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234화 (235/328)

234. 소소를 만나다

제갈세가 가주전에 들어선 남하림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제갈령을 만났다.

“도움을 줘서 고맙네.”

“구천신품을 얻었으니 괜찮습니다. 그래도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그들을 상대할 계획은 세웠는가?”

“우선 신무맹으로 가서 고민을 해야겠지요.”

“이번 신무맹은 좋은 제도를 택했더군. 그들이 서로 뜻을 모은다면 무림은 잘 굴러가겠어.”

제갈령도 신무맹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신무맹에서 내리는 결정은 맹주 독단이 아닌, 각 문파에서 내원을 이룬 뒤 각원들이 결정을 내린다고 했다.

“신무맹을 무림 문파들에게 줘도 상관이 없겠나?”

“머리 아프게 나설 이유가 있겠습니까? 무림에 나온 이상 맹주란 직위를 얻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욕심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더 큰 욕심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군. 여하튼 맹주에 오른 것을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남하림은 가볍게 웃어 넘겼다.

“아 참…… 유 궁주께서는 어떻게 지내고 계시던가?”

최근 들어 유극지에 대한 소식을 잘 듣지 못했다.

남하림은 잠시 머뭇거렸다.

사실대로 말을 해야 할까.

“그에 대해서 말을 하는 게 곤란한 상황인가?”

“……그분께서는 죽어가십니다.”

‘죽어간다고?’

제갈령의 몸이 굳어졌다.

무림맹에 있을 당시 아픈 기색은 전혀 없었다.

‘천하제일인이 왜?’

“무슨 말인가? 그가 죽어간다는 것이……?”

남하림은 말을 꺼낸 이상 모든 사실을 제갈령에게 알려주었다.

구천마제와 유극지 사이에 일어났던 일들.

처음 듣는 이야기에, 늘 살랑이던 봉황선이 아래로 축 늘어졌다.

온몸에 힘이 빠졌다.

“그런 일이 있었을 줄은…… 몰랐군.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창천을 이기기 위한 결정이라 했지만.

혼자 힘으로 상대하려던 그가 무모하면서도 대단했다.

“창천이 이 사실을 알면 은하궁을 어떻게 하지 않겠는가?”

“최대한 막아내야겠지요. 제 도움이 필요하다면 은하궁을 도와줄 겁니다.”

“……음…… 아…… 그 소문이 사실인 모양이군?”

“……하아…….”

남하림은 제갈령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아챘다.

무심코 한 행동이 이 정도의 파급력을 불러올 줄은 예상 못 했다.

‘이런 일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구나.’

유미령과의 소문은 이미 중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아니라고 나서서 중원에 변명한다면, 그건 유미령에게 상처가 될 수 있기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도 없었다.

“남녀의 관계는 알 수 없다고 하지만, 두 사람이 엮일 줄은 몰랐군. 축하하네. 검후인 그 아이라면 걸황의 명성에 맞는, 충분히 좋은 배필이 될 게야.”

황제에 검후라.

벌떡!

남하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떠날 시간이었다.

“그만 가보겠습니다.”

“걸황, 구천신품의 비밀을 푼다면 내게도 알려줄 수 있겠는가? 정말로 궁금해서 그러네.”

“알겠습니다.”

“고맙네. 그리고 조심하게. 이번 일로 창천에서 그대를 직접 노릴 테니까.”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조심하지요.”

남하림과 제갈령은 헤어지면서 동시에 포권을 했다.

이때는 몰랐다.

이번 만남이 마지막일 될 줄은.

* * *

‘에잇! 진짜 나빠!’

타악!

북방에서의 소문이 들려온 뒤.

거의 한 달 동안은 잠도 오지 않았다.

‘비겁하게……! 저번에도 아버지만 중간에서 만나고 도망갔어!’

신소소의 입이 비쭉 튀어나왔다.

벌떡!

이대로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릴 순 없었다.

신소소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에 대한 소문을 더 듣기 위해 사람을 풀었다.

‘제갈세가에 갔다가 신무맹으로 돌아간다고 했지.’

지금 움직이면 충분히 만날 수 있었다.

‘만나러 갈 거야. 가만히 있다간 어떻게 될지 몰라!’

