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254화 (255/328)

254. 설백진 등장

신명항은 전장을 읽을 수 있는 눈이 있었다.

‘지금이 기회다.’

걸황의 등장으로 분위기는 올라갔다.

머뭇거리는 혈사천.

총공세의 명을 내려야 할 순간이었다.

“신려세가는 전원 공격하라!”

그의 외침에 신려세가의 무인들이 일제히 호양평으로 달려 나갔다.

“와아아아-!! 저놈들을 죽여라!”

기성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 또한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곧바로 명을 내리자 주천의 무인들도 호양평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

두두두두두-

멸신군장 육지웅의 시선이 흔들렸다.

사방에서 적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늦었다.’

물러나는 방향까지 생각했지만 적들은 이미 바로 앞까지 달려왔다.

둘 중 한 곳은 죽어야 끝이 나는 싸움이 시작되었다.

채챙!

육지웅은 검을 뽑아 멸신군을 향해 소리쳤다.

“전원…… 공격!”

다다다다다-

멸신군도 중앙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앙!!

파아아아아앙!

“아악……!”

“커어어억.”

거대한 힘이 부딪히는 소리와 비명 소리들이 섞이며 호양평을 가득 메웠다.

남하림과 성철각, 팽유도가 펼치는 무위는 혈사천의 무인들이 상대할 수 없었다.

그저 세 사람을 피해서 싸우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육지웅의 시선은 오직 걸황 남하림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걸황을 상대해야 하지만 몸이 선뜻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한때 혈군사였던 기성의 존재.

신려세가의 뒤편에 주천의 무인들이 합세하자, 승기는 신려세가와 주천의 연합으로 추가 기울어지고 있었다.

‘주천까지 합세했다. 그리고 걸황까지. 이들은 우리가 올 줄 예상했다.’

주천에 걸황까지 나타났다.

혈사천의 멸신군만으로 막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육지웅은 뒤로 밀리는 혈사천의 수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설백진에게 패배는 죽음과 같았다.

차라리 죽는다면 전장에서 죽는 게 더 나을 터.

“물러나지 마라! 무조건 전진이다!”

하지만 그의 외침은 수하들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에 묻혔으니까.

‘젠장…….’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한 명의 검사로서, 적을 죽이거나 적에게 죽음을 당하는 것이 운명이라면.

‘좋아. 그렇다면…….’

이왕 죽을 것이라면 걸황과 비무할 것이다.

‘저기 있다.’

걸황을 찾은 육지웅이 그를 향해 신형을 띄우려는 순간,

우우우우웅-

갑자기 뒤에서 거대한 기의 폭풍이 밀려왔다.

‘누구지?’

또 다른 적에게 포위를 당한 것인가?

육지웅은 굳어진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이내 그의 표정이 풀렸다.

모습을 드러낸 인물.

입가에 미소를 띤 혈사천주 설백진이었다.

‘혈사천에 계신다고 하셨던 분이……!’

설백진은 신려세가를 치기 위한 임무를 멸신군에게 맡겼다.

‘우린 미끼였나?’

그의 뒤로 창천십문 소속의 창천광문 무인들이 살기를 내뿜었다.

호양평의 싸움은 설백진과 창천광문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소강상태가 된 두 진영은 뒤로 물러났다.

남하림도 신려세가의 무인들과 함께 빠져나왔다.

신명항이 바로 반겼다.

“걸황!”

“조용히 왔다가 가려고 했는데 일이 이상하게 꼬여 버렸습니다.”

“하하하, 괜찮소이다. 지금 걸황이 와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소이다.”

스윽.

이번에는 기성이 다가왔다.

“걸황, 잘 왔소이다.”

“제가 안 왔으면 어떻게 할 뻔했습니까. 너무 반겨주시는군요.”

기성은 우선 안심이 되었다.

설백진과 함께 나타난 무인들.

그들은 창천 소속이 분명해 보였다.

“저자와 함께 나타난 무리들은 보통이 아닌 것 같소이다.”

신명항은 걱정이 되었다.

“아마 창천십문의 한 곳이 아닌가 싶습니다.”

“창천십문?”

“얼마 전에 창천에서 온 이상한 여자를 만났는데 그 여자도 대혼술법을 펼쳤더군요.”

