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 수급자가 되다
전승이 도착한 다음 날.
다른 세 명의 장인들도 비슷한 시간에 남천상국에 도착했다.
남하림의 설명을 들은 그들의 반응 또한 전승과 다르지 않았다.
모든 이야기가 끝난 후.
네 명의 장인들은 그들만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반 시진이 지났을 즈음.
그들은 면담을 요구했다.
그들 앞에는 국주 남후정과 대총관 양진명, 그리고 남하림이 함께 자리했다.
형제 중 맏형인 전기가 대표로 말문을 먼저 꺼냈다.
“후정 형님께 저희들의 뜻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말해보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희들이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무조건 그분의 말씀을 따른 듯합니다…… 본 상국에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한 번 더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니네. 그 문제는 우리도 함께 책임이 있는 것이지.”
“형님께서 그렇게 말씀을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래서 우리 형제들이 의논을 해서 결정을 내렸습니다. 우리들 앞으로 나오는 저작권료는 삼공자님 앞으로 해주십시오. 오늘 이후로 우리들의 모든 권리는 삼공자에게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남후정과 양진명, 그리고 남하림은 뜻밖의 결정에 모두 눈이 커졌다.
“허어. 이유가 있는가?”
“삼공자는 중원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습니다. 도움을 주지 못할망정 힘들게 할 수 없지요.”
“자네들의 뜻이 그렇다면 난 받아들이겠네.”
남후정은 네 명의 뜻을 허락했다.
곧이어 남하림의 의견을 물었다.
“아들 생각은 어떠한가?”
“저 또한 네 분의 결정을 존중할 따름입니다.”
스윽.
남하림은 일어나서 네 사람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히 잘 받도록 하겠습니다. 아저씨께서 주신 모든 것들은 제 개인을 위해 사용하는 게 아니라, 사대장인의 이름하에 중원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잘 사용하겠습니다.”
“후후후, 역시 성인이라 불리는 이유가 있군. 돈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잘 사용하는 법이지.”
네 명의 장인들은 남하림의 대답에 만족했다.
양진명은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여섯 장의 계약서를 꺼냈다.
서로 한 장씩 가진 뒤, 남은 한 장은 창천상가에 보낼 예정이었다.
모든 것이 정리가 된 지금, 자금줄이 끊긴 창천의 보복이 있을 수도 있었다.
그에 사대장인들은 당분간 남천상국에서 지내기로 했다.
* * *
“천주님을 뵙습니다.”
동굴 밖에 다가온 인물.
사내가 부복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구홍. 무슨 일이지?”
“송구하옵니다. 일이 생겼습니다.”
“…….”
동굴 안에서부터 무거운 적막감이 흘렀다.
구홍이 맡은 위치.
그는 창천을 운용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관리하는 금화당의 수장이었다.
“창천상가에 일이 생겼습니다.”
우우우우웅-
동굴 전제가 울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처음부터 똑바로 말하라.”
그의 기세에 구홍은 걷잡을 수 없이 몸이 떨려왔다.
“무슨 일이지?”
“창천상가주가…… 남천상국에 가짜임이 밝혀졌습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중원에서 그 사실을 아는 인물은 거의 없다.”
“창천상가에 걸황이 표사로 위장하여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뭣이? 걸황이라면 남천상국의 셋째 아들을 말하는 것이냐?”
“네. 그렇사옵니다.”
창천주는 순간 모든 일이 틀어졌음을 알았다.
“남천상국에서 표행을 다녀간 뒤 상가주 해주민이 며칠 동안 사라졌다가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그 후 해주민이 스스로 공신 해정 님의 자손이 아니라고 밝혔고, 다음 날 남천상국에서 계약을 해지하는 공문이 날아왔다고 합니다.”
“큭, 크하하하핫!”
창천주는 대소를 터뜨렸다.
‘걸황…… 이놈이 사고를 쳤군.’
모든 것이 눈앞에 그려졌다.
걸황 남하림이 표사로 위장하여 창천상가에 간 뒤 상가주가 납치했다.
