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 창천주의 비밀
금지로 들어섰다.
주위에는 어떠한 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전부 물린 모양이군.’
남들이 들어서는 안 될 이야기를 나눌 모양이었다.
남하림의 걸음은 마음처럼 무거웠다.
우우우웅-
검의 울음.
검명 또한 걸음걸이에 맞춘 것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궁주님.’
유극지는 은하검을 들고 남하림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둑놈.”
그는 뜬금없는 한마디를 쏟아냈다.
타아앗!
유극지의 독문 신법.
아공만영보(亞空滿映步).
그의 기세는 하늘을 뚫고 지나갈 듯했다.
하지만 남하림은 담담했다.
‘한 번 본 건……!’
스르륵-
옆에서 불쑥 나타난 유극지를 피해 한 걸음 뒤로 물러나자,
유극지가 허탈한 목소리를 냈다.
“허어, 너무 쉽게 피하는군. 그럼 이건!”
스걱-
허공을 가르던 은하검이 남하림의 목을 향해 검로를 돌렸다.
남하림은 허리에서 타구봉을 빠르게 꺼냈다.
까아아앙!
은하검을 목 앞에서 막아낸 타구봉.
타구봉식이 아닌 검식이었다.
“호오…… 검공에도 일가견이 있군.”
“그걸 봤더니 자연스럽게 도움이 되더군요.”
휘리리릭!
파파파파팟!
‘한 번 더 확인을 해볼까?’
눈에 익숙한 검식.
유극지는 은하무량검공을 제대로 펼치기 시작했다.
은하추명(銀河追明)의 초식.
뒤로 물러나는 남하림을 검강이 쫓아갔다.
투투투투투-
남하림은 타구봉을 마치 검처럼 사용하듯 은하검을 막아냈다.
멈칫.
은하추명의 초식을 막아낼 수 있다?
하지만 유극지가 놀란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니었다.
타구봉을 펼친 초식이 타구봉법이 아니었다.
유극지의 신형이 멈추었다.
“자네가 펼친 것이 그의 무공처럼 보이는군.”
“맞습니다. 무극검신공입니다.”
“태웠다고 들었는데.”
“맞습니다. 태웠습니다. 그 전에 외웠습니다. 아까워서.”
“그것을 외웠다?”
남하림은 미소를 지었다.
‘보면 볼수록 대단하군.’
소문에 다른 무공들도 모두 태웠다고 했었다.
“설마, 나머지 무공들도?”
“그렇다고 봐야겠죠.”
“어이가 없군.”
남하림의 말이 거짓은 아닐 것이다.
다만 사실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진짜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겠는데?”
타아앗!
유극지가 다시 움직였다.
검의 기운이 변했다.
방금 전까지 보여주었던 은하무량검공이 아니었다.
슈우우욱-
극강의 검강이 남하림의 전신을 조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남하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궁주님께서…… 이 검공을……!’
흉내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검결이 펼쳐졌다.
‘우선 막아내는 게 먼저다.’
무극검신공 대 무극검신공.
부우우웅-!
타구봉에 흐른 무극검신공의 강막이 은하검의 검강을 막아냈다.
콰아아아앙!!
강대한 파공음이 둘 사이에서 퍼졌지만.
남하림과 유극지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 우뚝 서 있었다.
“하하하핫! 언제 이렇게 강해졌는지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군. 자넨 사람이 아니야.”
“원래 무공을 익히면 이 정도는 기본적으로 하는 거 아닙니까?”
“당연히 그 정도는 해야지. 천하제일인이라면!”
유극지는 은하검을 거두었다.
두 번의 대결에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들어오게나.”
“이제 들어가도 되는 것입니까? 환영인사가 너무 거칠군요.”
“도둑놈이니까.”
“…….”
“내가 왜 도둑놈이라고 하는지 짚이는 곳이 있겠지?”
“아무런 사이도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그도 북방에서 퍼진 소문을 들었음에 틀림없었다.
“자네는 사실이고 거짓이고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지 않나.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뿐이지. 그것이 거짓이라도.”
“……그러게 말입니다.”
두 사람은 의자에 앉았다.
“둘 사이는 어떻게 할 테냐?”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아니, 제일 중요해. 자네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보면 알아.”
“…….”
순간적으로 남하림은 괜한 짓을 했나 후회가 밀려왔다.
“그 문제는 제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유 소저께는 절대로 피해 가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게나. 나야 언제 어떻게 될 사람이라 모르지만, 집사람이 문제지. 항상 조용한 듯하면서도 엄청 겁나는 여인이거든.”
“그렇습니까?”
“아마…… 맞을 게야.”
타악.
유극지는 미리 준비한 술병을 꺼내 들었다.
“그 일은 자네가 잘 처리하겠다고 하니 난 그냥 넘어가겠네. 장난삼아 여인을 만날 사람도 아니고. 다른 여인이 있어도 이해는 한다. 두 명까지는. 그 이상은 안 돼.”
