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 천문을 잡다
초강유는 현 상황에 대해 고민했다.
‘마뇌는 내 상태를 모른다.’
탈혼마제와 걸황이 마교에 들어온 사실은 천마수호위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이놈들을 어떻게 할까. 한 번에 끝장을 내?’
굳이 싸움을 길게 끌고 가는 건 피곤한 일이 될 것이었다.
거기에다 마교에 다른 동조자들이 없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그들이 제 발로 단번에 치고 들어오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뒤통수를 맞지 않기 위해서는 안에 숨은 놈들을 정리해야 했다.
“수호마령기를 치워라.”
수호마령기를 거두어들인다는 의미.
천마의 죽음을 알린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많은 배신자들이 제 발로 기어나올 것인가.
“알겠습니다.”
“분명 천마궁으로 들어올 것이다. 천마수호위는 천마궁으로 침입한 놈들의 목을 한 놈도 남김없이 베어라.”
“존명.”
살기가 뻗어 나온 대답.
포전인 부복을 하며 소리쳤다.
잠시 뒤.
마교 전체에 퍼져 있던 수호마령기가 동시에 사라졌다.
* * *
꾸욱.
마교의 상황을 계속해서 주시하던 마뇌가 손에 힘을 주었다.
‘됐어.’
마교에서 들려온 기쁜 소식.
마교 전체에 퍼져 있던 수호마령기가 거두어졌다.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직접 보진 못한 것은 아쉽지만, 마뇌는 천마의 죽음을 확신했다.
창천천문에서 그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후후후. 천마의 죽음은 곧 마교의 멸문이지.’
* * *
스스스스-
천마궁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인영들.
창천천문의 무인들이 넓게 흩어진 상태에서 한곳을 향해 접근했다.
‘사실이군.’
국한동의 눈동자가 빠르게 좌우를 살폈다.
천마궁 주위를 지키고 있던 천마수호위의 기들이 약해졌다.
지켜야 할 천마가 죽은 것이 분명했다.
천마수호위들도 동요한 것이 틀림없었다.
천마가 없다면 천마궁에 그들이 있을 필요가 없다.
국한동은 얼마 되지 않는 천마수호위의 기를 느끼면서 확신했다.
‘천마의 시신이 있을 곳은 이곳밖에 없다.’
천마궁 주위로는 다가설 수 없을 정도로 심했던 경계가 언제 그랬냐는 듯 한산했다.
천마가 죽었다면 저들이 모습을 감출 이유가 없었다.
‘단숨에 치고 들어가서 천마의 시신을 확보한다.’
그는 뒤에 따르는 수하들을 향해 신호를 보냈다.
“창천천문이 천마궁을 접수한다.”
타앗!
국한동의 명령에 일백여 명의 수하들이 천마궁으로 뛰어 들어갔다.
콰앙!!
천마궁의 문이 부서지면서 안으로 날아갔다.
휘이익!
국한동은 곧바로 소리쳤다.
“천마를 찾아라!”
수하들은 사방으로 퍼지면서 천마를 찾기 시작했다.
우루루-
두두두두두두두-
하지만,
천마궁 사방 곳곳을 쥐 잡듯 뒤져도 천마를 찾아낼 수 없었다.
“어디에 있지?”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어디에도 천마의 시신은 없었다.
휙휙.
국한동의 곁으로 수하들이 다가왔다.
“안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뭣이?”
그제야 그의 눈동자에 다급함이 보였다.
이미 나타났어야 할 천마수호위도 보이지 않았다.
‘당했단 말인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죽음을 확인하지 않고, 수호마령기가 내려왔다는 것만 믿고 움직였던 게 실수였나?
‘젠장…….’
그때였다.
덜컹!
천마궁의 모든 문들이 동시에 열리며 밖에서부터 천마수호위가 들어섰다.
척! 척! 척!
수백 명의 천마수호위들이 강궁을 겨누고 있었다.
‘천마…… 수호위.’
