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 반년이 지나다
용문자는 믿기지 않았다.
창천십문의 인물들이 그들의 주인인 창천주를 죽이려 하고 있었다.
“그를 왜…… 죽이고자 합니까?”
“이유는 간단하지. 그를 죽여야 우리가 살 수 있으니까.”
“그게…… 무슨 뜻입니까?”
“후후, 내 말뜻을 이해 못 하겠나? 결국 그가 우리를 죽일 거라는 말이야.”
창천주가 왜?
용문자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분께서 왜 두 분을 죽이려고 합니까?”
“토사구팽. 모든 것이 정리가 되면, 적이 될 가능성이 가장 큰 인물이 누구겠는가? 이건 역사적으로 증명된 거야.”
“…….”
“바로 창천십문이지. 우리 또한 대혼술법을 펼칠 수 있다. 결국 창천십문이 그의 가장 큰 적이 될 것은 자명할 터.”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난…….”
툭툭.
광문자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에게 금제를 당했다지?”
“……!”
광문자가 그의 금제에 대해 알고 있다.
용문자는 문득 희망이 생겼다.
설백진이 이를 알고 있었다면, 금제를 풀 수 있는 방법도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습니다. 창천주가 제게 금제를 가했습니다.”
“내가 금제를 풀어준다면?”
용문자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머릿속에 심어놓은 금제가 풀린다면, 그는 완전하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정말 금제를 풀 수 있다면.’
어느 쪽을 택해도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좀 더 치열하게 발버둥 치는 쪽을 택하리라.
“제게 원하는 것이 있습니까?”
“창천주의 죽음.”
“…….”
창천주에 대해서는 광문자 또한 너무나도 잘 알 것이었다.
자신들의 실력으로 과연 창천주와 싸워 이길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자네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알고 있네. 그와 싸운다는 말이 아니다.”
“그럼…….”
“그가 자네에게 대혼술법을 펼칠 때. 그때 기회가 생기지.”
“대혼술법에 빠지면 정신을 차릴 수 없습니다.”
“그건 맞아. 나도 잘 알지. 하지만 정신을 빼앗기지 않는 방법이 나에게 있어.”
“……!”
광문자의 말처럼 대혼술법 중 정신을 빼앗기지 않는다면!
창천주를 죽일 수 있다.
그게 사실이라면 충분히 시도할 만했다.
“……알겠습니다. 광문자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고맙군. 자네는 그를 죽인 뒤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고맙습니다.”
“우선 그대의 머릿속에 든 금제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막아볼까?”
“지금 바로 말입니까?”
“시간이 얼마 없다. 창천주가 반년 뒤에 나올 것은 분명하니까. 그때까지 자네는 모든 것을 준비해야 하지.”
광문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척!
용문자는 그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난 뒤 포권을 했다.
그동안 생기 없이 죽어 있던 그의 눈동자가 빛나기 시작했다.
* * *
반년의 시간이 훌쩍 지났다.
한바탕 폭풍이 휘날릴 것 같았던 무림은 반년이란 시간 동안 무서울 정도로 조용했다.
그동안 창천의 존재는 중원 무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널리 알려졌다.
창천과 신무맹의 대결.
둘 중 한 곳이 사라지지 않는 한, 지속적인 무림의 평화는 없을 것이었다.
휘이이익!
남하림은 그물침대에 편안한 자세로 누워 있었다.
“무릉도원이 어디냐. 바로 여기로구나.”
휘이익!
옆 탁상에 놓인 화과 하나를 잡은 뒤 위로 던졌다.
화과는 흔들거리는 그물침대 위에서도 입속으로 정확히 쏙 들어갔다.
와싹.
“맛있네.”
남하림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화과의 풍미를 느끼고 있을 때.
“에구……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어이없는 목소리.
맹주전으로 들어오던 만통자의 눈에 껄렁하게 화과를 던져 받아먹는 남하림의 모습이 딱 걸렸다.
“한가하십니까? 신선놀음이 따로 없군요.”
“어…… 노인장, 오셨소이까?”
“수하들은 땡볕에 죽을 둥 살 둥 수련시켜 놓고 맹주라는 사람은 여기서 이러고 있으니…… 미안하지도 않소이까?”
“그거야…… 난 강하잖아요? 그들은 좀 더 실력을 쌓아야 하니 열심히 수련하는 거죠.”
