 천마후가 터져 나왔다.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강한 천마의 내력.
“자네의 뜻대로 잘 안 된 모양이지? 표정을 보니 한바탕 하기로 결정을 내렸군. 뭐, 그 수밖에 없겠지만.”
“정말로 그대의 계획이었소?”
“지금까지 나를 바보로 본 모양이야. 혹시나 했는데 너무하는군. 내가 머리를 쓰지 않았을 뿐이지.”
천마가 웃으며 관자놀이를 톡톡 건드렸다.
“…….”
마뇌는 천마의 웃음을 보며 조롱당했다는 생각에 입술을 깨물었다.
지이이이잉-
하진강이 먼저 검에 내력을 밀어 넣었다.
마도제일의 쾌검.
흑백광마검을 펼치며 천마를 향해 다가섰다.
“천마, 그대와 한번 목숨을 걸고 제대로 붙어보고 싶었다.”
“큭, 말했으면 진작 죽여줬을 터인데.”
천마의 손에 천마수가 서서히 맺혔다.
스윽.
그때, 천마의 옆으로 탈혼마제가 나섰다.
“천마, 한 번 정도는 본인이 나서야 하지 않겠나. 이놈은 내가 맡도록 하지.”
“사숙님께서 맡아주신다면 고맙지요.”
휘익!
탈혼마제는 거침없이 천마의 앞으로 나섰다.
“이노오오오옴!”
흡성대공을 펼치며 소리쳤다.
하진강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그를 보면서 깜짝 놀랐다.
‘이…… 자는……!’
마교에서 흡성대법을 펼칠 수 있는 마인은 많다.
하지만 흡성대공과 흡성대법의 차이는 명백했다.
상대방의 기를 흡수만 하는 흡성대법과 달리, 흡성대공은 모든 공력을 흡수한 뒤 자신의 공력과 더불어 바로 무공을 펼칠 수 있었다.
휘이이익!
탈혼마제가 먼저 움직였다.
번쩍!
하진강의 흑백광마검이 빛을 쏟아냈다.
“마도 제일의 쾌검이 겨우 이 정도인가? 날아가는 파리라도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도다.”
탈혼마제는 느리게 움직이는 듯했지만, 쏜살과도 같은 흑백광마검의 빛을 피하고 있었다.
처억!
탈혼마제는 하진강의 머리에 손을 댔다.
스으으으-
흡성대공이 펼쳐졌다.
하진강은 호신강기를 끌어 올렸지만 흡성대공을 막아내지 못했다.
“끄으으으윽!!”
“겨우 이 정도의 무공으로 반역을 시도한단 말이던가?”
“으으으으…….”
하진강의 신음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타앗!
뇌정단 단주 부천석이 그를 도우기 위해 움직였다.
슈우우우욱-
부천석의 마창이 탈혼마제의 팔을 향해 내리쳤지만.
“크크크, 네놈도 본좌에게 내력을 받치고 싶구나!”
슈우우욱-
탈혼마제는 피하지 않고 왼손으로 떨어지는 마창을 잡았다.
만 근의 힘이 실린 마창.
‘우욱.’
부천석은 마창을 뒤로 잡아당겼지만 끄덕도 하지 않았다.
“젊은 놈이 그리 힘이 없어서야.”
빙글.
탈혼마제의 왼손이 마창을 따라 감으며 부천석을 향해 올라갔다.
‘허걱.’
그는 탈혼마제의 손을 피하기 위해 뒤로 물러나려고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터억!
그 또한 탈혼마제의 손에 머리가 잡혔다.
“으으으으으-”
부천석도 신음이 흘러나왔다.
일초지적도 안 되는 강한 무공.
어느 누구도 탈혼마제를 향해 달려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휘익.
탈혼마제는 내력이 빼앗긴 두 명의 시신을 마뇌를 향해 던졌다.
“자네가 창천의 인물이라 했나?”
“……….”
마뇌는 탈혼마제를 보면서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뇌충은 성공했어. 완벽하게…….’
하지만 간과한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영마의 존재.
다른 하나는 뇌충을 제거할 수 있는 인물의 존재 여부.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는 천마의 모습이 보였다.
‘완벽하게 당했다.’
탈혼마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본 신교는 자네가 생각한 만큼 만만하지 않지.”
“거의 성공할 뻔했소이다. 당신이 없었다면……!”
“아니지. 내가 없어도 천마는 다른 방법을 생각했겠지.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물론 당신의 말이 맞을 수도 있지. 하지만 지금처럼 우리가 일방적으로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크크크큭, 과연 그랬을까? 여전히 본 신교를 무시하는군. 그리 오랫동안 있었으면서도 말이야.”
“……당신은 신무맹에 있지 않았소?”
“클클, 신무맹 녀석들이 잘해주더군. 그곳에서 잘 먹고 지내고 있었지.”
“그곳에서 여기에 오려면…….”
“킬킬킬. 어떻게 빨리 왔을꼬? 요런 데 이상한 재주가 있는 녀석이 있더군. 아마 그 녀석이 누구인지는 자네도 알거야.”
“걸…… 황. 그를 말하는 것이오?”
“그렇지. 나도 신무맹에서 본 신교로 이리 금방 도착할 줄 몰랐네.”
“…….”
