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261화 (262/328)

261. 계획이 실패하다

창천주는 결정을 내렸다.

‘하필이면…… 혼령안을 지니고 있을 줄이야.’

그는 항혼정법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런데, 대혼술법에 가장 해가 되는 걸림돌을 남하림이 가지고 있었다.

일전, 구천마제는 대혼술법을 성공적으로 펼쳤지만 정신력이 강한 유극지에게 당했다.

다행히 금제를 숨겨놓지 않았다면 유극지를 죽이지 못했을 터.

혼령안이 없는 유극지도 완벽하게 제압하지 못했다.

당연히 혼령안을 지닌 남하림은 부담이 되었다.

자신도 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위험하게 모험할 필요는 없었다.

물론 대혼술법을 펼칠 후보로서는 남하림의 조건이 훨씬 좋았다.

양천과 현천의 전인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림의 떡이었다.

‘젠장…… 아쉽군.’

붉은빛이 흐르는 흑장석 위에 누워 있는 사내는 정신을 잃은 듯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래…… 이 녀석의 육체도 대단하다.’

대혼술법을 펼치기에 용문자의 몸도 완벽에 가까웠다.

슥슥.

창천주는 용문자의 몸을 스치며 살폈다.

“시작해 볼까? 후후후.”

휙.

창천주는 흑장석에 올라섰다.

그러고는 누워 있던 용문자의 상체를 세운 뒤에 등 뒤로 가부좌를 틀었다.

척.

손바닥을 펴 용문자의 등에 놓았다.

스르르르-

칭천주의 신형에서 기가 흘러나오며 용문자의 몸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때,

스윽.

정신을 잃은 듯 보였던 용문자의 눈이 뜨였다.

뒤에 있는 창천주는 그가 깨어난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듯, 계속해서 기를 흘려보냈다.

‘광문자의 말대로 정신을 잃지 않았어.’

그는 덧붙여 창천주가 대혼술법을 본격적으로 시도하면, 움직이지 못할 것이라 전했다.

다른 인물들과 달리, 용문자는 대혼술법을 익히지 못해 이 사실을 알 수 없었다.

‘아직 멀었어. 조금 더 기다려야…….’

용문자는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 찰나.

등 뒤에서 살기가 피어올랐다.

“깨어난 줄 알고 있다.”

‘커어어억!’

용문자의 숨이 순식간에 막혔다.

창천주의 한마디에 실패했다는 것을 알았다.

재빨리 피하고자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멍청한 놈들이로군.”

“……!”

창천주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동안 모르는 척했을 뿐.

“수백 년을 살아왔거늘. 네놈들처럼 생각한 놈들이 지금까지 한 놈도 없었겠는가?”

“…….”

“사람이라면 머리를 똑바로 사용할 줄 알아야지. 쯔쯔. 광문자 이놈도 제법 살았다는 녀석이 예전 일도 기억을 못하는군.”

휘익.

창천주는 용문자의 몸을 돌렸다.

‘창…… 천주.’

용문자는 살소를 띤 창천주와 시선을 마주했다.

핏.

창천주의 검지가 용문자의 이마를 눌렀다.

“광문자가 준 항혼정법을 익힌 모양이지?”

‘그것조차…… 알고 있었어!’

“크하하하! 정말 웃기는군. 이래서 오래 살면 좋다니까. 똑같은 놈들이 똑같은 짓들을 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재미있는지.”

눈이 튀어나올 듯 크게 뜨인 용문자의 온몸이 떨렸다.

똑같은 놈들.

똑같은 짓들.

창천주가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예상되는 말들.

‘항혼정법조차 창천주가 흘린 거였어. 세상을 가지고 논 거야.’

“유극지가 특별한 놈이었어. 항혼정법을 제대로 깨우칠 줄은 몰랐으니까. 그 안에 금제를 심어놓은 것은 몰랐겠지만.”

“우우욱.”

”내가 준 개벽단에는 금제를 촉발시키는 성분이 들어 있지. 혹시나 해서 말이야. 개벽단을 복용하지 않았다면 상관없겠지만, 네놈은 내가 특별히 금제를 시켜놓았다.”

창천주의 기가 이마를 통해 순간적으로 쑤욱 들어왔다.

점점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어…… 안 되는데.’

정신을 잃게 되면 끝이었다.

몸과 정신을 모두 창천주에게 빼앗길 것이다.

그리고 설백진은 이 사실을 모를 터.

그렇게 되면 용문자가 된 창천주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지워야 해. 나의 모든 것들을…….’

용문자도 최후의 보루를 숨기고 있었다.

스윽-

용문자는 마지막 힘을 내어 목을 억지로 끌어당겼다.

창천주에게는 뒤로 물러나려는 듯한 동작처럼 보였다.

“후후후…… 용문자, 발악을 해도 소용이 없다. 대혼술법에 걸린 이상 벗어날 수 없지.”

“어어억!”

용문자는 마지막으로 소리를 낸 후 정신을 잃었다.