창천천문의 무인들은 검을 앞으로 세우며 강궁이 쏟아질 것을 대비했다.
“네놈들에게 본 신교가 만만하게 보였던 모양이군.”
국한동은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돌아섰다.
‘천마수호위 대주…….’
함정에 빠졌음을 알았다.
그렇다면…….
천마는 죽지 않았다.
“천마…… 는 죽지 않았군.”
“당연한 건 묻지 않는 것이다. 천하에 그분을 죽일 수 있는 인물은 없다.”
척.
포전은 손을 치켜 올렸다.
“본 신교에 대한 반역은 죽음뿐.”
티이이잉-!
핏핏핏핏!
포전의 신호에 따라 수백 개의 강궁이 창천천문의 무인을 향해 쏟아졌다.
거의 눈앞에서 쏘는 강궁의 위력을 그들은 막아낼 수 없었다.
퍽! 퍽! 퍽! 퍽!
“욱.”
“컥.”
비명 소리조차 길지 않았다.
수백 발의 화살에 절반 이상이 바닥에 쓰러졌다.
쿠욱.
국한동 또한 허벅지에 화살이 박혔다.
“크윽…… 뭣들 하느냐? 여기에서 물러나라!”
“미안하지만 한 놈도 나갈 수 없다.”
채애앵!
포전은 검을 빼 들며 국한동의 앞을 막아섰다.
쉬이이익!
국한동이 겨우 머리로 떨어지는 포전의 검을 막아냈다.
까아아앙!
허벅지에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면 제대로 막아냈을 것이었다.
휘청.
하체가 풀리면서 포전의 힘에 밀린 그는 뒤로 물러났다.
쿠우웅!
국한동은 발에 힘을 주며 멈추려고 했지만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제기랄…….’
휘익!
일어날 여유도 없이 포전의 검이 다가왔다.
스걱-
가슴을 지나가는 날카로운 검.
싸늘한 기가 가슴에서 점점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커어억.”
거친 숨소리를 내며 국한동의 몸은 앞으로 천천히 쓰러졌다.
쿠우우웅.
국한동이 쓰러지는 동시에, 주위에선 육중한 몸뚱이가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 * *
초원에서 쉬고 있던 남하림은 눈을 떴다.
“끝이 났군.”
천마궁에서 흐르는 기의 변화들이 잔잔해졌다.
“무슨 말인가요?”
“천마궁에 창천의 인물들이 쳐들어갔어.”
“정말요?”
“지금 조용해진 것을 보니 천마수호위에서 정리를 잘 한 모양이야.”
“아하…… 그게 느껴져요?”
“내가 누구냐?”
“우주제일인.”
“너도 철각을 닮아가는 거냐?”
“사실이잖아요.”
“후후후.”
신소소는 남하림이 말한 끝이 났다는 의미를 알았다.
“이젠 마교의 일도 끝이 난 것인가요?”
“끝이 아니라 이제 제대로 창천과 한바탕 시작하겠지.”
“저어…… 우린 계속 보고만 있어도 되나요?”
“마교의 일에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나설 수 있겠지만, 아직은 나서지 않아도 될 거야.”
스윽.
탈혼마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딜 가시려고요?”
“천마궁의 일도 정리가 된 듯하군. 그동안 어떻게 변했는지 구경이나 하련다.”
“알겠어요.”
창천과의 싸움은 끝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천마수호위로 변장한 그들을 알아볼 사람은 없었다.
번쩍.
신소소가 가느다란 손을 들었다.
“마노 할아버지, 저도 같이 가면 안 될까요?”
그녀는 마교를 구경하고 싶었다.
탈혼마제는 대답 대신에 남하림을 보았다.
“소소와 같이 가도 괜찮나요?”
“난 괜찮다.”
남하림은 그녀에게 당부했다.
“말썽 부리지 말고 조용히 구경해.”
“네, 알겠어요.”
스윽.
이번에는 만통자도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도…….”
“다녀오세요.”
