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 황위 계승
사중은 내력을 끌어 올려 곧바로 몸의 상태를 확인했다.
‘사라졌어.’
당황한 눈빛.
“이보게들. 난 동창 소속이네. 우리 같은 편이라고!”
“이런, 너무 빨리 소속을 밝힌 게 아닌가? 최소한 팔 하나 정도는 잘라야 하거늘.”
아쉬움이 가득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사중은 고개를 뒤로 돌렸다.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알았다.
‘신…… 공.’
같은 환관 출신이라 하나 그들 사이에서도 거의 말이 없는 인물이었다.
“제가 왜…… 여기에 있습니까?”
“몰라서 묻는 것은 아니겠지. 하후도 대장군을 죽이려고 하지 않았나?”
“……!”
사중의 얼굴이 단번에 굳어졌다.
‘서창과 하후도 대장군이 같은 편이다.’
곧바로 현 상황이 이해되었다.
하후도 대장군이 동창에 강하게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서창이 그들과 뜻을 함께하기 때문이었다.
이들 모두가 동창의 적이 분명했다.
다만 서창이 하후도와 뜻을 같이할 이유가 있었나?
“대체 왜……?”
“왜라니. 그건 자네의 수장에게 물어봐야지. 동창이 창천의 개가 되어 황궁을 그들에게 넘기려고 하거늘. 서창에서 그 사실을 모를 줄 알았던 모양이지?”
“……!”
사중의 가슴이 뜨끔거리며 심장 또한 철렁거렸다.
“서…… 창도…… 일황오제, 무림과 손을 잡았지 않소이까?”
“모르면 가만히 있어라. 앞으로는 내가 묻는 말에만 대답을 하면 된다. 만일 거짓을 말하거나 대답을 하지 않을 시에는 네놈의 사지 일부분이 하나씩 잘려 나갈 것이다.”
신공의 말에 사중의 몸은 완전히 굳어졌다.
“이름은?”
“…….”
“허어, 내 말이 거짓인 줄 아는 모양이군. 기본적으로 한 손은 잘려야 말을 할 모양이야. 팔을 잘린 것을 보기 싫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수밖에 없겠지.”
신공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사중은 신공과 시선이 마주쳤다.
투욱!
신공은 그의 앞에 단검을 던졌다.
“죽고 싶은 모양이지? 맘대로 하게. 네놈은 죽어도 상관없어. 이미 알 건 다 아니까.”
사중은 바닥에서 떨어진 단검을 내려다보았다.
덜덜덜.
그의 손이 떨렸다.
차라리 고문을 받다가 못 이겨 죽을 수는 있다.
멍석을 깔아주면 제대로 못한다는 꼴이 이것이 아닌가.
그는 고개를 숙였다.
눈빛에 힘이 빠졌다.
“……사중입니다.”
“죽기는 싫은 모양이군.”
신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 * *
히이이잉!
북방으로 떠났던 육두마차가 도착했다.
“드디어 왔군. 유 소저, 고생이 많았소이다.”
“그러네요.”
유미령은 시원섭섭한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았다.
덜컹.
마차에서 먼저 내린 남하림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됐습니다. 사람들이 보잖아요.”
아래로 내려선 두 사람.
“대형!”
남하림을 보면서 황보궁이 큰 소리로 반겼다.
“뭐야? 다들 왜 나와 있어?”
남하림은 일행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당연히 나와야지. 먼 곳까지 가서 고생을 했잖아.”
“난 괜찮은데. 여기 유 소저가 먼 길에 고생을 많이 했지.”
당무독은 그녀를 맞이했다.
“북방까지 다녀오느라 힘들지 않았나 모르겠소이다.”
“재미있었어요. 그동안 북방을 구경할 기회가 없었는데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좋았다니 다행이군요. 근데, 흐흠, 혹시…….”
“제게 할 말이 있습니까?”
“그게, 북방에서 한 가지 이상한 소문이 돌아서 말입니다.”
“무슨 소문이죠?”
“모용세가의 한 인물이 걸황의 부인에게 실례를 해서 작은 싸움이 일어났다는 소문이 여기까지 돌더군요.”
“…….”