“힘이 강해지면 꼭 이런 놈들이 나오는군.”

창천주의 손가락에 기댄 용문자.

그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자, 그럼.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는지 한 번 구경해 볼까.”

픽픽픽.

창천주의 손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이휘연과 당무독은 신무맹을 조용히 빠져나갔다.

원래 계획대로 신무맹의 무인들이 아닌, 개방의 안휘성 총타와 함께 혈사천에 원군을 나서기로 했다.

두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 신무맹의 인물들은 알지 못했다.

두두두두두두-

거의 쉬지 않고 말을 몬 두 사람의 앞에, 안휘성 총타가 멀리서 나타났다.

총타의 정문 현판이 보였다.

천하제일대개방.

예전이라면 모를까,

현재 무림에서 천하제일문파는 대개방이었다.

하지만 천하제일문파가 되었다고 해서 변한 건 전혀 없었다.

개방도는 그저 배부르고 등 따시면 만족했다.

드르릉.

정문 앞에 누워 있던 개방도 바닥이 울리는 진동을 느꼈다.

부스스-

개방도는 눈을 비비며 상체를 일으켰다.

요즘 들어 개방에 시비를 거는 미친놈은 없는데.

“뭐야…… 꿀잠 자고 있었는데…….”

입맛을 다시면서 소리가 들린 방향을 보았다.

거친 말발굽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에고…….”

땅을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니 벌써 시야에 들어와 있었다.

“어떤 녀석이 급하게 오는 거야?”

말을 타고 오는 인물의 얼굴을 확인하자,

“헉…… 그분들이시다.”

히이이잉!

어느새 눈앞에 두 마리의 말이 멈춰 섰다.

척.

개방도 탁국은 방금 전까지 늘어져 있던 모습과 달리 기합이 들어갔다.

그러고는 곧바로 가슴이 무릎에 닿을 정도로 인사를 했다.

“어서 오십시오! 검제님과 독제님을 뵙습니다!”

“반갑소이다.”

이휘연과 당무독이 총타에 온다는 보고는 내려오지 않았다.

“총타주께서는 안에 계시오?”

“넵. 제가 잽싸게 연락을 하겠습니다.”

휘익.

탁국은 신법을 펼치며 물 찬 제비처럼 총타 안으로 달렸다.

벌써 모습이 사라졌다.

“본 방에는 특이한 인물들이 많다니까.”

“그러게요. 정말 빨라요.”

“우리도 가자.”

총타 건물 앞에 수십 명의 개방도들이 순식간에 모였다.

총타주 공천개가 다가오는 검제 이휘연과 독제 당무독을 맞이했다.

“두 분을 뵙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총타주의 인사가 끝이 나자 공천개의 뒤에 있던 개방도들이 떠나갈 듯 소리쳤다.

“반갑게 맞이해 줘서 고맙소이다.”

“아닙니다. 미리 오신다고 연락을 주셨으면 환영식을 했을 것입니다.”

“이 정도도 충분합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넵. 알겠습니다.”

공천개가 앞장을 섰다.

* * *

바닥에 앉은 세 사람.

공천개는 이휘연과 당무독 앞에 앉았다.

이휘연은 총타에 찾아온 이유를 설명했다.

창천주에 향한 설백진의 배신.

그리고 그가 신무맹에 원하는 내용까지.

“잘 알겠습니다. 걸황님의 뜻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총타주님, 우리들은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면 됩니다. 다만 그곳에 갈 때 까지는 수하들에게는 비밀로 하는 게 좋을 듯싶소이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창천주와 설백진의 대결.

총타에서는 그들이 어떻게 될지 결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두 분께서는 당분간 여기에서 지내실 것입니까?”

“신세를 지도록 하겠소이다.”

공천개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검제와 독제가 함께 지낸다면 개방도들이 좋아할 것이 눈에 보였다.

“하하하! 신세는 무슨 말씀이십니까. 오히려 저희들과 함께 지내시는 데 불편하실까 걱정입니다.”

“개방의 제자가 어딘들 지내지 못하겠습니까.”

공천개는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검제나 독제로 불리는 두 사람이 스스로를 자신들과 같은 개방의 제자라 했다.

스윽.

당무독은 천주머니 하나를 공천개에게 건네주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회식이나 한번 하시죠.”

“오호…… 이렇게 많이……?”

그가 천주머니 안을 보았다.

“이왕 먹고 마시는데 아끼면 안 되지 않소이까? 배부르게 먹어야죠.”

“하하하, 맞습니다. 수하를 시켜 당장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공천개는 밖으로 나간 뒤 수하를 불렀다.

반시진 뒤.

안휘성 총타로 음식들을 실은 마차들이 들어왔다.

그 안에는 열 마리의 돼지들과 술이 가득 실려 있었다.

개방도들이 구경을 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와아아아아!”

환호로부터 이어진 함성은 그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졌다.

* * *

스윽.

흑장석에 누워 있던 용문자가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은 온통 흑색이었다.

