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 신무맹으로 모이다
일행은 성문에서 곧바로 금지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예설란과 재회했다.
그녀는 반갑게 남하림과 일행을 맞이하여 주었다.
밝은 모습으로 반겨주는 예설란의 얼굴.
유극지가 돌아간 지 반년도 안 되었지만, 그녀는 강했다.
아직 슬퍼해야 할 시기가 아니라 했다.
그녀가 눈물을 흘릴 때는 유극지의 원수를 갚고 난 뒤였으니까.
한 시진 후.
금지에서 나온 일행은 영화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 * *
꼬물꼬물.
신소소는 앉은 자리에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소소라고 했어?”
“넵, 형님.”
신소소는 유미령에 말에 재깍 대답했다.
‘풋…… 귀엽네.’
검각에서도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애들이 있었지만, 서로 경쟁자이기도 했기에 친하게 지낸 적이 없었다.
외동딸인 그녀에게 신소소의 행동은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그사이 유미령은 남하림과 신소소가 어떻게 만났는지 이야기를 들었다.
남하림을 만나기 위해 가출까지 불사했다니.
유미령은 내심 행동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공자님과 결혼하려고 가출을 했어?”
“네, 맞아요.”
“지금은 어때? 그동안 오래 같이 다녔을 텐데.”
“더 좋아졌어요. 세상에 하림 오빠보다 좋은 사람은 없을 것 같아요. 형님도 그런 생각 하지 않으세요?”
“……그래. 남 공자님보다 좋은 사람은 없을 거야.”
“힛, 그쵸? 그럼 이젠 형님과 제가 힘을 모으면 좋을 것 같아요! 안 그래도 오다가 여우 같은 여자를 만났는데 제가 원천봉쇄를 해서 막았거든요.”
“후후, 잘했네.”
오늘 처음 만난 사이지만, 신소소는 어쩐지 친동생처럼 생각이 들 정도로 살가웠다.
그때 남하림이 그녀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유 소저, 이제 그들을 만나야 할 시간이지 않소이까?”
“네, 알겠어요.”
유미령과 남하림, 당무독도 같이 일어났다.
은하궁의 주요 인물들과 차후의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다.
유미령은 신소소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갔다 올게. 그때 다시 이야기하자.”
“넵, 형님. 다녀오세요.”
* * *
은하대전으로 들어섰다.
은하궁의 주요 직책을 세 명의 인물이 먼저 도착한 뒤 기다리고 있었다.
“궁주님께서 들어오십니다.”
드륵.
문이 열렸다.
두 사람과 함께 남하림이 안으로 들어서자 중년 사내가 일어섰다.
‘흐음…… 닮았군.’
그는 유극지와 닮아 있었다.
남하림은 단번에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봤다.
스윽.
중년 사내가 먼저 포권을 했다.
“걸황을 만나게 되어서 반갑소이다.”
“혹 돌아가신 유 궁주님과는 어떠한 사이이신지요.”
“균천에서 온 유지황이라 하외다. 본인은 그분의 동생으로, 궁주에게는 숙부가 되오이다.”
“반갑습니다.”
공손하게 포권을 하는 남하림의 모습.
‘멋지군.’
유지황에게 남하림은 더 이상 볼 것도 없었다.
남하림의 전신에 흐르는 제황의 기.
걸황이란 이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조카인 그녀가 모자라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형님께서 칭찬을 하신 이유를 알겠소이다.”
“과찬의 말씀입니다.”
“자리에 앉으시지요.”
남하림과 당무독은 그들과 마주 본 자리에 앉았다.
은하궁과 균천을 새롭게 이끌어가는 인물들과의 모임.
궁주의 옆으로 새롭게 균천의 전인이 된 유지황과 비선당 당주 부명욱, 은하총팔군장 적후룡이 자리를 잡았다.
“세 분들께서 유 궁주께 많은 도움을 주신다고 들었습니다.”
“걸황, 그거야 당연하지 않습니까.”
“맞소이다.”
부명욱과 적후룡이 한마디씩 했다.
“본인이 은하궁에 온 이유에 대해서 알려 드리겠습니다.”
“걸황의 말씀에 경청하겠소이다.”
남하림이 구천신품을 모두 모은 뒤 비밀을 풀었다고 하자, 그들은 모두 남하림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창천주가 누구인지 적혀 있더군요.”