“그 소식이 퍼진 후 중원에선 과연 걸황의 부인이 누구인지 찾는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스윽.
유미령은 고개를 돌려 남하림을 쳐다보았다.
“아하, 그게, 어떻게 된 것이냐면…… 으음, 나중에 이야기해 줄게.”
남하림도 설마 그게 중원까지 소문이 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럼…… 미령 누나가 형수님이 되는 것인가요?”
황보궁의 말이 툭 튀어나왔다.
일행은 모두가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궁금했지만 묻지 못하던 상황.
그런데,
갑자기 황보궁이 눈치 없이 한마디 파문을 일으켰다.
스윽!
성철각이 긴 팔을 얼른 황보궁의 어깨 위로 걸쳤다.
“궁아, 우리 먼저 들어가자.”
“네?”
“흐음, 철각 형, 나도 같이 가!”
팽유도도 앞서가는 두 사람 뒤로 얼른 따라붙었다.
* * *
스윽.
남하림은 탁자 위로 여러 장의 서신을 꺼냈다.
하후도가 펼쳐진 서신을 한 장씩 읽었다.
동창에서 북방 여진과 연락을 주고받은 서신이 분명했다.
“이것이면 충분합니다. 이젠 신하들도 따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좋습니다. 그 문제는 하후 대장군께서 맡아서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알겠소이다. 아, 그리고…… 저번에 이야기했던…….”
“새로운 황제가 될 인물을 찾았습니까?”
“오왕 주민입니다. 지금 옆 건물에 계시지요. 걸황께서 언제 돌아올지 몰라 그분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함께하고 있습니다.”
“잘됐군요. 그를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내를 하겠소이다.”
남하림과 하후도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은 오왕 주민이 임시로 머무는 거처로 들어섰다.
“왕야, 하후 대장군께서 오셨습니다.”
“얼른 모시게.”
오왕 주민은 안으로 들어서는 하후도를 맞이했다.
그 뒤로 함께 들어선 남하림을 보았다.
‘누구지?’
첫눈에 보기에도 옷이 이상했다.
분명 거지 복장은 맞는 듯한데 비단으로 지어진 걸복.
‘이 청년이…… 걸황이라는 무림인인가?’
그 또한 소문을 들었다.
무림에 걸황이란 별호를 가진 개방의 제자가 폭풍과도 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왕야. 걸황을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내 생각이 맞았군.’
오왕 주민은 남하림을 향해 먼저 인사를 했다.
“반갑소이다. 주민이라 하외다.”
“남하림입니다.”
인사를 나눈 두 사람.
인사말 한마디에 정중함과 인성이 담겨 있었다.
“하후 대장군께서 소개하신 이유를 알겠습니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두 사람은 서로 첫인상이 마음에 들었다.
‘다행이다. 서로 호감을 가지시는군.’
“두 분이 말씀을 나누시지요. 잠시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소이다.”
하후도는 방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방에 남은 두 사람.
남하림과 오왕 주민이 자리에 앉았다.
“흐음,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군요.”
“그럼 본인이 궁금한 것을 물어도 되겠소이까?”
“그것도 좋겠습니다. 궁금하신 게 무엇입니까?”
“걸황이라고 했지만, 다른 신분이 있지 않소이까?”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무공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황궁의 일에 관여할 수 없소이다. 무공으로 황제를 죽일 수 있어도, 다른 인물로 황위를 세울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왕야의 말씀이 맞소이다. 본인은 현천의 전인입니다. 황궁에서는 현천을 황궁수천이라고 부르지요.”
“황궁수천!”
중원 황조의 비밀수호세력.
황제가 아니면 실체를 찾을 수 없다는 조직으로, 황족들 사이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비밀.
그들은 황조조차 바꿀 수 있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황궁수천의 눈에 들어서면 새로운 황조가 세워진다고 말이다.
오왕 주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황궁수천의 천주님을 뵙습니다.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앉으시지요.”
오왕 주민은 자리에 다시 앉았다.
대대로 황궁수천이 외부로 나올 때는 황조가 바뀔 때라고 전해져 왔다.
살짝 그의 얼굴에 긴장이 밀려왔다.
“왕야께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번 경우는 다릅니다.”