그렇게 탈혼마제와 만통자, 그리고 신소소가 초원 밖으로 나갔다.
세 사람이 밖으로 나간 뒤, 반각이 지났을 즈음.
천마 초강유가 초원으로 찾아왔다.
“다른 분들은 어디 갔는가?”
“마노를 따라 나갔습니다. 마교를 구경한다고 하더군요.”
“하핫, 누군 죽을 둥 살 둥 싸우고 있는데 한가롭게 구경을 하는군.”
“마교 내부는 거의 정리가 되어가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 천마수호위가 정리를 하는 중이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그 문제에 대해서 조언을 얻고 싶군. 그동안 머리 쓰는 일은 마뇌가 알아서 하지 않았나.”
그동안 마교의 움직임은 거의 대부분 마뇌의 머리에서 나왔다.
천마수호위를 통해 마교 내부에 있는 적은 정리할 수 있었지만, 외부로 나간 마뇌와 창천을 상대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그러던 도중 남하림이 생각났다.
남하림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문을 열었다.
“지금쯤이면 그들도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고 있겠지요.”
“그놈들을 전부 제거하지 않았나.”
“그건 모를 일입니다.”
“……혹시 더 남아 있다는 뜻인가?”
“이번에 천마궁을 공격한 놈들을 보지 않았습니까?”
“그렇군.”
남하림의 말이 맞았다.
전부 밖으로 도망간 줄 알았다.
창천천문은 이미 마교에 깊숙이 박혀 있었다.
“찾아내기가 어렵겠군. 그놈들이 나서지 않는 이상.”
“그래서 창천이 무섭다는 것입니다. 수백 년 동안 그들은 조금씩 파고들었던 것이지요.”
“휴우, 그렇다면 그놈들은 당연히 당했다는 것을 알겠군.”
“천마궁에서 일어난 일이라 정확히는 모를 것입니다. 게다가 천마님의 생사도 궁금하겠지요. 그들은 확인을 정확히 못 했으니까요.”
“그렇지. 난 자네의 말대로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네.”
초강유는 그들이 오는 것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젠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나? 그들이 쳐들어올 때가지 기다렸다가 무작정 싸워야 하나?”
“그것도 좋은 방법이긴 하죠. 창천주문과 변절자들이 모인다 해도 충분히 이길 수 있지 않습니까?”
“당연하다.”
싸움이라면 걱정이 없다.
“그렇다면 뭐가 걱정입니까? 그들이 올 때까지 느긋하게 있다가 때려 부수면 되지 않겠습니까?”
남하림의 대답은 간단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도 가끔은 떠올리지 못할 수가 있다.
“아니면…….”
“또 다른 방법도 있는가?”
“굳이 방법이라고 하기보단,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게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만.”
“그게 무슨 말인가?”
“창천에서 원하는 게 무엇입니까?”
“그건…… 본 신교의 멸문이 아니겠는가?”
“맞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마교의 멸문이겠지요.”
남하림은 재미있는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 * *
예상치 못한 소식.
마교에서 들려온 소식에 마뇌는 심각해졌다.
천마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천마궁에 들어갔던 창천천문의 수하들이 모두 당했다는 소식을 가지고 왔다.
이틀 뒤 창천주문에서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본래의 계획은 그들이 도착하는 즉시, 안에서도 마교를 공격하는 것.
계획이 실패했다.
창천주문에서 도착하기 전에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내려야 했다.
“마뇌, 어떻게 된 일이오? 천마의 시신을 확보하기 위해 갔던 그들이 당했소이다. 혹시 천마가 살아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소.”
“그건…… 그렇지 않을 것이오. 만일 그가 살아 있었다면 분명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오. 하지만 여전히 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소. 천마를 찾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보시오.”
마뇌가 헷갈리는 부분이었다.
‘천마가 정말로 살아 있다면 그는 벌써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다.’
하지만 마뇌는 곧 고개를 흔들었다.
천마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해서 죽었다고 볼 수도 없는 문제였다.