기성의 표정이 굳어졌다.

창천주 혼자만이 대혼술법을 익힌 것이 아니었다.

구천마제. 설백진. 걸황이 만났다는 여인.

알 것 같았다.

‘이것이 창천의 인물들이 강한 이유였나?’

대혼술법을 통해 그들은 수백 년 동안 무공을 익혀온 셈이다.

“십문이라면…… 저런 인물들이 최소한 열 명이나 있다는 말이군.”

“그렇다고 봐야지요.”

신명항과 기성의 두 얼굴이 어두워졌다.

창천에 대해서 안일하게 생각하진 않았건만.

눈앞에 보이는 적은 달랐다.

혈사천은 이길 수 있지만, 설백진이 이끌고 온 무리들을 상대하는 것은 버거워 보였다.

신명항은 손에 힘을 주었다.

“역시 오늘은 둘 중 한 곳은 필히 죽겠군.”

“아니지요. 둘 중 한 곳이 아니라 죽는 건 저들입니다.”

“맞소이다. 걸황과 함께한다면 이기지 못할 게 없겠지요. 하지만 설백진이 함께 온 무리들을 우리의 힘만으로 이길 수 있을지…….”

창천광문 소속의 무인들은 강했다.

종전까지 가지고 있던 인원의 우위는 창천광문에서 대군이 오면서 사라졌다.

“사사방과 살천성이 오지 못한 게 저들 때문이 아닌가 싶군.”

“그럴 겁니다. 저자가 여기에 나타난 것을 보면 완벽하게 계획을 세운 것 같습니다. 오히려 첫 수를 당한 건 이쪽 같군요.”

신려세가와 주천의 계획을 혈사천 설백진이 읽고 역이용한 것이다.

“하하하, 제가 오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예상했거든요.”

“…….”

무한의 긍정 자신감.

할 말이 없는 신명항과 달리 기성은 피식 웃었다.

자화자찬도 이 정도면 심각한 게 아닌가.

“걸황은 저들을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보는 모양이구려.”

“당연하지요. 제가 누구입니까?”

“걸황이지 않소.”

“그것도 맞지요. 그거 말고도 주천주께서는 아실 텐데.”

“양천의 전인…….”

“또?”

“……현천의 전인이지요.”

현천주.

남하림이 현천주의 능력을 지녔다면…….

“이제 아시겠습니까?”

남하림의 미소.

기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감의 이유를 이제 알았으니까.

* * *

건너편에 자리 잡은 혈사천 진영.

육지웅은 허리를 숙여 설백진을 맞이했다.

“역시 예상대로 주천까지 몰래 합류한 상태군. 그리고…….”

멀리 걸황 남하림이 보였다.

“거지 놈이 신무맹의 맹주가 되었군. 인물은 인물이야. 겨우 약관밖에 안 된 젊은 놈이…….”

그는 또 한 번 아쉬웠다.

기회가 왔을 때 내력이 아닌 목숨을 끊어서야 했다.

“……오늘 죽이면 되겠지.”

“천주님의 계책이 성공했습니다.”

광문일군 종초가 허리를 숙였다.

“계책이라고 할 것까지 있겠나. 저놈들이 멍청한 것이지. 후후.”

설백진은 만족스러웠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설백진은 상국을 이용한 걸황의 뜻을 간파했다.

저들은 혈사천이 먼저 움직이기를 바라고 있었다.

무림에 나온 혈사천이 가장 먼저 어디를 칠지는 예상이 가능하다.

신려세가.

하지만 그들은 신려세가만으로 혈사천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결국 신려세가 뒤에 누군가 있을 가능성이 클 터.

그렇다면 주천의 기성과 동맹을 맺고 기다리고 있을 거라 확신했다.

설백진은 그것을 역이용하기로 했고.

멋지게 성공했다.

“후후후, 끝을 내볼까?”

스윽-

광문일군이 앞으로 나왔다.

“광문자님, 소신이 걸황과 비무를 펼치고 싶습니다.”

“일군, 그대가?”

“넵.”

“제법 강할 텐데…… 죽을 수 있다. 상관하지 않겠지만.”

“자신 있습니다.”