“아…… 그렇습니까.”
남하림은 황궁수천이 나선 이유에 대해서 설명했다.
중원 무림에서 창천이란 세력이 무엇이며.
그들이 지금 욕심을 부리는 곳이 황궁이라는 것.
그 과정에서 동창이 창천에 명을 받고 움직이는 것까지 오왕 주민에게 알려주었다.
“황제 또한 그 과정에서 동창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현천인 황궁수천을 없애려고 했지요.”
“하…… 그런 일이…….”
현 황제는 황궁수천의 미움을 받는 것이 당연했다.
바보같이 가만히 있었다면…….
황제의 성격에 대해 오왕 주민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창천과 결탁한 동창, 여진을 끌어들이려는 내통…….
타고난 성격으로 무리하게 황궁수천과 척을 졌다.
황궁수천에서 그를 폐위하려는 이유가 명백했다.
“하후도 대장군께서 오왕야를 천거했소이다. 본인이 보기에 오왕야께서는 황제에 오를 충분한 덕을 지녔다고 보입니다.”
“부족한 이 몸을 너무 좋게 보신 게 아니신지 모르겠습니다.”
“내일이면 모든 것이 끝날 것입니다.”
“그렇게 빨리 말입니까……?”
“원래 성격이 급한지라 빨리 움직이는 편입니다. 불편하시더라도 기다려 주시지요.”
“허어…… 알겠소이다.”
* * *
아침이 밝았다.
서창이 가장 먼저 움직였다.
흑색의 환관 복장을 한 서창 소속의 환관들이 동창부의 주위를 포위했다.
금의위는 황궁수호군 지휘부에 곧바로 쳐들어갔다.
마지막으로 황궁 밖에 주둔하던 대군은 하후도와 함께 황궁으로 올라왔다.
후다다닥!
유장의 침실로 급하게 달려오는 환관의 발소리.
덜컹!
“큰일 났습니다!”
동창 첩형 문양이 문을 열고 허겁지겁 뛰어 들어섰다.
“뭣이냐?”
침상에서 벌떡 일으킨 유장의 얼굴은 노여움으로 가득했다.
“밖에…… 서창에…… 서!!”
“그놈들이 왜? 똑바로 보고를 하지 못할까?”
“우릴…… 무조건…… 잡고 있습니다!”
“신공, 이 새끼가……!”
유장은 얼른 환관복을 입었다.
그사이 비명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
마음이 다급해지면서 옷을 제대로 입을 수 없었다.
‘에이……!’
그는 대충 환관복을 걸친 뒤 밖으로 나섰다.
파앗!
스걱-
수하들이 피를 뿌리며 바닥에 쓰러지고 있었다.
“이놈들이……! 멈추지 못할까? 뭣들 하는 짓이냐?!”
타앗!
유장은 앞으로 튀어나가며 서창의 환관을 향해 음양독수를 펼쳤다.
그때,
휘익.
유장 앞에 나타난 인물.
“어딜……!”
신공은 가볍게 오른손을 흔들며 음양독수를 밀어냈다.
퍼어어엉!
뒤로 물러난 유장의 눈에 살기가 솟구쳤다.
“신공, 이놈. 대체 무슨 짓이냐?”
“유장, 그대의 죄를 묻고자 왔네. 더 이상 반항은 의미가 없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이오?”
“증인을 보여줘야 믿겠군.”
신공이 손을 들자 서창의 환관에 의해 두 명의 사내가 끌려왔다.
‘천령강령! 사중!’
강한 무공을 지니고 있던 두 명.
하나 그들의 모습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죄수와 같았다.
“이들 두 사람이면 충분하지 않는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난 모른다. 저놈들은 처음 보는 자들이다!”
“후후후, 그렇게 나올 줄 알았지. 동창의 수장에 올랐으면 적당히 해야 문제가 없었을 것인데. 욕심이 과하면 어떻게 되는 줄 몰랐는가?”
“그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 서창에서 이런 짓을 하고도 황제께서 가만히 있을 것 같은가?”
“유장, 당신이 믿는 황제도 그대와 같은 신세가 될 것이네.”
“이노오오옴. 감히……! 서창에서 역모를 꾸미다니……! 절대로 네놈들 맘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그건 그대 생각이겠지.”