다만 지금까지도 마교의 인물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은.
‘무슨 문제가 있다는 뜻이 아닐까.’
수호마령기를 거둔 이유는 알았다.
천마궁으로 자신들을 끌어들이려고 한 것이다.
천마의 계획은 성공했다.
그런데도 그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그가 죽지 않았다면 필히 뇌충에 의해 정상이 아닌 듯하네.”
끄덕.
마뇌는 말을 하면서 자신의 생각이 스스로 맞다고 확신했다.
‘뇌충을 제거했지만 그 과정에 일이 생긴 게 틀림없어. 몸에 이상이 있는 게 틀림없어. 그가 건재하다면 무조건 모습을 드러냈겠지.’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면 필히 문제가 있을 터.
“조금만 더 기다려 봅시다. 수호마령기를 거둔 것은 아마도 우리를 유인하기 위한 그의 마지막 보루인 듯하네.”
“마뇌, 천마가 계속해서 숨어 있다면 이대로 있을 수는 없지 않겠소이까?”
“그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야지요.”
“방법은 있소이까?”
“없다면 만들어내야지. 내부는 아직도 본인의 말이 먹히는 편이네.”
당황했던 처음과 다르게, 마뇌는 천천히 의자에 몸을 기댔다.
* * *
마교는 웅성거렸다.
그동안 쉬쉬거렸던 사건의 전말이 알려지고, 천마에 대한 소문이 빠르게 퍼져 나갔다.
천마는 변절자, 마뇌를 포함한 열 명의 인물들에 의해 기습을 받은 뒤 부상을 당했다고 알려졌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마교에 숨어들었던 조직.
창천천문에 대해 알게 되었다.
마교인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창천의 무리들이 긴 세월 동안 마교에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지금까지 알고 지냈던 동료들이 창천의 인물들이었다.
가장 놀란 사실은 그들의 수장이 마뇌라는 사실이었다.
마교도들은 기습을 당한 천마의 상태를 알고자 했지만, 모습을 감춘 그를 만날 수 없었다.
잠시 뒤, 천마수호위에 의해 공문이 발표되었다.
#NAME?
뜻이 있는 자는 천마궁으로 향하라.
충격적인 소문은 마교의 외부에 빠르게 전해졌다.
‘천마의 자리를 넘기겠다고?’
마뇌는 생각에 잠겼다.
‘내 생각이 맞았어. 그는 중상을 당한 상태가 확실하다!’
천마가 사라진다면 모든 것을 끝낼 수 있었다.
마뇌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더 좋은 방법이…… 있겠는데.’
마교 내에 남아 있는 인물들 중, 자신에게 동조하는 인물이 천마위에 오르게 된다면?
일이 쉽게 풀릴 수 있었다.
‘후후후후.’
마뇌는 금방 적당한 인물이 떠올랐다.
마검군 도혁신.
그는 천혈적마단 수장이자 십대마인이었다.
천마 초강유에 충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야망이 있음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 * *
스르르륵.
문이 열렸다.
중년 사내는 탁상 위에 놓인 검을 잡았다.
“조용히 들어오는 것을 보니 좋은 뜻은 아닌가 보군.”
“마검군님을 뵙습니다.”
군장실로 들어선 인영은 곧바로 인사를 했다.
“누구지? 정체를 밝혀라.”
“마뇌 님께서 보냈습니다.”
마검군 도혁신은 단번에 인상을 썼다.
천마를 죽이려고 했던 배신자 마뇌의 이름이 나왔다.
“그가 왜 나를 찾지?”
스윽.
그는 조심스럽게 한 장의 서신을 건네주었다.
“이게 뭔가?”
“마뇌 님께서 주신 서신입니다.”
도혁신은 가만히 사내의 손에 들려 있는 서신을 내려다보았다.
“이걸 내가 봐야 하는가?”
“본 신교를 위해서 한 번 보심이 좋다고 하셨습니다.”
‘신교를 위해서 좋다라…….’
도혁신은 손을 천천히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