“…….”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괜히 화가 난다.
휘익!
남하림은 슬쩍 그물침대에서 일어났다.
“노인장은 현천에 가지 않아도 괜찮습니까? 너무 자리를 비우는 것 같은데…….”
“천주님께선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날마다 연락을 주고받고 있습니까요.”
“그래도 얼굴이라도 가끔 한 번씩 비춰주고 와야지 않을까요.”
“됐습니다. 그리고 사파연합에서 기 련주가 찾아왔습니다.”
“또요? 그 양반은 뭘 그리 자주 옵니까? 조용히 혈사천만 견제하면 될 것을.”
“그거야 제가 어떻게 압니까? 자기발로 온다는데 막을 수도 없지 않습니까.”
“의논할 게 있으면 내원장을 만나면 되는데.”
“영빈전에 있으니 가시면 됩니다.”
만통자는 할 말만 하고 그대로 돌아섰다.
괜히 말려들었다가는 입만 아프다.
남하림을 상대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할 말만 하고 돌아서는 것이었다.
“아앗, 노인장, 어딜 가시오?”
순식간에 사라진 만통자의 신형이었다.
“에이, 요즘 타격감이 떨어지셨어. 재미없게.”
* * *
남하림은 영빈전으로 들어섰다.
휙!
호위무사가 빠르게 허리를 숙였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안에 사파련 련주가 도착했다고 하더군요.”
“넵. 안으로 드시면 됩니다.”
“수고하세요.”
남하림은 호위무사에게 짧게 고개를 숙인 후 안으로 들어섰다.
스윽.
영빈전으로 들어서자 영빈전주 이우가 맞이했다.
“맹주님. 오셨습니까?”
“이 전주님, 그가 또 왔다면서요?”
“아…… 네, 소신이 안내를 하겠습니다.”
남하림은 영빈전주를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경내의 복도를 지나 기성이 있는 방에 도착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고맙소이다.”
드륵.
남하림은 열린 문 안으로 들어섰다.
“오셨소이까?”
“허허. 또 와서 미안하네. 맹주의 표정을 보니 귀찮은 듯하외다.”
“……귀신은 속여도 혈군사의 눈과 귀는 못 속인다는 말이 사실이군요.”
“그런 말까지 기억하고 있군.”
“이왕 왔으니 어쩔 수 없죠. 자리에 앉으세요.”
“고맙네. 환대를 해줘서.”
두 사람은 나란히 의자에 앉았다.
스윽.
기성은 바닥에 내려놓았던 물건을 탁자에 올렸다.
“오는 길에 빈손으로 올 수는 없지 않나. 맹주가 워낙 부자라서 뭘 가지고 올까 생각하다가, 먹는 게 남는 것이라 해서 간식거리를 준비했네.”
“오? 그냥 오셔도 되는데.”
남하림은 슬쩍 관심을 가졌다.
상자를 열자 오색 빛이 나는 전병이 들어 있었다.
보는 즐거움이 있네.
“고맙네요. 잘 먹겠습니다.”
“좋아해 주니 다행이군.”
담소를 나누는 두 사람.
기성은 한때 죽이지 못했던 남하림을 보며 실소가 나왔다.
같은 자리에 앉아 오색 전병을 주고받을 거라곤 당시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시간이 정말 빨리 가지 않는가?”
“그러게요. 하는 일도 없이 시간만 가는 것 같더군요.”
“그건 맹주가 너무 뒹굴거리며 놀아서 그런 게 아닌가.”
“누가 뒹굴거렸다는 겁니까? 그동안 창천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하하하하. 맹주, 이미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소이다.”
“…….”
남하림이 맹주전에서 먹고 자는 것 외에는 거의 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모순적이게도 널리 알려진 극비 사항이었다.
남하림은 얼른 말을 돌렸다.
“기 련주께서는 무슨 이유로 오셨소이까?”
“그들에게서 연락이 왔네.”
“그들이라면?”
“혈사천에서 만나고 싶다고 하더군.”
“……뜻밖이네요. 혈사천에서 만나자고 하다니.”
세상에 영원한 적은 없다.
기성 또한 예전에는 적이 아니었던가.
남하림은 그가 찾아온 이유를 파악했다.