심연처럼, 온통 새까맣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빛.

곧 점점 흑색의 원이 작아지면서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용문자가 손바닥을 앞뒤로 움직였다.

“성공했군.”

용문자는 고개를 돌려 옆에 누워 있는 공신 해정의 육체를 내려다보았다.

“볼품없군.”

늙고 작은 육신.

용문자의 몸에 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였다.

끄더덕.

목을 좌우로 돌렸다.

불편한 건 없었다.

대혼술법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이제 그놈들이 무슨 짓거리를 하고 있는지 이 몸 주인의 기억을 봐야겠군.”

창천주는 정신을 집중시키며 용문자의 기억을 끄집어내려고 했다.

‘흐으음…… 뭐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대혼술법을 하면서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용문자의 기억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왜…… 기억이 없지?”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창천주는 다시 한 번 더 용문자의 기억을 찾기 위해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용문자의 기억을 찾을 수 없었다.

‘어떻게 된 것이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이놈이……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창천주는 그가 스스로 기억을 지워 버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자혼망각술법(自魂忘覺術法).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 몰랐다.

이렇게 되면 창천에서 광문자에게 동조한 인물들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게 힘들어진다.

‘아직 대혼술법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창천주는 용문자가 거사에 성공한 것처럼 속이기로 결정을 내렸다.

끼이이익-

창천주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를 기다리던 수많은 시선들이 용문자에게 고정되었다.

창천주의 사신호위대가 돌아서며 마주 섰다.

용문자의 모습.

성공을 했는지 모습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었다.

창천주의 내력.

천무(天武)의 기가 사신호위대주 목옥창을 감싸며, 귓가에 전음이 들렸다.

[당분간 내가 이상하게 행동해도 모르는 척하라.]

목옥창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천무기는 오직 창천주만이 익힐 수 있는 심법이었다.

사신호위대는 옆으로 물러났다.

“언제부터 내 앞에서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있었지?”

휙.

휙.

창천주의 말이 끝나자마자 한 명도 빠짐없이 부복을 했다.

“모두 죽고 싶은 모양이군.”

“천주님, 소인들이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창천십문의 일인 궁문자는 목청이 터지듯 소리쳤다.

창천주는 그를 내려다보았다.

“궁문자, 네놈도 대혼술법을 익혔으니 잘 알고 있을 터. 용문자와 대혼술법을 펼치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 나를 바라만 봤다. 혹시 실패라도 했을까 싶었나?”

“…….”

스팟!

용문자의 허리에 찬 검이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아무도 보지 못했다.

툭.

궁문자의 왼팔이 바닥에 떨어졌다.

‘우우욱.’

그는 비명이 터져 나오는 신음을 참아야 했다.

만일 입 밖으로 소리를 냈다면 목이 잘릴 것이었다.

“이번 한 번만은 용서하겠다.”

“감…… 사합니다.”

궁문자는 목숨이 살아 있는 것만으로 다행이었다.

팔이 잘린 건 의미 없었다.

싱싱한 놈을 잡아다가 대혼술법을 펼치면 될 뿐이었다.

“모두 물러가라.”

“넵. 천주님의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부복한 인물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며 뒤로 물러났다.

번쩍.

창천주는 그들 사이에서 한 명의 인물, 제령운화를 보았다.

“화문자는 멈춰라.”

“…….”

그녀가 걸음을 멈추었다.

창천주는 사신호위대까지 모두 물러나게 했다.

남은 사람은 제령운화뿐.

‘나를 왜? 성공했다는 것인가?’

따로 부르는 이유가 궁금했다.

용문자가 정말로 계획대로 성공했다면 한 가지 확인할 방법이 있었다.

“화문자. 할 말이 없는가?”

“소녀가 천주님께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사옵니까?”

“…….”

창천주는 먼저 자신이 용문자이라고 밝힐 수 없었다.

제령운화는 눈치가 빨랐다.

그 질문을 하는 순간 실패했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었다.

그녀가 먼저 밝히도록 유도해야 했다.

“이번에도 광문자는 오지 않았군.”

“연락을 했사옵니다. 근데…… 아무런 답장도 없었습니다.”

“죽고 싶은 모양이군. 어떻게 할까? 이번 일은 운화가 맡아서 처리를 하겠나?”

“제가 그 일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소녀보다 일을 잘하는 인물들도 많습니다.”

“운화의 말이 맞다. 더 일을 잘 처리하는 인물이 맞지. 하나 난 다른 녀석들보다 화문자에게 광문자를 죽일 임무를 맡기고 싶네. 둘 중 누가 이길지 벌써부터 궁금하군. 크하하하하!”

창천주는 대소를 터뜨렸다.

‘큰일이다. 실패했어. 용문자가 아니야.’

만약 일이 성공했다면 용문자는 본인이 직접 광문자에게 갔어야 했다.

그런데…….

용문자는 그 대신 제령운화를 보내고 있었다.

창천주를 죽이려는 계획은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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