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259화 (260/328)

259. 설백진 만나다

역위천이 패배했다!

소문은 일각도 지나기 전에 신무맹 전체로 퍼졌다.

상대는 심지어 걸황 남하림이 아닌 도제 팽유도라지 않은가!

“도제께서 역 태상을 이겼다는군.”

“며칠 전에는 검제께서도 이기시지 않았나?”

“그러게 말이네. 들리는 소문에는 각제님이 도제님보다 더 강하시다고 하더군.”

“우와…… 이건 장난이 아니구만.”

명실공히 현 무림은 일황사제의 시대라고 할 수 있었다.

맹주전에 모인 일곱 명.

황보궁과 신소소까지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기 련주가 온 건 알고 있지?”

“무슨 일로 온 거야?”

그들끼리 있을 때, 당무독에게 남하림은 여전히 부장이었다.

“혈사천주가 우리를 만나고 싶다더군.”

“허얼, 믿을 수 없는데?”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 아니야?”

뜻밖의 말이었다.

이휘연이 물었다.

“설백진, 그자가 우리를 먼저 만나겠다고 했단 말이지?”

“사파련에서 연락이 왔다고 하더군요.”

“반년 동안 조용히 지내더니 무슨 바람이 분 거지?”

“중요한 일이 생긴 모양인가 봐…….”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설백진 정도의 인물이라면 함부로 만나고자 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가 만나고자 한다면 이유야 있겠지.”

“그래서 내가 만나겠다고 했어.”

팽유도가 다시 물었다.

“언제 만날 건가요?”

“남양루에서 보자고 연락을 보냈으니 조만간 답이 오겠지.”

“여기서요?”

“답답한 사람이 우물을 파는 거야. 만나자고 한 사람이 찾아와야지 안 그래?”

“그렇긴 하죠.”

“근데 궁금하긴 해. 무슨 이유로 만나자고 하는지.”

“그러게요.”

스윽.

남하림은 의자 뒤로 편안하게 몸을 젖혔다.

반년 동안 편안하게 지냈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좋은 날은 갔구나.”

“하림 형, 저도 그런 생각이 들어요.”

반년의 시간은 정말 도움이 되었다.

팽유도뿐만 아니었다.

맹주전에 모인 전부가 공통으로 드는 생각이었다.

“궁아는 요즘 무공은 어때?”

“네, 대형, 여러 형님들께서 많은 도움을 주시고 계십니다.”

“그래, 궁아는 잘할 거야.”

“넵,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신소소를 보았다.

“넌 어때?”

“저도 열심히 해요.”

“진짜야?”

“……흥.”

신소소의 입술이 삐쭉 튀어나왔다.

“하림 형, 소소가 진짜로 열심히 하고 있어요! 신무극수를 벌써 오단공까지 익히고 지금은 육단공의 칠 성 정도 수준이야.”

“오오, 잘하고 있네.”

“봐요. 내가 얼마나 열심히 하는데.”

신소소는 입을 삐죽였다.

용문자에게 잡혔던 그날 이후, 신소소는 결심했다.

그동안은 무공을 열심히 익혀야 한다는 마음이 없었다.

무가의 자식이기에 기본적인 무공만을 익혔을 뿐, 큰 욕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때 무공이 강했다면.

용문자에게 그리 쉽게 잡히지 않았을 것이다.

제대로 반격도 하고 말이다.

반성한 신소소는 남하림이 돌아온 날, 무공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남하림은 그녀가 왜 그런 부탁을 했는지 이해했다.

며칠 뒤, 남하림은 무극수신공을 수정하여 신무극수를 가르쳐 주었다.

슥슥.

남하림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당연히 잘 알지. 좀 더 열심히 하라고 하는 말이잖아.”

“……흥.”

“오늘 둘이서 밖에 놀러갈까?”

“정말요? 어디 갈 건데요?”

“소소가 원하는 곳에 가자.”

“좋아요. 그럼 잠깐만 기다리세요. 옷 갈아입고 올 거니까!”

후다닥!

신소소는 재빨리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큭큭. 두 사람, 재미있게 놀다 와.”

