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 마교를 치다
진후도인이 돌아간 뒤.
남하림은 곧바로 호법전에 연락하여 네 사람을 모았다.
그러고는 내원장 진후도인과 나눈 이야기를 그들에게 전해주었다.
“창천에서 원하는 것은 제령운화가 아니라 우리를 겁주는 것이군요.”
“그렇지. 그녀는 일단 겁을 주기 위한 핑계일 뿐이야.”
이번에는 당무독이 말했다.
“치사하긴 하네. 창천주 정도의 인물이라면 당당하게 나와도 되지 않을까?”
“뭐랄까. 상대를 가지고 노는 게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인 거야.”
“그런 것 같군. 오래 살면서 못된 습관을 못 고쳤네.”
팽유도뿐만 아니라 다른 세 사람의 생각도 같았다.
제령운화는 그저 창천에서 딴지를 걸 수 있는 도구일 뿐.
곧 남하림과 네 명의 관심은 창천에서 무당파를 언급한 내용으로 바뀌었다.
“잘됐지 않아? 그렇지 않아도 부담스러웠는데. 그들이 먼저 치고 들어온다면 붙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안 그래?”
당무독의 말에 남하림은 네 명의 의견을 물었다.
“모두 같은 생각이지?”
“부장, 당연하잖아.”
남하림은 조용히 앉아 있는 이휘연을 보았다.
창천이 무당을 건드렸다는 말에 그는 이미 모든 준비를 다 한 상태였다.
“아하하, 휘연 형은 언제라도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그들이 싸우겠다면 무당은 피하지 않는다.”
이휘연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좋아. 간단하네. 결정이 났구만. 근데 과연 창천에서 먼저 나설지는 모르겠군.”
“하림 형, 그게 무슨 말이야?”
“창천이 과연 먼저 움직일까 의문이 든다는 거야.”
“무당파를 친다면서요? 이것도 단지 겁을 주기 위해서란 말인가요?”
“흐음, 내 생각엔…… 으음. 굳이 그들이 먼저 도발하지 않을 것 같다.”
진후도인과 이야기를 나눈 뒤, 남하림은 네 사람을 기다리면서 생각을 해봤다.
창천에서 뭐가 답답해서 먼저 움직이려고 하는 걸까?
창천주에게 시간은 의미가 없었다.
창천주가 움직이는 것은, 오늘이 될 수도 있고 일 년이 지난 후가 될 수도 있었다.
‘이 시기에 우리에게 협박한 이유가 있을 거야.’
창천이 몰래 움직인다는 것은 그만큼 신무맹을 견제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견제를 하는 입장에서는 먼저 움직이는 게 악수가 될 수 있음에도 말이다.
“하림 형, 이유가 있어요?”
“그건 찾아봐야 되겠지만, 조만간 그들의 움직임이 있을 거야. 그게 이유야. 잘 살펴보도록 해야겠어.”
“알겠어. 본 방 걸비들에게 미세한 움직임이라도 보고하라고 할게.”
“부탁해.”
* * *
삼 일이 지났다.
신소소가 귀빈전으로 살짝 들어섰다.
‘뭐 하고 있을까?’
겉으로 보기에는 고요했지만, 창천과 관련된 소식에 신무맹 전체가 조용히 술렁이고 있었다.
신소소는 제령운화가 괜히 신경 쓰였다.
안으로 들어서자 창가에 서서 돌아선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겉모습은 아무리 봐도 이십 대 초반이었다.
‘신기하단 말이야.’
항상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건 부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신소소는 이내 그 생각을 접었다.
사랑하는 이들은 늙어가는데 혼자만 젊음을 유지한다면 슬플 것 같았다.
“뭘 보세요?”
스윽.
고개를 돌린 제령운화의 얼굴.
‘울고 있어?’
그녀의 눈가가 젖어 있었다.
세상에 혼자 있는 느낌.
자신의 편이 없다는 생각에 슬프기도 하며 두려움과 외로움이 밀려와 넘친 느낌.
“꼬맹이가 무슨 일일까?”
“……나 참, 좋게 봐주려고 해도 정말 밉상이야. 이제 갈 겁니다.”
휙!
신소소는 몸을 돌렸다.
“호호, 천하제일인의 여인이 될 사람이 속이 좁아서야 되겠어?”
“…….”
제령운화의 말을 듣자 신소소는 바로 다시 돌아섰다.
‘호호호. 귀엽네.’
두 여인은 자리에 앉았다.
“지금 창천이 신무맹에 사자를 보냈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그렇구나.”
창천에서 찾아온 이유를 그녀도 알았다.
그들은 신무맹에서 자신을 내보내지 않으면 무당파를 칠 것이라 협박했다.
아직 신무맹이 어떻게 할 것이라는 말은 따로 듣지 못했다.
“혹시 다른 말은 없어?”
“어떤 말요?”
“나를 내보내야 한다는 말.”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절대로 그런 분들이 아니에요.”
“난 창천의 인물이잖아.”
“지금은 아니잖아요. 안 그래요?”
“…….”