그 또한 광문일군 종초의 무공에 대해 잘 알았다.

‘강하지. 창천광문에서 나와 비교될 정도로…… 하지만…….’

종초와 자신의 다른 점.

‘그건…… 죽어도 깨우치지 못하겠지.’

설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와 싸워보게.”

“감사합니다.”

“다만, 아니다 싶으면 물러나라.”

“…….”

자존심이 상하는 말이었다.

이미 싸우기 전에 자신의 패배를 알공 있다는 듯.

“자존심 때문에 이곳에서 개죽음을 당할 필요는 없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광문일군 종초는 곧장 호양평의 중앙으로 달렸다.

“저기……!”

웅성웅성.

신려세가와 주천의 연합 진영에서 소란이 일었다.

또 한 번 더 생사결을 요구하기 위해 한 명의 사내가 나오고 있었다.

“보아하니 이번에는 나를 찾겠군요.”

“걸황, 어떻게 아는가?”

“저자의 무공을 보니 우리들 중에 비무를 원하는 인물은 저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강하다고 믿는 자들은 최고와 싸우고 싶어 하는 편이죠.”

남하림의 예상대로 종초의 목소리가 들렸다.

“본인은 종초라 하외다. 걸황께 한 수 부탁드리겠소이다!”

공식적인 결투 신청이 들어왔다.

만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무림에서 비겁자로 낙인찍힐 수 있다.

“맞지요?”

“그렇군요.”

남하림은 나갈 준비를 했다.

그때,

스윽.

팽유도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하림 형, 내가 나갈게. 어디서 건방지게 신무맹의 맹주를 함부로 부르고 말이야.”

“아하하, 제법 센 사람이야.”

“응. 조심할게.”

“갔다 와.”

타아앗!

팽유도는 신법을 펼치며 호양평으로 쏜살같이 나갔다.

와아아아아!

“도제님이 나가신다.”

환호 소리가 울렸다.

호양평 중앙에서 기다리고 있던 종초는 다가오는 팽유도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봐, 인상 쓰지 마시오. 당신이 설백진도 아니고, 아랫사람이 어디서 무림 최고인 신무맹의 맹주님을 함부로 부르는지 모르겠군. 나를 이기면 그때 맹주님과 붙어보든지.”

“그대가…… 도제인가?”

“그렇소. 본인이 바로 천하제일도 도제 팽유도 님이시다.”

“…….”

남하림을 조금씩 닮아가고 있는지, 팽유도는 스스럼없이 자신을 천하제일도라 칭했다.

“광오하군.”

“사실이니까.”

“과연 실력 또한 말처럼 광오한지 볼 것이다.”

파아아앗!

종초는 신형을 날린 동시에, 허리에서 두 개의 철륜을 잡았다.

휙! 휙!

허공에서 떨어지는 철륜이 만들어낸 강기가 팽유도를 향해 쇄도했다.

‘이 정도는 애들 장난이지.’

팽유도는 어깨 뒤로 손을 올리며 묵흑반도를 잡았다.

번쩍!

도집에서 빠져나온 묵흑반도의 도강이 폭발했다.

콰아아앙-!

도강으로 강기를 치워 버린 뒤, 묵흑반도로 직접 철륜을 향해 타격했다.

찌지지직!

일도무적이 이러할까.

철륜을 통해 전해져 오는 충격.

‘우우욱.’

그 여파에 종초의 두 눈이 커졌다.

걸황만 신경 썼던 그에게 도제 팽유도의 무공은 상상을 넘어섰던 것.

그때, 뒤에서 설백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심해라. 무극도신공이다.”

구천마제의 사대절대무극공.

그건 창천의 무공이기도 했다.

“네놈이…… 어떻게?”

구천마제의 무공이지만, 그 또한 완벽하게 익히지 못했던 무공.

그 무공을 도제가 펼치고 있었다.

“우주제일 걸황께서 주셨지. 쓸 만해 보이나? 몇 가지 고쳤다고 했으니, 당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좋을 것이외다.”

사대절대무공을 몽땅 외워버린 남하림은 중간중간 이상한 부분들까지 모조리 찾아냈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조금씩 손을 대어 수정했다.