그리고 며칠 뒤 그를 풀어주어 스스로 자백을 한 것처럼 만들고, 계약 해지 통보를 보냈다.
‘완벽한 계획이군.’
어이없게도 멍청한 짓을 스스로 해버린 창천상가주였다.
이 모든 계획을 걸황이 세웠을 것은 자명했다.
“그다음은 어떻게 되었지?”
“종전의 계약서가 무효가 되었다면서 남천상국에 사대장인들이 도착하여 새롭게 계약을 했습니다.”
“사대장인이 직접 수급을 하는 것인가?”
“그게…… 그들이 새로운 수급자로 걸황을 지목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차후 그들의 권리를 모두 삼공자 걸황에게 넘겼다고 했습니다.”
콰아아앙!
부복을 한 구홍의 몸이 위로 솟구칠 정도로 바닥이 흔들거렸다.
“그놈들이…… 감히……!”
분노에 찬 목소리가 동굴 밖으로 울렸다.
남천상국에서 나올 자금원을 완벽하게 차단시켜 버렸다.
‘사대장인 이놈들이…… 내 말에 거역하지 못할 거라 생각해 그대로 두었건만…….’
자신의 방심과 자만에 의한 실수였다.
“그 네 녀석들은 남천상국에 있겠군.”
“그런 듯합니다.”
“이 모든 게 걸황이란 어린놈의 짓이겠고.”
“천주님, 당장 남천상국에 쳐들어가 쑥대밭으로 만들겠습니다.”
“멍청한 놈. 금화당의 수장이라는 놈상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덜떨어진 생각을 하는군.”
“…….”
“네놈이 남천상국을 친다고 해서 남천상국이 무너진다는 것이더냐? 무력 세력이야 불태우고 그놈들을 죽이면 끝일지 모르나, 상국은 건물들을 불태운다고 해도 끝나는 것이 아니다. 다른 곳에서 장사를 하면 그만이지.”
“……죄송합니다.”
“죄송하다고 될 문제인가?”
“…….”
창천을 운용하기 위한 자금원이 사라졌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현재 자금 사정은 어떻게 되는가?”
“본 천에서 운용할 자금은 최소 일 년에서 일 년 반 정도는 충분히 여유가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군. 일 년 정도 자금에 여유가 있다면 그 안에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있겠어.”
“그렇습니다. 곧바로 대안을 마련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구홍, 무슨 할 말이 있느냐?”
“그대로 포기하시는 것입니까? 창천상가에 문제가 있을 시 수급자를 다른 인물로 대체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왔습니다.”
“정말로 멍청한 놈이군. 이런 놈이 지금까지 금화당을 맡고 있었다니…….”
“송구하옵니다. 소신이 잘 몰라서 헛소리를 한 것 같사옵니다.”
구홍은 바짝 바닥에 엎드렸다.
“새로운 수급자로 대체하는 때는 창천상가 가주란 놈의 몸에 이상이 생겼을 경우다. 세상에 이미 가짜라고 알려진 놈. 그놈이 몰래 낳은 자식이라고 우길 상황도 아니라는 것이다. 계약서에 인장을 찍은 이상 끝이지. 게다가 남천상국은 그 물건들을 팔지 않아도 전혀 손해가 없을 만큼 큰 상국이다. 그들이 창천상가에 돈을 준 이유는 그만큼 나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다르겠지만.”
동굴 안에서 들려오는 아쉬운 말에 구홍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구홍, 이번에는 멍청한 말을 해도 용서하지만 다음은 오늘과 같지 않을 것이다.”
“천주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물러가라.”
구홍은 침울한 채 물러났다.
어둠 속 암흑 동굴.
번쩍.
섬광이 터지듯 그의 두 눈에서 빛이 났다.
“크하하하!”
다시금 창천주는 굉소를 터뜨렸다.
걸황이 창천상가에 갔다는 의미는 하나였다.
“구천신품을 모두 찾았군. 남천상국에 대단한 녀석이 태어났어.”
열 개의 구천신품을 찾아내는 것이 예상과 다르게 일 년이나 빨랐다.