“그리고 그분은 상대의 신분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지 않아요. 나도 사파 출신이거든요.”
신소소의 말이 맞았다.
‘하긴 이 녀석도 신려세가의 인물이지.’
하지만 신무맹에서 자신을 내보내지 않는다고 해도,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었다.
“그들은 무당파를 공격할 거라 협박했어. 검제도 무당파 출신이잖아.”
“검제요? 흐음…… 수상한데?”
“뭐가?”
“아니…… 갑자기 검제 얘기가 나오니까 다른 이유가 있나 해서요.”
“음? 호호, 미안하지만 착각했네요. 무당파가 공격당하면 일황사제가 곤란해지지 않을까 싶어서야. 그럼 창천의 인물이었던 내게 영향이 올 수 있지. 특히 검제는 무당 출신이니.”
“그, 그렇죠.”
“호호호.”
그녀는 웃음을 지었다.
“꼬마 아가씨, 진짜로 착각을 하셨군요. 검제는 재미있는 사람이었지만, 전혀 다른 뜻은 없어요. 그리고 방금 결심을 했어. 이곳을 떠날 거다.”
“왜요? 남아 있어도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이번 일과는 상관없어. 혈사천이 무너진 뒤 잠시 허탈해서 여기에 온 것뿐이야. 나도 내 할 일을 해야겠지. 가만히 당하고 있을 순 없으니. 그동안 재미있었단다. 혹시 중원에서 만난다면 반갑게 인사는 하겠지?”
“진짜 떠나실 건가요?”
“그래.”
“……내가 언니라고 해도?”
“호호호. 연이 있다면 만나겠지. 기분 좋게 떠나게 해줘서 고맙다. 그들에게도 고맙다고 대신 전해주련.”
“…….”
샤르르르-
제령운화의 모습이 눈 녹듯 사라졌다.
“에이…… 나이는 많아도 좋은 언니 같았는데…….”
* * *
약속 날짜가 다가왔다.
벽계호는 내원장 진후도인이 아닌 젊은 사내와 마주 앉았다.
‘걸복…… 이면 걸황?’
소문으로 들은 것과 분위기가 달라보였다.
“그대가 걸황인가?”
“난 이휘연이라 한다.”
“검…… 제.”
맹주가 아닌 검제 이휘연이 앞에 앉아 있었다.
‘오한이…….’
이휘연의 시선은 살기 그 자체였다.
천살성의 살기보다 더 강한 살기는 없었다.
“당신이 무당파를 언급했나?”
‘이…… 녀석도 무당파 출신이다.’
벽계호는 물러날 수 없었다.
“그렇다. 화문자를 풀어주지 않는다면 본 천은 무당파를 칠 것이다.”
“우린 화문자를 잡은 적이 없다. 창천은 무슨 짓을 하더라도 그녀를 데리고 가지 못할 것이다.”
“무당파가 멸문당하는 것을 보고 싶은 모양이오?”
“말 같지 않는 소리는 집어치워.”
“지금 뭐라고 했는가?”
“창천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무당을 치든 신무맹을 치든 그건 창천의 뜻이니 말리지 않겠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치르게 해주지.”
이휘연은 거침이 없었다.
벽계호는 기세에 밀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우리 대화는 끝났군.”
“……검제, 그대의 뜻이 신무맹의 뜻인가?”
덜컹.
이휘연의 뒤로 문이 열렸다.
황금빛 걸복에 눈부신 풍채.
‘이자가 걸황이다!’
타악!
남하림이 손바닥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창천주도 큰 사람은 아니군? 애들 같은 장난을 좋아하는 걸 보니.”
“창천주님을 모욕하는 것이오?”
“그게 모욕으로 느껴졌소이까? 난 사실대로 말을 했을 뿐인데.”
“걸황!”
벽계호는 크게 소리쳤다.
“이보시오. 화를 낼 필요가 없지 않소이까? 어차피 나중에 얼굴 붉히며 싸우게 될 것을. 그만 돌아가시오. 난 휘연 형과 달라서 당신을 죽일지도 모릅니다.”
“…….”
미소를 짓는 얼굴과 웃음기가 배어 있는 목소리가 분명했다.
하나 짧은 순간, 벽계호의 몸은 꼼짝도 하지 못한 채 굳어졌다.
‘순간…… 창천주님을 보는 듯했다.’
그는 몸이 떨렸다.
결국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함부로 덤벼서는 안 된다. 무작정 움직였다가는 당할 수 있다.’
걸황의 뜻은 창천주에 대한 선전포고와 같았다.
벽계호는 느꼈다.
신무맹, 아니, 걸황 남하림을 절대로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잠시 후.
그는 굳은 표정을 지은 채 신무맹을 나서는 떠나야 했다.
* * *
십만대산.
마도의 종주 마교는 무림과는 상관없이 늘 조용했다.
하지만…….
건물 지하에 하나둘씩 모여드는 흑의인들.
마지막 한 사람이 들어서자 모두가 자리에 앉았다.
“모두 모였군.”
“드디어 때가 온 것입니까?”