중원에선 수많은 적들이 그를 차지하기 위해 노리고 있을 것이다.

‘만나기 위해서는…….’

우선 세가를 무사히 빠져나가야 했다.

건물 밖은 호위 무사들이 십이 시진 동안 지키고 있었다.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저녁 근무자가 바뀌면서, 동시에 식사 시간이 겹치는 때가 있었다.

일각.

그사이가 조용히 건물을 빠져나갈 수 있는 기회였다.

신소소는 밖을 나갈 준비를 마쳤다.

남은 건 때를 기다리는 것뿐.

샤샤샤샤-

한 마리 도둑고양이처럼 날렵한 움직임.

빠르고 유연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수십 번을 지나가본 것처럼 거침이 없었다.

‘여기만 지나가면 드디어 밖!’

스으윽-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작은 통로.

예전에도 이곳을 통해 세가 밖으로 나갔었다.

들킨 적이 없으니 당연히 통로는 그대로 있을 것이 확실하다.

‘역시.’

신소소는 앞을 휘휘 치우며 엎드린 채 통로 속으로 들어갔다.

거의 반각도 되지 않는 거리.

툭.

출구를 막아놓은 철창을 가볍게 밀어냈다.

신소소는 미소를 짓고.

‘됐다. 성공……!’

한 발을 먼저 내디디며 밖으로 조심스럽게 나왔다.

“와아아아- 자유……!”

두 팔을 벌린 채 최대한 작고 신나게 소리치던 그때.

그녀의 뒤에서 어이없다는 듯한 중년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아아알한다.”

“누구냐?”

휘익!

신소소는 소리를 치면서 돌아섰다.

“아…… 빠, 여긴 어떻게?”

“넌 여기 왜 왔냐?”

“여기요? 그게, 지나가다 보니.”

“왜 지나가면서 사내놈 복장을 한 것이냐?”

“……편해서?”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신명항이 통로를 알고 있었다.

이제 방법은 둘 중 하나다.

도망가거나 잡히거나.

신소소가 망설이고 있을 때.

다시 신명항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신 있느냐?”

“……뭐가요?”

“지금 그를 만나러 가는 것이지? 완전히 잡을 자신이 있냐는 말이다.”

“그…… 그건 모르죠…… 그래도 가만히 있는 것보다 찾아가서 만나는 게 낫잖아요!”

무작정 가겠다는 신소소의 말.

하긴,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단 나은 방법이었다.

“흐음, 네 말이 맞다. 어떻게 하든 만나야 답이 나오는 법이지.”

“…….”

“그가 호령소를 지나고 있다는 소문이 있더구나.”

“앗! 정말요?”

“됐다. 가려면 빨리 가라. 안 그러면 놓친다.”

“네! 고마워요! 갔다 올게요. 엄마한테 잘 좀 말해주세요!”

휘이익!

신소소는 급하게 사라졌다.

“하아, 저애가 내 눈에는 제일이지만…… 주위에 엄청난 여인들이 많을 텐데…….”

딸아이는 아직 내로라하는 여식들보다 부족함이 많아 보였다.

게다가 어린 나이.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 * *

단저의 죽음.

창천의 패배에 대한 소문은 곧바로 구천 전체에 알려졌다.

동굴 안에서 대소가 터져 나왔다.

“크하하하핫!”

덜덜덜.

웃음소리 하나만으로 동굴이 무너지는 듯했다.

“단저가 죽었다는 말이지?”

“그렇사옵니다. 걸황에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다른 인물도 아닌 양천의 전인에게 패한 것은 당연한 일이지. 멍청한 짓을 했어. 양천의 전인이 나타났다면 물러나야 했건만. 공명심 때문에 자신의 수준을 모르는 놈은 죽어도 싸다.”

수하인 단저가 죽어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를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어떻게 하다니?”

“단저가 죽었습니다. 당연히 그의 복수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말을 이해 못 하는 놈이 여기도 있군. 능력이 안 되는 놈이 죽을 짓을 했을 뿐.”

“…….”

“분명히 알려주지. 당분간 그 녀석의 몸을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이다. 앞으로 내 몸이 되어줄 녀석일지도 모르니.”