그가 동굴을 나가려면 최소 빨라야 반년이 걸릴 터.
창천주인 그는 수백 년의 세월 동안 대혼술법을 펼치면서 세상을 이어왔다.
그러는 과정에서 영혼에 많은 손상을 입은 상태.
만일 이런 상태에서 한 번 더 대혼술법을 펼친다면 그의 영혼이 깨져 사라질 위험이 있었다.
창천주가 중원 무림에 다른 인물들을 내세웠던 이유는 손상이 간 그의 영혼을 다시금 예전처럼 강하게 만들 시간을 벌기 위해서.
그는 아직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걸황, 멋지게 자라고 있군.’
다음 세대를 이끌고 갈 창천주의 육체 후보 두 사람 중 한 명이 걸황 남하림이었다.
‘우선 본 천의 힘을 상대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보는 것이 좋겠어.’
그는 동굴 밖을 향해 소리쳤다.
“제령운화는 밖에 있느냐?”
샤르르륵-
한 여인의 백색 천 자락이 허공을 감싸며 아래로 내려섰다.
사뿐.
그녀는 동굴을 향해 가볍게 허리를 숙였다.
“천주님. 부르셨습니까?”
“또 다른 여인의 모습이군. 영혼에 무리가 갈 수 있다.”
“천주님, 소녀가 술법을 펼치는 대상은 무공을 모르는 신체이기에 부담이 없사옵니다.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긴…… 십 년에 한 번씩 대혼술법을 펼쳐도 괜찮은 것을 보면 자네에게는 문제가 없을 수도.”
창천십문에 속한 창천 최고의 무인 중 일인 제령운화.
그녀는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십 년에 한 번씩 대혼술법을 통해 젊은 여인의 몸으로 육체를 바꾸었다.
“소녀에게 내리실 명이 무엇이옵니까?”
“걸황에 대한 너의 의견이 어떠한지 확인해 보고 싶군.”
걸황 남하림.
현 무림 최고의 인물.
그녀 또한 소문의 주인공인 걸황이 궁금했다.
창천주가 자신에게 의견을 묻는 이유는 그를 다음 육체의 후보로 두고 있다는 뜻.
“알겠사옵니다. 그가 천주님의 영혼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는지 살펴보고 오겠사옵니다.”
“부탁하지.”
스르르르-
백색 천이 회오리처럼 휘날리며 그녀를 감쌌고.
곧 기척도 없이 사라졌다.
* * *
‘공신 해정.’
남하림은 침상에 누운 채로 생각에 잠겼다.
모든 사건의 원흉은 창천주.
천신만고 끝에 그의 정체를 밝혔지만, 어디에 숨어 있는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그들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말인가.’
다행히 중원 전체에 개방 식구들이 흩어져 있었다.
당장 믿을 수 있는 것은 개방의 정보력.
‘수상한 움직임이 있다면 걸리겠지. 우선 신무맹으로 돌아가서 기다려야겠군.’
남천상국에서 그가 해야 할 일은 끝이 났다.
구천신품을 찾기 위해 중원으로 싸돌아다닐 필요도 없었다.
앞으로 상대해야 할 인물은 유천을 장악한 설백진과 창천주 해정.
남천상국에서 묵는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잠도 오지 않았다.
내일 떠날 예정이었다.
‘후…… 사실 정말 한 번쯤 오고 싶었던 곳이었지.’
스윽.
남하림은 몸을 일으키며 침상에 앉았다.
‘잠도 안 오는데 운기나 해야겠다.’
스스스-
남하림의 전신에 황금빛의 기가 흐르며 주위를 감싸기 시작했다.
* * *
아침이 밝았다.
귀빈각 앞에선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떠나는 이휘연이 아쉬운지, 남희미의 눈에서 눈물이 글썽거렸다.
남하림은 고개를 흔들었다.
“못난이 누나, 그만 울어. 나중에 또 만나러 올 거라니까? 누나도 만나러 오면 되잖아.”
“이익…… 야아, 진짜 내가 가도 괜찮아?”