“그런…… 누구입니까? 창천주라는 인물이……!”
은하궁에게 창천주는 원수였다.
남하림은 천천히 세 사람에게 창천주의 정체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창천주는 바로 공신 해정입니다.”
“공신…… 해정이라면…… 구천신품을 만들었다는 인물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가 창천주입니다.”
“허……!”
세 사람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허탈한 듯, 믿을 수 없다는 듯 탄식을 내뱉었다.
지금까지 창천주는 무림에 알려지지 않는 인물이거나, 대단한 무림인이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당황스럽군. 그자의 놀이에 우린 그저 꼭두각시 인형처럼 당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봐야겠지요.”
“그자에게 당한 것도 당한 것이지만, 그걸 찾아낸 걸황도 대단하외다.”
유지황은 진심이었다.
열 개의 구천신품을 한 인물이 모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창천주 또한 예상을 못 했을 것이었다.
수십 년 동안 중원 각지에 흩어져 있던 물건들이 아닌가.
이 구천신품 때문에 중원에서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남하림은 기성과 만났던 일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다.
“얼마 전, 주천의 전인과 만났습니다.”
“혈군사였던 그를 말하는 것입니까?”
“네, 맞습니다. 그가 홀로 남천상국에 찾아왔더군요.”
“혼자서 말입니까?”
“맞습니다.”
“무슨 일로 찾아왔더이까?”
“창천에 제대로 당한 모양이더군요.”
“그 일은 대충 들었습니다.”
부명욱도 그 사실에 대해 알고 있었다.
“사파에서도 새롭게 사파 연합을 만드는 중이라 하더군요. 그들과 함께 동맹하기를 원했소이다.”
이야기를 듣던 이들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그도 걸황을 찾을 수밖에 없었군.’
창천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인물은 이제 오직 남하림밖에 없음을, 그들 또한 안다는 것이었다.
남하림은 정파의 수장이었다.
게다가 사파와 동맹을 맺었고, 은하궁과도 함께하기로 했다.
현 무림에서 최고의 인물은 명실공히 걸황 남하림이었다.
무림 역사상 이십 대 초반에 무림제일인이 된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신화와 전설을 만들어가는 인물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본 은하궁에서도 걸황의 뜻에 따라 창천의 야욕을 꺾도록 노력하겠소이다.”
“말씀이라도 고맙습니다. 제 뜻이 아니라 무림을 위해, 함께 싸워야지요.”
척.
남하림은 일어난 뒤 포권을 했다.
* * *
은하궁에서 하루를 보낸 뒤.
남하림과 일행은 신무맹으로 출발했다.
그들 일행에 예설란과 유미령도 함께 동행했다.
유극지가 죽은 그날 이후, 예설란은 오직 금지에서만 생활했다.
남하림은 그 사실을 안 뒤 바람도 쐴 겸, 그녀에게 신무맹에 함께 가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예설란은 바로 허락을 했다.
그녀도 밖에 나가고 싶었지만 혼자 무턱대고 나갈 수 없었다.
누군가 자신과 함께 잠시라도 은하궁 밖에 나갔으면 했지만, 유미령은 은하궁의 수장으로서 배워야 할 일이 많이 있었다.
유미령을 혼자 두고 은하궁을 떠날 수도 없었다.
유미령 또한 힘든 것을 참고 있었으니까.
부명욱은 예설란과 유미령이 일행과 함께 신무맹에 잠시 다녀오겠다는 말을 하자 바로 찬성했다.
은하궁의 일도 거의 정리가 되었으니, 유미령이 잠시 동안 자리를 비워도 큰 문제가 없었다.
그녀들에게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창천이 아니고서는 은하궁을 공격할 간 큰 세력도 없을 터.
예설란과 유미령이 동행하자 신소소와 황보궁이 가장 좋아했다.
황보궁은 유미령을 가장 잘 따랐고, 그녀도 황보궁을 남동생처럼 대해주었다.
“누나가 같이 가셔서 좋아요.”
“그러게. 나도 궁아와 함께 하니 좋구나.”
예설란은 바짝 옆에 붙어 한시도 멈추지 않고 조잘거리는 신소소가 귀여웠다.
딸아이라고 하지만 유미령은 평소에도 말이 잘 없는 편이었다.