“오냐. 이놈들. 본인에게 다가오는 놈은 무조건 죽여주마. 어서 덤벼라!”
휘이익!
신공은 신형을 날려 단숨에 유장의 앞에 다가섰다.
“어딜 오느냐?”
유장이 음양독수를 신공을 향해 펼쳤다.
“늦어. 그리고 약해.”
신공은 한 손으로 음양독수를 흘려보냈다.
그러고는 나머지 한 손으로 유장이 손을 쓸 수도 없을 만큼 빠르게 일장을 뻗었다.
오장단극수(五臟斷極手).
퍽! 퍽! 퍽! 퍽!
유장의 가슴과 배에 박혔다.
“커어억!”
유장은 오장이 끊어지는 고통을 받았다.
‘내가 일초지적도 되지 않다니…….’
서창이 강하다고 이 정도로 강하다니……!
“으악!”
유장이 허우적거리는 동안에도, 수하들의 비명은 끊이지 않고 동창부를 울렸다.
* * *
금의위와 동창에서 일어난 사건은 반시진도 지나기 전에 황궁 전체로 퍼져 나갔다.
동창과 황궁수호군은 서창과 금의위에 의해 궤멸되었다.
군부의 최고 수장 병조상서도 하후도에 편에 함께했다.
그렇게 황궁에 계속해서 큰일이 일어날 것 같았건만.
더 이상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하루가 지났다.
아침 일찍 수많은 대신들이 태화전으로 모여들었다.
전날 저녁에 각각 연락을 받았다.
모두가 황궁으로 들어서며 혹시나 모를 일에 몸을 떨었다.
다행히 태화전 앞까지 무사히 들어선 신하들은 황궁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환관에게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제독동창 유장이 외부 무림 세력인 구천마성의 명을 받았다는 내용.
그 사실을 알아낸 하후도 대장군을 죽이기 위해 북방 여진에게 몰래 서신을 보냈다는 내용까지.
더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일이 황제의 허락하에 이루어졌다는 것이었다.
태화전의 문이 열렸다.
황제는 수많은 대신들의 시선에 어쩔 줄 몰랐다.
척! 척! 척!
하후도가 태화전으로 들어섰다.
그의 뒤로 수하들에 의해 동창의 수장 유장이 끌려왔다.
“대학사께 보여 드려라.”
부장 양자웅이 손에 든 서신들을 대학사 도정에게 내밀었다.
“흐으으음.”
대학사 도정은 서신을 읽어 내렸다.
태화전으로 들어서기 전에 들었던 내용이 모조리 사실이었다.
그는 옆에 늘어선 대신들에게도 서신을 보여주었다.
하후도가 황제의 앞에 다가섰다.
“폐하께서는 어찌 그런 짓을 했소이까? 역적인 유장과 함께 나라를 팔아넘기려고 했소이다.”
“……모든 것이 짐의 불찰이외다. 여러분께 무슨 할 말이 있겠소이까.”
황제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오늘 이 자리에서 중요한 결심을 밝히겠소이다. 부덕한 짐은 더 이상 황제에 자리에 앉을 수 없으니…… 황위에서 물러나도록 하겠소이다.”
“폐하의 심고 끝에 내리신 결단에 감사드립니다.”
“대장군…… 어느 분께서 황위를 받게 되는 것이오?”
“들어오실 것입니다.”
스윽-
황제의 시선이 태화전으로 들어서는 인물을 향했다.
‘주…… 민!’
대신들은 오왕 주민이 들어서자 갑자기 술렁거렸다.
그들 또한 과연 누가 황위를 받을지 궁금했었다.
어떤 이들은 하후도가 황제의 자리에 욕심이 있지 않을까 의심하기도 했었다.
오왕 주민이 황제 앞에 섰다.
“형님을 뵙습니다.”
“주…… 민. 오랜…… 만이다.”
황제는 하후도의 눈빛과 마주쳤다.
그러고는 옆에 놓인 황금색의 보자기를 들었다.
천천히 아래로 내려서며 주민 앞에 다가섰다.
“……성군이 되시게나.”
전국옥새를 건네는 황제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