“…….”
쪼르르르-
그는 남하림의 잔에 술을 따랐다.
톡 쏘는 향이 밀려왔다.
“강하군요.”
“후후후. 초량주라고 하네. 무림맹 시절 심심해서 담아본 술이지. 마셔보게.”
남하림은 술잔을 들이켰다.
입안에서 퍼지는 주향이 전신을 짜릿하게 만들었다.
“독하면서도 시원합니다.”
“표현이 정확하군.”
벌컥!
유극지도 한 잔을 그대로 마셨다.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무극검신공을 어떻게 아냐고?”
“그렇습니다. 혹시 제가 생각한 것이 맞는지 모르겠군요.”
“제법이군. 그것까지 알아냈다는 말인가?”
“의심이 들었을 뿐입니다.”
“맞다. 내가 구천마제이자 유극지이지.”
남하림은 오히려 놀라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이미 눈치를 채서 그런가? 담담하군.”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정말로 구천마제가 맞습니까?”
“정확히는, 내 머릿속에 구천마제가 들어왔다고 봐야겠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창천에는 고대부터 대혼술법이라는 혼령이동술법이 존재했지.”
“……궁주님의 말씀대로라면, 구천마제의 혼이 궁주님의 몸에 들어왔다는 것입니까?”
“이해가 빠르군.”
유극지는 다시 남하림의 잔에 술을 따랐다.
벌컥.
목이 타는지 단숨에 들이켰다.
“잘 듣게. 이 일은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온 일이네.”
* * *
균천의 전인이 된 유극지는 구천지천에 오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방해자가 두 명 있었다.
창천과 양천의 전인.
드디어 양천의 전인을 만났을 땐, 유극지는 그가 자신의 상대가 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완벽한 양천의 전인이 아니었으니까.
남은 상대는 창천의 전인.
그는 완벽하면서도 강했다.
결국 창천의 전인, 구천마제는 단 한 번도 지지 않았다.
현천의 전인은 무림에 관심이 없었기에, 그들 싸움에 관여하지 않고 포기했다.
유극지는 창천의 전인에게 진 이유를 찾다가 그의 비밀에 대해 알아냈다.
대혼술법.
창천의 전인은 세대를 거쳐 오면서 혼을 바꾸는 술법으로 이어져 왔던 것이다.
당연히 창천의 전인은 구천뿐만 아니라 중원에도 진정한 모습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늘 그 시대 최고의 인물에게 대혼술법을 펼쳤기 때문이다.
구천마제 또한 마찬가지.
중원으로 나온 구천마제는 구천마성을 세웠다.
구천마제를 이긴다고 해도 창천을 무너뜨리지 않는 이상 제이의 구천마제가 나올 것이 분명했다.
구천마제의 신체 나이는 육십에 가까웠다.
유극지는 가장 조건이 좋았기에, 구천마제가 그의 몸을 욕심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유극지는 창천을 제거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대혼술법에 대항할 수 있는 항혼정법.
성공할 수 있다는 보장은 전혀 없었다.
구천마제와 유극지.
유극지는 그에게 제안했다.
대혼술법을 펼친 후 자신이 구천마제의 혼을 막아낼 수 있을지, 없을지.
유극지와 구천마제는 목숨을 걸고 내기를 했다.
그리고 서로 중원을 속이기 위해 계획을 세웠다.
첫 단계는 유극지에 의한 구천마제의 죽음과 구천마성의 멸망.
중원 무림인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보며 환호했다.
그리고 대혼술법이 펼쳐졌다.
* * *
“…….”
유극지의 설명이 끝났다.
남하림은 최근 그가 일으킨 사건까지 알게 되었다.
“성공한 줄 알았다. 얼마 전 십천을 완벽히 궤멸시켰을 때까지는.”
“그 말씀은……?”
“내 목적은 구천마제만이 아니었다. 창천 전체를 무너뜨리고 싶었지. 그런데…… 내 몸에 들어온 구천마제의 혼은 창천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어.”
“아…… 이런…….”
남하림의 검미가 꿈틀거렸다.
유극지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알 것 같았으니까.
“구천마제가…… 창천의 전인이 아니었다는 뜻입니까?”
“그런 생각이 든다.”
찌이이잉-!
“크윽!”
유극지는 또다시 머리가 깨지는 듯한 고통을 받았다.
“궁주님!”
남하림이 인상을 쓰며 고개를 숙인 유극지를 보고 놀라 외쳤다.
“……그자의 혼이 내 몸에 들어오면서 금제를 건 것 같네.”
“……!”
“이것 때문에 내가 급하게 자네를 부른 걸세.”
창천을 잡고자 모험을 했던 유극지.
‘무모하지만, 이런 일을 생각해 내고 실행한 것 자체가 대단해.’
남하림은 구천마제의 정체를 알고 싶어도 굳이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혹시 검후께서도 알고 계십니까?”