그에 비해 신소소는 완전히 반대의 성격으로, 길을 떠난 이후부터 쉬지 않고 재잘거렸다.
“호호호, 그랬구나. 소소가 많이 힘들었겠어.”
“네, 엄마. 그래도 제가 예뻐서 하림 오빠가 넘어온 거라니깐요.”
당무독은 환하게 웃으며 남하림을 보았다.
“엄마라고 하는데? 쟤 친화력 장난 아니야.”
“…….”
“좋으면서 부끄러워하긴. 소소가 저런 면이 보기 좋잖아.”
“흐음, 성격은 좋지.”
남하림도 그 부분은 단박에 인정했다.
* * *
은하궁을 떠난 지 이틀째였다.
두두두두두두-
엄청난 진동이 그들이 가는 길에 느껴졌다.
“대단한 기세야. 중원에 이 정도의 기세를 낼 수 있는 곳은…….”
“용병왕이 이끄는 용병림이겠군.”
점점 진동이 강해지면서 소리까지 사방에서 울렸다.
전방의 하늘 위로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기마의 무리들.
호천기가 펄럭거렸다.
불사무혼 역위천의 신위가 선두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호천의 전인이었던 역위천은 호천무를 완벽하게 익히기 위해 호천으로 돌아갔었다.
“예전보다 훨씬 더 강해지신 것 같군.”
“대단하시네. 저분의 나이에 저 정도의 수련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니…… 구천의 전인들은 일반 사람으로 생각하면 안 되겠어.”
당무독은 이제, 차라리 저들은 차원이 다른 인물들이라 생각하는 게 속이 편할 것 같았다.
호천무인들은 일행 앞으로 가까이 다가오면서 속도를 줄였다.
오직 한 명만이 속도를 유지하며 달려왔다.
퍼억!
역위천이 말고삐를 잡아당기며 말 옆구리를 발로 쳤다.
타아앗!
역위천과 함께 흑마가 공중으로 날아오르며 남하림의 앞으로 내려섰다.
히이이잉!
흑마는 앞발을 들어 올리며 강하게 울었다.
“걸황!”
역위천은 말 위에서 남하림을 내려다보았다.
휘익.
그가 바닥에 내려섰다.
호천무를 익히는 동안, 중원에서 일어난 일들을 전해 들었다.
그중 가장 놀란 것은 남하림이 걸황이란 명예로운 무명을 받았다는 사실이었다.
“오랜만이군. 잘 지냈는가?”
“저도 헛갈립니다. 잘 지냈는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크하하하! 고생이 많았다는 말이군. 하긴, 그대의 소문은 모두 들었지.”
여전히 그의 웃음은 호탕했다.
“다들 잘 지냈는가?”
역위천은 일행을 둘러보았다.
한 중년 여인이 일행 사이로 보였다.
‘누구? 아는 얼굴인데…….’
예설란과 시선이 마주쳤다.
“헛, 이런…… 전대 검후께서 계실 줄은 몰랐소이다.”
“오랜만이네요.”
전대 검후 예설란이 맞았다.
“유 형의 일은 얼마 전에 들었소이다. 찾아갔어야 했는데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괜찮습니다. 보아하니 바쁜 일이 있었던 모양이군요.”
“전대 검후께서는 어딜 가시는 중인지?”
“걸황과 함께 신무맹에 가는 길이지요.”
“오호, 잘됐습니다. 본인도 신무맹에 가려고 왔소이다.”
“용병왕께서는 무슨 일로 신무맹에 가십니까?”
“아, 그게, 이 사람도 신무맹의 일원이외다.”
예설란은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무맹의 힘이 점점 불어나고 있었다..
그녀 또한 역위천이 호천의 전인임을 알고 있었다.
역위천은 일행과 짧게 인사를 나눈 뒤 끝에 있는 탈혼마제를 보았다.
“선배께서는 여전히 걸황과 함께하고 계시는군요.”
“크큭, 다른 곳에 가봤자지. 이렇게 재미난 것을 어디서 보겠는가. 그런 것들은 바로 눈앞에서 보는 재미가 좋다네.”
“하하핫! 맞습니다.”
탈혼마제의 대답에 역위천은 시원하게 인정하고는 다시 남하림의 곁으로 다가섰다.
“같이 가도 되겠지?”