“나도 놀러 가고 싶다.”

성철각은 두 사람을 보면서 부러웠다

“그러게요. 철각 형, 우린 언제 좋은 짝을 만날까요? 무뚝뚝한 휘연 형도 짝이 있는데 말이야.”

“흐음…… 그거야 내가 잘났으니 그런 게 아니냐.”

“어라? 아하핫, 이제 휘연 형도 그런 말을 할 줄 아네! 세상에 우리를 구제해 줄 아리따운 여인은 어디 있는가 몰라!”

* * *

남양성으로 세 명의 여인이 들어섰다.

중년 여인과 두 명의 젊은 여인.

정문 위사는 중년 여인을 보며 자세를 똑바로 했다.

검후 정화진.

맹주 남하림의 의모이자 상내원의 오태상 중 일인이었다.

그녀와 함께 온 젊은 여인은 제자들이었다.

“태상님을 뵙습니다.”

정화진은 평소에 검문에서 지내다 간간이 신무맹으로 들르곤 했다.

“맹주는 여전히 안에 계시겠지?”

“맹주님께서는 한 시진 전에 신소소 님과 출타를 하셨습니다.”

“소소, 그 아이와? 멀리 나간 것이냐?”

“뱃놀이를 하러 가셨습니다. 지금쯤이면 돌아오실 것입니다. 급한 일이 있으시면 소인이 가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됐네. 방해를 해서야 되겠나. 안에서 기다리지.”

“알겠습니다.”

정화진이 정문으로 들어갈 때였다.

멀리서 조잘거리는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어엉말 재미있었어요.”

“다행이네.”

“다음에 또 가요.”

“그렇게 하자.”

신소소는 남하림의 곁에 바짝 붙은 채로 팔짱을 꼈다.

“어, 의모님께서 오셨나 보다.”

남하림이 정문에 서 있는 정화진을 발견했다.

그 옆에 두 명의 여인은 단목영하와 백리희였다.

신소소도 그녀를 보았는지 얼른 팔짱을 풀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어머니!”

그러고는 정화진을 향해 반갑게 소리쳤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단번에 그녀를 어머니라고 부르고 있었다.

“천방지축이 따로 없구나.”

하지만 망아지처럼 팔짝거리며 달려오는 그녀가 싫지는 않았다.

세상에서 검후 정화진을 이렇게 반갑게 맞이하는 사람은 신소소가 처음이었다.

“오셨어요?”

“허허, 경망스럽게…… 맹주의 여인이지 않느냐? 남들 시선도 있거늘.”

“헤헤헤, 알겠어요. 담부터 조심할게요.”

신소소가 정화진의 품에 안겼다.

“허허…….”

애교를 부리는 그녀를 보자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남하림이 다가왔다.

“어머니, 오셨습니까?”

“둘이서 뱃놀이를 갔다고?”

“계속 신무맹에 있다 보니 따분해서요. 잠시 바람 쐴 겸 다녀왔습니다.”

“잘했다. 신무맹이 처음이라고 해서, 오는 김에 제자 녀석들과 같이 왔다.”

남하림은 검후 정화진과 함께 온 두 여인과 마주 섰다.

“두 분, 오랜만에 뵙는군요.”

“반갑습니다. 맹주님.”

단목영하가 먼저 인사를 했다.

백리희도 엷은 웃음을 보이며 포권을 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백리 가주께서도 잘 오셨소이다. 최근 백리세가의 일을 들었습니다. 축하합니다.”

“맹주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스윽.

신소소가 남하림의 옆으로 다가왔다.

“두 분 언니들, 안녕하세요. 형님께 말씀을 많이 들었어요.”

자신들을 알고 있는 듯한 인사.

단목영하가 물었다.

“형님이라니? 누구를 말하는 것이지?”

“은하궁주 형님요.”

“아, 청영…….”

이미 중원에서 유미령과 남하림의 관계는 공식적으로 확실해졌다.

“어머니, 들어가시지요.”

“그러자꾸나.”

휘익!

신소소는 얼른 정화진의 팔에 팔짱을 끼며 함께 걸었다.

“어머니, 같이 가요.”