“말을 하지 않았네. 걱정을 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궁주님, 이건 혼자서 안고 있을 문제가 아닙니다.”
“나중에 이야기를 따로 할 생각이었네.”
남하림은 유극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문제는 자신이 관여할 수 없었다.
“제게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만일……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이곳을 맡아주게나.”
“……균천의 전인이 되어달라는 말입니까?”
“그건 아닐세. 균천의 전인은 이미 다른 인물에게 부탁했네.”
“여기도 그에게 맡기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 녀석은 균천의 전인이 될 수는 있지만, 은하궁의 궁주가 되기에는 맞지 않아.
균천의 전인은 완벽한 무공을 익히지 못하면 균천지를 떠날 수 없어.
게다가 은하궁은 균천의 인물들이 아니야. 무림에서 나를 따르는 전우이자 수하들이기에 균천을 따르는 것이 아니거든.
걸황. 은하궁이 중원에 있는 한, 난 자네가 은하궁을 이끌어 가기에 완벽한 인물이라고 여기네.”
“전 신무맹의 맹주가 될지도 모릅니다. 은하궁과 신무맹은 서로 감정이 좋지만은 않고요.”
“알고 있네. 하지만 뭐, 그 문제는 자네가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보네.”
“아무리 생각해도…… 좀 더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유극지는 우선 말을 그만 멈추었다.
단번에 결정을 내야 할 정도로 급박하지는 않았다.
“……혹시 내력을 살펴도 되겠습니까?”
스윽.
유극지는 손을 내밀었다.
‘무단의 기라면…….’
남하림은 그의 손을 통해 무단의 기를 밀어 넣었다.
유극지의 기맥을 따라 무단의 기가 움직였다.
‘여기서 머리 위에…….’
몸과는 달리 머리로 들어서는 기맥의 길은 세밀했다.
‘조심스럽게…….’
남하림은 신중에 신중을 가하며 유극지의 뇌를 따라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유극지는 색다른 기를 느꼈다.
아프거나 부담이 되지 않을 만큼, 부드럽게 머릿속에서 흐르고 있었다.
눈을 감고 집중하던 남하림의 눈이 뜨였다.
‘혹시 이것 때문에……?’
검은색의 기가 뭉쳐 기맥을 막아서고 있었다.
‘건드려 볼까?’
툭.
유극지의 눈이 꿈틀거렸다.
‘찾았다. 그런데…….’
한 개가 아니었다.
수십 개의 흑기가 뭉쳐 기맥을 막고 있었다.
‘위험하군.’
건드리는 것조차 유극지에게 큰 충격을 줄 수 있었다.
잠시 후.
남하림은 천천히 그의 손을 놓았다.
어두운 표정.
“어려운가 보군.”
“죄송합니다. 혹시나 했지만…….”
“어쩔 수 없지.”
남하림은 기분이 이상해졌다.
방금 전까지 은하궁을 맡아달라는 그의 부탁을 거절했다.
하지만 그는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상황을 보니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궁주님은 알고 계셨군. 그래서 다급히 날 불렀던 거야.’
남하림은 그의 걱정에 한 가지 잊고 있던 중요한 사실이 갑자기 생각났다.
“구천마제도 창천의 전인이 아니라면, 대체 누가 그라는 것인지…….”
“구천신품을 찾아야 하네. 내 머릿속에는 창천에 대한 기억이 전부 사라졌어. 그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는 구천신품을 찾아야 해.”
“하지만 구천마제는 창천의 전인이 아니잖습니까?”
“……구천신품을 만든 공신 해정은 창천의 인물이라는 말이 있었네.”
“그렇다면…… 공신 해정은 구천마제가 아니라 실제 창천의 전인을 두고 구천신품을 만들었을 거라는 말입니까?”
“가능성이야. 확신할 수 없지만, 구천신품을 모두 얻게 되면 진실을 알게 되겠지.”
남하림과 유극지의 시선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결국 모두 모아야 어떻게든 된다는 거군.’
* * *
남하림은 영화당으로 들어섰다.
남아 있던 일행이 돌아온 남하림을 반겨주었다.
“걸황, 그분과 이야기가 잘되었나요?”
“네. 좋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예설란은 다행이라는 듯 미소를 지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조용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죠.”
“유 소저도 함께 오시지요.”
남하림은 모녀와 함께 영화당 뒤편 정자로 움직였다.
앞서 걸으면서 남하림은 유극지의 부탁을 다시 생각했다.
“그녀에게 자네가 대신 말을 해주면 안 되겠는가?”
“제가 어떻게…….”
“부탁하겠네.”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착잡했지만, 남하림은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유극지의 심정을 이해했다.
정자에 앉은 세 사람.
모녀는 그가 무슨 말을 할지 가만히 지켜보았다.
“궁주님께서 몸이 많이 좋지 않습니다.”
“걸…… 황. 방금 뭐라고 하셨나요?”
“공자님.”
예설란과 유미령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