아홉 명의 인물들과 마주 보는 한 사람.
마교의 군사라 할 수 있는 마뇌 인후마가 틀림없었다.
“창천주님의 명이 떨어졌다. 마교인 변천의 완전한 전멸을 원하신다.”
“그분께서 원하시는 게 마교를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 전멸입니까?”
천혈갑신단 부단주 정청노가 말했다.
“그분께서는 세상에서 오직 창천만을 원하신다. 당연히 마교는 세상에서 사라져야겠지.”
“알겠습니다.”
이마에 붉은 두건을 쓴 중년 사내, 혈두광인으로 불린 귀멸군의 수장 어종묵이 물었다.
“어떻게 움직일 생각이십니까? 귀멸군을 동원합니까?”
“천마의 눈과 귀는 마교에 수도 없이 깔려 있다. 조금이라도 군사들이 움직인다면 단번에 그에게 보고가 될 터.”
“그렇다면……?”
“우린 천마만 상대하면 된다. 나머지 놈들은 창천에서 맡을 것이다.”
“언제입니까?”
“우리가 천마를 죽이면, 그때 창천주문이 곧바로 쳐들어올 것이다. 마교가 정리되기 전에 치면 무너뜨릴 수 있다.”
“주위에 도착한 모양이군요. 천마가 창천에서 오는 것을 아직 모르고 있습니까?”
“창천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아무런 보고가 올라오고 있지 않다.”
“크큭, 드디어 우리도 중원에서 지낼 날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벗어날 수 있겠군요.”
마뇌는 천천히 한마디 했다.
“이틀 뒤. 천마와 함께 낙천대에 올라갈 것이다. 그날이 천마의 날개가 끊어지는 날이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마뇌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낙천대로 오르는 두 명의 인물.
천마 초강유와 마뇌였다.
한 달에 한 번씩, 두 사람은 낙천대에 자리를 마련했다.
편평한 바위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은 두 사람.
스윽.
마뇌가 두 손으로 술병을 들었다.
“한 잔 따르겠습니다.”
“고맙군.”
마뇌를 내려다보는 초강유의 눈동자가 빛났다.
술잔에 떨어지는 주향이 강하게 올라왔다.
“평소에 마시던 술이 아니군.”
“이번에 구해온 술입니다. 향이 좋다고 해서 가지고 왔습니다.”
“그렇군. 솔향이 좋아.”
초강유는 술잔을 들어 마뇌를 쳐다보았다.
“잘 마시겠네.”
“…….”
벌컥.
한입에 술잔을 비우고.
타악!
바위에 술잔을 내려놓았다.
“한 잔 더 마실 수 있겠소?”
또르르르-
마뇌는 조용히 그의 잔에 술을 따랐다.
다시 채워진 술.
스윽.
초강유는 술잔을 들어 마시지 않고 마뇌에게 건넸다.
“자네도 한 잔 마시게.”
“제 술잔이 있습니다.”
“허, 내가 준 성의를 무시하는 것인가?”
“…….”
마뇌는 그의 잔을 받았다.
“시원하게 들이켜게. 몸에 들어가는 게 끝내주더군.”
“알겠습니다.”
“빨리 마시지 않고 뭐 하나.”
씨익.
초강유는 실소를 짓고 있었다.
‘여기에 독이 든 것을 알고 있다.’
휘익!
마뇌는 술잔을 옆으로 던졌다.
“이 사람이…… 아깝게 술을 버리다니.”
“천마, 조용히 끝내주려고 했소이다.”
“조용히 끝내? 웃기는군.”
초강유의 온몸에서 독기가 빠져나오고 있었다.
“겨우 이것으로 나를 죽이려고 한 것은 아니겠지?”
“혹시나 해서 준비한 것이외다. 한 모금만 마셔도 절명한다고 해서 구해온 것인데, 미안하외다.”
“미안할 건 없다. 내 몸이 독에는 잘 통하지 않는 편이라서.”
“그런 것 같군요.”
초강유는 술병을 들었다.
“창천에서 왔는가?”
“그렇소이다.”
“언제부터 그놈들과 붙어먹었나?”
“미안하지만 언제부터가 아니라 오래전부터이지요. 본인이 바로 창천십문에서 창천천문의 천문자이외다.”
“허어, 과연 미치고 팔짝 뛸 일이군.”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꿀꺽.
초강유는 단번에 독이 든 술병을 비웠다.
쉬이이이이-
그의 온몸에서 독기가 빠져나왔다.
“짜릿한데.”
“……역시 당신도 괴물이오.”
“크큭, 그럼 어디, 진짜로 준비한 것을 내 앞에 보여주는 게 좋겠군.”
“그렇게 하지요.”
휘이이익!
마뇌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홉 명의 인물들이 낙천대로 다가왔다..
‘이런.’
초강유의 인상이 처음으로 굳어졌다.
낙천대로 다가온 그들은 마교에서도 보통 인물들이 아니었다.
“크하하하핫! 대체 창천은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동안 무슨 헛짓을 한 것인가?”
어이가 없다는 듯, 초강유의 광소가 낙천대를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