“알겠습니다.”

“염천은 다른 곳에서 끝을 낸다. 자네는 주천을 정리하도록.”

“천주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 * *

제갈세가에서 나온 일행은 남양성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호령소를 지나 은양 초입으로 들어서는 길.

“부장, 여기를 지나면 남양으로 가는 길이 하나밖에 없다고 해.”

“제대로 왔군.”

남하림은 마을로 들어섰다.

얼마쯤 지났을까?

앞선 길 앞에서 강렬하게 노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피식.

남하림은 씩 웃었다.

일행 중 네 사람 또한 남하림과 같은 방향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남장을 한, 익숙한 얼굴.

기분 나쁜 듯 뾰로통한 채,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저 녀석은…… 왜 저래?”

“부장 때문인 것 같은데?”

“내가 왜?”

남하림은 모르는 척 옆에 있던 팽유도에게 물었다.

“무독 형 말대로 하림 형을 만나러 온 것 같은데요? 우린 상관이 없어요.”

팽유도도 얼른 발을 뺐다.

남양성으로 가는 길에 불쑥 나타난 신소소.

남장까지 하고 나타났다는 것은 정상적으로 세가를 나온 것이 아니라 또 가출했다는 뜻.

그녀가 가출까지 하면서 나올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다.

일행 네 사람의 눈엔 훤히 보였다.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 일이 아니기에, 모르는 척할 뿐.

“저 녀석과 단둘이, 알아서, 이야기 자알 해봐.”

“크흠, 알겠어.”

분명 신소소도 그녀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찾아왔을 터.

남하림은 손을 번쩍 들었다.

“어이, 꼬맹이 형제가 여긴 무슨 일로 왔어?”

신소소는 남하림의 물음에 바로 대답하지 않고, 다가오는 일행 사이에서 누군가를 찾아 슥 훑었다.

그러고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남하림을 째려보았다.

“나빠요.”

“흠…… 오랜만에 봤는데 첫인사가 살벌하네. 누가 보면 정말 내가 나쁜 짓 한 것 같잖아.”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남하림은 여전히 모르는 척했다.

퍽!

신소소는 남하림의 가슴을 때렸다.

“정말 나빠요. 내가 엄청 불리하잖아요? 난 아직 어리고! 시간은 안 가고!”

“하아…… 가주님은 여기 온 거 아셔?”

“당연히 알죠. 잘해보라고 하셨는데요?”

‘그 양반이…… 애를 잡아야 할 마당에 오히려 부추기셨군.’

뭔가 배신감이 들었다.

“혼자 나다니면 위험하잖아.”

“언제부터 신경을 썼다고 그러세요?”

“알겠어. 우선 가면서 이야기하자. 길 한복판에 계속 서 있을 수 없잖아. 안 그래?”

“좋아요.”

스윽.

어느 정도 이야기가 끝난 듯하자, 팽유도가 두 사람 곁으로 쏙 고개를 내밀었다.

“오랜만이야!”

신소소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환히 웃으며, 팽유도와 나머지 세 명과도 인사를 나눴다.

“오빠들 잘 지냈어요?”

“하하하! 여기서 소소를 보게 될 줄은 몰랐네!”

네 명 모두 반갑게 인사하는 도중, 황보궁만이 멀뚱히 상황을 지켜보다가 물었다.

“유도 형, 누구세요?”

“아, 이름은 소소라고, 저번에 신려세가의 가주님을 뵌 적이 있지? 그분의 여식이야.”

“아하…….”

황보궁은 신소소를 내려다보았다.

“난 황보궁이라고 해. 반가워.”

“나도.”

“근데 대형하고 무슨 사이야?”

“……음!”

신소소는 갑자기 물어보는 물음에 자신의 입으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망설였다.

툭!

탈혼마제가 다가오며 황보궁의 엉덩이를 가볍게 찼다.

“이놈아. 상황을 보면 모르냐? 이 꼬맹이가 저놈을 좋아하는 거잖아.”

“헛, 정말입니까? 대형께는 미령 누나가 계시잖아요.”

“쯔쯔, 네놈은 아직 한참 더 배워야겠다.”