사파련은 원한다면 혈사천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그들에게 더 중요한 동맹은 신무맹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만나보세요. 보는 데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그 자리에 신무맹의 맹주도 함께 있었으면 한다는군.”
“네?”
남하림은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어 전병까지 내려놓았다.
기성과 함께 남하림을 동시에 만나고 싶다는 전언을 전해온 설백진.
“우리에게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인가 보네요.”
“아마도…… 그렇지 않고서야 함께 만나고 싶다는 연락은 오지 않았겠지.”
남하림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우리를 만나고 싶다…… 무슨 생각인지 전혀 모르겠군.’
이번만큼은 설백진의 뜻을 알 수 없었다.
“한번 만나볼 텐가?”
“그렇게 하죠. 반년이나 뭉그적거리던 그가 우리를 만나려고 하는 이유가 있겠지요.”
“알겠네. 그들에게 소식을 전하지.”
“이것 때문이라면 그냥 서신을 보내도 되는데, 먼 걸음을 하셨습니다.”
“중요한 일이지 않는가. 오랜만에 밖에서 바람도 쐴 겸.”
“그들과 약속 장소를 정한 것은 있습니까?”
“그건 따로 정하지 않았네.”
“그래요? 잘됐습니다. 그들에게 연락해서 여기로 오라고 하세요. 남양루에서 보도록 하죠.”
“남양루라면 하장곡에 있는 객루를 말하는 것인가? 얼마 전에 개업을 했다고 들었네.”
“소문이 정말 빠르네요. 남의 동네 객루가 개업한 것도 압니까?”
“중원 최고의 객루가 될 거라 소문이 나지 않았나. 하장곡의 장관을 한눈에 볼 수 있을 만큼 멋지다고 들었네. 게다가 중원에서 제일 큰 객루라지.”
“현존 최고의 건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그곳에서 회담을 하죠. 원하는 날에 며칠 통째로 비워두면 됩니다.”
“통째로? 며칠씩이나 빌린다면 비싸지 않겠나? 금액이 엄청날 텐데.”
“내 건물이라서 괜찮아요.”
“아하, 그렇군. 그게 그대의 것이었군.”
기성은 갑자기 부럽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다른 건 몰라도 남양루 같은 객루를 가지고 있으면 굳이 힘들게 싸우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것 같았다.
“남양루에 좋은 방을 드릴 테니 그곳에서 지내다가 회담까지 하고 가시죠.”
“알겠네. 맹주에게 신세를 지도록 하겠네.”
기성도 이곳에서 만나는 게 좋을 듯싶었다.
따로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혈사천에 연락을 해야겠군.’
* * *
타앗!
팽유도가 바닥을 차며 몸을 날렸다.
도신일체.
묵흑반도와 몸은 하나가 되었다.
반년의 시간 동안, 팽유도는 자신의 도법을 하나씩 새롭게 정리했다.
지금까지 익혔던 다양한 도법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도법을 새롭게 정립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점에 둔 것은 간결한 움직임.
반도의 장점을 이용한 도법이었다.
짧은 회전 반경으로 인한 빠른 움직임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슈우우욱- 슈우우욱-!
하나, 움직임이 간결하다고 해서 힘이 약한 것은 아니었다.
타격이 이루어지는 순간.
힘이 폭발적으로 한 점에 집중되었다.
콰아아아아앙!
강력한 충격.
주르르르르륵-
묵흑반도를 상대하고 있던 인물이 일 장까지 뒤로 밀려 나갔다.
‘허 참…… 이놈도 괴물이군!’
역위천은 뒤로 밀린 상태에서 질린 눈빛으로 팽유도를 바라보았다.
예전에 싸웠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팽유도와 싸우기 전에 이휘연과도 싸웠다.
걸황과 검제. 그리고 도제까지.
하나같이 압박감이 대단했다.
각제 성철각과 독제 당무독은 아직 손을 섞어본 적이 없었지만, 팽유도가 말하기를.
“철각 형이 저보다 한 수 정도는 강해요. 그리고 무독 형하고는 절대로 싸우고 싶지 않고요. 이유요? 어떻게 중독될지 몰라서요…….”
동시대에 나타난 다섯 명의 개방도.
‘창천에서 실수한 거야.’
그들은 적어도 백 년 후에 무림을 차지하기 위한 계략을 도모했어야 했다.
짝짝짝.
박수 소리가 들렸다.