“후후후, 알았다.”

백리희는 뒤를 따르면서 정화진과 나란히 들어가는 신소소를 바라보았다.

‘저 아이가…… 소소구나.’

* * *

맹주전 앞에 세워진 네 개의 호법전.

그중 도법전으로 한 인영이 조심스럽게 들어섰다.

맹주전으로 가는 길.

단목영하가 팽유도에 대해 물었다.

“크흠, 혹시 팽 공자님께서는……?”

“유도 오빠는 도법전에 계세요. 수련을 하고 있을 거예요.”

신소소가 뒤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

“언니, 제가 데리고 올까요?”

신소소는 감이 빨랐다.

맹주전으로 가는 도중, 뜬금없이 콕 집어 팽유도를 찾을 이유가 없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휙.

신소소는 눈앞에 보이는 건물을 가리켰다.

“저곳이 도법전이에요. 지금 가보세요.”

“…….”

단목영하는 갑자기 침이라도 맞은 것처럼 몸이 굳었다.

“언니, 망설이지 마시고 기회 있을 때 움직이는 게 좋아요. 여기 신무맹에서도 유도 오빠를 노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앗, 지금도 도법전에 있을지 모르겠다.”

뚝.

단목영하의 걸음이 멈췄다.

그녀의 발걸음은 재빨리 도법전으로 향했다.

“이런, 안 그러던 녀석이 이상하게 따라가겠다고 하더니. 이유가 있었군.”

정화진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도법전의 문은 열려 있었다.

파아앙!

파아앙!

안에서 파공음이 들려왔다.

‘무공을 수련하는구나.’

조심스럽게 안을 들여다보자,

“……!”

묵흑반도를 휘두르는 팽유도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 또한 절대무인이라 할 수 있다.

단번에 팽유도의 무공이 어떠한지 알 수 있었다.

도제란 말이 헛말이 아니었다.

그때, 등을 돌린 채 서 있던 팽유도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요?”

단목영하는 또다시 몸이 굳었다.

스윽.

그리고 돌아선 팽유도와 시선이 마주쳤다.

“어? 단목 소저?”

* * *

불야성을 이루었던 남양루는 하루 전부터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두두두두두두두-

남양루의 입구에 선 두 명의 인물.

남하림과 기성은 다가오는 사두마차를 바라보았다.

“오는군요.”

“급한 모양일세. 연락을 주자마자 답장이 오지 않았나.”

“무슨 말을 할지 정말 궁금하네요.”

남하림은 진심이었다.

히이이이잉!

사두마차가 두 사람 앞에 멈춰 섰다.

마부석에 앉아 있던 중년 사내가 재빨리 내려왔다.

덜컹.

중년 사내는 공손하게 문을 열었다.

마차 안에서 백의 치맛자락이 보였다.

곧이어 여인의 웃음이 들렸다.

“호호호.”

제령운화가 마차에서 내리며 남하림을 향해 웃음을 지었다.

‘저 여자도 왔군. 의외인데.’

그녀는 창천의 인물이었다.

‘설백진과 함께 올 줄은 몰랐는데. 창천도 꽤나 어지러운 모양이군.’

스윽.

제령운화가 마차에서 내린 뒤 설백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남하림은 기성에게 조용히 말했다.

“혈사천주 얼굴이 좋아 보이는데요? 그동안 잘 먹고 지낸 모양입니다.”

“저게 좋아 보이는 얼굴인가? 자네를 죽일 듯 쳐다보는데.”

“아, 그런 것이었습니까? 난 또 얼굴에 힘이 잔뜩 들어갔길래 기운이 생생한 줄 알았습니다.”

조용히 말을 한다고 했지만, 설백진의 귀에 그들의 대화가 들리지 않을 리 없다.

‘저 녀석은 별로 바뀐 게 없군.’

반년이 지나도 능청거리는 모습은 여전했다.

설백진과 제령운화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와, 남하림과 기성을 마주 보며 멈추었다.

말문은 설백진이 열었다.

“오랜만이군.”

“그러네요. 그때 몸은 괜찮았습니까?”

“며칠 동안 고생을 했지. 꽤나 좋은 경험이었다.”