그 덕분인지, 팽유도가 펼치는 무공은 구천마제의 무극도신공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종초는 망설였다.

창천에서 무극도신공은 자신이 익힌 무공보다 상승의 무공이었다.

“갑자기 자신감이 없는 표정이네?”

“……!”

꽈아악!

종초는 철륜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무극도신공을 익혔다고 해도 짧은 시간에 십이 성을 깨우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무극도신공이 무림에 나온 지는 일 년도 되지 않았다.

게다가 단숨에 극성으로 익힐 수 있는 무공이 아니었다.

그에 반해 그는 극륜천파공을 수십 년 동안 익혔다.

‘이길 수 있다. 난 이 녀석의 나이만큼 무공을 익혔다.’

그의 내력이 흘러나오면서 철륜의 강기가 커지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웅-

한 초식의 승부.

최후의 초식 천하만륜(天下萬輪)이 철륜의 끝에서 펼쳐졌다.

“죽어라.”

위이이이잉-!

휘이이이잉-

종초의 양손에서 떠난 두 개의 철륜은 소름 끼치는 바람 소리를 내며 수십 수백 개의 철륜을 만들어냈다.

스치기만 해도 전신이 잘려 나갈 듯한 강기가 팽유도의 전신에 쏟아졌다.

스으으윽-

팽유도는 전신에 힘을 뺐다.

손에 들린 묵흑반도.

그저 마음에 내키는 대로 움직였다.

‘단 한 번에 날려주마.’

휘이익!

묵흑반도를 든 팽유도의 뒤로 돌풍이 솟구쳐 올랐다.

뇌풍도강(雷風刀降).

십이 성의 내력을 묵흑반도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다가오는 철륜을 향해 뿜어냈다.

콰아아아아앙!!

묵흑반도에서 터진 도강의 폭풍이 철륜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사라지게 만들었다.

스르르르-

수만의 철륜들은 마치 얼음이 녹는 것처럼 사라졌다.

“……!”

광문일군 종초는 힘없이 양손을 아래로 축 늘어뜨렸다.

뚝. 뚝.

깊게 파인 가슴에서 핏방울이 떨어졌다.

팽유도는 그의 앞으로 다가섰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그는 겨우 한마디 말을 꺼내었다.

“도…… 제. 멋…… 진 도…… 법…….”

하지만 그는 끝까지 말을 하지 못했다.

스르르륵.

종초의 신형이 핏물이 고인 바닥에 쓰러졌다.

와아아아아아!!

신려세가의 진영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대단하군. 무극도신공까지 빼앗아 익히다니.”

설백진에게 광문일군 종초의 죽음은 아무런 감정을 주지 못했다.

무공이 약하면 죽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뿐이었다.

“종초가 죽는다고 해서 이번 싸움의 결과가 달라지지 않아.”

죽은 그를 대신할 인물은 얼마든지 있다.

휙!

설백진은 손을 번쩍 들었다.

광문이군 편항부가 창천광문의 무인 앞으로 나섰다.

“북을 울려라.”

둥! 둥! 둥! 둥!

쿵! 쿵! 쿵! 쿵!

북소리가 울렸다.

창천광문의 무인들이 북소리에 맞춰 한 발을 들어 바닥을 두드렸다.

“전진하라.”

그리고 일 보씩 호양평을 향해 앞으로 움직였다.

쿠우우웅!

쿠우우웅!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기세의 발소리.

팽유도의 승리로 환호했던 신려세가와 주천의 무인들은 얼굴이 굳어졌다.

‘창천의 힘이 이 정도일 줄은…….’

기성은 두려움이 뭔지 알 듯했다.

창천의 일부인 창천광문의 힘은 무림의 암흑기를 만들었던 구천마성과 비슷했다.

현재의 전력으로는 걸황이 있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물러나야 하는가?”

기성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니. 우리가 이길 것입니다.”

남하림은 여전히 미소를 띤 얼굴이었다.

“걸황…… 그대가 강한 줄은 알지만 저들을 전부 상대할 수 없소이다.”

“그건 그렇지요.”

남하림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해가 중천 위에 지나가고 있었다.

“음…… 지금쯤이면 달려올 때도 됐는데…….”

“……?”

걸황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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