“오, 좋아졌는데. 유도가 역 태상을 잡겠는걸.”
역위천은 고개를 돌렸다.
미소를 띤 채 남하림이 떡하니 서 있었다.
“맹주, 그건 아니지. 도제가 예전보다 많이 강해지긴 했지만, 내가 살살 했을 뿐이네.”
“그런가요? 아닌 것 같은데…….”
남하림의 말에 역위천은 발끈했다.
“그럼 내가 똑바로 해볼까?”
“좋습니다.”
역위천은 내력을 끌어 올렸다.
휘익!
남하림이 팽유도를 향해 손을 살랑 흔들며 환하게 웃었다.
“잘해봐.”
“……으잉.”
그때, 전음이 들려왔다.
[이길 수 있어. 지금쯤이면 내력도 높아졌을 텐데.]
남하림의 전음.
팽유도가 반년 동안 수련만 주야장천 한 것은 아니었다.
당무독이 만든 취구단도 한 달에 한 번씩 복용했다.
내력에서 절대로 밀릴 수 없었다.
남하림의 도움으로 무극도신공의 무리까지 익히면서, 무공 또한 그의 몸에 맞게 익혀 나갔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야. 무공이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지, 나이가 많다고 이길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남하림이 항상 해주는 말이었다.
상대가 용병왕이라고 해서 질 이유는 없었다.
“도제, 이제는 제대로 하겠네.”
“네! 알겠습니다!”
역위천이 진심으로 불사검에 내력을 끌어 올렸다.
‘아직 멀었다는 것을 보여주마.’
불사도우(不死道宇)의 초식.
팽유도의 묵직한 도강을 단번에 무너뜨리기 위해, 가장 강한 초식을 펼쳤다.
‘제대로 하시는군.’
역위천의 기합이 든 일검.
그의 기세만으로도 웬만한 상대는 몸이 주저앉았을 것이다.
하나…….
이제 팽유도는 ‘도제’라는 별명을 가진 인물이었다.
우우우웅-
묵흑반도가 빛나면서 반도의 흑색이 점점 투명하게 변했다.
백화의 현상.
얼마 전, 역위천은 태극흑검이 투명하게 변하는 것을 보았다.
이번에는 묵흑반도가 변하고 있었다.
‘헉, 이놈도……!’
갑자기 이휘연에게 당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쯧, 싫은 기억인데!
탄도결(彈刀結).
팽유도가 묵흑반도을 휘두르며 불사검의 검강을 향해 달려 나갔다.
검강의 한복판을 그대로 뚫고 지나갈 것 같은 강맹한 기세.
콰콰콰콰콰-
묵흑반도가 불사검이 만들어낸 검강을 하나씩 부수며 쏟아져 나갔다.
콰아아앙!!
불사도우의 초식을 밀어낸 팽유도의 눈앞에 불사검이 나타났다.
번쩍!
손안에서 반바퀴 회전한 묵흑반도를 그대로 올려치자,
승도결(昇刀結)의 뇌천지화(雷天地花)가 역위천의 가슴 앞에서 펼쳐졌다.
휘이이이익!
묵흑반도와 함께 팽유도의 신형이 솟구쳤다.
“허어억.”
탁, 타탁.
서너 걸음 뒤로 물러나는 소리.
털썩.
결국 다리가 풀린 역위천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
척.
공중으로 솟아올랐던 팽유도는 한쪽 다리를 옆으로 쭉 뻗으며 사뿐히 내려앉았다.
휘리리리릭!
손안에서 묵흑반도가 어지럽게 회전한 뒤,
타악!
하늘을 향해 쭉 뻗어 올랐다.
짝짝짝!
“멋진걸! 마지막 마무리 동작까지 제대로 연구했어.”
남하림은 박수를 치고 팽유도의 마지막 동작을 따라해 보았다.
“헤헤헤. 제가 어떻게 하면 멋진 마무리 동작이 될지 연구를 좀 했어요!”
“그렇지. 뭐든지 마무리 동작이 중요해. 있어 보이잖아.”
“괜찮은가요?”
“최근에 본 것 중 가장 멋져.”
스윽.
역위천은 남하림과 팽유도의 대화를 들으며 먼지를 툭툭 털었다.
‘에휴, 이런 얼빠진 녀석들에게 당하다니…… 나도 한물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