천마가 펼쳤다는 함정.
그것은 분명 천마가 생각해 낸 것이 아니다.
만일 그 녀석이 함께 왔다면…….
마뇌는 주위를 살폈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킬킬킬. 누굴 찾는 모양이지?”
“그는 어디에 있소?”
마뇌는 걸황이 함께 왔음을 확신했다.
“어디에 있긴. 좋은 곳에서 한숨 자고 있겠지.”
“……그렇군. 이 모든 것을 천마가 아닌 그자의 계획이었군.”
함정을 꾸민 인물을 알았다.
마뇌는 처음과 달리 긴장이 사라졌다.
“천마, 여기까지는 내가 졌소이다. 패배를 인정하겠소. 내 손으로 직접 피를 보고 싶지 않아서 후퇴하려고 했던 것뿐이오. 하지만 결과는 똑같소. 마교는 창천에 의해 사라지게 될 것이오. 천마문은 뚫리게 되어 있소이다.”
“마뇌, 그게 무슨 말이지?”
“혼마신(魂魔身).”
“뭣이? 설마 그 괴물을…….”
강혼대법으로 만든 지상 최고의 괴물.
마뇌는 마교 역사상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혼마신의 이름을, 입에 올리고 있었다.
“크크크크. 혼마신을 만드는 데 성공했지. 마교는 쑥대밭이 될 것이다……!”
“마뇌, 혼마신을 마교에 풀어 놓았단 말이더냐?”
“지금쯤이면 혼마신은 천마문을 향해 돌아다니고 있을 터. 마교에서 그놈을 과연 막을 수 있을까?”
마뇌는 자신만만했다.
“천마. 잘 들었나? 그대가 아무리 용을 써도 결국 마교는 무너지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천마는 당장 안으로 달려가서 혼마신을 찾아내야 했지만 마뇌를 놓아두고 갈 수 없었다.
“후후후. 자, 천마. 어떻게 하시겠소이까?”
* * *
초원에서 쉬고 있던 세 사람.
남하림과 신소소와 달리 만통자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변천의 상황과 남하림의 안전을 위해 따라왔다고 하지만, 마교의 큰일을 보면서도 쉬고 있다는 게 불편했다.
‘음…… 너무 편안하게 지내는 게 아닌가 몰라.’
마음이 불편한 만통자와 달리 남하림과 신소소는 일말의 불안감조차 들지 않는 듯했다.
두 남녀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길쭉하게 누워 있었다.
‘음…… 저런 것은 배워야 하는데…….’
벌떡!
‘뭐지?’
갑자기 남하림이 누웠던 자리에서 빠르게 일어났다.
그때였다.
콰아앙!
창문을 부수며 안으로 날아오는 인영.
파아앗!
남하림은 안으로 들어오는 인영을 향해 일장을 뻗었다.
퍼어어엉-!
창문으로 들어서던 인영이 남하림의 일장에 충격을 받고 밖으로 날아갔다.
“천주님, 방금 그건!”
만통자는 깜짝 놀라 남하림의 곁으로 다가섰다.
“엄청난 놈이군요.”
남하림은 밖에서 우르릉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죠.”
“마교에서 우리를 공격하는 것입니까?”
“그건 아닐 겁니다.”
남하림과 함께 만통자와 신소소가 밖으로 나왔다.
“크크크크.”
괴소를 드러내는 괴물.
모습은 일반 사람과 다름이 없었다.
“사람 같지 않은데요? 혹시 이게 마교에서 만든 천강시인가요?”
“소소 님,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천강시와는 생김새가 완전히 다릅니다.”
마교의 천강시와 혼마신은 주술로 인해 움직이지만, 시신을 이용한 천강시와 달리 혼마신은 일반 사람들과 생김새가 닮았다.
혼마신은 계속해서 우르릉거리며 남하림과의 거리를 점점 좁혔다.
상대의 강함을 알았는지 급하게 공격하지 않았다.
“천주님, 이 괴물은 혼마신이라 부릅니다.”
“혼마신? 혼마신이 뭡니까?”
“마교 제일의 강시라 할 수 있습니다.”
“근데 이놈이 왜 나를 공격하려고 하는 거죠?”
“소신이 듣기로는 내력이 강한 상대를 찾아서 움직인다고 했습니다. 마교 내에서 천주님보다 강한 내력을 지닌 분이 없는 모양입니다.”
“혼마신은 제어를 못하는 건가요? 무작정 풀어놓는 물건은 아닐 것 같은데!”
파앗!
남하림의 말이 끝나자마자 혼마신이 움직였다.
마치 공간의 거리를 한 장의 종이를 뚫고 나온 듯, 남하림 앞에 다가서면서 손을 뻗었다.
‘엄청 빠르군.’
휘릭!
남하림이 취리건곤보를 펼치자 몸이 서너 개의 환영을 만들어냈다.
팟팟팟!
혼마신은 눈에 보이는 환영들 중에서 정확히 남하림을 보며 다시 손을 뻗었다.
‘기를 정확히 읽고 있어.’
타악, 탁탁!
남하림은 좌우로 움직이면서 타구봉으로 혼마신의 공격을 막아냈다.
‘괴물이 맞군.’
내력이 실린 남하림의 타격이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럼 이건 어떨지 한번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