신소소는 얼른 탈혼마제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할아버지가 마도최강이신 탈혼마시군요! 멋지시네요!”

‘에에엥? 할아버지?’

익숙하지 않는 단어에 탈혼마제는 살짝 당황했다.

하지만 곧바로 대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핫! 신 가주가 딸 하나는 잘 낳았도다. 소소라 했느냐? 만나서 반갑다.”

무림에 나온 후, 가장 마음에 드는 꼬맹이가 나타났다.

* * *

일행은 잠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객잔에 들어섰다.

“돌아가라.”

“싫어요. 같이 다닐래요.”

신소소는 완강히 거부했다.

“여자애가 혼자서 다니면 위험해.”

“왜 혼자예요? 오빠들하고 할아버지도 계시는데요.”

“…….”

“저는 안 되고 그분은 되는 모양이군요. 같이 다녔잖아요. 북방에도…… 북방까지……!”

“그녀는 무공이 강해.”

“저도 무공 할 줄 알아요.”

신소소의 눈빛에 돌아갈 마음은 전혀 없었다.

“무슨 소문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린 아무 사이도 아니라니깐.”

“아무런 사이도 아닌데 부인이라고 소문이 나요? 본인이 아니라고 해도 이미 소문이 나버렸는데. 하림 오빠는 이제 중원에선 그분과 부부 사이가 됐다고요.”

“아, 그래서 안 가겠다는 거야?”

“당연하죠. 또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난 아직 몇 년이나 더 남았는데…….”

“그래서 옆에서 지키려고?”

“맞아요! 그분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지금부터는 절대로 안 돼요.”

“흐미…… 환장하겠네. 그리고 우리도 아무런 사이도 아닌 것 같은데……?”

“아직 어려서 그렇다면서요. 그건 나중에 보면 되는 거고, 그때까지는 내가 지킬 거예요.”

“대단하다. 네 마음대로 해라.”

남하림은 포기했다.

어떤 말을 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히죽.

신소소는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앞으로 제가 잘할게요.”

“쪼끄만 한 게 못하는 말이 없네. 뭘 잘해. 그냥 조용히 따라다니면 돼.”

“쳇, 형님한테는 그런 식으로 소리 지르면서 이야기 안 하죠?”

“형님? 누구? 유 소저를 말하는 거야?”

“당연하잖아요.”

“벌써부터 형님?”

“전 누구랑 달리 예의가 바르거든요. 당연히 형님에겐 최선을 다하는 거죠.”

“마음대로…… 하세요…….”

“좋아요. 제가 알아서 잘할게요.”

“근데…… 한 가지만 부탁하자. 다른 사람들 만날 때 이상한 말은 하지 마. 더 복잡해질 수도 있으니까.”

“알았어요. 내가 그것도 모르는 바보인가, 뭐.”

가만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황보궁이 팽유도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어…… 유도 형, 저기…….”

“왜?”

“혹시……저 애를 부를 때 형수님이라고 해야 하나요?”

“…….”

황보궁의 질문에 팽유도도 고민에 빠졌다.

‘그런가?’

그리고 들려오는 남하림의 목소리.

“두 사람. 너무 앞서가지 마라. 그냥 소소라고 해.”

“아…… 네. 대형, 알겠습니다.”

* * *

객잔에서 바로 나온 후부터 신소소는 남하림의 곁에 바짝 붙어 섰다.

“역시 형님은 멋진 여성이시군요.”

함께하지 못한 이유가 은하궁의 궁주 수업을 받는다고 알려주니 하는 말.

“그렇지 않아도 차기 검후가 된다는 그분을 동경했었는데. 그런 분이 제 형님이 되시다니 너무 좋아요.”

“소소야. 유 소저는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라서 시끄러운 걸 싫어하는 편이야.”

“아, 그래요? 흐음…… 그래도 저를 좋아하실 게 틀림없어요.”

‘근데…… 왜 이렇게 됐지?’

신소소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뭔가 다 인정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고 있는 자신의 상황도 웃겼다.

그때,

[부장, 앞에.]

이휘연의 전음이 들렸다.

휘이익!

일행 앞에 개방의 걸비가 모습을 드러내며 기다리고 있었다.

‘또 사건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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