“그렇게 하시죠. 갔던 일은 잘되신 모양입니다.”
“힘들었다. 웬만해서는 안 하려고 했는데, 최소한 걸황에게 피해는 주지 않아야겠다는 신념으로 최선을 다했지.”
“고맙습니다.”
척.
남하림은 포권을 했다.
역위천이 웃으면서 말을 했지만, 실제로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예전에는 강함 그 자체의 무공을 펼쳤다면, 현재 그에게서 나오는 기에는 절제된 강함이 숨겨져 있었다.
남하림은 역위천과 나란히 걸으면서 그동안 겪었던 일들을 알려주었다.
“창천주 망할 놈이 공신 해정이라고?”
그의 반응은 과격했다.
“하! 원래 똑똑하다고 자만하는 그런 새끼들이 뒤에서 야비한 짓을 많이 하는 편이지. 딱 하는 짓이 창천주답군!”
“창천주에 대해서 잘 아시는 것 같습니다.”
“그 새끼들을 잘 알아서 뭐 하게. 그냥 그런 놈들이 한 놈이라도 내 앞에 나타난다면 사지를 찢어버려야지.”
“아하하, 호천주께서 옆에 계시니 정말 든든합니다.”
“걸황, 본인을 놀리는 것인가?”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역위천이 의심의 눈초리로 남하림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뭐야. 진짜인가? 내가 조금 강해졌다고 했지만 부담 주지 말라고. 난 창천주 옆에 있는 놈들을 처리할 테니까 그렇게 알게.”
“이런, 알겠습니다.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그들이라도 막아주신다고 하니 고마운데요.”
“아, 근데…….”
역위천은 주위를 살짝 둘러본 뒤 남하림에게 바짝 붙어 섰다.
“이번 일이 끝나면 그래도 얼마 정도는 받을 수 있겠지?”
“저번에 안 받는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만 말이야…… 요즘 놀았더니 돈이 좀 모자라더군. 난 괜찮은데, 밑에 애들도 먹고는 살아야지 않겠나.”
“제가 섭섭하지 않을 정도로 알아서 챙겨 드리지요.”
“아하하하핫! 체면을 세워줘서 고맙네. 이래서 내가 자네를 좋아하는 것이지!”
역위천이 뒤에 따르는 수하들을 향해 번쩍 손을 들었다.
와아아아아아아-!
뒤에서 호천무인들이 환호가 들려왔다.
* * *
신무맹이 있는 남양 초입에 들어서기 직전.
스윽.
길가에 앉아 있던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하림은 물론, 노인을 보지 못한 일행은 없었다.
그들 중 탈혼마제가 가장 먼저 반겼다.
“만통자, 여긴 무슨 일인가?”
“선배, 잘 지냈소이까?”
“나야 늘 똑같지.”
“무림천이 혼란스러워서 나왔습니다. 현천주가 밖에서 천방지축으로 돌아다니셔서 말입니다. 조용하게 박혀 있으라고 했지만, 어찌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아랫사람인 제가 옆에서 잔소리를 해야지 않겠습니까?”
“크하하하하핫! 걸황이 자네 말을 잘 들을지 모르겠구만.”
쩝…….
탈혼마제의 말이 맞았다.
자신의 말을 잘 들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하지만 옆에서 귀찮을 정도로 따라다닌다면 그나마 걱정이 덜하지 않을까 싶었던 것.
“소신, 현천주님을 뵙습니다.”
“에휴…… 노인장이 여기 왜 오셨습니까? 나이도 많으신 분이 조용히 황궁에서 쉬고 있지 않고.”
“아니, 주군이라는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는데 어찌 가만히 보고만 있습니까?”
“죽긴 누가 죽는다고 그런 말을 합니까? 이렇게 튼튼한데. 황궁의 일은 어떻게 하고 오신 겁니까?”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현천주님께서는 안위에만 신경을 쓰면 되지요. 그놈들을 몽땅 정리할 때까지 소신이 잘 모시겠습니다.”
“허어, 노인장까지…… 이러다 내 옆에 경로당을 차려도 되겠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셔도 옆에 있을 테니 딴생각 안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며칠 전.
만통자는 밤하늘에서 천괴성을 읽었다.
붉은빛에 천괴성이 뒤덮이는 모습을.
‘천주님께서…….’
불길했다.
그는 곧바로 무림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