“서로 비긴 듯합니다. 나도 고생했거든요. 후후후.”

“비겼다…… 따지고 보면 그렇긴 하지.”

“혹시 객루에서 만나자고 하여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겠지요?”

“오히려 여기가 더 편하다. 신무맹이라면 불편했을 것이다.”

“그럼 바로 들어가죠. 내일까지 비워 두었으니 푹 쉴 수 있을 겁니다.”

스윽.

설백진은 시선을 남양루로 향했다.

“여기가 남양루인가? 중원 제일의 객루라고 하던데. 이런 곳을 이틀 동안 빌리다니…… 역시 돈이 많군.”

“설 천주,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되오. 남양루의 주인이 걸황이라 하더이다.”

“하긴 천하오대상국 중 한 곳의 주인이지 않나.”

“호호호. 난 돈 많은 청년이 좋더라.”

스윽.

남하림은 그녀를 보며 손가락을 편 뒤 좌우로 흔들었다.

“미안하지만 난 은근히 밝히는 여자는 싫어하거든요.”

“호호호. 내가 얼마나 청렴한지 잘 모르는 모양이네요.”

남양루에 들어섰다.

일 층에 있던 수많은 탁자와 의자들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넓은 일 층 중앙에는 오직 한 개의 탁자와 네 개의 의자만이 놓였다.

네 사람은 각각 의자에 앉았다.

스으윽.

그들이 자리에 앉자 입구에 서 있던 양삼이 다가왔다.

“차를 준비했습니다.”

“양 총관, 고마워.”

“아닙니다.”

양삼은 그들 앞에 놓인 찻잔에 차를 따랐다.

진한 차향이 남양루를 가득 채웠다.

“맛이 괜찮을 겁니다.”

“고맙소.”

네 명은 우선 가볍게 차를 나누어 마시면서 긴장을 풀었다.

한 식경이 지났다.

“중요한 이야기는 나중에 나누겠습니까? 아니면 바로 시작할까요?”

“바로 하는 게 좋겠군.”

“피곤하지 않은 모양이니 그렇게 하죠.”

방금 전까지 차를 마셨던 분위기와는 다른 긴장감이 올라왔다.

남하림이 먼저 물었다.

“우리를 만나고 싶어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전에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는가?”

“무엇이지요?”

“신무맹이 원하는 것을 알고 싶네. 아니면 그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군.”

“음…… 무림을 통치할 생각인지 아닌지 묻는 것이로군요. 맞소이까?”

“맞네. 그 뜻이네.”

“내 대답에 따라서 당신들이 어떻게 할지, 그에 대한 대답도 달라지는 겁니까?”

“그건 아니네. 내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물어본 걸세.”

“좋아요. 궁금하다고 하니 대답을 하죠. 신무맹은 무림에서 아무것도 안 합니다.”

남하림은 간단히 대답을 했다.

“항상 정파는 그래왔지. 관심이 없다면서도 뒤로는 사파들보다 더한 녀석들이니까.”

“그건 그들이고요. 난 상관없습니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대의 뜻은 알겠다.”

설백진은 기성을 통해 남하림을 만나고자 한 이유에 대해 말을 꺼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을 테지만. 난 창천주를 죽일 생각이다.”

“설 천주, 그게 무슨 말이오?”

기성이 놀라며 되물었다.

창천주는 그들의 수장이었다.

“엄청난 짓을 할 계획인가 보네요. 자신이 있습니까?”

“그건 우리들이 알아서 할 일. 그대가 신경 쓸 일은 아니네.”

“흠, 그를 죽이는 데 도움을 바라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면 혈사천에서 뭘 하든지 우리에게 알릴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맞다. 굳이 찾아와서 보고할 필요는 없지.”

“다른 목적이 있다는 것이군요.”

“내가 오늘 찾아온 이유는 그를 죽인 뒤에 일어날 일 때문이네.”

“그게 뭐죠?”

“창천주를 죽인다면, 분명 창천의 인물들이 우리를 공격할 걸세.”

남하림은 이제야 설백진이 찾아온 이유에 대해서 알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