“언젠 안 왔어? 거긴 사람 사는 곳 아닌가? 오고 싶으면 언제라도 와.”
“응응, 고마워.”
남희미는 바로 돌아서서 이휘연을 덥석 껴안았다.
‘에구…… 잘 논다.’
잠시 뒤.
남하림은 배웅하는 인물들과 인사를 나누고는 남천상국을 떠났다.
두두두두두두-
호남성을 넘어 호북을 곧장 관통하하는 일행의 움직임이 바람과 같았다.
* * *
호남성에서 가장 유명한 삼대 기루는 어디인가.
가장 넓고 높은 건물을 자랑하는 북장천상루.
중원에서 구하지 못할 술이 없다고 할 정도로 술의 종류가 많다는 진양명화루.
마지막으로 호북성에서 경관과 건물이 가장 예쁘다고 알려진 호북제일루.
그곳의 삼 층 난간에서 호수를 내다보는 야경은 중원 제일이란 말이 있을 정도였다.
한 번도 이곳을 지나갈 일이 없었던 일행은 숙소도 잡을 겸, 한 번쯤 구경하기 위해 호북제일루로 움직였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당무독의 탄성이 터졌다.
“와아아!”
“그냥 소문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구나.”
기루에 관심이 없는 성철각마저도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하림 형, 우리 오늘 저곳에서 하루 보내는 거야?”
“기회가 날 때 한 번 가보는 거지. 안 그래?”
“……으응!”
팽유도도 신이 났지만 바로 내색을 하진 않았다.
하루만 보낸다고 해도 그곳은 기루.
신소소의 눈치를 힐끔 보았다.
“괜찮아요. 저도 궁금했었거든요. 소문을 많이 들어서 한 번쯤 구경하고 싶었어요.”
호북 출신인 신소소는 호북제일루에 대해 들어본 적이 많아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숙소도 필요하니까.
“그래? 그럼 가볼까? 호북제일루에서 내려다보는 경관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궁금하네.”
* * *
웅성웅성.
과연 호북제일루의 명성은 대단했다.
일행은 입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수백 명의 사람들이 줄을 선 채 기다리고 있을 정도였다.
“하림 형, 사람들이 너무 많아. 줄을 설까요?”
무림에 이름이 높을수록 행동을 조심해야 했다.
“근데…… 줄을 서기에는 사림이 너무 많아요. 기다렸다가는 우리들이 잘 방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황보궁은 호북제일루에 들어가지 못할까 아쉬웠다.
“궁아, 저 사람에게 가서 내가 왔다고 말을 해봐.”
“넵. 알겠습니다.”
황보궁이 입구로 달려갔다.
“오빠, 아는 사이야?”
“어. 잘 알지.”
“어떻게?”
“여기는 남천상국에서 운영하는 기루니깐. 모를 리 없지.”
성철각이 손을 번쩍 치켜세웠다.
“역시 부장은 있는 집 자식이라니깐.”
“아하하하, 오랜만에 철각한테 그런 말을 듣네.”
“에헤헤…… 그런가.”
후다다닥!
황보궁과 함께 중년 사내가 빠르게 다가왔다.
“어디…… 어디……?”
사십 대 후반의 중년 사내가 고개를 홱홱 돌리면서 남하림을 찾았다.
“앗…… 걸황…… 삼공자님!”
“하하하, 강춘, 오랜만이야.”
“기루에 오셨으면 바로 오시지 않으시고…….”
“보는 눈이 많아서.”
“아이고…… 네에.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소인을 따라오시지요.”
“고마워.”
강춘은 앞장을 서며 호북제일루의 담을 따라 옆으로 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나타났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강춘이 문을 두드렸다.
스윽.
그러자 손바닥만 한 구멍에서 눈동자가 나타났다.
“강춘 부총관이 아니십니까?”
“어서 문을 열게. 걸황이신 삼공자님께서 오셨어.”
후다닥!
안에서 다급하게 움직이는 소리들이 울리고.
덜컹!
호북제일루의 문이 활짝 열리면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걸황님을 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